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민석이의 도전
보드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빨라질라치면 몸이 먼저 긴장하여 알아서 넘어질 준비를 한다. 아무 준비가 없이 넘어지는 것보다 넘어질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한 후 넘어지는 게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특히 토엣지는 뒤돌아 있는 상태이기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절로 겁이 난다. 그땐 오히려 넘어질 것을 대비하여 몸이 한껏 긴장되다보니, 맘대로 움직여지질 않는다. 때론 과감히 몸을 움직여 기술을 쓸 수 있어야 ‘아 이런 식으로 하니깐 훨씬 쉽다’고 깨달을 수 있을 텐데, 미리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럴 기회가 없다. 나는 지금 용기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다.
나의 씨름과 별개로 초보코스에서는 두 명의 사내가 각자의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분명히 둘은 함께 스키를 타고 있었지만, 씨름을 벌이는 대상은 달랐다.
▲ 보드를 타며 용기란 녀석과 한 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다. 이 때 두 녀석은 각자 다른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민석이가 끙끙대는 이유
현세는 어제 보드를 처음으로 타봤기 때문에 기태가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줬다. 물론 체계적으로 알려준 게 아니라, 행동을 보여주며 이런 식으로 하라고 알려준 것이다. 그런데 현세는 전혀 일어서질 못하고 조금 속도가 빨라진다 싶으면 알아서 넘어져 버렸다. 무서운 나머지 빨라지기 전에 넘어져 멈춘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기태는 제대로 타지 못하고 현세 옆에서 어떻게든 알려주려 최선을 다한 것이다.
보드 타는 것을 실패하자 현세는 오늘 스키로 바꿨다. 아무래도 ‘보드보다 스키가 두 발이 자유롭고 손에 쥐는 폴이라는 장비도 있어서 한결 수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고, 그건 민석이도 마찬가지여서 ‘현세는 정훈이와 다르게 예전에 스키를 타 본 적이 있다고 했으니까 초급에서 내려가는 법, 멈추는 법, 감속하는 법, 넘어지는 법만 가르쳐 준 뒤 중급으로 올라가서 규빈, 지민, 현세와 신나게 스키를 타는 것이 내 나름의 계획이었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계획은 산산이 부서졌다(민석이의 여행기).
현세는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을 따라 초급코스에 올라갔는데, 보드 탈 때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서지 못했으며 조금 달린다 싶으면 바로 넘어진 것이다. 그러니 초급코스를 달려 내려가는 시간보다 땅바닥에 누워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이런 경우 처음에야 우정으로 지켜봐주고 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줄 수 있지만, 그 시간이 꽤 길어지면 “넌 안 되겠다. 나부터 갈 테니, 그냥 너는 니가 알아서 내려 가”라고 쏘아붙이며 가버릴 것이다. 기다려주고 참아주는 것도 분명히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민석이는 그러지 않았다. 지민이나 규빈이는 현세를 신경 쓰지도 않고 혼자 타느라 바빴는데 오롯이 민석이만 현세를 기다려주고 알려주고, 도와줬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한 번 쭉 타고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때 민석이와 현세는 시작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더라. 그러니 아이들은 “아직도 거기야?”, “민석 오빠 힘내!”라는 소리를 하며 놀림 반, 응원 반의 멘트를 날린 것이다. 그러고 또 한 번 타고 내려갔다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데, 역시나 아까 그 자리에서 별반 나아가질 못했다. 현세가 초보코스를 내려가기까지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런 경우 그걸 기다려주며 함께 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도, 민석이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현세가 초보코스에서 완전히 내려 갈 때까지 옆을 지켰다. 물론 순간순간 감정이 왜 아니 일었겠으며 지민이나 규빈이처럼 왜 아니 찬바람을 가르며 타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그 옆을 지켜주며 함께 해줬다는 건, 대단한 인내심이며 대단한 책임감이라 할 수 있다.
▲ 초보이기에 사진기를 보드 탈 땐 가져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장면들을 찍지 못한 건 못내 아쉽다.
민석이가 이화령에서 보여준 책임감과 동지애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이미 ‘낙동강-한강 자전거여행’ 때도 그와 같았기 때문이다. 낙동강에서 남한강으로 가기 위해선 이화령이란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꽤 높기 때문에 저속기어에 맞추고 천천히 올라야 하는데, 민석이는 충분히 자전거를 타고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현세가 체력이 좋지 않고, 기어를 변속하는 것이 미숙하여 밑에서부터 끌고 올라간다는 거였다.
이런 경우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사람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럴 경우 자전거의 특성상 더 체력이 많이 들고, 답답함까지 참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세를 잘 데리고 와’라고 말한 적도 없었으니 더욱 그렇다. 이뿐인가? 우리 사회는 경쟁을 중시하는 사회이고, 개인이 실력이나 체력으로 남들을 치고 나가는 걸 권장하는 사회이지 않은가. 그러니 민석이가 힘껏 페달을 밟아 1등으로 이화령에 도착한다 해도, 그건 혼나야 할 일이라기보다 ‘애썼다’며 칭찬해줘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민석이는 현세와 함께 천천히 올라왔고, 현세가 너무 느리다 싶을 땐 포물선을 그리며 한 바퀴 돌며 속도를 맞춰줬다. 현세 입장에서도 자기 혼자 끙끙거리며 올라가는 것보다 누군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갈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웠을 것이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여행 때도 민석이는 현세를 챙기며 고개를 넘어갔다.
인용
1. 겨울방학에 받은 첫 번째 과제, 날 멸망시킬 태풍
7. 몸이란 타자와 소통하기
10. 치열한 토론의 순간, 우린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12. 두 번째 보드 도전기
13. 민석이의 도전
14. 현세의 도전
16. 여행이 끝나갈 땐 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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