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따라 산책을 하다
다시 임용고시에 도전한지 어느덧 1년 6개월 정도가 흘렀다. 다시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부분은 역시나 한시였다. 그전에 공부를 할 때도 산문 부분이야 어떻게든 접근할 수 있었다손 치더라도 한시는 도무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해석을 하고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시험 문제에 출제된 한시 관련 문제는 풀기보단 감에 따라 찍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그에 따라 틀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한시라는 난공불락, 그 돌파구를 찾다
막상 임용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3월의 불안했던 심리상태가 지금 생각해봐도 생생할 정도로 떠오른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논어』는 그래도 계속 책을 읽었기도 했고 여러 글을 쓰며 인용도 하긴 해서 해석은 잘 안 되더라도 아예 이해가 안 되진 않았다. 물론 조금 읽다보면 어느새 넋이라도 있고 없는 상태가 되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메타인지하긴 했지만 이런 시간들이 지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시에 관련되어선 예전 느낌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껴야 했다. 도무지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런 글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한 채 예전에 했던 방식 그대로 맹목적으로 읽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럴 땐 절로 ‘습관이란 무섭죠♩ 생각처럼 안 되요♬’라는 노래가사가 떠오르며 씁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막막할 때 ‘소화시평 스터디’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당시 백방으로 스터디할 멤버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찾아온 학교에서 스터디 멤버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게 미루어지다가 이 스터디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무작정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교수님이 진행하시지만 강의식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스터디가 아닌 발표자가 정해지고 발표를 하면 교수님이 내용을 곱씹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바로 이 스터디에서 난 그렇게도 어렵게만 여겼던 한시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찾게 됐고 그와 더불어 한문공부의 재미까지 알게 됐다. 여러모로 나에게 가장 적절한 시기에 찾아온 선물 같은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작년 4월 11일에 참여하며 함께 공부해나갔던 ‘소화시평’이 올해 7월에야 마무리 짓게 되었다. 장장 1년 3개월 간의 공부여정이었던 셈이다. 이 과정을 통해 공부하는 방법을 확 바꿔 공부한 내용은 그때그때 바로 정리하게 됐으며 그때 느꼈던 소감들은 빠짐없이 담아내게 되었다. 바로 여기서 예전과는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내 감상을 담아내게 됐다는 점이다. 예전엔 나의 해석이나 감상 따윈 부족할 게 뻔하기 때문에 그런 건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하지만 단재학교에서 근무하며 순간순간의 감상들과 여행들을 글로 쓰다 보니 ‘부족할지라도, 어색할지라도, 그리고 나중에 보면 쪽팔릴지라도 그 순간은 그 순간에만 담아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시간은 무한정 있을 것 같아도, 그리고 미래의 나는 그런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지금 하지 못하면 그건 나중엔 더 못하게 되니 말이다. 바로 소화시평에 담아낸 나의 족적들은 소화시평 각 작품에 후기 형식으로 담아놨고 그건 그만큼 발분했다는 흔적이고 하다.
한시에 재미가 붙으니 산책도 떠나고 싶더라
이런 과정을 통해 한시가 재밌어졌고 한문이 보고 싶어졌다. 한문은 그저 표현양식일 뿐 단순히 생각하면 과거 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글이지 않은가. 늘 여러 책을 읽고 싶었던 것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해서였다. 그처럼 한문도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과거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느냐를 알게 한다. 더욱이 지금과는 매우 달리 이전 시대엔 문학의 꽃이라 하면 한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시를 때에 따라 지을 수 있어야 했고 친구들과 모여 한 잔 거나하게 마시더라도 그 운치를 한시로 표현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도 읽은 적이 있었던 정민 선생님의 ‘한시미학산책’이란 책을 다시 집어 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미 소화시평도 선집으로나마 읽었으니 그런 기반을 통해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예전과는 다르게 읽혀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달라진 공부방식대로 그저 읽는 정도가 아니라 본문의 내용을 차곡차곡 블로그에 아로새겨가며 읽어가려 했다. 그 첫 도전은 작년 10월 28일에 시작됐고 임용고시가 있던 11월 24일까지 총 다섯 챕터를 마치게 됐다. 근 한 달이란 시간 동안 그래도 꾸준히 정리해나가며 나만의 족적을 남긴 것이다.
그렇게 결국 시험에도 떨어지고 블로그도 다음에서 티스토리로 옮기게 되며 이전 작업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시미학산책은 잡을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그러다 티스토리가 어느 정도 정상화된 이후에야 드디어 손에 잡을 수 있었고 다시 정리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올해 7월 22일의 일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이 책 자체의 내용이나 볼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그러니 과연 이게 언제 마무리가 지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다시 시작했고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읽어가며 정리해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 8월의 마지막 날에 기어코 끝을 보게 됐다. 마지막에 음미하지 못하고 서두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끝내고 나니 기분은 무척이나 좋다. 이건 마치 ‘트위스트 교육학 후기’를 전전긍긍하며 55편의 글로 마무리 지었을 때나, ‘카자흐스탄 여행기’를 80편의 글로 마무리 지었을 때 느꼈던 쾌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시작할 땐 이게 언제 끝나지 막막하고 때론 답답하기까지 하지만 시나브로 한 편씩 써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끝이 나니 말이다.
산책을 마치다
이렇듯 한시를 따라 산책을 떠났고 잠시 산책을 마치고 나니 소화시평 스터디와 한시미학산책을 통해 얻게 된 게 무언지도 알겠더라. 소화시평 스터디를 통해서는 난해하기만 한시를 친근하게 느끼게 됐다면, 한시미학산책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서는 한시의 맛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알게 됐던 것이다. 예전에 박동섭 교수와 함께 공부를 할 때 ‘사후적 지성’이란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늘 무언가를 하기 전에 ‘이걸 하면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아야만 할 수 있다’는 효율성에 빠져들어 세상을 보고 사람을 봤었는데, 그 말을 통해선 진정 의미가 있는 일들은 ‘하기 전에나 하고 있을 땐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진정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하는 공부랄지, 인생살이랄지 하는 것들은 모두 사후적 지성의 산물이다. 때론 그저 좋아서 했던 게 어느 순간 돌아보면 자신의 삶을 바꿔놓기도 하고,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에서 엄청난 의미를 건져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하기 전부터 의미 있는 일에 전심전력하려 할 게 아니라, 그저 왜 하는지 모르는, 그러나 왠지 모르게 하고 싶은 일에 전심전력해볼 일이다.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사후적으로 어떤 식의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 박동섭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의 이름을 패러디해서 ‘괜찮아, 사후적 지성이야’라고 제목을 달은 것이고, 그건 그만큼 비루한 일상일지라도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는 현재를 긍정하자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한시미학을 따라 떠난 산책은 이제야 끝나게 됐다. 이런 마무리가 다음에 또 어떤 것으로 이어지고 또 어떤 마주침들을 만들어낼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한문이 재밌고, 한시가 맛나던 오늘 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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