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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83. 당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83. 당

건방진방랑자 2020. 4. 1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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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

귀에 거는 고리라는 말인데, 옛날에 고관들 복장의 일부였다.

 

()

흙을 돋우고 높이 지은 집. 상징적인 건물을 말한다. 특히 관아나 사원, 집회소 등의 높고 큰 집을 일컫는 경우가 많음. (터를 높이 돋워 지은 남향의 본채를 이라 함)

 

당가롱서군(唐家隴西郡)

() 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이연(李淵)이 농서(隴西) 성기(成紀) 출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당서(唐書)1

 

당가사(黨家事)

금색으로 장식한 화려한 장막 아래서 좋은 양고주(羊羔酒)를 마시며 즐기는 일. ()의 도곡(陶穀)의 첩은 원래 당진(黨進)의 집 시희(侍姬)였는데, 뒤에 도곡의 첩이 되었다. 어느 날 눈이 내리자 도곡이 그 첩을 시켜 눈 녹인 물로 차를 다리라고 하면서, 당진의 집안에도 그러한 풍류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 첩이 대답하기를, “그들 녹록한 위인들이 어떻게 그러한 풍미를 알겠습니까.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다만 금색으로 장식한 화려한 장막 아래서 술을 넌지시 부어놓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해 가며 좋은 양고주나 마시는 것이지요.” 하여, 도곡이 부끄러운 기색을 가졌다고 한다. 송사(宋史)卷二百六十九

 

당감(唐鑑)

()의 범조우(范祖禹)가 찬한 것으로 모두 24권인데, 당 고조(唐高祖)에서부터 소제(昭帝)ㆍ선제(宣帝)까지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한 다음 아울러 평론을 가하였다.

 

당개(唐介)

() 나라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서 임금을 극간하고 부정한 관원들을 마구 탄핵했던 직신이었다. 재상 문언박(文彦博)을 탄핵하여 강직하기로 유명하다.

 

당계(棠溪)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지명으로, 옛날부터 명검(名劍)이 산출되기로 유명한 곳이다.

 

당계곡(唐鷄曲)

고려가요 중의 효자 문충(文忠)이 지은 유명한 목계가(木鷄歌), 곧 오관산곡(五冠山曲).

 

당고(黨錮)

후한(後漢) 말의 환제(桓帝) 때에 사대부인 이응(李膺), 진번(陳蕃) 등이 환관(宦官)의 전권(專權)을 탄핵하다가 도리어 체포되어 종신토록 벼슬을 못 하는 금고(禁錮)의 형을 받았는데, 이를 당고의 화라 한다.

 

당구(堂構)

집터를 닦고 건물을 세운다는 말로, 선조의 유업(遺業)을 후손들이 계속 이어받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서경(書經)』 「대고(大誥)아버지가 집을 지으려 하여 이미 설계까지 끝냈다 하더라도, 그 자손이 집터도 닦으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집이 세워지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若考作室 旣底法 厥子乃不肯堂 矧肯構].”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당구삼년폐풍월(堂狗三年吠風月)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로, ‘무식한 이도 유식한 사람과 지내다 보면 자연히 견문(見聞)이 넓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 인용: 당구풍월(堂狗風月)

 

당귀(當歸)

약명(藥名)이다. 꼭 돌아오라(當歸)는 뜻을 취하여 쓰기도 한다.

 

당금지지(當禁之地)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장사지내는 걸 허락하지 않는 땅을 말한다.

 

당당(撞撞)

계속해서 치는 모양

 

당당(唐唐)

넓은 모양

 

당당(儻儻)

얽매이지 않는 모양

 

당당(堂堂)

용모가 훤칠하고 행동이 정당한 모양, 용기가 있는 모양, 여럿 중에 뛰어난 모양, 지대가 높고 전망이 탁 트인 모양, 국토가 빼어난 모양, 숨기지 않는 모양, 물체가 삐걱거리는 소리, 진용이 정돈된 모양

 

당도(當道)

정도(正道)에 부합된다는 뜻으로서 곧 임금을 이끌어 정도에 부합되게 한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고자(告子)군자가 임금을 섬길 때는 그 임금을 힘써 이끌어 정도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君子之事君也 務引其君以當道]” 하였다.

 

당돌서시(唐突西施)

당돌한 서시(西施)라는 뜻으로, ‘꺼리거나 어려워함이 없이 올차고 다부진 서시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당동벌이(黨同伐異)

도리와는 관계없이 자기와 같은 패의 사람은 덮어놓고 돕고 자기와 다른 패의 사람은 물리침.

