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도전엔 늘 불안이 따른다
5년 전엔 모두 스키를 타는 분위기였기에 당연히 스키를 탔다. 그리고 스키를 타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보드는 좀 더 실력이 쌓여야 탈 수 있다고 한다. 스키는 두 발이 자유롭기 때문에 오히려 컨트롤하기 쉽지만, 보드는 두 발을 동시에 붙여야 하기 때문에 한 번 넘어지면 일어서기도 힘들고 이동도 힘들다는 것이다. 겨우 스키장에 두 번 와봤기 때문에 보드를 탄다는 건 언감생심이라 생각했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는 꼴’이라고만 생각해서 이때도 스키를 타려 했다.
두 번째 스키장 방문에 보드를 타게 된 사연
하지만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여러 사람에게 똑같은 얘기를 들으면 갈등하게 마련이다. 한 사람에게 듣는 거야 ‘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나 보다’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얘길 들으면 ‘내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생각이 잘못된 정보거나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저번 주 화요일에 경일이형과 충원이를 만난 자리에서 충원이는 “나도 스키장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보드를 타니 훨씬 재밌더라.”라고 운을 땠다. 하지만 기존의 내용과 너무 다른 내용이어서 살짝 “나처럼 생초보도 탈 수 있는 거야?”라고 물으니, “물론 헤매긴 하지만, 조금 해보면 몸에 익숙해져서 바로 탈 수 있을 거야. 첫 날엔 뒤꿈치 쪽이 엄청 아프긴 할 테지만 말야”라고 대답해주더라. 그 말을 듣고 보니, 보드를 타는 게 꼭 스키를 잘 타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드를 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전히 ‘스키도 잘 못 타는데 보드를 어찌?’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생신 축하를 하러 토요일에 전주에 갔을 때 형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형도 마찬가지로 보드 타는 걸 강력히 추천하더라. 그렇게 대단히 어려운 기술이 아닐뿐더러, 충분히 연습하면 초보자도 어느 정도는 탈 수 있다는 거였다. 그쯤 되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혼란에 빠져 있던 때라, 새로운 것에 도전하여 마음을 다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보드를 도전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 도전! 무모할 지도 모르고, 바보 같다고 할 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에게 들으며 마음을 정했다.
필수 준비물, 그리고 스키슈즈 신는데 30분 걸리다
그런데 내가 맘먹었다고 해서 무작정 보드를 탈 순 없었다. 이번엔 트레이닝을 받지 않고 그냥 타야하기에, 아이들 중에 보드를 탈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배울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기태가 보드를 탈 수 있다고 하더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본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세에게까지 이야기를 해서 함께 처음부터 배우기로 한 것이다.
우린 스키복과 보드를 빌리고 착용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처음 하는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정신이 없다. 5년 전처럼 지금 아이들도 스키장에 자주 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어설프기 그지없다. 여기서 그나마 자주 스키장을 온 사람은 준영이 밖에 없는데, 준영인 춘천에 짐을 찾으러 가느라 오후엔 못 타고 저녁에 타야 했다.
이런 상황이니 스키슈즈를 어떻게 신어야 하는지 알려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더욱이 현세는 한 치수 낮은 스키슈즈(자신의 발치수보다 10cm 높은 걸 주문해야 하고, 10cm 단위로만 치수가 높아짐)를 빌려와 한참을 끙끙대며 신어보았지만, 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한 치수 높은 것으로 다시 빌려와서 신어야 했다. 여러 번 스키장에 왔다면 아주 능숙하게 10분도 걸리지 않고 신었을 테지만, 초보자이기에 무엇을 하든 정신이 없었고 그만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스키복을 챙겨 입고 보드슈즈를 신으니 제법 그럴 듯하게 폼이 나긴 한다. 예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하던 당시에 그들은 파격적으로 스키복을 입고 무대에 서곤 했다. 그땐 ‘저게 뭐가 멋있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오늘 막상 입어보니 알록달록한 것이 제법 분위기가 나더라.
