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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293. 차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93. 차

건방진방랑자 2020. 5. 3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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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

 

 

차간(叉磵)

서로 교차한 시내를 말한다.

 

차간구실(此間句失)

서경의 단()이 끝난 뒤 대부(大夫)의 평이 있었겠고, 다음 북경(北京 송도)에 관한 대부의 물음에 대한 담수(談叟)의 대답 중 앞의 부분이 궐했은즉, 아마 몇백 자, 몇십 귀가 빠진 듯하다.

 

차계기환(借鷄騎還)

닭을 빌려 타고 돌아간다는 뜻이다. ‘손님을 푸대접하는 것을 비꼼이란 뜻의 고사성어다.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차고(釵股)

절차고(折釵釵股)로 필법을 이른다.

 

차공광(次公狂)

() 나라 개관요(蓋寬饒)의 자()이다. 황실의 외척인 평은후(平恩侯) 허백(許伯)이 새로 집을 짓고 입택(入宅)하여 잔치를 베풀고 개관요를 초청하니 마지못해 참석하였는데 그에게 친히 술을 권하자, 개관요가 나에게 술을 많이 따르지 마시오. 나는 술미치광이오.(無多酌我 我乃酒狂)”고 하자, 승상 위후(魏侯)가 웃으면서 그의 강직한 성품을 빗대어 놀리기를 차공은 깨어도 미친 사람이니, 꼭 술 때문에 미치겠는가[次公醒而狂 何必酒也].”라고 한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 「개관요전(蓋寬饒傳)

 

차공하사작무다(次公何事酌無多)

() 나라 합관요(蓋寬饒)의 자()이다. 귀족 허백(許伯)의 집 연회에 갔더니, 허백이 제 손으로 술을 부어 권하였다. 관요는, “나한테 술잔을 많이 권하지 마시요. 나는 주광(酒狂)이 있소.” 하였다. 승상(丞相) 위상(魏相)이 옆에 있다가 웃으며, “차공(次公)은 깨었을 때에도 미쳤는데 하필 술만이랴.” 하였다.

 

차과(差科)

노역을 시키는 차역(差役)과 세금을 부과하는 과세(科稅)의 준말이다. / 인용: 聞隣家哭(송순)

 

차과창(差科瘡)

차과(差科)의 헌데란 곧 조세(租稅) 독촉으로 매맞은 데의 상처를 말한 것으로, 소식(蘇軾)의 오금언시(五禽言詩)어젯밤 남산에 비가 와서 서쪽 시내를 건널 수 없는데 시냇가의 포곡조가 나에게 해진 바지 벗으라 하네 그 말 따라 바지 벗고 찬 물에 들어가니 조세 독촉에 매맞아 다친 데가 물속에 비춰 보이네[昨夜南山雨 西溪不可渡 溪邊布穀兒 勸我脫破袴 不辭脫袴溪水寒 水中照見催租瘢].” 한 데서 온 말이다. 소동파집(蘇東坡集)卷二十

 

차구(借寇)

구순(寇恂)을 빈다는 뜻으로, 백성들이 지방관의 유임(留任)을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른다. 후한 때 구순이 일찍이 영천태수(潁川太守)를 지냈는데, 그 뒤에 광무제(光武帝)를 따라 영천(潁川)의 적()들을 평정하고 돌아오려 할 적에 백성들이 광무제의 수레 앞을 가로막고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구군(寇君)을 이 영천에 1년만 더 빌려 주소서.” 하며 구순을 1년 동안만 더 그곳에 유임시켜 달라고 애원했던 데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구순전(寇恂傳)

 

차군(此君)

대나무의 별칭이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가 대나무를 몹시도 사랑하여 사는 곳마다 대나무를 심었는데, 남의 빈 집에 잠깐 거처하게 되었을 때에도 대나무를 심어 놓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어찌 하루인들 차군(此君)이 없어서야 되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왕희지전(王羲之傳)

 

차군상대억상군(此君相對憶湘君)

차군은 대()의 이칭(異稱)이고, 상군은 순() 임금의 두 비()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말한다. 순 임금이 죽었을 때 아황ㆍ여영 두 비가 소상강(瀟湘江) 가에서 슬피 울어, 떨어진 눈물이 대나무에 배어 얼룩이 져서 반죽(斑竹)이 되었다고 한다. / 유의어: 소상반죽(瀟湘斑竹).

