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대
대(玳)
대모(玳瑁)를 말하니, 즉 거북의 일종이다. 등껍질은 장식품에 쓰인다. 『사기(史記)』 卷78 『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
대가(代加)
벼슬의 자급을 올리는데 있어 부형의 벼슬이 자궁(資窮)인 통훈대부(通訓大夫)가 되어 친히 은전을 받지 못하므로 그 자제(子弟)에게 대신 주는 것을 대가(代加)라 한다.
대가(大家)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는 자가 임금을 일컬을 때 하는 말이다. 태후(太后) 또는 황후(皇后)를 일컫는 말이다.
대가(待價)
자공이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사온데, 궤 속에 감춰 두리이까. 좋은 값을 얻고 팔리이까[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하니,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팔고 말고, 팔고 말고, 그러나 나는 값을 기다리는 자이로라[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 하였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대간무(戴竿舞)
『명황잡록(明皇雜錄)』에 “임금이 근정루(勤政樓)에 올라 풍악을 갖추고 온갖 기예(技藝)를 벌이게 했는데, 여우(女優) 대랑(大娘)이 대간무를 잘 추었다. 즉, 머리 위에 긴 장대를 이고 목상(木床)을 올려놓은 다음 여러 어린애가 붉은 절모(節旄)를 들고 그 위에 올라서면 춤을 추어 음절(音節)을 맞춘다.” 하였다.
대간사충(大姦似忠)
‘악한 사람이 본성을 숨기고 충신처럼 보인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대감(臺監)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말한다.
대갑(帶甲)
‘갑옷 입은 병사(兵士)’를 말한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齊 地方千里 帶甲十萬 粟如丘山”이란 것이 보인다.
대강(太康)
‘진 무제(晉武帝)의 연호’를 말한다.
대객초인사(對客初人事)
손님에게 먼저 담배를 권하는 것이 재래 우리나라의 습관으로 먼저 담배를 권함을 이르는 말이다.
대갱(大羹)
오미(五味)를 일체 첨가하지 않은 담박한 육즙(肉汁). 큰 제사에 쓰는 대갱(大羹)은 조미를 하지 않는데, 그 질을 중히 여기는 뜻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 / 다섯 가지 맛으로 조미하지 않은 종묘(宗廟)의 대례(大禮) 때 쓰는 고깃국이다. 『예기(禮記)』 「악기(樂記)」
대건(大蹇)
‘매우 험난한 때’라는 말이다.
대건타면(待乾唾面)
당 나라 누사덕(婁師德)이 그 동생을 지방에 수령(守令)으로 보내면서 “네가 장차 어떻게 처신할 것이냐.” 하니 동생은 대답하기를, “다른 사람이 저의 낯에 침을 뱉으면 닦고 말겠습니다.” 하였다. 누사덕은, “안될 말이다. 남의 뱉은 침을 닦으면 그 사람이 노할 것이다. 그대로 말리는 것이 옳다.” 하였다.
대게(大偈)
불법(佛法)을 말한다.
대경당집(帶經堂集)
청(淸) 나라 왕사정(王士禎)의 저서이다.
대경유가사치여(帶經猶可事菑畬)
한(漢) 나라 예관(兒寬)이 품팔이를 할 적에 늘 경서를 몸에 지니고 밭일을 하다가 휴식할 때면 독송을 했던[時行賃作 帶經而鋤 休息輒讀誦]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아관전(兒寬傳)」
대고(大軱)
‘넓적다리 부분의 큰 뼈’를 말한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기술로 힘줄과 뼈가 붙은 곳을 지날 적에 조금도 머뭇거린 적이 없었는데, 큰 뼈다귀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技經肯綮之未嘗微礙, 而況大軱乎].”라는 말이 있다.
대고(大苦)
메주 또는 된장이다.
대고(大孤)
함양(咸陽)의 남계(灆溪)에 있는 대(臺) 이름이다.
대곡(大谷)
맛 좋은 배가 나는 땅 이름ㆍ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장공(張公)은 대곡의 배요 양후(梁侯)는 오비(烏椑)의 감이다.” 하였다.
대곡리(大谷梨)
대곡(大谷)의 배는 큰 골짜기에서 나는 배로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장공(張公) 대곡의 배와 양후(梁侯) 오비(烏椑)의 감이다.” 하여 천하에 유명하였다.
대곡서당(大谷書堂)
나주 금성산(錦城山) 기슭에 있는 서원으로 문경공(文敬公)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문정공(文正公)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문원공(文元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문순공(文純公) 퇴계(退溪) 이황(李滉) 등 오현(五賢)을 향사(享祀)하였다.
대공무사(大公無私)
‘매우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대공선(大空禪)
소승(小乘)의 편공(偏空)에 상대말로서, 대승 구경(大乘究竟)의 공적(空寂)을 대공이라 하는데, 그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곧 대승의 열반을 말한다.
대공신관(帶孔新寬)
심약(沈約)이 친하게 지내던 서면(徐勉)에게 “이번에 쾌차(快差)함이 전의 쾌차함만 못하고, 이번 병세가 전번보다 심하다. 백여 일 동안에 야위어 띠 구멍은 넓어지고, 팔목을 재 보니 한 달 동안에 반푼이나 줄었다.” 하였다. 늙고 병들어 몸이 야윔을 말한 것이다.
대관장영(大冠長纓)
‘큰 갓과 긴 갓끈’을 말한다.
대관제물(大觀齊物)
세상에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는 물론(物論)을 다 같이 가지런하게 본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대관혈(臺官血)
고려(高麗)의 심양(沈諹)이 충간(忠諫)을 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형신(刑訊)을 받았다. 형신을 받으며 흘린 피가 형구에 묻은 것을 가리킨 말이다.
대괴(大塊)
천지(天地)를 말한다.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더욱이 봄볕이 나에게 아지랑이 낀 날씨로 불러주었고 천지가 나에게 문장을 쓸 수 있는 재주를 빌려주었다[況陽春召我以煙景, 大塊假我以文章].”라는 구절이 있다.
대구(待扣)
‘남을 지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학기(學記)」 13장에, “잘 질문을 기다리는 스승은 종을 치는 것 같아 작은 것으로 두드리면 작게 울려주고 큰 것으로 두드리면 크게 울려준다[善待問者, 如撞鍾, 叩之以小者則小鳴, 叩之以大者則大鳴].” 하였다.
대군(代郡)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태원현(太原縣) 부근인데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의 명장(名將) 이목(李牧)이 여기에 있으면서 군사를 훈련하고 수비를 잘하여 명성을 떨쳤다.
대궤(臺餽)
조정에서 하사한 물품을 가리킨 말이다.
대규(戴逵)
진(晋) 나라 사람으로 자(字)는 안도(安道)이다.
대규파금(戴逵破琴)
대규(戴逵)는 진(晉)의 은사(隱士). 그는 여러 번 나라에서 불렀으나 벼슬하지 않고 책과 거문고를 즐기면서 살았다. 한번은 무릉왕(武陵王) 희(晞)가, 대규가 거문고를 잘 탄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부르자 “나는 왕의 악공(樂工)은 되지 않겠다.” 하고는 거문고를 사자 앞에서 부수어 버렸다. 『진서(晉書)』 卷九十四 「대규전(戴逵傳)」
대균(大鈞)
균(鈞)은 질그릇을 만들 때 사용하는 윤전기(輪轉器)를 말한다. 균(鈞)은 각종 질그릇을 만들어 낸다 하여 흔히 대자연의 조화를 뜻하는데 나라의 재상 역시 정사를 하는 데에 그와 같은 역량을 발휘하는 자리이므로 재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대균(大均)
연파거사(煙波居士) 박개(朴漑)의 자이다.
대기대용(大機大用)
불가 용어로 대승법(大乘法)을 수지(受持)한 보살승(菩薩乘)에 이른 사람. 연자방아의 효용.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오랜 기간 끝에 만들어진다’는 말로, ‘큰 인물은 오랫동안의 노력 끝에 완성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만년(晩年)이 되어 성공하는 경우에나 과거에 낙방한 선비를 위로해야 하는 경우에 주로 쓰인다. 『노자(老子)』 41장,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
대나천(大羅天)
도교에서 말하는 삼십육천(三十六天)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이다.
대년(大年)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소지(小知)는 대지(大知)의 세계를 모르고, 소년(小年)은 대년(大年)의 차원을 모른다[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라는 말이 있다.
대년춘(大年椿)
대년(大年)은 고년(高年)이나 장수(長壽)를 가리킨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상고에 큰 춘나무가 있었는데, 8천 년을 봄으로 하고 8천 년을 가을로 한다[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하였으므로 부모나 노인의 장수를 빌 때에 춘수(椿壽)ㆍ춘령(椿齡)이란 말을 쓴다.
