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주제를 뚜렷하게 세우고 글을 쓰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암은 ‘혜경蹊徑’ 즉 갈 길을 분명히 알고, ‘요령’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갈 길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글에는 주제가 뚜렷해야 한다.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글 쓰는 이는 글 쓰는 동안 내내 이 물음에서 떠나면 안 된다. 그러므로 갈 길을 잃지 말라는 주문은 ‘입주뇌立主腦’, 즉 주제를 명확히 세우라는 것이다. 명나라 이어李漁는 『한정우기閑情偶記』 「입주뇌」에서, “주뇌主腦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작자가 입언立言하는 본의本意를 말한다”고 했다. 주제가 명확치 않고서는 글은 마냥 헛돌고 만다.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었다던 항우가 힘이 부족해서 패한 것이 아니다. 음릉에서 길을 잃어 늪속에 빠지고 보니,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준마도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 요령만 얻는다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요령이란 ‘갈 길’에 대한 선택이다. 주제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어느 길을 따라 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 요령을 얻어야 한다는 주문은 글의 구성과 관련된다. 기승전합起承轉合의 전개는 불변의 원칙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변화는 백출한다. 내 생각을 읽는 이에게 오해 없이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납득시키려면 어떤 순서와 어떤 단계로 글을 펼쳐야 할까? 이 미묘한 저울질이 바로 합변지기合變之機, 제승지권制勝之權이다. 한무제 때 그 겹겹이 포위한 한나라의 군대를 오랑캐의 선우는 여섯 마리 노새가 끄는 수레만으로도 유유히 달아나 버렸다. 제 아무리 좋은 글감을 마련하고, 예상되는 반론에 대응할 논리를 준비해도 합변의 요령을 얻지 못하면 겹겹이 에워싸고 자료를 거듭 준비해도 종내 설득력 있는 한편의 글이 되지는 못한다. 말이 많아야 좋은 글이 아니다. 중언부언 하는 글이 친절한 글이 아니다. 말이 간결해도 핵심을 꿰뚫어야 한다.
▲ 전문
인용
- 항우가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포위를 뚫고 달아나다가 음릉陰陵에서 농부가 길을 거짓으로 가르쳐 주는 바람에 반대 방향으로 가서 늪에 빠졌다. 한병의 추격을 받자 마침내 자기 목을 찔러 자살하면서, “힘은 산을 뽑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었네. 때가 불리하매 추騅도 나아가질 않는도다. 추가 가질 않으니 어쩔 수 없네. 우虞여! 우여! 너를 어찌 할거나.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柰何, 虞兮虞兮柰若何!”라고 노래한 데서 나온 말. 『사기』「항우본기」. 여기서는 쓰려고 하는 내용이 분명치 않고 보니,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 막막한 모양을 나타냄. [본문으로]
- 한무제 때 표기장군驃騎將軍 곽거병霍去病이 무강거武剛車로써 흉노의 선우單于를 겹겹이 포위하였으나, 선우가 여섯 마리의 노새가 끄는 수레를 타고 수백기만을 거느린채 한군의 포위를 뚫고 달아나버린 고사. 『사기』 권 111, 「위장군표기열전衛將軍驃騎列傳」 참조. 여기서는 글쓰기에 있어 입의立意 즉 주제의식의 명확치 않아, 비록 글로 쓰더라도 뜻이 성글어 독자를 납득시키지 못함을 말함. [본문으로]
- 당 헌종 때 오원제吳元濟란 자가 채주蔡州에서 반란을 일으켜 여러 해 웅거하매, 나라에서는 여러 차례 관군을 파견하였으나 모두 패하고 말았다. 이에 이소李愬가 자청하여 토벌의 책임을 맡아서는, 싸움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 적을 방심시키고, 적장 중에 투항해 오는 자를 극진히 대접하여 적정을 파악한 후, 폭설이 내리던 밤 군사가 열에 한 둘이 얼어죽는 추위를 무릅쓰고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채성蔡城을 함락시켜 오원제를 사로잡아 토벌한 고사. 『신당서』 권 154, 『구당서』 권 133의 「이소열전」 참고. 여기서는 글쓰기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조건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펼치는 요령을 얻는데 있음을 말한 것이다. [본문으로]
- 춘추시대 노나라 장수 조귀曹劌가 제齊나라와 장작長勺에서 싸울 때 노장공魯莊公이 북을 치려 하자 만류하고는 제나라 사람이 북을 세 번 친 뒤에야 치게하여 마침내 승리를 거둔 고사. 나중에 장공이 연유를 묻자, 그는 “대저 전쟁은 기운을 용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 번 북을 치면 기세가 올라가나, 두 번 치게 되면 시들해 지고, 세 번 치면 다하게 됩니다. 저들은 다하였고, 우리는 가득한 까닭에 이긴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춘추좌씨전』 장공 10년 봄 기사에 보인다. 여기서는 말이 비록 간단하더라도 핵심이 분명하여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됨을 말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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