 

차군정(此君亭)

화순현 관아에 있던 정자의 이름이다.

 

차군헌(此君軒)

차군은 대()의 별칭으로, () 나라 왕휘지(王徽之)가 일찍이 빈 집에 대를 심게 하자,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찌 하루인들 차군(此君)이 없어서 되겠는가.”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소식(蘇軾)에게는 차군헌시(此君軒詩)가 있다.

 

차군휴아(此君携兒)

차군은 대나무를 말한다. 진서(晉書)』 「왕휘지전(王徽之傳)일찍이 빈집에 있으면서 문득 대나무를 심으니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고 그 대나무를 가리키며 어떻게 하루라도 이 군(此君)이 없을 수 있겠는가.’ 했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것은 더부룩한 대순이 마치 어른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과 흡사하므로 한 말이다.

 

차녀(姹女)

단약(丹藥)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수은(水銀)의 별칭이다.

 

차대(次對)

삼상(三相)ㆍ옥당(玉堂)ㆍ대간(臺諫) 등이 정무(政務)를 상주하던 일.

 

차대질(嗟大耋)

주역(周易)』 「이괘(離卦)구삼효(九三爻)해가 기우는 것이 이()이니, 질장구 치고 노래 부르지 않으면 대질(大耋)을 탄식하게 되는지라, 흉하리라.” 하였는데, 이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때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차도(次道)

() 나라 때 대장군 왕돈(王敦)의 주부(主簿)를 지냈던 하충(何充)의 자()이다.

 

차래(嗟來)

춘추 시대 제()나라에 크게 기근이 들었을 때 금오(黔敖)라는 사람이 길에서 밥을 지어 사람들에게 먹였는데, 어떤 굶주린 사람에게 불쌍하기도 해라, 어서 와서 먹어라.[嗟來食]”라고 하자, 그가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면서 나는 오직 불쌍하게 여기면서 무례하게 주는 음식을 받아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予唯不食嗟來之食 以至於斯也]”라고 하고는 끝내 음식을 거부하고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 유의어: 차래불식(嗟來不食), 호이이여지(嘑爾而與之), 축이이여지(蹴爾而與之) / 인용: 老翁問答(이경석)

 

차령(車嶺)

공주(公州)와 천안(天安) 사이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인조(仁祖) 2년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서울로 진입하자 왕이 백관을 이끌고 이 고개를 넘어 공주(公州)로 피신하였다.

 

차리야(遮梨夜)

()이라고 번역한다.

 

차막(遮莫)

속어로 신교(儘敎)와 같은 뜻인데, 제한을 가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게 하는 것.

 

차문차답(且問且答)

한편으로는 물으면서 한편으론 대답한다는 뜻이다.

 

차보(䑡䑰)

길이가 짧고 바닥이 깊은 거룻배를 가리킨다.

 

차복배중록(且覆杯中淥)

날이 어두워져서 그만 떠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시간 연장해 주지 않는 서산의 해를 가리키며, 아쉬움과 탄식 속에 마시던 술잔 뒤엎누나[共指西日不相貸 喧呼且覆杯中淥].”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18 醉爲馬墜諸公携酒相看

 

차비(佽飛)

차비는 초() 나라 검사(劍士)의 이름이다. 일찍이 강을 건너다 두 마리의 교룡이 배를 습격하자 그 목을 베고 물결을 잠잠하게 하였다 한다.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

한 나라 때 사냥을 담당한 관청을 가리킨다. () 9명과 위() 2명이 있었다.

 

차비인(佽飛刃)

차비(佽飛)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검사(劍士)의 이름이다. 일찍이 강을 건너가던 도중에 두 마리의 용이 배를 습격해 오자 칼을 빼어 모두 머리를 베어 버렸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

 

차사(差使)

특정한 임무를 부여하여 파견하는 임시 직책을 말한다.