 

당랑가경와가식(螳螂可敬蛙可式)

앞발을 들어 수레를 막는 사마귀와 우물 안에서 뛰어노는 개구리가 힘이 미약하고 소견이 좁기는 하지만, 강한 적에 대항하는 의기와 양양자득한 뜻은 높이 살 만하다는 것이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당랑거철(螳螂拒轍)

당랑(사마귀)이 팔을 벌리고 수레()를 막음. 제 힘으로 당하지 못할 것을 생각지 않고 대적한다. 장자(莊子)』 「천지(天地)猶螳蜋之怒臂以當拒轍이라 하였다. / 인용: 자전거 여행 중에 생명존중사상을 발휘하다

 

당랑재후(螗蜋在後)

사마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 뒤에서 엿보는데 매미는 모르고, 사마귀는 몸을 숨겨 찰싹 붙어 매미를 잡으려 하되 참새가 그 옆에 있음을 모르며, 참새는 목을 늘여 사마귀를 쪼으려 하되 저를 겨눈 탄환이 그 밑에 있는 줄을 모른다는 설원(說苑)에 나오는 얘기로 한갖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덤비고, 해를 입을 것을 생각지 않으면 재화(災禍)를 당하게 됨을 비유한 것이다.

 

당랑포선(螳螂捕蟬)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덤비면 결국 큰 해를 입게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당래수능오헌면(儻來誰能傲軒冕)

장자(莊子)』 「선성(繕性)요즘 사람들은 관직(軒冕)을 얻고는 뜻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몸에 속한 것이지 성명(性命)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우연히 찾아와 몸에 잠깐 붙어 있는 것이다[物之儻來寄也].”라는 구절을 원용(援用)한 것이다.

 

당래지사(當來之事)

앞으로 마땅히 닥쳐올 일이란 뜻이다.

 

당로(當壚)

선술집의 술청에 나와 앉아 술을 파는 것을 말한다. / 인용: 祖江行(신유한)

 

당로독비(當壚犢鼻)

() 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아내 탁문군(卓文君)과 함께 목로집을 차리고서, 아내에게는 손님에게 술을 팔게 하고 자신은 쇠코잠뱅이를 입고 잡역(雜役)을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117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당릉(唐陵)

()은 종묘 안의 큰 길을 뜻하는 말로, 왕릉 즉 선조의 능을 가리킨다.

 

당림(棠林)

아가위나무 수풀, 곧 선정(善政)을 베푸는 곳. () 나라 소공(召公)이 남순(南巡)할 때 감당나무(甘棠) 아래에서 쉬어 머물기도 했다는 고사. 시경(詩經)소남(召南) 감담편(甘棠篇)에서 나온 문자로, 김의랑(金議郞)이 방백(方伯)으로 나가는 것을 미화하여 이르는 말이다. 발사(茇舍)는 그때 소공이 임시로 집짓고 일을 보던 초막(草幕).

 

당망(曭莽)

해가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당명황(唐明皇)

당 현종(唐玄宗)의 별칭이다.

 

당무백도아(堂無伯道兒)

뒤를 이을 자식이 없는 것을 말한다. 백도(伯道)는 진() 나라 등유(鄧攸)의 자이다. 등유가 하동 태수(河東太守)로 있을 적에 석늑(石勒)의 난을 만나 자기 아들과 동생의 아들을 데리고 피난하였는데, 도중에 적을 만났다. 등유는 두 아이를 다 살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여겨 자기의 아들은 버리고 동생의 아들만 살렸는데, 그 뒤에 끝내 후사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의 행실을 의롭게 여기면서 슬퍼하여 천도가 아는 것이 없어서 백도로 하여금 아들이 없게 했다.” 하였다. 진서(晉書)90 양리열전(良吏列傳)등유(鄧攸)

 

당무후(唐武后)

당 고종(唐高宗)의 황후인 측천무후(則天武后)를 말한다. 고종이 죽자 자기 아들 중종(中宗)을 세웠는데 마음에 맞지 않았으므로 폐위시키고 둘째 아들 예종을 세웠다. 그러나 곧 폐위시키고 자신이 정권을 휘두르면서 국호(國號)를 주()라 고치고 요직(要職)에 친족을 앉혔으나, 뒤에 장간지(張柬之) 등에 의하여 폐위되었다.

 

당반환제마(唐班煥制麻)

당나라에서는 대관 임명장은 누른 마지(麻紙)를 썼다.