대단(臺端)
어사대 안의 잡사(雜事)를 처리하는 시어사(侍御史)를 가리킨다.
대대(代代)
‘거듭된 여러 세대’라는 뜻이다. / 유의어: 면대(綿代), 세세(世世), 열대(列代), 적세(積世), 혁세(奕世) / 인용: 與皇甫若水書(임춘)
대대(大大)
① ‘매우 크다’는 뜻이다,
② ‘맏누이’를 말한다.
대대손손(代代孫孫)
‘대대로 내려오는 자손’을 말한다.
대덕현인(大德賢人)
지혜와 덕망이 높은 스님을 칭하는 말이다. 본래는 부처님을 일컫던 말인데 뒤에 사문(沙門)의 존칭으로 되었다.
대도(大道)
불도(佛道)를 말한다.
대도(大刀)
대도환(大刀環)으로, 돌아간다는 뜻인 환(還)의 은어인데, 큰 칼에 달린 고리인 환(環)이 환(還)과 음이 같으므로 취해서 쓴 것이다.
대도(大都)
원도(元都) 연경(燕京)을 말한다
대도백적(大度百適)
관아에 매이는 일이 없이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백적(百適)은 백적(百讁)으로, 한(漢) 나라 때 백 번 견책을 받으면 면직되는 고사가 있었다. 공부(公府)의 연리(掾吏) 진준(陳遵)이 날마다 밖에 나가 술에 취해 업무를 폐한 나머지 백 번 견책을 받은 끝에 면직될 운명에 처했는데, 대사도(大司徒) 마궁(馬宮)이 “이 분은 대도(大度)의 인사인데, 어떻게 자잘한 법규로 문책할 수 있는가.” 하고 우대했던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유협준(游俠傳)」 진준(陳遵)
대도입수(大刀入手)
대도(大刀)는 대도환(大刀環)으로, 돌아간다는 뜻인 환(還)의 은어인데, 큰 칼에 달린 고리인 환(環)이 돌아간다는 뜻인 환(還)과 음이 같으므로 취해서 쓴 것이다. 『한서(漢書)』 卷54 「이광전(李廣傳)」
대도절(大刀折)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대도는 대도환(大刀環)으로, 돌아간다는 뜻인 환(還)의 은어인데, 큰 칼에 달린 고리인 환(環)이 돌아간다는 뜻인 환(還)과 음이 같으므로 취해서 쓴 것이다. 『한서(漢書)』 卷54 「이광전(李廣傳)」
대도환(大刀鐶)
칼 머리에 달린 고리를 말하는데, 환(鐶)은 환(還)과 음이 같으므로 곧 고향으로 돌아가는 뜻으로 쓰인다.
대독(帶犢)
한 선제(漢宣帝) 때 발해(渤海)에 흉년이 들어 칼을 차고 도적질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공수(龔遂)가 수령이 되자 그들로 하여금 칼을 팔아 송아지를 사게 하며 타이르기를 “무엇 때문에 송아지를 차고 다니느냐?”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전(轉)하여 ‘도적질’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한서(漢書)』 「순사전(循使傳)」
대동단결(大同團結)
‘많은 사람이나 여러 집단이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하여 크게 하나로 뭉치는 것’을 말한다.
대동비(大同碑)
사가시전주(四家詩箋註)에 의하면 조선 때 대동전세법(大同田稅法)을 시행하면서 이민구(李敏求)가 비문을 찬(撰)하였다 한다.
대동소이(大同小異)
크게 보면 같지만 작게 보면 다름. 작은 부분에서만 다르고 전체적으로는 같음. 즉, 거의 같다는 말이다. 혜시(惠施)의 소동이(小同異), 대동이론(大同異論)에서 비롯된 말이다. 『장자(莊子)』 「천하(天下)」
대동천(大洞天)
선경(仙境)을 말한다. 도교(道敎)에서는 신선이 사는 땅의 세계로 10대 동천을 설정하고 있다.
대두(大斗)
자루의 길이가 석 자나 되는 큰 국자로, 『시경(詩經)』 대아(大雅) 「행위(行葦)」에 “큰 국자로 술을 떠서, 오래 사시라 기원하네[酌以大斗 以祈黃耈].”라는 구절이 있다.
대두인(大頭人)
머리 큰 사람이란 말로 이는 나선정벌(羅禪征伐) 때 우리 나라 군사가 모두들 벙거지(전립(戰笠))를 썼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이 말의 출처는 흑룡강(黑龍江) 하류 지역에 사는 견부락(犬部落)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대라(大羅)
도가에서 말하는 제천(諸天)의 이름으로, 삼청(三淸)의 위에 있다 한다.
대라천(大羅天)
상상의 천계(天界)로 선계(仙界)의 뜻으로 쓰인다. 삼계(三界)의 밖은 사인천(四人天)이라 하고 사인천 밖은 삼청(三淸)이라 하고 삼청의 위는 대라천이라 한다. 대라천의 위에 또 구천(九天)이 있다고 한다. 『유양잡조(酉陽雜俎)』 玉格 이상은(李商隱)의 시에 “曾記大羅天上事 群仙同日詠霓裳”이라 하였다.
대란패(臺蘭佩)
난초 꽃은 향기가 높아서 예전부터 점잖은 사람들이 그것을 찼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한 것은 실지로 난초꽃을 찬 것이 아니고 그와 같이 향기로운 마음씨를 갖는다는 말이다.
대랑(大娘)
당(唐) 나라 때의 교방기(敎坊妓)로 검무(劍舞)에 뛰어났던 공손대랑(公孫大娘)을 가리킨다.
대량(大梁)
① 『이아(爾雅)』석천에 의하면, 묘성(昴星)의 별칭이다. 서륙(西陸)이라고도 한다.
②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내 개봉(開封)을 말한다.
대려(大呂)
주(周) 나라 종묘(宗廟)에 설치한 큰 종(鐘)의 이름으로, 구정(九鼎)과 함께 주 나라의 보기(寶器)로 전해온 것인데, 전하여 크고 귀중함의 뜻으로 쓰인다.
대려(帶礪)
산려하대(山礪河帶)의 준말로, 주군에게 충성을 다 바치겠다는 의미이다. “황하가 허리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닳아 없어질 때까지[黃河如帶 泰山如礪]”라는 말이다. 『사기(史記)』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 / 인용: 皇都(정몽주), 會盟後頒敎錫物賜宴兩功臣謝箋(장유)
대려맹(帶礪盟)
『사기(史記)』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에 “관작 봉하는 맹세에 ‘하수가 옷의 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작아질 때까지 나라가 길이 안녕할 것이고 후손에게까지 미치게 하겠다.’”고 하여, 공신의 가족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하였다.
대려지서(帶礪之誓)
황하(黃河)가 띠와 같이 좁아지고 태산(泰山)이 숫돌과 같이 작게 되어도 국토(國土)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공신(功臣) 집안은 영구히 단절시키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사기(史記)』 「고조공신연표(高祖功臣年表)」
대력(大曆)
당 대종(唐代宗)의 연호(766~779)이다.
대련(大練)
거칠게 짠 두꺼운 비단을 말한 것으로, 즉 검소함을 말한다.
대련지선훈(大練之先訓)
한(漢)의 명덕 마 황후(明德馬皇后)가 매우 검소하여 언제나 대련(大練)으로 지은 옷을 입었고, 치마는 가장자리를 싸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대련(大練)은 거친 명주이다. 『후한서(後漢書)』 「명덕마황후기(明德馬皇后紀)」
대령(大令)
진(晉) 나라 때의 명필 왕희지(王羲之)의 아들로서 역시 명필인 왕헌지(王獻之)를 말하는데, 특히 왕헌지를 대령이라 한 것은, 왕헌지와 왕민(王珉)이 당시에 명성이 서로 같은데다 왕헌지가 중서령(中書令)을 먼저 지내고 왕민이 바로 그 다음에 또 중서령을 지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왕헌지를 대령, 왕민을 소령이라 일컬은 데서 온 말이다.
대령리(大令梨)
대령(大令)은 왕헌지의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을 지냈는데 직을 떠나자 왕민(王珉)이 갈음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헌지를 대령(大令)이라 하고 민을 소령(小令)이 라 한다. 배는 헌지의 송리삼백첩(送梨三百帖)을 말한다.
대로(戴老)
대안도(戴安道)인 자(字)가 안도(安道)인 진(晉)나라 때의 처사(處士) 대규(戴逵)를 말한다.
