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홍만종이 뽑은 명시 선집
我東之詩, 上自麗朝, 下至近代, 警聯之可觀者, 不爲不多, 而不能盡錄. 姑取若干人七字詩聯, 略加批評.
鄭學士「長遠亭」詩: ‘綠楊閉戶八九屋, 明月捲簾兩三人.’ 意境入神, 如洛妃凌波, 步步絶塵.
金老峯「送人」詩: ‘天馬足驕千里近, 海鰲頭壯五山輕,’ 造語俊健, 如李廣上馬, 推墮胡兒.
李白雲「夏日」詩: ‘密葉翳花春後在, 薄雲漏日雨中明.’ 寫景精妙, 如龍眠筆下, 物色生態.
李益齋「多景樓」詩: ‘風鐸夜喧潮入浦, 烟簑暝立雨侵樓.’ 淸駃豪敞, 如純陽朗吟, 飛過洞庭.
李牧隱「淸心樓」詩: ‘捍水功高馬巖石, 浮天勢大龍門山.’ 突兀壯奇, 如銅仙奉盤, 屹立空中.
해석
我東之詩, 上自麗朝, 下至近代,
우리 동방의 시는 위로 고려 때로부터 아래로 조선에 이르기까지
警聯之可觀者, 不爲不多, 而不能盡錄.
놀라운 연구(聯句) 가운데 볼 만한 게 많지 않음이 없지만 모두 기록할 수는 없다.
姑取若干人七字詩聯, 略加批評.
그래서 몇 사람의 칠언시를 취하여 대략 비평을 첨가하겠다.
鄭學士「長遠亭」詩: ‘綠楊閉戶八九屋, 明月捲簾兩三人.’
학사 정지상의 「장원정에서[長遠亭]」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綠楊閉戶八九屋 | 푸른 버들에 문을 가린 여덟아홉 집. |
明月捲簾三兩人 | 밝은 달에 주렴 걷는 두세 사람. |
意境入神,
의경이 신묘한 데로 들어갔으니
如洛妃凌波, 步步絶塵.
마치 낙비【낙비(洛妃): 전설 속의 낙수(洛水)의 여신 복비(宓妃)를 말한다. 원래 복희씨(宓羲氏)의 딸이었다고 한다.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이 수선화(水仙花)를 낙비에 비유하여, 「왕충도가 수선화 50가지를 보내와서, 흔연히 기뻐하며 수선화를 위해 읊다[王充道送水仙花五十枝 欣然會心 爲之作詠]」시에 “파도 넘어오는 선녀는 버선에 먼지 일고, 물 위에서 아리땁게 부연 달빛 밟고 오네[凌波仙子生塵襪 水上輕盈步微月].”라고 했다】가 파도에 올라타 거닐며 티끌을 끊어버리는 것과 같다.
金老峯「送人」詩: ‘天馬足驕千里近, 海鰲頭壯五山輕,’
노봉 김극기의 「사람을 보내며[送人]」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天馬足驕千里近 | 하늘의 말이 힘차서 천리가 지척이고. |
海鰲頭壯五山輕 | 바다 자라 머리가 굳세니 오산도 가볍다네. |
造語俊健,
말을 만들어낸 게 굳세어,
如李廣上馬, 推墮胡兒.
마치 이광이 말을 타고 오랑캐 아이를 밀어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백운 이규보 「여름날[夏日] / 여름날 눈에 닿는 대로 짓다[夏日卽事]」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密葉翳花春後在 | 우거진 잎사귀에 가려진 꽃은 봄 갔어도 남아 있고, |
薄雲漏日雨中明 | 엷은 구름에 새어나온 햇살, 비 오는 중에도 밝구나. |
寫景精妙,
경치를 묘사한 것이 정밀하고 묘하니
如龍眠筆下, 物色生態.
마치 이공린【용면(龍眠): 송(宋) 이공린(李公麟)을 말한다. 그가 그린 산장도(山莊圖)는 세상의 보물로 일컬어졌으며 특히 인물의 묘사에 뛰어나 고개지(顧愷之)와 장승요(張僧繇)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宋史 卷444』】이 붓을 대자 물색에 생기 있는 자태가 생겨나는 것 같다.
李益齋「多景樓」詩: ‘風鐸夜喧潮入浦, 烟簑暝立雨侵樓.’
익재 이제현의 「다경루에서[多景樓] / 다경루에서 권일재를 모시고 옛 사람의 운으로 함께 짓다[多景樓陪權一齋用古人韻同賦]」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風鐸夜喧潮入浦 | 풍경이 요란한 밤, 조수는 포구에 들고, |
煙蓑暝立雨侵樓 | 안개 속 도롱이 입고 선 밤, 비는 누각에 들이차네. |
淸駃豪敞,
맑고도 빠르며 호탕하고 드높으니,
如純陽朗吟, 飛過洞庭.
마치 순양 여동빈(呂洞賓)이 낭랑하게 읊조리며 동정호를 날아 지나는 것 같다.
李牧隱「淸心樓」詩: ‘捍水功高馬巖石, 浮天勢大龍門山.’
목은 이색의 「여주 청심루에 차운하며 쓰다[驪興淸心樓題次韻] / 청심루에서[淸心樓]」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捍水功高馬巖石 | 물을 막은 공이 높은 마암의 바위요, |
浮天勢大龍門山 | 하늘에 떠서 기세가 커다란 용문산이네. |
突兀壯奇,
우뚝하고 웅장하고 기이하니
如銅仙奉盤, 屹立空中.
마치 동선이 승로반(承露盤)【승로반(承露盤): 승로반은 이슬을 받는 소반이다. 한무제(漢武帝)가 일찍이 신선(神仙)이 되기 위하여 구리로 승로반을 만들었는데, 높이가 20장(丈)이나 되고 크기는 열 아름이나 되었다. 맨 꼭대기에 선인장(仙人掌)이 있어 이것으로 이슬을 받아 마시고 선술(仙術)을 익혔다는 고사이다. 『漢書』卷二十五, 「郊祀志」上】을 받들고 우뚝하게 공중에 서있는 것 같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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