 

당발(棠茇)

감당나무 아래에 있는 초막이란 말로, () 나라 때 감당나무 아래에서 어진 정사를 펼친 소공을 가리킨다. 주 나라 때 소공(召公)이 북연(北燕)에 봉해져서 감당나무 아래에서 어진 정사를 펼쳤는데, 소공이 죽은 뒤에 백성들이 소공을 그리워해 감당나무를 감히 베지 못하면서 감당지시(甘棠之詩)를 지어 기렸다. 사기(史記)34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 나라 소공(召公)이 머물러 쉬었던 감당(甘棠)나무를 말하는데, 시경(詩經)소남(召南) 감담편(甘棠篇)무성히 자란 감당나무, 자르거나 베지 말라. 우리 소백께서 쉬셨던 곳이니라[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당발기물전(棠茇期勿翦)

시경(詩經)소남(召南) 감담편(甘棠篇)은 소공(召公)이 방백(方伯)으로 있을 때에 백성에게 은혜가 있었으므로 가고 난 뒤에도 백성들이 그가 자주 쉬던 감당나무를 베지 말자는 노래이다.

 

당비(黨碑)

원우간당비(元祐奸黨碑)를 말한다.

 

당비거철(螳臂拒轍)

자기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강적을 대항함이 마치 사마귀가 성난 팔로 수레바퀴를 막음과 같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당산(當産)

해산할 날이 임박하다는 뜻이다.

 

당상촉(堂上燭)

두보(杜甫)의 시에 마루 위에 촛불 아직 켜기도 전에, 자리 털고 일어나며 벌써 갓을 바로 쓰네[堂上燭未秉 座中冠已峨].”라는 표현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3 詠興五首

 

당성(唐城)

남양(南陽)의 옛 이름이다.

 

당송총서(唐宋叢書)

() 나라 사람 종인걸(鍾人傑)과 장수신(張遂辰)이 공저한 책 이른다. 당송(唐宋) 때의 저술을 경사자집(經史子集) 별로 분류 편찬하였는데, 40권이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나라와 송()나라 시대의 여덟 명의 저명한 문장 대가(大家). 곧 당나라의 한유(韓愈; 韓退之) 유종원(柳宗元; 柳子厚),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 歐永叔) 왕안석(王安石; 王介甫) 증공(曾鞏; 會子固) 소순(蘇洵; 蘇明允) 소식(蘇軾; 蘇東坡) 소철(蘇轍; 蘇子由). 당송 팔가, 팔대가라고도 말한다.

당나라

송나라

한유, 유종원

구양수, 왕안석, 증공,

소순, 소식, 소철

 

 

당수(棠樹)

선정(善政)을 베푼 수령을 위해 베지 않고 남겨 놓은 나무로, 송덕비(頌德碑)와 같은 뜻이다. () 나라 소공(召公)이 감당(甘棠)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행하였는데 백성들이 그 덕을 사모하여 나무를 보호하면서 감당(甘棠) 시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사기(史記)』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당양동패(當陽同敗)

조조(曹操)가 형주(荊州)를 함락하자 그 고을 백성들이 모두 유비(劉備)를 따라나섰다. 그리하여 양양(襄陽)을 지나 당양(當陽)까지 오는 동안 조조의 추격군은 하루 1백 리 이상을 달려 추격해 왔으나, 부녀자 노약자를 차마 못 버려 다 데리고 행군을 하는 유비군은 드디어 당양에 이르러 추격군의 세찬 공격을 받고 여지없이 패했던 것이다. 삼국지(三國志)

 

당뇨관화(唐堯觀華)

당요(唐堯)가 화 지방의 민심을 살펴보러 나갔을 때 그곳의 관리가 당요에게 오래 살고 재물이 많고 아들을 많이 두라는 것으로 축복하자, 대답하기를 아들이 많으면 걱정이 많고 재물이 많으면 일거리가 많고 오래 살면 욕될 일이 많다[多男子則多懼, 富則多事].” 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곧 당요 자신은 그와 같은 축복을 받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는 뜻인 듯하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당우(唐虞)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의 시대로, 요순 시대를 말하며, 태평 시대를 가리킨다.

도당씨(陶唐氏)와 유우씨(有虞氏) 즉 요()와 순()을 말한다.

()와 순()이 세웠던 두 나라의 이른다.

 

당우읍양(唐虞揖讓)

당우(唐虞)는 요순(堯舜)을 가리키는 말이고, 읍양(揖讓)은 천자(天子)의 지위를 서로 양여(讓與)하는 일을 말한다. 즉 요와 순이 서로 평화롭게 천자의 자리를 주고받은 것을 뜻하는 말로, 공영달(孔穎達) 상서정의 서(尙書正義序)요순은 읍양하여 전(; 堯典舜典)과 모(; 大禹謨皐陶謨)가 일어났다.” 한 데서 온 말이다.