대로(大老)
나라의 큰 인물을 말한다. 『맹자(孟子)』 「이루(離婁)」 上에 “두 늙은이는 천하의 대로인데 돌아왔으니 이는 천하의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다[二老者, 天下之大老也, 而歸之, 是天下之父歸之也].” 했는데, 그 주에 “두 늙은이는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이다.” 했다.
대로(大鹵)
춘추시대(春秋時代) 노 소공(魯昭公) 1년에 진(晉)의 순오(荀吳)가 적(狄)을 격패시켰던 땅 이름인데, 난리를 말한다.
대록(大麓)
“순(舜)을 대록에 들이니 매운 바람과 천둥ㆍ비에 미혹치 않았다[納于大麓 烈風雷雨弗述].” 『서경(書經)』 「요전(舜典)」 대록에 대하여는 ‘큰 산기슭’ 설(說)과 ‘큰 그릇’ 설, ‘산림(山林)’도 등이 있으나, 요컨대 요(堯)가 순(舜)을 시켜 산림에 들게 하니, 폭풍과 뇌우(雷雨)에 설 길을 잃지 않았다 한 말이다.
대루(待漏)
백관(百官)이 아침 일찍 출근하여 조문(朝門) 밖 대루원(待漏院)에서 입조(入朝)의 시각까지 기다리던 것을 말한다.
대루독조참(待漏獨朝參)
각루(刻漏)는 물시계. 백관이 이른 새벽에 대궐에 들어가 임금에게 문안드리는 일을 준비하는 것을 각루를 기다린다고 말하며, 조참(朝參)은 한 달에 네 번씩 백관이 정전(正殿)에 나와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고 정사를 아뢰던 일이다.
대루원(待漏院)
당(唐) 나라 때에 설치한 관아의 이른다. 백관(百官)이 아침 일찍 출근하여 참조(參朝)의 시각까지 기다리고 있던 곳이다.
대루청(待漏廳)
백관들이 왕에게 아침 인사를 드리기 위해 새벽에 모여 대기하는 장소이다.
대리본비삼후필(大理本非三后匹)
① 대리(大理)는 법관(法官)의 별칭으로, 대사간(大司諫)을 가리킨다. 후한(後漢) 양사(楊賜)가 법관인 정위(廷尉)로 임명되자 “삼후는 공을 이루어 백성을 풍족하게 해 주었는데, 고요는 여기에 끼이지도 못했다[三后成功 惟殷于民 皐陶不豫焉].”라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卷54 「양사전(楊賜傳)」
② 한유(韓愈)의 시에 “벌써부터 알고말고 대리의 직책이란, 삼후의 반열에 끼이지 못한다는 것을[早知大理官 不列三后儔].”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대리는 법관을 지낸 고요(臯陶)를 가리키고 삼후는 『서경(書經)』 여형(呂衡)에 나오는 바, 백이(伯夷)ㆍ우(禹)ㆍ직(稷)의 3인을 가리킨다. 『한창려집(韓昌黎集)』 卷1 赴江陵途中寄贈王李李翰林三學士
대리삼자강(大理三字强)
법관(法官)이 애매한 누명을 씌워 닦달하는 것을 말한다. 대리(大理)는 옛날 형법을 관장하던 관직 이름이다. 송(宋) 나라 진회(秦檜)가 악비(岳飛)를 무함하여 하옥시키면서 “악비의 아들 운(雲)이 장헌(張憲)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불분명하긴 하나 사체로 볼 때에는 있을 법한 일(莫須有)이다.”고 하자, 한세충(韓世忠)이 “막수유라는 세 글자를 가지고 어떻게 천하 사람들을 이해시키겠는가.” 하였던 고사가 있다. 『송사(宋史)』 「악비전(岳飛傳)」
대립(戴粒)
개미들이 쉴 새 없이 머리에 짐을 이고 다니는 것을 말한다. 동해의 별주부가 봉래산을 이고 떠다니는 것을 보고, 개미들이 “저 놈은 어째서 알갱이를 이고 다니는 우리와 달리 산을 이고 다니는가[彼之冠山 何異我之戴粒].”라고 말했다는 설화에서 대립(戴粒)이 개미의 별명으로 쓰이게 되었다. 『태평어람(太平御覽)』 卷947
대막(大漠)
몽고 고원(高原)의 큰 사막. 한해(瀚海)ㆍ대적(大磧)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매창(對梅窓)
매화나무 창가에서 『주역(周易)』을 보았다는 뜻이다. 소강절(邵康節)의 시에 “이슬비 내리는 매창에서 주역을 보았네[梅窓細雨看周易].”라고 하였다.
대명궁(大明宮)
당(唐) 나라 때 장안(長安)에 있던 궁전 이른다. 「대명(大明)」은 동쪽, 태극(太極)은 서쪽, 흥경(興慶)은 남쪽, 이렇게 세 성(省)에서 번갈아가며 조회를 받았는데 그 중에서 대명이 가장 훌륭했다고 한다. 『옹록(雍錄)』
대모(大茅)
대나무를 읊은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작은 것은 잘라서 낚싯대를 만들고, 큰 것은 엮어서 띠집을 잇는다.” 하였다.
대모(大毛)
『시경(詩經)』의 훈고전(訓詁傳)을 지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모형(毛亨)을 말한다.
대모고(玳瑁膏)
거북 껍질로 만든 관자(貫子)이다.
대모군(大茅君)
한(漢) 나라 때 도인(道人)으로 구곡산(句曲山)에 은거한 모영(茅盈)을 이르는데, 그의 아우인 고(固)와 충(衷)도 모두 벼슬을 버리고 형을 따라 신선이 되었으므로, 그의 아우들에 대하여 큰 형을 대모군이라 한 것이다.
대모당(戴帽餳)
수(隨)나라 양언광(梁彦光)이 상주수(相州守)로 있을 때 백성들이 친배하여 그를 모자 쓴 엿이라 하여 임금께 청하여 다시 고을 수령으로 갔음.
대모삼천(玳瑁三千)
조 나라의 평원군이 초(楚) 나라의 춘신군(春申君)에게 사신을 보내었는데, 평원군의 사신이 과시하기 위해 대모로 만든 비녀를 꽂고 나가자, 춘신군의 사신은 주옥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나와 맞이하였다. 그러자 평원군의 사자가 기가 꺾였다. 『사기(史記)』 卷78 『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
대모잠(瑇瑁簪)
‘바다거북 등껍데기로 장식한 비녀’를 말한다.
대몽선각(大夢先覺)
꿈과 같은 이 인생을 먼저 마감하였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그것이 꿈인 줄도 모른 채, 꿈속에서 또 꿈을 점치다가 깨고 나서야 꿈인 줄을 아나니, 크게 깨닫고 난 뒤에야 우리 인생이 커다란 하나의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方其夢也, 不知其夢也. 夢之中又占其夢焉, 覺而後知其夢也. 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 하였다.
대무육성(大武六成)
대무는 무왕(武王)의 음악을 말하고, 육성은 여섯 단계로 무악(舞樂)을 연주하는 것을 이른 말로, 자세한 것은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나타나 있다.
대무지년(大無之年)
대흉년(大凶年)이란 뜻이다. / 인용: 老翁問答(이경석)
대박(大朴)
인심이 아주 순박하여 천하에 전쟁이 없이 태평함을 말한다.
대방(帶方)
남원(南原)의 고호(古號)이다. / 인용: 雲巖破倭圖歌(유득공)
대방(大方)
큰 도(道)란 뜻인데, 『장자(莊子)』에서 나온 말이다.
대배(大拜)
‘정승에 제수되는 것’을 말한다.
대보(大寶)
왕위(王位)를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繫辭)」 下에 “성인의 대보는 군위(君位)이다[聖人之大寶曰位].” 하였다.
대복(大復)
명 나라 때 시인 하경명(何景明)의 호이다. 시(詩)와 고문(古文)으로 당시 십재자(十才子)로 일컬어졌다.
대부강복(大夫降服)
『중용(中庸)』 18장에 “기년상은 대부에까지 미친다[期之喪達乎大夫]” 한 데 대하여, 그 주석에 의하면, 대부(大夫)의 방친(旁親)으로 기년복을 입어야 할 자리에 대해서는 한 등급을 내려 대공복(大功服)으로 입는 것을 이른 말이라고 하였다.
대부송(大夫松)
진시황(秦始皇)이 봉선을 행하러 태산(泰山)에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자 나무 아래에서 쉬고는 그 나무를 오대부(五大夫)에 봉했던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 卷六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대부인(大夫人)
‘살아 계신 남의 어머니’를 말한다.