▲ 보드를 타는 사람들. 아직 능숙하지 않다 보니, 앉아 있다. 이들은 이 순간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
보드와 티익스프레스의 공통점
하지만 막상 보드를 들고 스키장으로 나가려 하니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 기분은 흡사 에버랜드에 가서 호기롭게 티익스프레스를 타겠다고 기다렸다가 내 차례가 되어 안전바가 내려온 후의 기분과 같았다. 최고 난이도의 놀이기구를 한 번 타보겠다고 기다릴 때까지만 해도 두려움보단 기대감이 더 부풀어 있을 때다. 아직은 긴 줄이 눈에 보이기에 사람들의 비명이나 높디높은 레일은 먼 미래처럼 보여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내 차례가 오고 안전바가 내려오면 그때부턴 이 모든 게 현실로 느껴진다.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온몸에 바짝 조여 오는 긴장감, ‘얼마나 무서울까?’하는 두려움까지 말이다. 더욱이 기다린 것이 아깝기도 하고, 호기롭게 타겠다고 했으니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다. 하지만 안전바가 나를 좌석에 밀착시키는 순간, ‘여기서 빠져 나가야 한다’, ‘내가 미친 짓을 했다’, ‘다음엔 절대 이러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이처럼 보드를 빌리고, 스키복을 빌려 입을 때만 해도 ‘타야 한다’는 생각이 실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슈즈를 신고 스키복까지 입고 나니, 보통 신발의 3배 정도로 느껴지는 슈즈의 무게감과 내 옷이 아니기에 느껴지는 스키복의 어색함이 ‘괜히 타겠다고 했나?’하는 후회로 밀려온다.
▲ 보드를 타는 사람들. 아직 능숙하지 않다 보니, 앉아 있다. 이들은 이 순간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늘 언제나 불안이 따른다
이처럼 새로운 것을 도전한다는 것은 늘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 같다. ‘얼마나 재밌을까?’하는 기대감과 함께 ‘괜히 한다고 했나?’하는 불안 말이다.
2009년에 국토종단을 떠날 때도, 2011년에 사람여행을 떠날 때도, 2013년에 지리산 종주를 떠날 때도, 2015년에 자전거 여행을 떠날 때도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느꼈었다. 더욱이 지리산 종주 때의 불안감은 자꾸 배낭 속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무언가를 채워 넣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배낭은 나의 불안감의 크기만큼이나 무거워져만 갔던 것이다. 어느 때고 새로운 도전을 할 때면 느꼈던 감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서거나 도망가지 않고 그 순간들을 그대로 감내하며 하나하나 넘어왔다. 그걸 넘고 난 후엔 ‘걱정했던 것만큼 그렇게 힘들지는 않던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은 늘 현실을 부풀리게 마련이어서, 막상 닥쳐보면 ‘괜한 걱정을 했다’고 허탈해하게 만든다. 이처럼 지금 느껴지는 이 불안도 막상 경험을 하고 나면 분명 다른 말을 하게 될 날이 오리라.
어찌 되었든 절대 포기할 수도, 대충대충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 순간에 몸을 맡기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과연 난 보드를 탈 수 있게 될까? 아니면 그냥 눈에서 뒹굴다가 내려오게 될까?
▲ 이젠 두려움이란 장벽을 넘고, 불안이란 한계를 지나 앞으로 나갈 때다.
인용
1. 겨울방학에 받은 첫 번째 과제, 날 멸망시킬 태풍
7. 몸이란 타자와 소통하기
10. 치열한 토론의 순간, 우린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12. 두 번째 보드 도전기
13. 민석이의 도전
14. 현세의 도전
16. 여행이 끝나갈 땐 늘 아쉽다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 개학 스키여행 - 8. 처음 보드를 타며 速成의 문제점을 간파하다 (0) | 2019.12.19 |
---|---|
2016 개학 스키여행 - 7. 몸이란 타자와 소통하기 (0) | 2019.12.19 |
2016 개학 스키여행 - 5. 장갑사건과 스키복장에 관해 (0) | 2019.12.19 |
2016 개학 스키여행 - 4.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는 스키여행 (0) | 2019.12.19 |
2016 개학 스키여행 - 3. 개학여행 그리고 자나 깨나 동파조심 (0) | 2019.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