 

당위출유분(唐圍黜劉賁)

당위(唐圍)는 당() 나라 궁궐을 말한다. 유분(劉蕡)이 태화(太和) 2년에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대책(對策)에서 환관들의 폐단에 대해 극언하였는데, 그 당시에 환관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던 탓에 고관(考官)이 감히 뽑지 못하고 낙방시켰다. 그러자 같이 대책에 응하였던 이태(李邰)유분이 낙방하고 우리가 급제하였으니, 어찌 낯 두껍지 않겠는가.” 하였다. 신당서(新唐書)178 유분열전(劉蕡列傳)

 

당유함(唐類函)

() 나라 유안기(兪安期)의 찬으로 총 2백 권. 내용은 예문유취(藝文類聚)ㆍ초학기(初學記) 등의 유서에서 중복되는 것을 제거, 분류별로 수록한 것이다.

 

당음(唐音)

14권으로 원() 나라 양사굉(楊士宏)이 편찬했는데 엄정하게 선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장진(張震)의 주가 붙어 있다.

 

당음(棠陰)

지방장관 또는 정사를 행하는 관소(官所)를 말한다. 주 무왕(周武王) 때 소공(召公)이 서백(西伯)이 되어 선정(善政)을 베풀었는데, 그가 감당나무 그늘(棠陰) 아래에서 쉰 것을 기념하여 백성들이 그 나무를 보존하며 노래를 지어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시경(詩經)소남(召南) 감당(甘棠)무성한 저 감당나무 가지를, 갈기지 말고 베지도 말라. 우리 소백이 쉬시던 곳이니라.[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인용: 伐木行(성현)

 

당인비(黨人碑)

() 나라 때 정강의 변(靖康之變)을 조성한 육적(六賊)의 괴수로 알려진 채경(蔡京)이 일찍이 원우(元祐) 연간의 당인(黨人)인 사마광(司馬光) 이하 390명의 이름을 비석에 새겨 단례문(端禮門) 밖에 세웠던 것을 말한다.

 

당일(唐逸)

죽계육일(竹溪六逸)을 말한다.

 

당장걸위승(唐將乞爲僧)

당 덕종(唐德宗) 때의 명장 이성(李晟)이 일찍이 장연상(張延賞)과 사이가 좋지 않아 그로부터 훼방을 듣게 되자, 중이 되어 해진 우차(牛車)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임금에게 청했던 데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卷一百五十四

 

당장화흔석상류(唐將靴痕石上留)

부여(扶餘) 백마강(白馬江)에 있는 조룡대(釣龍臺)의 전설을 말한다. 나당(羅唐)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당장(唐將) 소정방(蘇定方)이 백마강에 이르자 용()의 조화로 갑자기 바람이 일고 비가 쏟아졌다. 그래서 백마를 미끼로 하여 그 용을 낚았는데, 그때 용의 무게에 의하여 신발 흔적이 바위에 남아 있다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卷十八 부여현(扶餘縣)

 

당저(當宁)

현재의 임금을 일컫는 말로, 금상(今上)과 같은 뜻이다.

 

당제교횡계백영(唐帝橋橫桂魄盈)

당제(唐帝)는 현종(玄宗)을 가리킨다. 현종이 양귀비(楊貴妃)칠석(七夕) 밤에 죽어 하늘 나라에서 서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당제자(唐帝咨)

당제(唐帝)는 요() 임금을 가리킨 것으로, 요 임금이 이르기를 , 사악(四岳), 성대한 홍수(洪水)가 한창 재해를 일으켜 벌창하게 흘러 산과 언덕을 싸고 넘어서 하늘까지 범람한다.” 하며, 걱정하였던 데서 온 말이다. 서경(書經)』 「요전(堯典)

 

당조헌육잠(唐朝獻六箴)

()의 이덕유(李德裕)가 절서(浙西)의 관찰(觀察)로 있을 때 소의(宵衣)ㆍ정복(正服)ㆍ파헌(罷獻)ㆍ납회(納誨)ㆍ변사(辨邪)ㆍ방미(防微) 등 단의(丹扆) 육잠(六箴)을 왕에게 올렸다. 구당서(舊唐書)卷一百七十四 이덕유전(李德裕傳)

 

당중언(唐仲言)

중언(仲言)은 청() 나라 당여순(唐汝詢)의 자이다. 여순은 5세 때 눈이 멀었는데, 눈이 멀기 이전에 벌써 약간의 글자를 알았으며, 눈이 먼 뒤에는 여러 형들의 글읽는 소리를 듣고 하나하나 다 기억하여 오래도록 잊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시에 능하여 당시해(唐詩解)를 짓기까지 하였는데, 전겸익(錢謙益) 같은 학자도 그의 당시해를 높이 평가하였다.

