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글의 생명은 진정성의 여부에 달렸다
이러한 가치 판단의 문제(자! 그렇다면 우리가 처해야 할 그 ‘중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 다른 시각에서 다룬 글이 바로 「공작관문고자서孔雀舘文稿自序」이다. 이글에서 연암은 다시 이명耳鳴과 코골기의 비유를 들고 나온다. 먼저 원문을 읽어 보도록 하자.
글이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일 뿐이다. 저 제목에 임해 붓을 잡기만 하면 문득 옛 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경전의 뜻을 찾아 생각을 꾸며 근엄하게 하며 글자마다 무게를 잡는 자는, 비유하자면 화공畵工을 불러 진영眞影을 그리는데 용모를 고쳐서 나가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멀뚱멀뚱 구르지 않고, 옷의 무늬는 닦은 듯 말끔하여 평상의 태도를 잃고 보면 비록 훌륭한 화공이라 해도 그 참 모습을 그려내기가 어렵다. 글을 하는 것도 또한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文以寫意, 則止而已矣. 彼臨題操毫, 忽思古語, 强覓經旨, 假意謹嚴, 逐字矜莊者, 譬如招工寫眞, 更容貌而前也. 目視不轉, 衣紋如拭, 失其常度, 雖良畵史, 難得其眞. 爲文者, 亦何異於是哉. |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글이란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쓴다. 그런데 사람들은 붓만 잡으면 내 생각을 어찌해야 남에게 오해 없이 충분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어찌하면 좀 더 멋있게 폼 나게 쓸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 한다. 예컨대 초상화를 그리겠다면서 잔뜩 분장하여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치 나무 인형처럼 깎은 듯이 앉아서 근엄한 폼을 잡았지만, 막상 그려 놓고 나니 그것은 내가 아니라 완전히 딴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렇듯이 여기서 베껴오고 저기서 훔쳐 와서 이리 저리 얽어 놓고 보니, 글은 글인데 내 말은 하나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글이 되고 말았다.
말은 반드시 거창할 것이 없으니, 도道는 호리毫釐에서 나누어진다. 말할 만한 것이라면 기왓장 자갈돌이라 해서 어찌 버리겠는가. 그런 까닭에 도올檮杌은 흉악한 짐승인데 초나라 역사책이 이름으로 취하였고, 사람을 몽둥이로 쳐서 묻어 죽이는 자가 극악한 도적임에도 사마천과 반고班固는 이에 대해 서술하였다. 글을 하는 자는 다만 그 참됨을 추구할 뿐이다. 語不必大, 道分毫釐, 所可道也, 瓦礫何棄? 故檮杌惡獸, 楚史取名, 椎埋劇盜, 遷固是敍. 爲文者, 惟其眞而已矣. |
글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멋있느냐 멋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글 속에 진정眞情이 담겼느냐 담기지 않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도올檮杌은 흉악한 짐승의 이름이다. 그런데 초나라 역사책은 그 제목을 이 흉악한 짐승의 이름으로 붙였다. 왜 그랬을까?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 산채로 땅에 파묻는 극악한 도적의 이야기를 사마천이나 반고와 같은 역사가들은 왜 기록에 남겼을까? 그것은 그 이야기가 고상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깊이 새겨야 할 삶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연암은 글이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이라고 하고 나서, 다시 글을 짓는다는 것은 오직 ‘진眞’을 추구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하여 첫 단락을 맺고 있다.
▲ 전문
인용
2. 이가 사는 곳
3. 짝짝이 신발
5. 중간에 처하겠다
5-1. 총평
7. 이 작품집에 나는 모르고 그대들만 아는 코골이는 알려주시라
7-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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