대부작부등고지(大夫作賦登高地)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登高能賦 可以爲大夫”라 하였고, 왕안석 시에 “ 信知大夫才 能賦在登高”라는 글귀가 있다.
대분(戴盆)
머리에 동이를 이고는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두 가지 일을 함께 겸하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대분(大墳)
‘큰 언덕’이나 ‘뚝’을 말한다.
대분망천(戴盆望天)
‘머리에 동이를 이면 하늘을 볼 수 없는데 보려고 한다’는 말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자 하나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대비(大比)
‘3년마다 한 번씩 시행하여 관리를 뽑는 과거 시험’을 말한다. 여러 차례 시험으로 시험을 잘 본 이를 임명하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 인용: 소화시평
대사(大士)
불교(佛敎)에서 보살(菩薩)의 통칭(通稱)으로 쓰는 말이다.
대사(代舍)
전국시대(戰國時代) 맹상군(孟嘗君)의 집에는 문객(門客)을 묵게 하는 상ㆍ중ㆍ하의 관사(館舍)가 있었다 하는데, 대사(代舍)는 그 중에서 상등의 빈객을 접대하는 곳이었다. 『사기(史記)』 卷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대사(大姒)
주 문왕(周文王)의 정비(正妃)인데, 어진 후비(后妃)로 이름이 있다. 덕을 이었다는 것은 역시 어진 후비로 그의 시어머니인 태임(太妊)의 덕을 이었다는 것인데, 『시경(詩經)』 「문왕(文王)」에 있는 말이다.
대사(岱絲)
중국 산동성(山東省) 대령(岱嶺) 지방에서 생산되는 생사(生絲)를 말한다.
대사명(大司命)사명(司命)은 사람의 생명을 맡은 신(神)으로서 하늘을 도와 조화를 행하고, 악한 무리를 죽이고 착한 자를 보호한다고 한다.
대삼(待三)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下에, 창을 잡은 전사(戰士)가 하루에 세 번 대오(隊伍)를 이탈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세 번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즉시 처치하겠다[不待三].”고 대답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살(代殺)
살인한 사람에 대하여 그 목숨의 대가로 죽이는 일을 말한다. / 인용: 毛女篇(신광하)
대서특필(大書特筆)
특히 드러나게 큰 글자로 적어 표시한다는 뜻으로, 신문 따위에서 어떤 사건에 대한 기사를 큰 비중을 두어 다루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대선(大選)
승과(僧科)에 합격한 승려에게 주던 초급(初級) 법계(法階)를 말한다. / 인용: 寂菴記(이색)
대성(臺省)
대(臺)는 대원(臺院)ㆍ전원(殿院)ㆍ찰원(察院) 등의 어사대(御史臺)를 말하고, 성(省)은 중서(中書)ㆍ상서(尙書)ㆍ문하(門下)의 3성(省)을 말하는데, 이들 관직은 모두 청요직(淸要職)으로 일컬어진다.
대성(戴星)
별을 인다는 것은 곧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 것을 이른다. 무마기는 공자(孔子)의 제자인데, 『여씨춘추(呂氏春秋)』 「찰현(察賢)」 에 “복자천(宓子賤)은 단보재(單父宰)가 되어 거문고만 타고 당(堂)을 내려오지 않았으나 단보가 다스려졌고, 무마기는 별을 이고 출근하였다가 별을 이고 퇴근하였는데 단보가 또한 다스려졌다.” 한 데서 온 말이다.
대성(大聖)
대성인으로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대성원통(大聖圓通)
대성(大聖)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가리킨 말인데, 관세음보살은 이근원통(耳根圓通)을 얻었으므로, 세계의 음성을 다 안다고 한다. 양양(襄陽)의 낙산사(洛山寺)는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던 곳이다.
대성이왕(戴星而往)
‘별을 머리에 이고 간다’는 말로, ‘날이 새기 전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간다’는 뜻이다.
대성주무주(大聖住無住)
낙산사 바닷가의 굴(窟)은 관음대사가 머무르는 곳이라 하는데, 불법(佛法)에는 주(住)함이 없다 하였다. 그러므로 관음보살이 머물러도 머무르는 상(相)이 없다는 뜻이다.
대소(大蘇)
송(宋) 나라 때의 문장가이며 명필이기도 한 소식(蘇軾)을 말한다. 그의 부친 소순(蘇洵)은 노소(老蘇), 아우인 소철(蘇轍)은 소소(小蘇)라고 일컬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상대방이 장자(長子)이며 형(兄)임을 의미한다.
대소(大素)
푸름과 흰 것의 구별된 빛깔이 없는 원시(原始)의 소박(素朴)한 것이다.
대소공양(大小孔楊)
사람의 인품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예형(禰衡)이 뜻이 고상하여 남을 잘 허여하지 않았는데, 오직 공융(孔融)ㆍ양수(楊脩) 두 사람만 친하게 지내면서 항상, 나이 조금 많은 공융을 대아(大兒)라 칭하고 나이 적은 양수를 소아(小兒)라고 칭한 데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卷八十
대소산(大小山)
대산 소산(大山小山)의 준말로, 한(漢) 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군신(群臣)인 회남소산(淮南小山)의 무리가 지은 편장사부(篇章辭賦)를 말한다. 전하여 편장사부를 저작한 팔공(八公)의 무리를 가리킨다. 왕일(王逸) 초사장구(楚辭章句)에 “「초은사(招隱士)」는 회남소산왕이 지은 것이다. 옛날 회남왕 유안이 박아(博雅)하고 옛것을 좋아하여 천하의 현사를 초빙하자, 팔공(八公)의 무리들이 모두 그의 덕을 사모하여 각기 재지를 다해서 편장(篇章)과 사부(辭賦)를 저작하여 유(類)로써 서로 따랐기 때문에 혹은 소산이라 일컫고 혹은 대산이라 일컫기도 하였으니, 『시경(詩經)』의 대아(大雅)ㆍ소아(小雅)와 같은 것이다.” 하였다.
대소소(大小蘇)
대소(大蘇)와 소소(小蘇). 송(宋) 나라 때의 문장가인 소식(蘇軾)과 소철(蘇轍) 형제를 말한다.
대소초(大小招)
대산(大山) 소산(小山)의 「초은사(招隱士)」. 대산 소산은, 한(漢) 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천하의 준사(俊士)들을 불러들였을 적에 팔공(八公)의 무리를 비롯해서 모든 준사들이 회남왕의 덕을 사모하여 각각 재능을 다해서 편장(篇章)을 저술하기도 하고 사부(辭賦)를 짓기도 하여 유(類)끼리 서로 종유하였으므로, 혹은 소산이라 칭하고 혹은 대산이라 칭한 데서 온 말이고, 초은사는 『초사(楚辭)』의 편명으로 즉 이들 소산이 지은 글인데, 그 내용은 대체로 원통하게 죽은 굴원(屈原)을 불쌍하게 여겨 그를 은사(隱士)로 승화시킨 것이다.
대수(大隧)
지도(地道) 즉 수도(隧道)로, 춘추시대(春秋時代) 정(鄭) 나라 장공(莊公)이 그의 어미 무강(武姜)을 성영(城潁)에 유폐시켰다가 영고숙(潁考叔)의 권유로 대수(大隧)에 들어가 상봉했던 고사가 전한다. 『춘추좌전(春秋左傳)』 隱公 元年
대수(帶水)
‘임진강(臨津江)’의 일명이다.
대수(大樹)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장수 풍이(馮異)가 유수(劉秀)를 도와 전쟁을 치른 뒤 서로들 공을 자랑하는 제장(諸將)과는 달리 홀로 큰 나무 아래 물러가 있곤 하였으므로 군중(軍中)에서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卷十七 「풍이전(馮異傳)」
대수장군(大樹將軍)
후한(後漢) 때의 장군(將軍) 풍이(馮異)를 비유한 말이다. 풍이는 본디 겸손하여 제장(諸將)이 공(功)을 논할 때에는 항상 그는 큰 나무 밑으로 피해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 호칭한 데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卷十七
대승(戴勝)
여자의 수식(首飾)인데,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대인부(大人賦)」에 의하면 “서왕모를 보니 하얀 머리에 대승을 하고 굴속에서 살았다[覩西王母 皜然白首 戴勝而穴處兮]”하였다.
대시(大始)
대도(大道)의 근원으로서 천지가 개벽하여 만물이 생기는 처음인 즉 태초(太初)와 같은 뜻이다.
대시육물(對時育物)
『주역(周易)』 무망괘(无妄卦)의 상사(象辭)에 “선왕이 거짓 없는 성대한 일로 거짓 없는 때를 당해서 만물을 양육한다.[先王以茂對時育萬物]” 한 데서 온 말이다.
