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남원골 정생과 홍도 부부의 기구한 삶 이야기
홍도(紅桃)
南原鄭生者, 失其名. 少時, 善吹洞簫善歌詞, 意氣豪宕不羈, 懶於學問, 求婚於同邑良家, 良家有女名紅桃, 兩家議結. 吉日已迫, 紅桃父, 以鄭生不學辭之. 紅桃聞而言於父母曰: “婚者天定也, 業已許定, 當行於初定之人, 中背之可乎?” 其父感其言, 遂與鄭結婚, 第二年, 生子名夢錫.
萬曆壬辰之變, 以射軍防倭. 丁酉年, 楊摠兵元守南原, 生在城中, 紅桃男服隨夫, 軍中莫知之也. 夢錫隨祖父, 入智異山避禍. 城陷, 生隨摠兵得出, 而與紅桃相失. 謂其妻隨天兵而去, 生跟天兵, 轉入中國, 行乞至浙江, 遍求之.
一日同天宮道主乘浙江船, 月夜吹簫, 隣有一人言曰: “此洞簫似是前日, 朝鮮所聽之調也.” 生疑之曰: “無乃吾妻也? 若非吾妻, 何以知此調也?” 乃復吟前日與妻相和之歌辭, 其人抵掌大號曰: “此吾夫!” 生大驚, 直欲乘小船往追, 道主固止之曰: “此南蠻商船, 與倭商雜者也, 庸如往, 無益反有害, 俟明發, 吾有以處之.” 黎明, 道主給數十兩並家丁數人, 諭以求之, 果其妻也. 相與握手失聲號哭, 舟中無不驚異悲歎者. 盡南原陷時, 紅桃爲倭所虜入日本, 日本見男服, 不知婦也, 充之男丁. 轉賣隨商船, 凡男子之役, 或能或不能, 而善助刺船. 自南蠻至浙江者, 意欲因之還朝鮮也. 生與紅桃仍居, 浙江之人憐之, 各與銀錢米穀, 得以糊口.
生子夢眞, 年十七求婚, 以朝鮮之人, 故華人不許. 有處子求婚夢眞曰: “吾父東征往朝鮮不還. 吾願嫁此人, 往朝鮮, 見父死所, 招父魂而祭之. 父如不死, 萬一或再逢.” 遂嫁夢眞居焉.
戊午北征, 生募入劉綎軍, 征奴賊, 劉公敗死, 胡兵殲天兵殆盡. 生高聲曰: “吾非中國人乃朝鮮人也.” 故釋不殺. 仍逃出朝鮮地, 下南原. 行到公洪道尼山縣, 脚腫求針醫, 醫天兵也, 昔天兵撤回時, 落其後者也. 問其姓名居趾, 乃夢眞之妻父也, 問其所由, 相持痛哭. 偕與歸南原訪故居, 見子夢錫取妻産子居故宅. 生旣與子遇, 復遇子之妻父, 梢慰孤寂. 而但與紅桃旣遇而旋失, 猶鬱悒無悰.
旣一年, 紅桃轉賣家産賃小船, 與子夢眞及其婦, 作華倭鮮三色服. 自浙江發, 見華人以華人稱之, 見倭人以倭人稱之. 浹一月二十五日, 泊于濟州楸子島外洋佳可島. 見其粮只餘七合, 紅桃謂夢眞曰: “吾等在船饑死, 則終必爲魚食, 不如登島自縊而死.” 其婦固止之曰: “吾等一合之米, 煮粥飮, 以䭜一日之飢, 則足支六日. 且見東方, 隱然有陸地, 不如忍而求生. 辛遇行船, 渡陸地則是十八九生矣.” 夢眞母如其言. 適五六日, 統制使斜水船來泊. 紅桃俱說與夫南原相離之故, 浙江相合之事, 其夫死北征之由, 其船人聞而悲之. 將紅桃小船, 繫之船尾, 下于順天地. 紅桃絜男婦訪南原舊址, 則其夫與子夢錫夢眞之妻父華人同居焉. 非徒擧家俱全, 並與婚媾而無恙, 其樂融融洩洩如也.
太史公曰: “鄭生東人也, 亂離失其妻, 遠求之中國. 紅桃失其夫於兵戈中, 入三國男服變容以全身. 夢眞妻自求與異國人爲婚, 求見父死地. 卒皆會於一處, 一家六人不期合者, 皆在於萬里風濤別境之外者. 雖出於理外, 萬一之幸, 而庸非所謂, 至誠感神者耶? 奇乎異哉!”
