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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6 개학 스키여행 - 17. 흔들리되 방향성이 있는 사람으로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6 개학 스키여행 - 17. 흔들리되 방향성이 있는 사람으로

건방진방랑자 2019. 12. 1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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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흔들리되 방향성이 있는 사람으로

 

이제부턴 출발하며 썼던 뜨거운 물이 졸졸 흐를 수 있도록 틀어놓고 나왔다. 이 작은 행동이 큰 사건을 빚어냈으니가 무슨 사건인지 밝히도록 하겠다. 날이 어제 오후부터 대폭 풀렸기에 포근한 기운을 느끼며 집으로 간다. ‘과연 온수는 나올까?’하는 기대를 하며 빠른 속도로 걸어서 집에 간 것이다.

 

 

2박 3일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이제 각자의 공간으로 간다. 

 

 

 

겨울엔 자나 깨나 수도의 물조심

 

그런데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이상한 냄새가 났고 앞엔 수증기가 자욱했다. 순간 평소의 집과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 화들짝 놀랐고, 무슨 일인가 싶어 상황판단을 하려 했다. 그랬더니 해동이 되면서 온수가 나오기 시작했고 온수가 나오며 바깥과의 온도차이로 인해 수증기가 발생하여 부엌이 목욕탕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바로 들어가 물부터 잠그고, 고장 난 것은 없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미 천정엔 물방울들이 잔뜩 맺혀 있었으며 수고꼭지 위는 완전히 수증기가 뒤덮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뜨거운 물이 언제부터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긴 시간 뜨거운 물이 나온 거라면 보일러 과열로 화재가 났을 것이고, 수증기가 부엌을 완전히 채울 정도였다면 냉장고의 전원코드는 누전으로 인해 망가졌을 것인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다. 그저 수증기와 곳곳에 맺힌 물방울들만 제거하면 됐다. 이럴 때는 부엌과 방이 분리된 이곳 구조가 나를 살렸다는 생각도 설핏 들더라. 예전 원룸은 부엌과 방이 하나로 붙어 있어, 이번과 같은 상황이었으면 책부터 옷까지 완전히 젖었을 것이고 기계장치들은 망가졌을 것이다.

그나마 물기만 제거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심히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물기를 닦아내는데 30분이 흐르더라. 이로 인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건, 겨울엔 자나 깨나 동파조심이다.

 

 

이 때 돌아갈 때도 날이 풀리긴 했는데, 북한강은 꽁꽁 얼어 있었다. 

 

 

 

불균형 속에서만 균형은 의미를 갖는다

 

이로써 23일간의 개학여행을 잘 마쳤다. 혼란을 한 아름 안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보드란 것을 처음 도전하다 보니, 오히려 혼란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혼란스러움=비정상적인 상태라 생각하여, 어떻게든 그 혼란스러움을 빨리 정리하고 혼란스럽지 않은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세상에 혼란스럽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으며, 단지 혼란스러움 속에서 방향성을 찾아 그리로 나아가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평화롭게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오리도 물속에선 쉼 없이 발을 움직이듯, 손가락 위에서 도는 공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해선 손가락을 위치를 끊임없이 바꿔야 하듯, 사람도 그랬던 것이다.

 

 

생명은 영원히 다이나믹합니다. 항상 끊임없는 불균형 속에서만 균형은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균형조차도 불균형의 어떠한 벨트이지 포인트가 아니에요. 생체에서 회복 불가능한 어떤 임계수준을 넘지 않으면서 그러한 벨트를 유지하는 것을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부릅니다. 중용中庸은 한마디로 말해서 호미오스타시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중時中이라는 것이지요. 만으로는 안 되고 다이나믹, 가 붙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김용옥, 도올선생중용강의, 통나무, 1995

 

 

균형만 지속되는 상태를 사람들은 안정적인 상태라 생각할 테지만, 그건 곧 죽은 상태와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항상성을 찾아가려 한다. 오로지 생명이 없는 것만 한 자리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에게 혼란스러움이란 바로 이와 같은 불균형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려는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균형을 찾게 된다 할지라도, 균형의 순간은 다시 불균형의 순간이 될 수밖에 없기에, 다이나믹하게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걸 어찌 보면 시시포스Sisyphos의 바위처럼 천형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삶의 역동성이라 표현해야 더 맞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혼란스러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 상황 자체를 긍정하며 2016년을 살아보려 한다. 혼란스러움이 빚어낼 건빵의 2016년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2016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인용

목차

사진

1. 겨울방학에 받은 첫 번째 과제, 날 멸망시킬 태풍

2. 겨울방학에 받은 두 번째 과제, 우물 안 개구리

3. 개학여행 그리고 자나 깨나 동파조심

4.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는 스키여행

5. 장갑사건과 스키복장에 관해

6. 도전엔 늘 불안이 따른다

7. 몸이란 타자와 소통하기

8. 처음 보드를 타며 速成의 문제점을 간파하다

9. 4년 만에 다시 시작된 교사 없는 학교

10. 치열한 토론의 순간, 우린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11. 두 번째로 보드를 타는 이의 각오

12. 두 번째 보드 도전기

13. 민석이의 도전

14. 현세의 도전

15. 그래 우리 한 걸음씩만 나가보자

16. 여행이 끝나갈 땐 늘 아쉽다

17. 흔들리되 방향성이 있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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