대식(對食)
궁인(宮人)들끼리 서로 부부(夫婦)가 되는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 「조후전(趙后傳)」 주에 “궁인(宮人)들이 서로 뜻이 맞는 상대끼리 부부가 되는 것을 대식이라 한다.” 하였다.
대식홍모(大食紅毛)
‘서쪽 나라’를 말한다.
대신(大信)
공자(孔子)가 여량(呂梁)의 폭포를 구경할 때에, 폭포가 3천 길이나 되고 물거품이 40리나 되는데 한 남자가 무사히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왔다. 공자가 “그대는 무슨 도술이 있는가?”하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충신(忠信)으로 들어갔다가 충신으로 나온다.” 하였다. 『열자(列子)』 「황제(黃帝)」
대씨(大氏)발해국(渤海國)의 왕인 대조영(大祚榮)을 말한다.
대아(大雅)『시경(詩經)』 육의(六義)의 하나로 훌륭한 정치를 노래한 정악(正樂). 시경 중에 있는 가장 전아(典雅)한 글인데, 왕도(王道)의 융성함을 노래한 시이다. 대개가 주공(周公)이 지은 것이다. 주(周) 나라가 천명을 받아 은(殷) 나라를 치고, 훌륭한 정사를 펴 덕화가 이루어졌다는 내용이다. 육의는 부(賦)ㆍ비(比)ㆍ흥(興)ㆍ풍(風)ㆍ아(雅)ㆍ송(頌)을 말한다.
대아소아(大兒小兒)
사람의 인품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예형(禰衡)이 공융(孔融)을 대아, 양수(楊脩)를 소아라고 칭한 데서 온 말이다.
대아형경소아영(大兒荊卿小兒贏)
대아(大兒)와 소아는 곧 인물의 우열을 말한 것이고, 형경은 즉 전국시대(戰國時代) 자객(刺客) 형가(荊軻)의 별호이고, 영(嬴)은 진왕(秦王)의 성(姓)이다. 형가는 본디 위(衛) 나라 사람으로 연(燕) 나라에 가 노닐면서 그곳의 개백정(狗屠)으로 축(筑)을 잘 치던 고점리(高漸離)와 친하여 날마다 연시(燕市)에서 그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서로 즐기다가, 뒤에 연 태자 단[燕太子丹]의 부탁으로 그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해 진왕을 죽이려고 떠날 적에는 또 형가가 슬피 노래하기를 “바람은 쌀쌀하고 역수는 차갑기도 해라, 장사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하고 떠났는데, 그는 끝내 진 나라에 가서 진왕을 죽이지 못하고 자신만 죽고 말았다.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대악(碓樂)
백결선생(百結先生)이 거문고를 타서 방아 찧는 소리를 만들었는데, 세상에서 전하여 이를 대악(碓樂)이라 하였다.
대악(大樂)
한(漢) 나라 이후 음악제도(音樂制度)의 명칭. 음악 중에서 아악(雅樂)만을 고른 것.
대악문(岱岳文)
「봉선서(封禪書)」를 말한다. 대악(岱岳)은 태산(泰山)의 별칭이다.
대악행(岱岳行)
대악(岱岳)으로 떠났다는 말로, 사람의 죽음을 비유한 말이다. 대악은 대종(岱宗) 즉 태산(泰山)을 말하는데, 고대에 태산은 천손(天孫)으로서 사람의 혼백을 주관하며 수명의 장단(長短)을 맡아본다는 전설이 있었다.
대안도(戴安道)
자(字)가 안도(安道)인 진(晉)나라 때의 처사(處士) 대규(戴逵)이고. 왕자유(王子猷)가 산음(山陰)에 살 때에 야설(夜雪)이 처음 개자 승주(乘舟)하여 대규를 찾아갔다가 그 문에 미쳐 되돌아섰다. 누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흥을 타고 왔다가 흥을 타고 가는데 반드시 대안도를 볼 게 뭐가 있느냐.”고 하였다.
대안탑(大雁塔)
중국 자은사(慈恩寺) 안에 있는 7층 탑 이름으로, 당(唐) 나라 때 과거 급제자들이 여기에 이름을 써 넣었다고 한다.
대야(大耶)
합천(陜川)의 고호이다.
대약(大藥)
선약(仙藥)인 단약(丹藥)의 별칭이다. 도가(道家)에서 사용하는 금단(金丹)이다. 당(唐) 나라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에게 준 시에 “아쉽게도 대약의 약재가 모자라서 숲속을 쓸듯이 찾아다녔지[苦乏大藥資 山林迹如掃].”라고 하였다. 『杜工部草堂詩箋一』 「증이백(贈李白)」
대양각(大揚搉)
만물이 서로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가운데 각자 실체를 지니고 뒤섞이지 않은 채 자신의 분한(分限)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에 “頡滑有實 古今不代而不可以虧 則可不謂有大揚搉乎”라고 하였다.
대어(隊魚)
사람이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인데, 곧 함께 모여 공부하던 시절을 말한다. 『한창려집(韓昌黎集)』 제6권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자라면서 함께 모여 즐겁게 놀았으니, 한 떼의 고기와 다를 바 없네.[少長聚嬉戲 不殊同隊魚]” 한 데서 온 말이다.
대언(代言)
후세의 승지(承旨)인데 임금의 말(言)을 출납(出納)하므로 후설(喉舌)의 벼슬이라 한다. 그것은 임금의 목구멍과 혀처럼 말(言)을 낸다는 뜻이며, 용(龍)은 임금을 가리킨다.
대언장어(大言壯語)
‘제 주제에 당치 아니한 말을 희떱게 지껄이다’라는 뜻이다.
대여(岱輿)
발해(渤海)의 동쪽에 있다는 다섯 선산(仙山) 가운데 한 산의 이름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대여원교(岱輿員嶠)
바다 가운데 있는 신선이 사는 산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대역집창(大易執鬯)
『주역(周易)』 진괘(震卦)에 “제사 지낼 때는 큰 천둥소리가 울려도 정신을 잃지 않는다.” 하였다.
대연(玳筵)
거북 껍데기로 장식한 자리로 궁중을 가리킨다.
대연(代燕)
중국의 지명. 즉 대주(代州)와 연주(燕州)를 가리킨다.
대연(大衍)
① 역법(易法)을 말한다. 당승(唐僧) 일행(一行)의 저술이다.
②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上에, 대연의 수는 50이다(大衍之數五十). 하였는데, 이는 설시(揲蓍)의 법을 말한 것이다. 『주역(周易)』으로 점칠 때 서죽(筮竹)의 수(數)가 원래 50개인 것
대연력(大衍曆)
당 현종 13년(722)에 고승(高僧)인 일행(一行)이 만든 역법(曆法). 그 명칭은 『주역(周易)』 『계사(繫辭)』 上에 “大衍之數五十…….”이라고 한 데서 취했다 한다. 『신당서(新唐書)』ㆍ『구당서(舊唐書)』 「역지(曆志)」
대연수(大衍數)
천지간의 만물을 상징하는 50의 숫자를 말한다. 1, 3, 5, 7, 9의 홀수를 합한 천수(天數) 25와, 2, 4, 6, 8, 10의 짝수를 합한 지수(地數) 30이 한데 모여 55를 이루는데, 여기에서 대수(大數) 50을 거론하여 만물을 연출해 내는 수로 삼았으므로, 이를 대연수라고 한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上
대연영춘(戴燕迎春)
옛날 입춘일(立春日)에는 모두 채단을 오려서 제비를 만들어 머리에 이고서 봄을 맞이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대연오십(大衍五十)
대연수란 천수(天數) 25와 지수(地數) 30을 합친 55에서 그 대수(大數) 50을 말한 것인데, 실제로 점을 칠 때에는 이 50에서 다시 하나를 빼고 49만을 사용하게 되어 있음을 이른 말이다. 『주역(周易)』 「계사(繫辭)」
대엽(大葉)
금조(琴操)의 이름으로, 만대엽(慢大葉)ㆍ중대엽(中大葉)ㆍ삭대엽(數大葉) 등이 있다.
대엽장(大葉章)
조선 시대에 궁중(宮中)에서 사용했던 악장(樂章)의 이른다.
대오금무어(臺烏噤無語)
한나라 때에 어사대의 앞 나무에 까마귀가 많이 모이므로 오대(烏臺)라 하였다. 송나라 때에 어느 시인이 바른 말 하지 않는 어사를 조롱하여, “까마귀가 입을 다물고 소리 없네.” 하였다.