 

차산(次山)

원결(元結)의 자()이다. 원결은 나이 40이 넘어 친척들 강권에 못 이겨 겨우 용릉승(舂陵丞)이 되었다가 금방 그만두고 돌아와 말하기를, “인생이 옷 입고 밥 먹으면 되었지 그 밖에 더 필요한게 뭐 있겠는가.” 하고 밭 가꾸고 나무하는 것으로 만족을 취하였다. 당서(唐書)卷一百四十三

 

차서환서구일치(借書還書俱一癡)

예원자황(藝苑雌黃)이제옹(李濟翁)이 말하기를 책을 빌려주는 것도 어리석고 책을 아끼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며, 책을 찾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고 책을 돌려주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했다. 하였다.

 

차수(叉手)

두 손을 나란히 합장한다는 뜻이다.

 

차수국(遮須國)

조식(曹植)이 죽은 뒤에 임금 노릇을 하였다는 전설 속의 나라 이름이다. 유설(類說)32 낙포신녀감견부(洛浦神女感甄賦)

 

차승(借乘)

인심이 순후함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나도 오히려 사관(史官)이 모르는 글을 빼놓은 것과 말 가진 사람이 남에게 빌려주어 타게 한 것을 보았었는데, 지금은 없구나[吾猶及史之闕文也 有馬者借人乘之 今亡矣夫].”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차안당시(遮眼唐詩)

당시(唐詩)를 눈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 말이다.

 

차어(叉魚)

얼음을 깨고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 것을 말한다. / 인용: 觀叉魚(송명흠)

 

차언(此言)

먼저 시 지은 것을 가리킨다.

 

차엽사(遮葉事)

고개지(顧顗之)는 진() 나라 무석(無錫) 사람이고 자는 장강(長康)인데 당시 사람들이 그의 재절(才絶)ㆍ예절(藝絶)ㆍ치절(癡絶)을 들어 삼절(三絶)이라 칭하였다. 일찍이 버들잎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서 남이 자기를 못 본다고 하므로 환온(桓溫)이 옆에 가서 그에게 오줌을 누었다고 한다.

 

차오산(車五山)

차천로(車天輅)의 호이다.

 

차운(次韻)

남의 시를 화답하면서 운을 차례 그대로 하는 것을 차운(次韻)이라 하고, 그 운을 쓰되 차례를 바꾸는 것을 용운(用韻)이라 한다.

 

차윤(車胤)

() 나라 사람으로, 집이 가난해서 등불 기름을 살 돈이 없어 반딧불이를 주머니에 많이 잡아넣어 그 불빛으로 글을 읽었다 한다. 그 뒤 벼슬해서 이부상서(吏部尙書)까지 올랐다.

 

차율(次律)

() 나라 방관(房琯)의 자()이다. 현종(玄宗) 때 음보(蔭補)로 홍문생(弘文生)이 되었다가 봉선서(封禪書)를 지어 올리면서 장열(張說)에게 기재(奇才)로 인정을 받고 출세 가도를 달려 숙종(肅宗) 때 벼슬이 형부 상서에 이르렀다. 신당서(新唐書)139

 

차인(差人)

옛날 관청의 하급관리를 말한다. / 인용: 端川節婦詩(김만중)

 

차일피일(此日彼日)

오늘 내일 하며 일을 핑계하고 자꾸 기한을 늦춤을 말한다.

 

차재두량(車載斗量)

아주 흔하거나 쓸모없는 평범한 것만이 많이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차저(借箸)

원대한 전략을 말한다. () 나라 장량(張良)이 책사 역이기(酈食其)의 꾀를 배척하며 유방(劉邦)의 밥상에 있던 젓가락을 잠깐 빌려(借箸) 자신의 계책을 설명했던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

 

차저(借著)

젓가락을 빌린다는 것은, ()항우(項羽)와 한()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툴 당시, 역이기(酈食其)가 유방에게 지난날 제후들의 자손을 왕으로 세워 그들과 함께 초를 공격하라고 권하자, 그것을 옳지 않게 생각한 장량(張良)이 유방에게 가서 때마침 밥을 먹고 있는 유방에게 말하기를 앞에 놓인 젓가락을 빌려주시면 대왕을 위해 계책을 그려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한서(漢書)卷四十 장량전(張良傳)

 

차저기주(借筯奇籌)

장량(張良)이 일찍이 한왕(漢王)의 밥상 앞에서 젓가락을 빌려 그것으로 이리저리 그으며 자기 계획을 진언(陳言)했던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卷四十 장량전(張良傳)

 

차저병(差底病)

두보(杜甫)의 시에 文章差底病 回首興滔滔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서 差底病은 주자(朱子)의 주석에 의하면 무슨 병을 낫게 하리요라는 뜻이다.

