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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6 개학 스키여행 - 8. 처음 보드를 타며 速成의 문제점을 간파하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6 개학 스키여행 - 8. 처음 보드를 타며 速成의 문제점을 간파하다

건방진방랑자 2019. 12. 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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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처음 보드를 타며 速成의 문제점을 간파하다

 

보드를 슈즈에 연결하니 몸은 더욱 더 굳어져 간다. 두 발이 족쇄에 묶여 자유라도 박탈당한 마냥 힘겹게만 느껴지니 말이다.

 

 

보면 어렵게 생겼는데, 두 개의 끈만 꽉 조이면 된다. 생각보다 쉽고 편하게 되어 있다.

 

 

 

보드에서 일어서기

 

부츠를 보드에 연결할 땐 두 끈을 바짝 조이면 된다. 앵글버클과 토우버클을 당기면 꽉 조여지고, 그 안의 작은 버튼을 누르면 풀리는 형식이다. 물론 이건 빌린 부츠이기에 간혹 고장 난 것들도 있어 쉽게 풀어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번 보드에 연결했다 풀었다를 반복해보니,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알겠더라. 역시 모든 건 시행착오를 겪으며 몸으로 익혀야 한다.

이제 보드도 연결이 되었겠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기태는 초보자 두 명을 데리고 성심성의껏 알려주기 시작한다. 우선 일어서더니 힐엣지를 넣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무작정 따라 해보았는데 일어서려던 순간 보드가 앞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거다. 유고보드에 두 발을 처음으로 올릴 때의 막막함이 생각나던 순간이다. 하지만 몇 번 넘어지며 중심을 잡는 법을 알게 되면 유고보드에 발을 올려놓을 수 있듯이,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일어설 때마다 앞으로 내달리는 속도감에 무서워서 엉덩방아를 찧곤 했다. 그렇게 몇 번 해보니 어느 정도 속도에 익숙해졌고, 힐엣지를 넣으니 저항이 작용하여 멈추게 되더라. 그쯤 되니 보드에서 일어나는 건 더 이상 힘들지 않았다.

 

 

뒤꿈치에 힘을 실어야 한다. 어려우면 아예 뒤로 눕듯이 있으면 힐엣지가 걸려 보드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이란 어색함과 어설픔을 끌어안기

 

처음 하는 건 무엇이든 어설플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때 남에게 보이는 모습은 당연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그런 어리바리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게 자존심 상한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도전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나도 여태껏 그런 마음 때문에 웬만하면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기존의 틀만을 고집한다고 나의 부족함이 나아지는 것도,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이런 식으로 처음 하는 일에 내빼진 않는다.

도전정신은 조카를 보면서 더욱 분명히 알게 됐다. 아기는 자기 몸을 가눌 수 없기에 눕혀 놓으면 그대로 가만히 있다. 그러다 몸을 조금이라도 가눌 수 있는 힘이 생기면 바로 뒤집고,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중력을 이겨나가는 과정은 흡사 앎에 대한 열망으로 고행을 자처하는 수도승같은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다리에 힘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려 한다. 일어선다고 바로 걸을 순 없으니 뒤뚱뒤뚱 어설프지만 앞을 향해 한 걸음씩 걷기 시작한다. 당연히 조금 걷고 주저앉게 되고, 잘 걷다가도 넘어지게 되기를 무한반복하며 결국 뛰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새로운 걸 한다는 건 바로 아이의 걷게 되는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그 과정을 겪으며 몸의 감각을 익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좀 더 자연스럽게 걷게 되고, 힘차게 뛰게 되듯 우리도 보드를 타고 맘껏 설원을 달리게 된다.

처음엔 보드에 신발을 연결하는 것과 보드에 서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뭐든 어색하고 어설픈 상황을 견뎌내야 몸에 익숙한 상태가 된다. 바로 그게 핵심이다.

 

 

우린 콘도 앞에서 연습하다가 씬-키드에서 여러 번을 탄 후 퓨마-디어 코스를 타고 내려왔다. 

 

 

 

실력을 키우며 천천히 갈 것인가, 엄청난 난이도로 한 번에 비약할 것인가?

 

기태도 보드를 잘 타는 건 아니었다. 턴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고, 토엣지로 설 때도 넘어지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낙엽(팬듈럼)도 자연스럽게 포물선을 그리며 탄다기보다, 그저 넘어지지 않는 수준에서 타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아예 타지 못하는 생초보인 우리를 데리고 열심히 알려주고 있으니 참 고마웠다.