대옥(大獄)
살인, 반역의 중대한 범죄 사건으로 여러 사람이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는 일을 말한다.
대옹(戴顒)
① 남조(南朝) 송(宋) 나라 사람. 자기 형 발(勃)과 함께 동려(桐廬)에 숨어살았는데, 대단한 명망이 있었다. 자기 형이 죽자 동려를 떠나 오하(吳下)에 와 놀았는데 그곳 선비들이 옹을 위해 살 집을 마련해 주었다. 『송서(宋書)』 卷九十三
② 대규(戴逵)의 아들.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벼슬하지 않고 음율(音律)에 능했으며 국가에서 누차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음. 『남사(南史)』 卷七十五
대완(大宛)
① 옛날 서역(西域) 36국(國) 중의 하나이다. 한(漢) 나라 장건(張騫)이 그곳의 한혈마(汗血馬)에 반한 나머지 천마(天馬)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한서(漢書)』 「장건전(張騫傳)」, 『사기(史記)』 「대원열전(大宛列傳)」
② 한 무제(漢武帝)가 이광리(李廣利)를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대완국(大完國)을 쳤다. 그것은 대완국에 준마(駿馬)가 많은 것을 탐낸 것이었다. 이겨서 준마는 많이 얻어 왔으나 군사가 많이 죽었고, 그 뒤에 대완이 여러 번 반란을 일으켰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대완국(大宛國)
중앙 아시아 페르가나 지방에 있었던 작은 나라의 이름이다. 『사기(史記)』 「대원열전(大宛列傳)」
대완마(大宛馬)
천리마를 말한다. 대완국(大宛國)에서 생산되는 천리마는 붉은 피 같은 땀을 흘린다고 한다. 『사기(史記)』 「대원열전(大宛列傳)」
대왕(大王)
진(晉) 나라 왕희지(王羲之) 및 그 아들 헌지(獻之)가 다 명필로서 천추에 독보하였으므로, 왕희지를 대왕(大王), 헌지를 소왕(小王)이라 칭한다.
대왕소래(大往小來)
태왕비래(泰王否來)로 해석된다. “좋은 운이 가고 불행이 왔다.”는 뜻이다.
대왕풍(大王風)
초(楚) 나라 송옥(宋玉)이 지은 풍부(風賦)에 바람을 대왕풍(雄風)과 서인풍(庶人風(雌風))으로 나누어 호화로운 왕이 사는 곳에 부는 바람은 웅풍(雄風)이요, 곤궁한 백성들의 집에 부는 바람은 자풍(雌風)이라 하여 풍자하였다.
대우(帶牛)
백성들이 농사에 힘씀을 비유한 말이다. 한(漢) 나라 때 공수(龔遂)가 발해태수(渤海太守)로 있으면서 백성들의 허리에 띠고 다니는 도검(刀劍)을 팔아 소를 사게 하고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소와 송아지를 허리에 띠고 다니는고. 봄여름에는 당연히 논밭으로 나가야 한다.” 한 데서 온 말이다.
대우(大禹)
하(夏) 나라의 시조. 9년의 홍수를 다스릴 때 손발에 군살이 배기고 얼굴에 검버섯이 피었다 한다.
대우탄금(對牛彈琴)
소를 앞에 놓고 가야금을 연주한다. 어리석은 자에게 도리를 설명하나 조금도 깨닫지 못함
대운(岱雲)
오난설의 기유도서(記遊圖序)의 대악관운 조(岱岳觀雲條)에 “癸丑五月 謁翁覃溪先生於太安使院 同遊東岳 秦松漢柏 黛色叅霄 由南天門登封禪臺 俯視雲影千峯散落平地”라 하였다.
대운(大韻)
유우씨의 악가로서, 그 뜻은 대체로 순(舜) 임금이 능히 선성(先聖)의 덕을 계승하였음을 칭송한 것이다
대원자항(大願慈航)
부처의 큰 소원은 자비로운 불법으로 우매한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 있다는 뜻이다.
대월질섬서(對月嫉蟾蜍)
사태 수습을 위해 진력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보신택(保身策)만을 강구하여 빠져나간 사람들이 미워진다는 말이다. 예(羿)의 처(妻)인 항아(姮娥)가 서왕모(西王母)에게서 얻은 불사약(不死藥)을 훔쳐 달로 도망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天文志上 注
대위승(帶圍賸)
‘사형 선고를 받은 아들 걱정에 어미의 허리띠가 한 자나 줄었다’는 말로, 대위멸척(帶圍滅尺)이라는 고사가 있다. 『열녀전(列女傳)』 母儀 魏芒慈母傳
대유(大酉)
대유(大酉)와 소유(小酉) 두 산에 동굴이 있어 그 동굴 안에다 고서(古書) 일천 권을 넣어 두었다한다. 『군국지(郡國志)』
대유령(大庾嶺)
중국의 오령(五嶺) 가운데 하나로, 한 무제(漢武帝) 때 유씨(庾氏) 성을 가진 장군이 이곳에다가 성을 쌓았으므로, 대유령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대여(大余)와 광동성(廣東省) 남웅(南雄)의 사이에 있으며, 영남과 영북의 교통 요충지이다. 이곳에는 매화가 많으므로 ‘매령(梅嶺)’이라고도 한다.
대유사(大酉舍)
규장각(奎章閣) 사무를 관장하는 부속건물의 하나.
대은(大隱)
대은(大隱)은 중은(中隱)이나 소은(小隱)과 달리 참으로 크게 깨달아 환경에 구애받음이 없이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는 은자(隱者)를 말한다. 대은은 저잣거리에 살면서도 은자의 정취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진(晉) 나라 왕강거(王康琚)의 시 반초은(反招隱)에 “작은 은자는 산림에 숨고, 큰 은자는 저자 속에 숨는다[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는 명구(名句)가 있다. 『문선(文選)』 卷20 / 인용: 은자의 세 가지 유형
小隱 | 中隱 | 大隱 |
山水 | 吏隱 | 盛市 |
대은불리성시중(大隱不離城市中)
작은 은자는 숲 속에 숨고 큰 은자는 조시(朝市)에 숨는다는 글이 있다.
대은은조시(大隱隱朝市)
옛날에 학문과 재주가 있으면서 세상에 나와서 벼슬길을 구하지 않는 사람을 은사(隱士)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대개 산림(山林) 깊숙한 곳에 살았었다. 그러나 그 중에 특별한 인물은 하급 관료로 자진하여 일생을 보내기도 하였으니, 그것을 조은(朝隱) 혹은 관은(官隱)이라고 하였다. 또 어떤 인물은 저자에 들어가서 조그만 장사로 일생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그것을 시은(市隱)이라 하였다. 그래서 큰 은사는 조정과 저자에 숨고[大隱隱朝市] 작은 은사는 산이나 수풀에 숨는다[小隱隱陵藪]는 말이 있었다. / 인용: 은자의 세 가지 유형
小隱 | 中隱 | 大隱 |
山水 | 吏隱 | 盛市 |
대음(大音)
『노자(老子)』 41장에 “지극히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大音希聲]” 한 데서 온 말이다.
대음(大陰)
아주 깊고 침침한 데를 말한다.
대의멸친(大義滅親)
국가와 국민 등 공공의 이익과 같은 중대한 의리를 위하여 가족, 친척 등 골육의 사사로운 정리(情理)를 희생한다. 공공(公共)을 제일로 여기는 자세를 말한다.
대의명분(大義名分)
인륜의 대의와 명분.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해야 할 도리와 본분. 인륜의 큰 의를 밝히고 맡은 바 분수를 지키어 정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 또는 인륜상의 중대한 의리(大義)와 도덕상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의 행위의 한계(名分)를 말한다.
대인호변(大人虎變)
대인이 잘 변혁(變革)한다는 뜻이다. 『주역(周易)』 혁(革) 괘 구오효(九五爻)의 효사에, “大人虎變 未占有孚”라는 것이 보인다.
대일(戴逸)
대규의 일유. 진(晉)의 대규(戴逵)가 자는 안도(安道)인데 학문도 해박하고 문장도 능한 데다 글씨와 그림도 일가를 이루었고 또 거문고를 잘 타서 당시 성명이 자자했다. 무릉왕 희(武陵王晞)가 그의 거문고 솜씨를 듣고 사람을 시켜 부르자, 그는 그 사자(使者)가 보는 앞에서 거문고를 부수고 끝까지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음. 『진서(晉書)』 「음일대규전(陰逸戴逵傳)」
대일통(大一統)
천하의 제후국 모두가 중국 황제에게 복속되어, 그 문물과 제도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원년 첫머리에 ‘원년 춘 왕정월(元年春王正月)’이라고 하였는데, 정월 앞에 왕(王) 자를 넣은 것에 대해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는 “대일통(大一統)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대자대비(大慈大悲)
크게 사랑하고 크게 슬퍼하는 마음. 넓고 커서 가이없는 사랑. 특히 관음보살이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대자석(代赭石)
대현(代縣)에서 생산되는 적철광(赤鐵鑛)의 일종이니, 농토에 퇴비를 주지 않아서 빨갛게 산화한 것을 말한다.
