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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즐거운 오독(誤讀), 모호성에 대하여 - 8. 백발삼천장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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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즐거운 오독(誤讀), 모호성에 대하여 - 8. 백발삼천장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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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백발삼천장

 

 

10자로 표현된 유학자의 자세

 

이와 비슷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병주(幷州)에 얽힌 이야기가 그것이다. 타관 땅을 떠돌며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를 되뇌이다가도, 막상 고향 언덕에 서서 변해 버린 산천을 바라보노라면, 또 노산의 노래처럼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닐래라의 탄식은 금할 수 없는 법이다. 조선 중기의 시인 권필(權韠)은 그의 술회(述懷)시의 서두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建德豈吾土 幷州非故鄕 건덕(建德)이 어찌 내 살 땅이리 병주(幷州) 또한 고향 아닐세.

 

여기 나오는 건덕(建德)과 병주(幷州)는 땅 이름인데, 그 속에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건덕(建德)장자(莊子)』 「산목(山木)에 나오는 도가적 이상향의 이름이다. 그 나라 백성은 어리석고 소박하며 욕심이 적다고 했다. 남에게 베풀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고, 예의(禮義)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천지를 마음껏 다니면서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대인의 유토피아이다. 병주(幷州)는 당() 나라 때 시인 가도(賈島)에 얽힌 고사가 있다. 그는 본래 함양(咸陽) 사람이었는데, 오래동안 병주(幷州)에 살면서 늘 고향 함양을 그려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강을 건너 함양에 오고 보니, 이제는 도리어 병주가 그리워지더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면, 병주(幷州)는 흔히 2의 고향이란 의미로 나와 있다. 가도(賈島)는 승려 생활을 하였는데, 퇴고(推敲)의 고사가 인연이 되어 만난 한유(韓愈)의 권유로 환속하여 벼슬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므로 권필(權韠)이 위 시에서 건덕(建德)도 내 땅이 아니고, 병주(幷州)도 내 고향이 아니라고 한 것은, 한때 도불(道佛)에 탐닉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유자(儒者)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열 자 안에 담긴 함축이 깊고 깊다.

 

 

 

병주지정(竝州之情)

 

후대 병주지정(幷州之情)’의 고사를 낳게 한, 가도(賈島)가 병주(幷州)를 떠나면서 지은 도상건(度桑乾)이란 시를 보자.

 

客舍幷州已十霜 병주 땅 객사에서 십년 세월 보내며
歸心日夜憶咸陽 돌아가고픈 맘, 밤낮으로 함양을 생각했네.
無端更渡桑乾水 뜬금없이 다시금 상건수를 건너서
却望幷州是故鄕 병주를 바라보니 이 또한 고향일래.

 

십년 세월 동안 고향 함양(咸陽)을 밤낮으로 그리며 돌아갈 꿈을 키워 왔는데, 이제 다시금 상건수(桑乾水)를 건너고 나니 도리어 병주(幷州)가 고향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서울 사는 사람은 언제나 전원의 목가적 풍광(風光)을 사모한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가면 며칠이 못 되어 다시 도회의 번화한 풍광과 따뜻한 커피 한잔이 그립게 마련이다. 이에 대한 처방은 무엇일까? 서울과 시골의 중간쯤에 사는 것은 어떨까? 가도(賈島)의 이 시가 널리 회자되어, 일본 에도시대의 대표적 시인 마쓰오 바쇼오(松尾芭蕉, 1644~1694)는 다음과 같은 하이꾸(俳句)를 남겼다.

 

 

가을 십년에

도리어 에도(江戶) 쪽을

가리키는 고향

 

 

십여 성상의 에도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떠나는데, 문득 되돌아보니 고향인 이하(伊賀)를 향한 설레임보다 에도를 향하는 애틋한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는 사연이다.

 

그런데 바로 병주(竝州)와 관련된 고사의 인용은 옛 사람들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흥미롭다. 요점만 먼저 말하면, 상건수(桑乾水)는 병주(竝州)와 함양(咸陽) 사이를 흐르는 강이 아니다. 오히려 병주(幷州)의 북편으로 흐르는 강이다. 말하자면 시인은 상건수를 건넘으로 해서 함양에 온 것이 아니라, 함양에서 오히려 더 멀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고향 함양을 밤낮으로 간절히 그리다가, 고향에 돌아가기는커녕 상건수를 건너 그 반대편으로 더 멀어지고 보니, 이제 병주를 바라보며 오히려 위안을 삼는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니 고향에 돌아갈 날은 그 언제일 것인가? 이것이 시인이 위 시에서 전달하려고 한 본 뜻이다. 왕세무(王世懋)예포힐여(藝圃擷餘)에 나온다.

 

이수광(李晬光)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살펴보니 당() 나라 때 상건도독부를 설치하였는데 병주(竝州)의 북쪽에 있었다. 이제 상건수를 건넜다고 했으니, 함양(咸陽)에서 더욱 더 멀어진 것이다[按唐置桑乾都督府, 在幷州北. 今日渡桑乾水, 則去咸陽益遠矣].”라고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더욱이 최근의 연구에서 이 작품이 애초에 가도(賈島)가 아닌 유조(劉皂)의 작품이며, 제목도 도상건(渡桑乾)이 아닌 여차삭방(旅次朔方)으로 밝혀졌다.

 

과연 두 곳 지명과 연관하여 상건수의 위치를 비정해 보면, 지금까지 위 시에 대한 고금의 착각이 자못 통쾌하기도 하려니와, 이미 병주(幷州)란 말은 망향(望鄕)과 그에 따른 모순 심리의 정운(情韻)이 담뿍 담긴 말이 되어, 이제 와서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설복시키기가 용이치 않은 일이 되고 말았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2. 오랑캐 땅의 화초

3. 개가 짖는 이유

4. 개가 짖는 이유

5. 무지개가 뜬 까닭

6. 무지개가 뜬 까닭

7. 백발삼천장

8. 백발삼천장

9. 뱃 속 아이의 정체

10. 문에 기댄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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