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취헌의 시를 읽고 장호남의 옛 시에 차운하다
독취헌시 용장호남구시운(讀翠軒詩 用張湖南舊詩韻)
이행(李荇)
挹翠高軒久無主 屋樑明月想容姿
自從湖海風流盡 何處人間更有詩 『容齋先生集』 卷之八
해석
挹翠高軒久無主 읍취고헌구무주 |
읍취헌 높은 누각 오래도록 주인이 없었고, |
屋樑明月想容姿 옥량명월상용자 |
누각 대들보의 밝은 달 용모와 자태 그리게 하네. |
自從湖海風流盡 자종호해풍류진 |
이때로부터 강산의 풍류는 다하였으니, |
何處人間更有詩 하처인간갱유시 |
인간 세상 어느 곳인들 다시 시가 있을꼬? 『容齋先生集』 卷之八 |
해설
이 시는 읍취헌의 시를 읽고 장호남의 옛 시에 차운하여 지은 것으로, 죽은 박은(朴誾)을 그리워하며 지은 것이다.
박은(朴誾)이 거처했던 읍취헌은 오래 주인이 없는 채 비어 있다. 지붕 위에 뜬 밝은 달을 보니, 그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박은이 죽은 뒤로부터는 강산의 뛰어난 경치를 보아도 풍류의 흥이 일지 않으니, 인간이 사는 이 세상 어느 곳엔들 진정한 시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 32번에서 이행(李荇)을 포함한 조선의 시사(詩史)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조선의 시(詩)는 중종조(中宗朝)에 이르러 크게 성취되었다. 이행(李荇)이 시작을 열어 눌재(訥齋) 박상(朴祥)ㆍ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ㆍ충암(冲庵) 김정(金淨)ㆍ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이 일세(一世)에 나란히 나와 휘황하게 빛을 내고 금옥(金玉)을 울리니 천고(千古)에 칭할 만하게 되었다.
조선의 시는 선조조(宣祖朝)에 이르러서 크게 갖추어지게 되었다. 노수신(盧守愼)은 두보(杜甫)의 법을 깨쳤는데 황정욱(黃廷彧)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최경창(崔慶昌)ㆍ백광훈(白光勳)은 당(唐)을 본받았는데 이달(李達)이 그 흐름을 밝혔다.
우리 망형(亡兄)의 가행(歌行)은 이태백(李太白)과 같고 누님의 시는 성당(盛唐)의 경지에 접근하였다. 그 후에 권필(權韠)이 뒤늦게 나와 힘껏 전현(前賢)을 좇아 이행(李荇)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니, 아! 장하다[我朝詩, 至中廟朝大成, 以容齋相倡始. 而朴訥齋祥ㆍ申企齋光漢ㆍ金冲庵淨ㆍ鄭湖陰士龍, 竝生一世. 炳烺鏗鏘, 足稱千古也. 我朝詩, 至宣廟朝大備. 盧蘇齋得杜法, 而黃芝川代興, 崔ㆍ白法唐而李益之闡其流. 吾亡兄歌行似太白, 姊氏詩恰入盛唐. 其後權汝章晩出, 力追前賢, 可與容齋相肩隨之, 猗歟盛哉].”
이 외에도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이행(李荇)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 시로는 이용재(李容齋)를 첫째로 함이 마땅하다. 그의 시풍은
침착하고 화평하며 아담하고 순숙(純熟)하다. 오언고시(五言古詩)는 두보(杜甫)로 들어가 진후산(陳後山)으로 나와 고고(高古)ㆍ간절(簡切)하여 글이나 말로는 찬양할 수가 없다. 내가 평소에 즐겨 읊던 절구 한 수로, ‘평생에 사귄 벗 모두 늙어 죽어 가고, 흰머리 마주 보니 그림자와 몸뚱이라. 때마침 높은 누각에 달조차 밝은 밤에, 애처로운 피리소리 어찌 차마 들으리’는 감개가 무량하여 이것을 읽노라면 가슴이 메어진다[我國詩, 當以李容齋爲第一. 沈厚和平, 澹雅純熟. 其五言古詩, 入杜出陳, 高古簡切, 有非筆舌所可讚揚. 吾平生所喜詠一絶, ‘平生交舊盡凋零, 白髮相看影與形. 正是高樓明月夜, 笛聲凄斷不堪聽.’ 無限感慨, 讀之愴然].”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217~218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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