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현세의 도전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민석이에겐 책임감과 함께 인내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오전 회의시간에 보인 반응은 오히려 ‘이기적이더구만’이라 오해할 만한 구석도 있었다.
▲ 오전 회의 시간의 반응은 어찌 보면 그 자리에 멈추지 말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봉사활동에 대한 반응으로 민석이를 보다
2016학년도 단재학교의 일정을 공유하며 매달 두 번씩 봉사활동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민석이가 대번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너무 자주 한다는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 민석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처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위의 예에서처럼 민석이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으면 그걸 끝까지 놓지 않으며, 진득하게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멋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식의 이의제기를 했다면, 분명히 다르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건 저번 후기에도 밝혔다시피, 너무 갑작스럽게 횟수를 대폭 늘려 부담스럽게 느끼도록 한 것과 그로 인해 하나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연출했다는 것이 그렇다. 아무리 좋은 것도 천천히 배어들도록 해야 하는데,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좋은 것이니 무조건 하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민석이도 내심 교사들이 고민하여 정했고 그걸 알려준 것인데, 거기에 이의를 단 것이기에 마음이 불편했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심정을 밝히며 “승태쌤이 내 의견을 수긍해 주셔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 것도 고려해 보시겠다고 하니 나름대로 기대해 볼 수도 있을 듯”이라 약간의 기대감을 내비치며 정리했다.
민석이는 현세와 40분 간 한바탕 씨름을 벌인 후, 기태와 규빈이를 데리고 중급코스로 갔다. ‘얼마나 진즉부터 그렇게 타고 싶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마지막까지 현세를 신경 써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 2012년에 1학년으로 단재학교에 들어온 민석이의 모습.
두려움과의 씨름 한 판
현세는 겁이 많은 친구다. 단재학교에서 생활한지도 어느덧 2년 8개월 정도가 흘렀는데, 그 기간을 통해 현세를 더욱 더 잘 볼 수 있었다.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영화팀이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면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매주 등산을 하던 때였다. 다른 산보다도 북한산에 올랐던 때가 기억에 난다. 그 산은 바위산인데, 오르는 것만큼이나 내려가는 것이 힘들었다. 경사가 엄청 급하거나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높이가 들쭉날쭉한 바위들이 있어서 내려갈 땐 꽤 허벅지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이때 현세는 바들바들 떨면서 내려왔고, 급기야 바위에 앉아 미끄럼을 타듯 온 몸으로 내려오기까지 했다. 그때만 해도 단순히 ‘등산을 해본 적이 없으니 저러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스키 타는 모습을 보니, ‘단순히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근본적으로 자신의 몸으로 주체할 수 없는 상황 같은 것에 놓이면 무서워 벌벌 떠느라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두려움이 나를 삼켜버렸다고 표현하면 맞으려나. 그러니 몸을 내맡겨 도전해볼 용기도, 한계라고 느껴진 부분을 극복할 용기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단지 지금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싫을 뿐이고, 굳이 안 해도 되는 거라면 ‘저는 빠지겠습니다’라며 어물쩍 넘어갈 생각만 하게 된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제대로 달리다가 넘어지긴 커녕, 지금처럼 조금 앞으로 나갔다 싶으면 넘어지기 바빴던 것이다.
▲ 2013년에 북한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현세. 온몸으로 내려오고 있다.
부족함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그건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그런 상황에서 현세가 넋두리처럼 “저는 앞으로 살면서 몸 쓰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요”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건 이미 기독교 철학의 심신이원론을 깊이 받아들인 나머지, 몸과 머리를 분리하여 머리의 우월성을 강조한 말이자, 자신의 한계를 감추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몸으로 살고 머리는 그런 몸을 도와주는 기관일 뿐인데,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여 몸이 머리를 위한 하수인 정도로 생각한다. 몸은 우치다쌤의 말처럼 ‘타자’이기에 아무래도 내 생각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난 몸 같이 말도 안 듣는 건 필요 없어, 정신으로만 살아갈 거야’라고도 할 수 없다. 몸 없이 사는 사람은 없기에 그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몸과 어떻게든 친해지려 노력한다는 것은, ‘나와 전혀 다른 존재인 타자와 어떻게든 소통하려 노력하는 것’과 같다. 내 몸과 소통하려 하지 않으면서, 남과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몸을 등한시하고 놀림감이 되기 싫다며 ‘난 몸치이기에 몸으로 하는 일은 안 할 거야’라고 생각한들, 그런 생각은 비수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세가 ‘노답No答’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현세도 자라고 있는 아이인 만큼 내면 깊숙한 곳엔 분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때론 도전하고 싶어야 하는 욕구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 후기에선 그 부분에 대해 한 번 짚어보며 개학여행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 작년 11월에 갔던 2학기 마무리 여행 중, 한껏 흥에 겨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던 현세의 모습.
인용
1. 겨울방학에 받은 첫 번째 과제, 날 멸망시킬 태풍
7. 몸이란 타자와 소통하기
10. 치열한 토론의 순간, 우린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12. 두 번째 보드 도전기
13. 민석이의 도전
14. 현세의 도전
16. 여행이 끝나갈 땐 늘 아쉽다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 개학 스키여행 - 16. 여행이 끝나갈 땐 늘 아쉽다 (0) | 2019.12.19 |
---|---|
2016 개학 스키여행 - 15. 그래 우리 한 걸음씩만 나가보자 (0) | 2019.12.19 |
2016 개학 스키여행 - 13. 민석이의 도전 (0) | 2019.12.19 |
2016 개학 스키여행 - 12. 두 번째 보드 도전기 (0) | 2019.12.19 |
2016 개학 스키여행 - 11. 두 번째로 보드를 타는 이의 각오 (0) | 2019.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