해석
南原鄭生者, 失其名.
남원(南原)의 정생(鄭生)이란 사람의 이름을 잊었다.
少時, 善吹洞簫善歌詞, 意氣豪宕不羈, 懶於學問,
어렸을 적에 잘 퉁소를 불고 잘 가사를 불렀지만 의기는 호탕하면서도 얽매인 게 없어 학문에는 게을렀다.
求婚於同邑良家, 良家有女名紅桃, 兩家議結.
같은 동리의 양가집에 혼처를 구하는데 양가집의 계집 이름이 홍도(紅桃)인데 두 집안에서 결혼하길 의론했다.
吉日已迫, 紅桃父, 以鄭生不學辭之.
길일이 다다랐지만 홍도의 아버지는 정생(鄭生)의 배우지 않음으로 그걸 사양했다.
紅桃聞而言於父母曰: “婚者天定也, 業已許定, 當行於初定之人, 中背之可乎?”
홍도가 듣고 부모에게 “혼인이란 하늘이 정하는데 업이 이미 정하길 허락하셨으니 마땅히 처음 정한 사람에게 행해져야지 중간에 배반함이 옳은 일인가요?”라고 말했다.
其父感其言, 遂與鄭結婚, 第二年, 生子名夢錫.
아버지는 그 말에 감동하여 마침내 정생과 결혼했고 2년에 아들을 낳고 몽석(夢錫)이라 이름 지었다.
萬曆壬辰之變, 以射軍防倭.
만력(萬曆)【만력(萬曆): 명나라 신종 황제의 연호(1573~1629)】 임진년 변란(變亂)에 사군(射軍)【사군(射軍): 삼수(三手)의 하나인 사수(射手)를 말함. 임진왜란 당시 중국의 군제(軍制)를 모방하여 특수 전투군을 두었는데, 포수(砲手), 사수(射手), 살수(殺手)등을 특기자로 조직했다.】으로 왜적을 막았다.
丁酉年, 楊摠兵元守南原, 生在城中, 紅桃男服隨夫, 軍中莫知之也.
정유년에 총병(總兵) 양원(楊元)이 남원을 수비하는데 정생은 남원성 속에 있었고 홍도는 남장을 하고서 남편을 따라갔지만 군중에선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夢錫隨祖父, 入智異山避禍.
몽석은 할아버지를 따라 지리산에 들어가 재앙을 피했다.
城陷, 生隨摠兵得出, 而與紅桃相失.
남원성이 함락되자 정생은 총병(摠兵)을 따라 나올 수 있었지만, 홍도와는 서로 헤어졌다.
謂其妻隨天兵而去, 生跟天兵, 轉入中國, 行乞至浙江, 遍求之.
아내는 명나라 군대[天兵]를 따라 갔다고 여기고 정생은 명나라 군대를 따라 옮겨 중국에 들어가 다니며 구걸하며 절강(浙江)에 이르러 두루 아내를 찾았다.
一日同天宮道主乘浙江船, 月夜吹簫, 隣有一人言曰:
하루는 도교[天宮]【천궁(天宮): 신화 혹은 종교에서 가리키는 바, 천신이 거주하는 궁전. 이곳에서는 도관(道觀)의 이름일 듯 함.】의 스님[道主]【도주(道主): 도교의 창시자. 도교의 시조. 도교의 승.】과 절강(浙江)의 배에 타고 달밤에 퉁소를 부르니 곁에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此洞簫似是前日, 朝鮮所聽之調也.”
“이 퉁소는 예전에 조선에 들었던 곡조와 비슷하구만.”
生疑之曰: “無乃吾妻也? 若非吾妻, 何以知此調也?”
정생이 “내 아내가 아닌가? 만약 내 아내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 곡조를 아나?”라고 의심했다.
乃復吟前日與妻相和之歌辭, 其人抵掌大號曰: “此吾夫!”
곧바로 다시 예전에 아내와 서로 화답했던 가사를 읊조리니 그 사람이 손뼉을 치며 “이는 내 남편이예요!”라고 말했다.
生大驚, 直欲乘小船往追, 道主固止之曰: “此南蠻商船, 與倭商雜者也, 庸如往, 無益反有害, 俟明發, 吾有以處之.”
정생이 크게 놀라 곧장 조각배를 타고 가서 쫓게 하니 스님은 짐짓 그를 말리며 “이는 남쪽 오랑캐의 상선으로 왜놈 상인들이 섞여 있으니 어리석게 간다해도 도움은 없고 도리어 해가 되리니 해가 뜨길 기다리려 내가 조처하겠오.”라고 말했다.