 

차저편능성한업(借箸便能成漢業)

장량(張良)이 한 나라를 건국한 한 고조 유방(劉邦)에게로 가서 그의 참모가 되었다. 어느 날 일을 의논할 때에 유방에게, “그 밥상에 있는 젓가락을 좀 빌려 주시오. 계산 좀 하여 보겠습니다.”고 한 적이 있었다.

 

차저한장량(借筯漢張良)

장량(張良)은 한나라를 건국할 때에 참모로 유명한 사람인데 그는 임금과 말할 때에, “그 젓가락 좀 빌려주십시요. 계산 좀 해 보아야겠습니다.”라고 한 말이 있었다.

 

차제(次第)

차례로라는 말이다.

 

차주(借籌)

차저(借箸)와 같은 말로, 모신(謀臣)이 작전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장량(張良)이 고조(高祖)에게 앞에 있는 젓가락을 잠깐 빌려서 대왕을 위해 계책을 설명드리겠다[臣請借前箸爲大王籌之].”고 한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서(漢書)』 「장량전(張良傳)

 

차지(差池)

고르지 아니하여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 인용: 秧歌五章(이학규)

 

차진(借津)

인재를 등용하는 것을 뜻하는데, 고려 태조(高麗太祖)훈요십조(訓要十條)8차현 이남과 공주(公州)의 강 밖은 산형(山形)과 지세(地勢)가 모두 배역(背逆)의 상이니, 그 지역 사람은 등용하지 말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車峴以南, 公州江外, 山形地勢, 並趨背逆, 人心亦然, 彼下州郡人, 叅與朝廷, 與王侯國戚婚姻, 得秉國政, 則或變亂國家, 或㘅統合之怨, 犯蹕生亂, 且其曾屬官寺奴婢, 津驛雜尺, 或投勢移免, 或附王侯宮院, 姦巧言語, 弄權亂政, 以致灾變者, 必有之矣, 雖其良民, 不宜使在位用事].

 

차차(次次)

일이 잘 진척되지 않아 불안한 모양, 어떤 일이 조금씩 순서대로 되어가는 상태, 점점

 

차차(嗟嗟)

탄식하며 슬퍼하는 소리, 거듭 감탄하며 칭찬하는 소리, 바닷속 괴물의 울음 소리

 

차차(㤞㤞)

정하지 못한 모양

 

차창주(車滄洲)

창주는 차운로(車雲輅)의 호이다.

 

차천로(車天輅)

이조 시대의 문인으로 호는 오산(五山)이고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그는 문명이 명 나라에까지 떨쳐 동방문사(東方文士)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특히 한시에 뛰어나 한 호(韓濩)의 글씨, 최립(崔岦)의 문장과 함께 송도 삼절(松都三絶)이 라 일컬어졌다. 저서에 오산집(五山集)오산설림(五山說林)이 있다.

 

차풍례(遮風禮)

주객이 함께 음식을 먹던 자리에서 객이 소마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면 주인이 바람을 막은 벌이라는 뜻으로 음식을 권함에 따라 객이 음식을 먹는 것을 차풍례라 하고, 이때 드는 술잔을 차풍배(遮風杯)라 한다.

 

차현(車峴)

충청도 공주(公州)의 북쪽 57리 지점에 있는 재 이름이다.

 

차형(車螢)

차윤(車胤)의 반딧불이라는 뜻으로, 동진(東晉) 때 차윤이 집이 가난하여 등불을 밝힐 수 없자 반딧불을 주머니에 많이 잡아넣어 그 불빛으로 글을 읽은 고사를 말한다.

 

차호(鹺戶)

어염(漁鹽)을 생업으로 하는 백성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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