대작전가(大嚼塡街)
하사한 진수(珍需)를 보자 마을 사람들이 맨입을 씹으며 부러워한다는 뜻이다. 위(魏) 나라 조식(曹植)이 오질(吳質)에게 보낸 편지에 “도수장을 지나면서 크게 씹어보니[過屠門而大嚼] 비록 고기는 얻어먹지 못하여도 마음은 쾌하다[雖不得肉貴目快意]”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대장(代匠)
『노자(老子)』 74장에 “죽이는 일을 맡은 자가 죽이게 마련인데, 죽이는 일을 맡은 자를 대신해서 죽이는 것은 마치 대장을 대신해서 나무를 찍는 것과 같다. 만약 대장을 대신해서 나무를 찍게 된다면 그 손을 다치지 않을 자가 드물다[常有司殺者殺, 夫代司殺者殺, 是謂代大匠斲. 夫代大匠斲者, 希有不傷其手矣].” 했다.
대장(臺長)
사헌부(司憲府)의 대사헌(大司憲) 이하 지평(持平)까지와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臺司諫) 이하 정언(正言)까지의 모든 관원을 이르는 말이다.
대장거(大章車)
길의 이정(里程)을 알리는 수레이다. 『고금주(古今注)』 여복(輿服)에 “수레 위에 상ㆍ하 두 층을 만들고 층마다 목인(木人)을 두어서, 1리를 가면 하층에서 북을 치고 10리를 가면 상층에서 징을 울린다.” 했다.
『대장경(大藏經)』
석가모니가 돌아간 뒤에, 제자들이 그가 설법(說法)한 것을 경(經)ㆍ율(律)로 나누어 엮은 데다 또 경을 주석한 논(論)을 합쳐서 삼경(三經)이라 하는데, 이 가운데에는 모든 진리가 쌓이고 간직되어 있어 마치 큰 곳간(大藏)과 같다는 뜻에서 장경(藏經) 또는 대장경이라 하는 것이다.
대장군(大將軍)
옛날, 고급 무관의 명칭. 고위장성.
대재부중용(大材不中用)
두보(杜甫)의 「고백행(古柏行)」에 “지사나 은자는 원망하고 탄식지 말지어다, 예로부터 재목이 크면 쓰이기가 어렵다오.[志士幽人莫怨嗟 古來材大難爲用]”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5』 / 인용: 伐木行(성현)
대재소용(大材小用)
큰 재목(材木)이 작게 쓰이고 있다. 사람을 부리는 데 있어서 제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안됨을 말한다. 역설적으로 큰 재목은 큰 일에 쓰여야 한다는 말로도 쓰인다.
대저용약(代邸龍躍)
한 문제(漢文帝)가 고조(高祖)의 중자(中子)로서 일찍이 대왕(代王)에 봉해져 있다가, 여 태후(呂太后) 일족이 몰락한 뒤에 진평(陳平)ㆍ주발(周勃) 등 대신들의 곡진한 요청에 의해 대저(代邸)를 떠나 제위(帝位)에 올랐던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효문제기(孝文帝紀)」
대전(大全)
오경사서대전(五經四書大全)의 약칭이다. 명 성조(明成祖)는 영락(永樂) 12년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 호광(胡廣) 등에게 명하여 사서 오경을 다시 정리하여 대전을 편찬하게 하였으므로 영락대전(永樂大全)이라 하기도 한다.
대정(大政)
천하의 정치. 전국을 다스리는 일. 국정(國政). 정례(定例)로 한때에 모아서 행하는 정사(政事), 곧 도목정사(都目政事).
대정(大庭)
상고(上古) 시대 제왕(帝王)의 호이다. 혹은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의 별호라고도 한다. 태평세대라는 뜻으로 쓴다.
대정백황(大庭柏皇)
대정(大庭)과 백황(柏皇)은 옛날 제왕을 말한다. 『역(易)』 계사(繫辭) 소(疏)에 “女媧氏沒 次有大庭氏柏皇氏”라 하였다.
대제(待制)
벼슬 이름이다. 매일 교대로 대기(待機)하여 임금의 조칙(詔勅) 등을 초(草)하였다.
대제(大堤)
악부(樂府) 이름인 대제곡(大堤曲)을 말한다. 장간지(張柬之)의 대제곡 시에, “남국에 가인이 많다지만, 대제의 여인들만은 못하다네[南國多佳人 莫若大堤女]”하였다.
대제(大堤)
양양(襄陽)을 가리킨다. 원래는 중국의 호북(湖北) 양양현(襄陽縣)에 있는 큰 제방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악부(樂府)인 양양악(襄陽樂) 속에 대제곡(大堤曲)이 들어 있는 데에서 기인하여, 양양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대조(待詔)
황제의 조명(詔命)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한(漢) 나라 이후 관명(官名)이 되었다.
대조삼년욕일비(大鳥三年欲一飛)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 나라의 장왕이 왕이 된 지 3년이 되어도 아무런 정치도 하지 아니 하므로 그 신하가 왕에게, “어느 곳에 큰 새가 있는데 3년 동안을 날지 아니하니 어찌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3년을 날지 않았어도 날면 하늘에 닿도록 크게 날 것이니, 좀 기다려 보아라.” 하고, 다시 정치를 잘하여 나라를 훌륭하게 만들었다.
대조한전열(大阻漢傳閱)
대조는 남산의 별칭이며 한전(漢傳)은 『한서(漢書)』 「동방삭전(東方朔傳)」을 가리킨다. 동방삭전에 “남산은 천하의 크게 막힌 곳이다.[南山 天下之大阻也]” 하였는데, 이때문에 대조란 별명을 붙인 것이다.
대조회(大朝會)
모든 벼슬아치들이 다 모여서 임금을 뵙는 일.
대종(岱宗)
뭇 산의 어른이라는 뜻으로 태산(泰山)을 가리킨다.
대주(戴冑)
자(字)는 현윤(玄胤), 상주(相州) 안양(安陽) 사람이다. 성격이 정직하고 재간이 있었으며, 율령(律令)에 밝고 문장(文章)도 해박하였다. 정관(貞觀) 5년에 태종(太宗)이 낙양궁(洛陽宮)을 수복하려 하자, 상소를 올려 간언한 바 있다. 그가 죽고 난 뒤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를 증직하고 충(忠) 자 시호(諡號)를 내렸다. 『구당서(舊唐書)』 卷七十 「대주열전(戴胄列傳)」
대중(大中)
당 선종(唐宣宗)의 연호이다.
대진주(大秦珠)
대진(大秦)에서 생산되는 구슬. 위략(魏略)에 의하면 “대진국(大秦國)에서는 명월야광주(明月夜光珠)ㆍ진백주(眞白珠)가 난다.” 하였다.
대질(大耋)
해가 완전히 넘어가듯 인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노년기를 말한다. 『주역(周易)』 이괘(離卦) 구삼효(九三爻)에 “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이라 하였다. 80세 또는 70세의 노인을 가리킨다.
대질경리측(大耋驚離昃)
『주역(周易)』 이괘(離卦) 구삼효(九三爻)에 “서산에 해가 기우는 형상이니, 질장구 치고 노래부르지 않는다면 노년을 한탄함이니, 흉하도다.[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하였다.
대집법(大執法)
법령(法令)을 집행(執行)하는 관리의 우두머리로, 대사헌(大司憲)을 일컫는 말이다.
대착(代斲)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감당키 어려운 일을 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노자(老子)』 74장에 “거장(巨匠) 대신 칼을 휘두를 경우 손을 다치지 않는 때가 거의 없다.[夫代大匠斲 希有不傷其手矣]”라고 하였다.
대창제(大倉稊)태창의 좁쌀. 태창은 국가의 곡식 쌓은 창고인데 가장 넓고 큰 것이다.
대천(大千)
대천 세계(大千世界)로 광대무변한 세계를 말한다. 『유마경(維摩經)』
대천공(代天工)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에 “서관(庶官)을 폐하지 말라. 사람이 하늘의 일(天工)을 대신하는 것이니……”라는 대목에서 인용된 말이다.