그러다 조금 타더니, 초보코스로 가자고 하더라. 아무래도 우리 때문에 기태가 연습조차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했다. 현세는 서는 것조차 잘 하지 못해 반포기 상태였고 나는 기태를 따라 초보코스로 갔다. 아래에서 볼 땐 그렇게 경사가 급한 줄 몰랐는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보니 훨씬 급하더라. 용기를 내어 출발을 했고 힐엣지로 속도를 조절해 가며 내려갔다. 낙엽은 잘 되지 않기에 그저 엑스자를 그리며 내려왔다.

 

 

태기도 나도 1번 펜쥴럼도 간신히 되는 상황이었다.

 

 

그쯤 되니 기태가 중급코스로 가자고 하더라. 중급코스는 리프트를 타고 밑에선 차마 보이지 않는 정상까지 올라야 하고 코스도 꽤 길고 경사도 급해서 웬만한 실력이 아니면, 구르다가 내려오는 코스다. 여차하면 힐엣지로 내려오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가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리프트는 한 번 타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리프트는 역시나 재밌었다. 아무래도 사방이 쑹쑹 뚫려 바람이 곧바로 느껴지고 발 아래로 나무들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훨씬 무섭게 느껴졌다. 꽤 많이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엔 세 코스로 나누어지더라. 우린 왼쪽 코스로 가기로 하고 천천히 내려왔다. 결과적으로 엉덩방아찍기와 기어 내려오기 스킬로 겨우 내려올 수 있었다. 그때 충원이가 첫 날엔 뒤꿈치 쪽이 엄청 아프긴 할 테지만 말야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됐다. 빨라지는 속도가 무서운 나머지 힐엣지로 속도를 최소화시키며 내려오다 보니, 뒤꿈치 쪽이 엄청 당기며 아팠던 것이다. 중급코스에서 내려가니 530분이 되기까진 3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중급코스에 호되게 당했기 때문인지 나는 더 이상 타지 않고 아이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흔히 하는 말로 자신의 실력에 따라 점차 어려운 문제로 자신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의도 있고, ‘엄청 어려운 문제로 한 번에 실력을 비약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그간 이 두 가지 방식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었는데, 오늘 보드를 타 보니 좀 더 명확해졌다. 한 걸음씩 시나브로 실력을 키워가는 게, 속성을 통해 한 번에 도달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며 정확하다는 것을 말이다. 몸으로 익히든 머리로만 하는 것이든 기초에서부터 시작하여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그게 단순하다 할지라도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기본기가 자리를 잡는다. 오늘 중급코스에서 보드를 타며 난 그간 풀리지 않던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중급코스로 가기 위해 타야 하는 리프트. 꽤 높은 곳에서 이동하니 스릴도 느껴지고 한 번 탈만 하더라. 

 

 

 

여행 중 가장 조용했던 밤을 지내다

 

숙소에 돌아오니, 초이쌤은 저녁밥과 반찬을 준비해놓고 계셨다. 이번 여행의 식단은 초이쌤이 짰고 모든 준비도 도맡아 해주셨다. 카레엔 한우까지 들어간 특급카레였다. 아무래도 밖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고 왔으니, 한우가 들어간 카레를 먹고 보충하라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밥이 좀 부족할 것 같아 다시 밥을 하긴 했지만, 카레와 밥을 배불리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저녁시간은 자유시간이었다. 보통 여행 때면 아이들이 함께 모여 전체게임을 했는데, 이날은 분위기가 달랐다. 민석이와 현세는 공포영화를 보는 쪽에 합류하여 놀다가 들어와 잠에 들었고, 정훈이와 준영이, 기태는 피곤했는지 놀지 않고 바로 잠을 잤다. 스키 여행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여행이기 때문인지, 이 날은 그렇게 늦게까지 놀지 않고 바로 잠을 잤다.

 

 

초이쌤이 만들어준 카레를 정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간식이 많으니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뜨겁다 못해 배불렀다. 

 

 

인용

목차

사진

1. 겨울방학에 받은 첫 번째 과제, 날 멸망시킬 태풍

2. 겨울방학에 받은 두 번째 과제, 우물 안 개구리

3. 개학여행 그리고 자나 깨나 동파조심

4.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는 스키여행

5. 장갑사건과 스키복장에 관해

6. 도전엔 늘 불안이 따른다

7. 몸이란 타자와 소통하기

8. 처음 보드를 타며 速成의 문제점을 간파하다

9. 4년 만에 다시 시작된 교사 없는 학교

10. 치열한 토론의 순간, 우린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11. 두 번째로 보드를 타는 이의 각오

12. 두 번째 보드 도전기

13. 민석이의 도전

14. 현세의 도전

15. 그래 우리 한 걸음씩만 나가보자

16. 여행이 끝나갈 땐 늘 아쉽다

17. 흔들리되 방향성이 있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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