黎明, 道主給數十兩並家丁數人, 諭以求之, 果其妻也.
여명에 스님은 몇 십량과 집안의 장정 몇 사람을 보내 타이르며 구하니 과연 아내였다.
相與握手失聲號哭, 舟中無不驚異悲歎者.
서로 손을 맞잡고 소리를 잃은 채 통곡하니 배 속에서 놀라 기이하게 여기며 비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盡南原陷時, 紅桃爲倭所虜入日本, 日本見男服, 不知婦也, 充之男丁.
남원이 모두 함락됐을 때, 홍도는 왜적에게 잡혀 일본에 들어갔는데 일본인은 남장한 걸 보고 여자임을 모르고 남자 장정으로 충당한 것이었다.
轉賣隨商船, 凡男子之役, 或能或不能, 而善助刺船.
다시 팔려 상선을 따르게 되었는데 모든 남자의 일에서 혹은 할 수 있었고 혹은 할 수 없었지만 배를 젓는 건 잘 도왔다.
自南蠻至浙江者, 意欲因之還朝鮮也.
남만으로부터 절강에 온 것은 내심 조선으로 돌아가고자해서였다.
生與紅桃仍居, 浙江之人憐之, 各與銀錢米穀, 得以糊口.
정생과 홍도는 곧이어 함께 사니, 절강 사람들이 그들을 가련히 여겨 각각 은전과 쌀과 곡식을 주어 입에 풀칠 할 수 있었다.
生子夢眞, 年十七求婚, 以朝鮮之人, 故華人不許.
아들 몽진(夢眞)을 낳았고 나이 17살이라 혼처를 구하는데 조선 사람이었기에 중국사람은 허락질 않았다.
有處子求婚夢眞曰: “吾父東征往朝鮮不還.
어떤 처자가 몽진에게 구혼하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동쪽 정벌로 조선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어요.
吾願嫁此人, 往朝鮮, 見父死所, 招父魂而祭之.
제가 원하는 건 이 사람에게 시집가 조선에 가서 아버지의 돌아가신 곳을 보고 아버지의 넋을 불러 제사 지내는 것이어요.
父如不死, 萬一或再逢.”
아버지께서 만약 돌아가지 않으셨다면 만에 하나라도 혹 재회하겠죠.”
遂嫁夢眞居焉.
마침내 몽진에게 시집가서 살았다.
戊午北征, 生募入劉綎軍, 征奴賊, 劉公敗死, 胡兵殲天兵殆盡.
무오년(1618)에 북쪽 정벌에 정생은 유정(劉綎) 군에 모집되어 들어가 흉노를 정벌하다가 유정(劉綎)이 패하여 죽자 후금의 병사들은 명나라 군사를 섬멸하길 거의 다했다.
生高聲曰: “吾非中國人乃朝鮮人也.” 故釋不殺.
정생은 “나는 중국사람이 아니고 조선 사람이오.”라고 큰 소리쳤기 때문에 풀어주며 죽이지 않았다.
仍逃出朝鮮地, 下南原.
곧바로 조선 땅으로 도망쳐 나와 남원으로 내려갔다.
行到公洪道尼山縣, 脚腫求針醫, 醫天兵也, 昔天兵撤回時, 落其後者也.
가다가 공홍도(公洪道)【공홍도(公洪道): 충청도의 예 이름.】 니산현(尼山縣)에 이르러 다리의 종기로 침의 구하니 침의는 명나라 군사로 예전에 명나라 군대가 철수할 때에 후미에서 낙오한 이였다.
問其姓名居趾, 乃夢眞之妻父也, 問其所由, 相持痛哭.
성명과 사는 곳을 물으니 곧 몽진 아내의 아버지였고 연유를 묻고 서로 부축하며 통곡했다.
偕與歸南原訪故居, 見子夢錫取妻産子居故宅.
함께 남원으로 돌아와 옛 집을 찾아가니 아들 몽석이 아내를 취해 아들을 낳고 옛 집에 사는 게 보였다.
生旣與子遇, 復遇子之妻父, 梢慰孤寂.
정생이 이미 아들과 만났고 다시 아들 아내의 아버지와 만났기에 고독함과 적적함에 조금의 위로가 됐다.
而但與紅桃旣遇而旋失, 猶鬱悒無悰.