대천공수천직(代天工修天職)
『서경(書經)』에, “모든 관직을 비우지 말라. 관직이란 것은 하늘의 할 일(天工)을 사람이 대신함이다.” 하였다.
대천세계(大千世界)
불교에서 쓰는 말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세계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무수히 많은 세계가 있다고 보는데, 일천 세계가 소천세계(小千世界)가 되고, 소천세계가 천 개 모여서 중천세계(中千世界)가 되고, 중천세계가 천 개 모여서 대천세계가 된다고 한다.
대첩(大捷)
크게 이긴다는 뜻으로, 대승(大勝)과 같은 말이다.
대초(帶草)
서대초(書帶草)의 준말로, 한(漢) 나라 정현(鄭玄)의 문인들이 책을 묶었다는 풀 이름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庭下已生書帶草 使君疑是鄭康成”이라는 구절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14 書軒
대초(大招)
① 『초사(楚辭)』의 편명. 전국시대(戰國時代) 초 나라의 경차(景差)가 지었다고 하는 부체(賦體)의 글로서, 지하에 떠도는 초 나라 충신 굴원(屈原)의 혼을 불러 달래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② 고려의 학자 이자현(李資玄)의 시호이다. 고려조 선종(宣宗) 때 대악서승(大樂署丞)을 사직하고 전국의 명산을 유람 중 춘천 청평산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선학(禪學) 연구로 여생을 보냈다.
대초장(大招章)
초(楚) 나라 굴원(屈原) 이 쫓겨난 지 9년만에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예측하고 스스로 자신의 혼(魂)을 부르는 뜻으로 지은 글 이름이다. 『초사(楚辭)』 卷十 「대초장(大招章)」
대춘(大椿)
장주(莊周)의 저서인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상고 시대에 대춘(大椿)이란 나무가 있어 8천 년을 봄으로 삼고, 8천 년을 가을로 삼았다[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장수를 비유한 말이다.
대치(大癡)
원 나라 화단의 사대가 중 한 사람인 황공망(黃公望) 황자구(黃子久)의 호인데 그림을 잘 그려 원 나라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대탄(大灘)
경기도 양근군(楊根郡) 남쪽 10리 지점의 여강(驪江) 하류로 용진강(龍津江)과 합쳐지는 곳이다.
대탄자(大灘子)
정백창의 호(號)이다.
대택(大澤)
옛날 못 이름이다. 안문산(雁門山) 북쪽에 있으며, 사방 천 리라 한다.
대패(大貝)
가장 큰 바다 조개인데, 무게가 무려 육십 관(六十貫) 정도나 나가고, 갈면 백옥(白玉) 같은 광택이 나므로 여러 가지 장식품으로 쓰인다.
대포(大布)
‘복지(服地)가 굵은 베옷’을 말한다.
대포(大庖)
천자(天子)의 포주(庖廚)를 이르는데, 전하여 그 포주에 있는 짐승의 고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대풍(大風)
큰 새의 일종으로 ‘대봉(大鳳)’, ‘대붕(大鵬)’이라고도 부르며, 날아다니며 큰 바람을 일으켜 가옥 등을 부숴버리는 흉악한 새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대풍가(大風歌)」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평정한 뒤, 고향인 패(沛)에 가서 친족과 친구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베푼 자리에서 술이 거나하여 친히 “대풍이 일어나매 구름이 날리었네. 위엄이 천하에 가해지매 고향에 돌아왔네. 어찌하면 맹사들을 얻어서 사방을 지킬꼬[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守歸故鄕 安得猛士兮守四方].”라고 노래한 것을 가리킨다. / 인용: 전주여행설명서
대풍시(大風詩)
한 고조가 천하를 통일하고 고향인 패군(沛郡)에 돌아가 크게 잔치를 베풀면서 읊은 시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큰바람이 일어남이여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나는 도다. 위엄이 천하를 뒤흔듦이여 고향에 돌아왔도다. 어떻게 해야 용맹한 사람을 얻어 사방을 지킬 수 있을까”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
대하(大河)
‘황하’의 이칭이다.
대하(大夏)
① 중국의 서북방에 있었다는 나라.
② 하(夏)의 우왕(禹王)이 만든 음악. 『좌전(左傳)』 양공(襄公) 29년에 “오(吳)의 공자(公子) 계찰(季札)이 대하의 춤을 보고 ‘아름답다, 근면하면서도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우(禹)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덕을 닦겠는가.’ 했다.” 하였다.
③ 대원(大宛)의 서남쪽에 있던 나라 이름이다.
대하국(大夏國)
일명 박트리아 왕국. 힌두쿠시 산맥의 계곡, 아무 강 상류의 좁은 지역에 있었던 나라.
대하삼일징(大河三日澄)
황하의 물이 천 년에 한 번씩 맑아지는데, 먼저 3일 동안 청수(淸水)가 되고 그 다음은 백수(白水), 적수(赤水), 현수(玄水), 황수(黃水)의 순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성군(聖君)이 출현하여 태평 시대가 전개되는 상서(祥瑞)로 꼽힌다. 『역건착도(易乾鑿度)』
대학(大壑)
발해(渤海)의 동쪽에 몇 억만리(億萬里)인지 모르는 곳에 대학(大壑)이 있는데, 밑이 없는 골짜기라 하였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대해일적(大海一滴)
큰 바다 중의 한 방울 물. 아주 큰 것 중에 아주 작은 것. 매우 작다는 뜻
대행(大行)
① 태행산. 그 남쪽에 초나라가 있다.
② 국상(國喪)이 난 뒤 아직 시호(諡號)를 올리기 전의 칭호이다. 이는 주공(周公)의 시법(諡法)에 ‘큰 행실(大行)이면 큰 이름(大名)을 받고, 작은 행실이면 작은 이름을 받는다.’라는 데서 나온 것으로 장차 큰 행실의 이름 즉 대명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일컫는 말이다.
대현(大賢)
파산(坡山) 즉 파주(坡州)가 고향인 우계(牛溪) 성혼(成渾)을 말한다.
대호(大瓠)
① 큰 박이라는 뜻으로, 신라(新羅)의 시조(始祖)인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말한다. 그가 자줏빛 알 속에서 나왔는데 그 알이 박과 같다 하여 성씨를 박(朴)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 시조 혁거세왕 조(新羅始祖赫居世王條)에 나온다.
②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말하기를, “위왕(魏王)이 나에게 큰 박 종자를 주기에 심었더니 박이 열렸는데, 닷 섬(五石)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여서 거기에 간장을 담아 쓰자니 용량에 비하여 견고하지가 못해 지탱을 못할 것이고, 쪼개서 바가지로 쓰자니 너무 휑하고 커서 마땅히 쓸 만한 곳이 없소…….” 하자, 장자(莊子)는, 물건은 어느 물건이든지 쓰는 사람이 쓰기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대화(大化)
① 불교의 진여(眞如)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로, 자연(自然)을 말한다. 법화현의(法華玄義)에 “설교의 강격(綱格)은 대화의 전제(筌蹄)이다.” 하였다.
② 유년기, 청년기, 노년기, 사망 등 인생의 네 단계 커다란 변화를 말하는 것으로, 천수(天壽)를 누렸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열자(列子)』 「천서(天瑞)」
대화루(大和樓)
신라(新羅) 때에 창건한 불사(佛寺)로서 울산(蔚山)에 있다.
대환(大還)
도가에서 먹는 단약(丹藥)의 이름이다.
대황(臺隍)
누대와 해자를 말한다.
대황(大荒)
중국에서 아주 먼 지역으로, 해와 달이 뜨는 곳을 말한다. 『산해경(山海經)』 대황동경(大荒東經)에, “동해의 밖, 대황의 안에 대언(大言)이란 산이 있는데, 해와 달이 나오는 곳이다.” 하였다.
대황지야(大皇之埜)
‘크게 황폐한 들판’을 말한다.
대효위(臺孝威)
후한(後漢) 때의 은사인 대퉁(臺佟)을 이른다. 효위는 그의 자이다. 대퉁은 무안산(武安山)에 굴을 파고 은거하면서 약 캐는 일을 업으로 삼았고, 뒤에 관직의 소명이 있었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다. 『후한서(後漢書)』 卷八十三
대후(戴侯)
장인을 가리킨다. 진(晉) 나라 반악(潘岳)의 회구부(懷舊賦) 첫머리에 “내 나이 열두살 때에 부친의 친구이신 동무 대후 양군(東武戴侯楊君)을 뵈었는데, 그때부터 나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그분의 따님과 혼인까지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대후는 양조(楊肇)의 시호(諡號)이고, 봉호(封號)가 동무백(東武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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