 

당지(唐志)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를 말한다.

 

당직상언(當直上言)

의금부(義禁府)의 당직청(當直廳)에 나아가 원억(冤抑)을 하소하는 글을 임금에게 올리는 것.

 

당차홍종(撞此洪鍾)

스승을 종에 비유하여 물어오면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논어문의통고(論語問義通攷)』 「자한(子罕)9양씨(楊氏)가 말하기를 물음에 잘 응하는 것은 종을 치는 것과 같다. 종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두드리면 울리니, 성인이 아는 것이 없다가 어떤 사람의 물음으로 인하여 아는 것이 나타나는 것 또한 그와 같다.’ 하였다.” 하였다.

 

당참(堂參)

새로 부임하는 수령(守令)ㆍ진장(鎭將)이 낭청(郎廳)에게 주는 예물을 이른다. 조선조 때에 수령(首領)ㆍ찰방(察訪)ㆍ만호(萬戶) 등이 새로 부임하게 되면, 의정부(議政府)와 이()ㆍ병조(兵曹)에 나아가 인사를 드리는 것이 법례였는데, 그 참알(參謁)할 적에는 으레 그 관사의 낭청(郎廳)들에게 예물을 바쳤던 것이니, 이를 당참 (堂參)이라 하였다.

 

당창(唐昌)

당 나라 도관(道觀)의 이름이다. 당 현종(唐玄宗)의 딸 당창공주(唐昌公主)가 옥예화(玉蕊花)를 그곳에 손수 심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당창이라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당체부화(棠棣敷華)

형제간에 의가 좋은 것을 말한다. 당체는 시경(詩經)소아의 한 편명으로, 형제가 화목하게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는 것을 노래한 시인데, 상체(常棣)당체의 꽃이여 밝고 곱지 않는가? 지금 사람은 형제만 같음이 없느니[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 하였다.

 

당체시(棠棣詩)

시경(詩經)당체편(棠棣篇)을 말하는데, 이 시는 형제(兄弟)가 화목하게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당체는 곧 상체와 같은 것으로, 산앵도나무를 가리킨다.

 

당초공수생(塘草共愁生)

동생의 안부가 궁금하여 걱정된다는 말이다. 당초(塘草)池塘春草의 준말이다. 남조(南朝) ()의 사영운(謝靈運)이 하루 종일 마땅한 시구를 얻지 못해 고민하다가 오매불식(寤寐不識) 간에 족제(族弟)인 사혜련(謝惠連)을 홀연히 보고는 곧바로 池塘生春草라는 절묘한 표현을 떠올렸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사(南史)19 사혜련전(謝惠連傳)

 

당탑련사방(鼞鞳連四方)

옛날에는 일식(日蝕)이 있으면 징을 치고 북을 쳐서 일식을 구()한다는 풍습이 있었다.

 

당포작(螳怖雀)

사마귀(螳螂)가 매미를 잡기에 열중하여 뒤에 참새가 노리고 있음을 모른다. 설화(說花)

 

당항(党項)

부족(部族)의 이름으로, 북송(北宋) 때에 그 족인(族人)인 이원호(李元昊)가 칭제(稱帝)했는데, 사서(史書)에서는 이를 서하(西夏)라 말한다.

 

당헌종(唐憲宗)

당 헌종(唐憲宗)이 회서(淮西)의 오원제(吳元濟)를 칠 때에는 반대론이 많았으나, 그것을 물리치고 재상배도(裴度)의 토벌론을 좇아 3년만에 토평했다.

 

당화일반고(棠華一半枯)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이 죽었다는 말이다. 형제의 우애를 강조한 시경(詩經)소아(小雅) 당체편(棠棣篇)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황(堂皇)

방 사방에 벽이 없는 것을 황이라 한다.

 

당후(堂后)

당후관(堂后官)의 약칭으로, 주서(注書)의 집무실이 승정원의 뒤쪽에 있었기 때문에 승정원(承政院)에서 정7품 벼슬인 주서(注書)가 있는 방, 또는 승정원주서의 이칭이다. / 인용: 評詩文(신정하)

 

당희선(唐僖宣)

당 나라 제18대 황제 희종(僖宗)과 제19대 황제 선종(宣宗)을 말하는 것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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