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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론(論) - 3.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發憤抒情)의 정신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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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론(論) - 3.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發憤抒情)의 정신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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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發憤抒情)의 정신

 

 

치욕조차 버텨내며 집필하게 만든 발분서정

 

일찍이 사마천은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옛날 서백(西伯)은 유리(羑里)에 구금되어 주역(周易)을 부연하였고, 孔子는 진채(陳蔡)에서 곤액을 당하여 춘추(春秋)를 지었다. 굴원(屈原)은 쫓겨나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左丘)는 실명한 뒤 국어(國語)를 남겼다. 손자(孫子)는 다리가 잘리고 나서 병법(兵法)을 논하였고, 여불위(呂不韋)는 촉() 땅으로 옮긴 뒤 여람(呂覽)이 세상에 전한다. 한비자(韓非子)는 진()나라에 갇혀서 설난(說難)고분(孤憤)을 지었다. 시경(詩經)3백편은 대개 성현(聖賢)이 발분(發憤)하여 지은 바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뜻이 맺힌 바가 있으나 이를 펼쳐 통함을 얻지 못한 까닭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장차 올 것을 생각한 것이다.

西伯羑里, 周易, 孔子陳蔡, 春秋. 屈原放逐, 離騷, 左丘失明, 厥有國語. 孫子臏腳, 而論兵法, 不韋, 世傳呂覽. 韓非, 說難孤憤. 三百篇, 大抵賢聖發憤之所爲作也.

此人皆意有所郁結, 不得通其道也, 故述往事, 思來者.

 

 

5천의 보병으로 흉노의 본진을 유린하다 장렬한 전투 끝에 부득이 흉노에 항복했던 장군 이릉(李陵). 모두 외면하는 그를 외로이 변호하다가, 무제(武帝)의 격노를 불러 궁형(宮刑)에 처해졌던 사마천은 오로지 사기(史記)를 완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궁형(宮刑)의 치욕과 모멸을 감수하였다. 완성된 사기(史記)의 서문을 쓰면서 그는, 좌절 속에서 불멸의 저술을 꽃 피웠던 지나간 성현(聖賢)의 발분(發憤)의 저작(著作)들을 떠올리고 있다.

 

이제 후대는 사마천의 이 발분저서(發憤著書)’의 정신을 높여 기린다. 앞서 연암이 강조했던 사마천의 마음이란 바로 이 발분(發憤)’의 정신에 다름 아니다. ‘()’이란 주자(朱子)의 풀이에 따르면 마음으로 통함을 구하나 아직 이를 얻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일찍이 공자(孔子)발분망식(發憤忘食)’을 말하였고, 굴원(屈原)은 다시 여기에 사회적 성격을 담아 초사(楚辭)』 「구장(九章)석송(惜誦)에서 송덕함 즐기지 않다가 근심을 부르니, 을 내어 내 마음 펴 보이네[惜誦以致愍兮, 發憤以抒情].”이라 하여 발분서정(發憤抒情)’을 말한 바 있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이 있으니, 이를 펴지 않고서는 견딜 길이 없다.

 

 

 

나비를 놓쳐버린 심정으로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 「굴원열전(屈原列傳)에서 굴원은 왕의 듣는 것이 총명하지 않고, 참소와 아첨이 임금의 밝음을 가려 막아, 사곡(邪曲)이 공()을 해치고, 방정한 것이 용납되지 않는 것을 미워하였다. 그런 까닭에 근심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 이소(離騷)를 지었다[屈平疾王聽之不總也, 讒諂之蔽明也, 邪曲之害公也, 方正之不容也, 故憂愁幽思而作].”고 적고 있다.

 

이 뜻을 부연하여 조선 말기의 문인 강위(姜瑋)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의 지극한 것은 재주 부리지 않고 얻은 것이다. 재주 부림에 말미암아 얻은 것은 대개 지극한 것이 아니다. 난봉(鸞鳳)의 맑은 소리와 주옥(珠玉)의 빛나는 기운, 병든 이의 신음 소리, 슬피 우는 이가 흘리는 눈물이 어찌 모두 재주 부림에 말미암아 얻어진 것이겠는가? 그런 까닭에 말하기를, () 삼백편(三百篇)은 모두 성현(聖賢)이 발분(發憤)하여 지은 바라고 한다. 이로써 본다면 발분(發憤)하지 않고는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무릇 시인은 눈앞에서 나비를 놓쳐버린 소년의 안타까움을 지녀야 한다. 자신에게 닥쳐온 시련과, 견딜 수 없는 좌절감 앞에서 주저 물러앉지 않는 발분(發憤)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발분(發憤)하는 서정(抒情) 없이 어찌 남을 감동시킬 것이랴.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 굴원도(屈原圖), 19세기, 132X283.7cm, 일본 이쓰쿠시마 신사.

상수(湘水) 물가를 초췌한 모습으로 방황하는 굴원의 모습이다. 현실은 모순투성이다.

정의는 불의 앞에 힘을 못 쓰고 진심은 외면당하고 조롱받는다. 어쩌겠는가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불평즉명(不平則鳴), 불평(不平)이 있어야 운다

2.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發憤抒情)의 정신

3.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發憤抒情)의 정신

4.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과 시능궁인(詩能窮人)

5.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6.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7. ()는 궁달(窮達)과는 무관하다는 주장

8. ()는 궁달(窮達)과는 무관하다는 주장

9. ()는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

10. 탄탈로스의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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