그러나 다만 홍도와 이미 만났다가 갑자기 놓쳤으니 오히려 울적하며 즐겁지 않았다.
旣一年, 紅桃轉賣家産賃小船, 與子夢眞及其婦, 作華倭鮮三色服.
이윽고 1년에 홍도는 가산을 팔고 조각배를 사서 아들 몽진과 며느리와 중국과 일본과 조선 세 나라의 옷을 만들었다.
自浙江發, 見華人以華人稱之, 見倭人以倭人稱之.
절강으로부터 출발해 중국인을 보면 중국인이라 말했고 일본인을 보면 일본인이라 말했다.
浹一月二十五日, 泊于濟州楸子島外洋佳可島.
한 달하고 25일이 지나서 제주(濟州) 추자도(楸子島) 바깥의 바다의 가가도(佳可島)에 정박했다.
見其粮只餘七合, 紅桃謂夢眞曰: “吾等在船饑死, 則終必爲魚食, 不如登島自縊而死.”
식량이 단지 7홉만 남아 홍도가 몽진에게 “우리들이 배에서 굶어죽는다면 끝내 반드시 물고기 밥이 되리니 섬에 올라 목매 죽는 것만 못해요.”라고 말했다.
其婦固止之曰: “吾等一合之米, 煮粥飮, 以䭜一日之飢, 則足支六日.
며느리가 짐짓 말리며 말했다. “우리들은 한 홉의 쌀로 죽을 끓여 마셔서 하루의 주림은 요기한다면 6일은 넉넉히 버티어요.
且見東方, 隱然有陸地, 不如忍而求生.
또한 동쪽을 보니 은근히 육지가 있는 듯하니 차마 생을 구하는 것만 못해요.
辛遇行船, 渡陸地則是十八九生矣.”
다행히 다니던 배를 만나 육지로 건너가게 되면 십중팔구 살 거예요.”
夢眞母如其言.
몽진의 어머니의 홍도는 그 말과 같이 했다.
適五六日, 統制使斜水船來泊.
마침 5~6일에 통제사(統制師) 사수선(斜水船)【사수선(斜水船): 사수(斜水)는 물 이름으로 바다 경계를 순찰하는 배를 말한다.】이 와서 정박했다.
紅桃俱說與夫南原相離之故, 浙江相合之事, 其夫死北征之由, 其船人聞而悲之.
홍도가 남편과 남원에서 헤어진 까닭과 절강에서 서로 만난 일과 남편이 북쪽 정벌에서 죽은 이유를 다 말하니 뱃사람들이 듣고선 슬퍼했다.
將紅桃小船, 繫之船尾, 下于順天地.
장차 홍도의 조각배를 배의 꼬리에 매달아 순천의 땅에서 내려줬다.
紅桃絜男婦訪南原舊址, 則其夫與子夢錫夢眞之妻父華人同居焉.
홍도는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남원의 옛집에 찾아가니 남편과 아들 몽석과 몽진 아내의 아버지인 중국사람이 함께 살고 있었다.
非徒擧家俱全, 並與婚媾而無恙, 其樂融融洩洩如也.
온 집안이 모두 온전했을 뿐 아니라 다 결혼했으며 무탈했으니 그 기쁨이 화기애애한 듯, 화락한 듯했다.
太史公曰: “鄭生東人也, 亂離失其妻, 遠求之中國.
태사공은 말했다. “정생은 우리나라 사람으로 난리에 아내를 잃자 멀리 중국에 가서 찾았다.
紅桃失其夫於兵戈中, 入三國男服變容以全身.
홍도는 남편을 전쟁 중에 잃자 삼국에 들어가 남자 복장으로 변장하며 몸을 온전히 했다.
夢眞妻自求與異國人爲婚, 求見父死地.
몽진의 아내는 스스로 다른 나라 사람과 혼인하길 구해 아버지가 죽은 땅을 찾아보았다.
卒皆會於一處, 一家六人不期合者, 皆在於萬里風濤別境之外者.
마침내 모두 한 곳에서 만났는데 한 집안의 여섯 사람이 만나길 기약하지 않고 모두 만 리의 파도 치는 색다른 지역 바깥에 있었다.
雖出於理外, 萬一之幸, 而庸非所謂, 至誠感神者耶? 奇乎異哉!”
비록 이치의 바깥에서 나와 만에 하나의 행운이지만 평상시에 말해지던 ‘지성이면 신을 감동시킨다’는 게 아니겠는가? 기이하고도 특이하도다!”
인용
1. 네모난 마음을 지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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