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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149. 산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149. 산

건방진방랑자 2020. 4. 19.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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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산간(山簡)

() 나라 산도(山濤)의 아들. 정남장군(征南將軍)으로 양양(襄陽)을 진수(鎭守)하면서 나가 놀기를 좋아하여, 흔히 경치 좋은 습가지(習家池)에 가서 술에 취해서는 백접리(白接䍦)를 거꾸로 쓰고 말을 거꾸로 타고 돌아오는 등 풍류 기화(奇話)를 많이 남겼다. 진서(晉書)卷四十三

 

산간벽지(山間僻地)

산골짜기 시골 오지라는 뜻으로, 아주 구석진 산골의 의미이다.

 

산간벽촌(山間僻村)

산골의 궁벽(窮僻)한 마을.

 

산거원(山巨源)

거원은 산도의 자()이다.

 

산경(山經)

산해경(山海經), 또는 산맥을 기록한 지리책을 범칭하기도 하다.

 

산경가보(山扃假步)

과거에 자신이 은거하던 산을 벼슬길에 나간 뒤에 다시 들르는 것을 말한다. 남제(南齊) 때 주옹(周顒)이 일찍이 북산(北山)에 은거했는데, 뒤에 조정의 부름을 받고 해염현령(海鹽縣令)이 되었다가 임기를 마치고 경사(京師)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북산을 들르려 하는 것을 보고, 공치규(孔稚圭)가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북산이문(北山移文)를 지었는데, 거기에 마음은 이미 대궐에 가 있으나, 혹 산문에 발걸음을 빌리기도 하리라[雖情投於魏闕 或假步於山扃].” 한 데서 온 말이다.

 

산계(山雞)

산계(山雞)가 제 아름다운 꼬리를 사랑하여, 물에 비치는 제 그림자를 본다고 한다.

 

산계야목(山鷄夜鶩)

산 꿩과 들오리라는 뜻으로, 성미가 사나와 제 마음대로만 하여 다잡을 수 없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산계희(山鷄戱)

산꿩이 자기의 아름다운 깃털을 아낀 나머지 자주 물가에 그 모습을 비춰 보면서 춤을 춘다는 전설이, 남조 송(南朝宋) 유경숙(劉敬叔)이원(異苑)3에 나옴.

 

산고수장(山高水長)

산은 높고 물은 길다는 뜻으로, 군자의 인품(人品)과 절조(節操)의 고결(高潔)함을 산의 높음과 물의 긺에 견주어 기리는 말이다. 범중엄(范仲淹)의 엄선생사당기(嚴先生祠堂記)선생의 유풍이여 산처럼 높고 강물처럼 길게 가리[先生之風 山高水長].”라 하였다.

 

산곡(山谷)

() 나라 때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의 호이다.

 

산곡운룡(山谷雲龍)

차가 매우 훌륭하다는 뜻이다. 운룡(雲龍)은 차 이름이고, 산곡은 송() 나라 황정견(黃庭堅)의 호이다. 황정견이, 학원(壑源)에서 나는 차를 보내준 데 대해 사례한 시에 상서 구름 용(雲龍)을 따라 창벽에 내렸는데, 원풍(元豐)부터 지금까지 아는 이가 없구료.” 한 데서 온 말이다.

 

산공(山公)

동진(東晉)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의 아들 산간(山簡)을 가리킨 말이다. 술을 몹시도 좋아하여 양양(襄陽)의 고양지(高陽池)에 늘상 나가 노닐면서 번번이 대취(大醉)하여 사람 등에 업혀 오곤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산공계사(山公啓事)

()의 산도(山濤)가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어 인물을 선발할 때 각각 품평사(品評辭)를 붙여 주달하였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것을 산공계사(山公啓事)라 했다. 진서(晉書)』 「산도전(山濤傳)

 

산공기마(山公騎馬)

산공은 진()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지냈던 산도(山濤)의 다섯째 아들인 간()을 가리킨다. 산간이 정남장군(征南將軍)이 되어 양양(襄陽)에 있을 때 형주(荊州) 호족(豪族) 습씨(習氏)의 정원에 자주 놀러갔는데, 하루종일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저물녘에 흰두건을 거꾸로 눌러쓰고 말등에 올라타 돌아왔다 한다. 흔히 술을 취하도록 마신다는 뜻으로 인용된다. 진서(晉書)卷四十三 산간전(山簡傳)

 

산공도습가정(山公到習家筳)

산공은 진()나라 때 하내(河內) 회현(懷縣) 사람인 산간(山簡)을 가리킨다. 그가 영가(永嘉) 3(309)에 정남장군(征南將軍)이 되어 양양(襄陽)을 수비하고 있을 당시 형주(荊州)의 호족(豪族) 습씨들이 소유한 경관 좋은 못가에서 자주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산공도접리(山公倒接籬)

() 산간(山簡)이다. 형주(荊州)에 있을 때에 습지(習池)에 가 놀다가 술이 취하여 돌아 올 때에는 백접리(白接籬)를 거꾸로 쓰고 돌아왔다.

 

산공법(山公法)

신중히 인물을 뽑는다는 뜻이다. ()의 산도(山濤)가 이부 상서(吏部尙書)가 되어 인물을 뽑을 때, 각각 제목을 만들어 주상(奏上)하였는데, 그때 사람들이 그 명부를 산공 계사(山公啓事)라 일컬었다. 진서(晉書)』 「산도전(山濤傳)

 

산공조감(山公藻鑑)

인재를 잘 알아서 등용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산공은 진() 나라 때의 재상 산도(山濤)를 말하고, 조감(藻鑑)은 사람을 잘 알아보는 안목을 말하는데, 산도는 특히 훌륭한 인재를 많이 등용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산공지(山公池)

()나라 하내(河內) 회현(懷縣) 사람이요, 산도(山濤)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기풍을 지녔다. 정남장군(征南將軍)이 되어 양양(襄陽)을 진수(鎭守)할 적에 습()씨의 집에 좋은 원지(園池)가 있어, 산간은 구경을 나가게 되면 늘 습씨 집 못(習家池)으로 가니, 세상 사람들이 산공의 못이라 칭하였다.

 

산구화옥(山丘華屋)

() 나라 조식(曹植)공후인(箜篌引)에 나오는 화려한 집에 사시더니 쓸쓸히 묘소에 묻히셨네.[生存華屋處 零落歸山丘]”라는 시구를 집약한 것이다.

 

산궁수진(山窮水盡)

산은 앞을 막고 물줄기는 끊어져 더 갈 길이 없다는 뜻으로, 어려움이 극도에 다다라 막다른 경우에 이름을 이르는 말이다.

 

산귀(山鬼)

산에 산다는 일종의 정령(精靈). 두보(杜甫)의 이거공안산관(移居公安山館)이란 시에 산귀(山鬼)는 등잔불을 불어 껐는데 부엌엔 밤이 이슥하도록 사람들 이야기 소리.” 하였다.

 

산기(散騎)

산기상시(散騎常侍)의 준말로, 임금의 좌우에서 과실을 바로잡아 보좌하는 직책, 즉 대간(臺諫)을 말한다.

 

산도(山都)

유인원(類人猿)의 일종이다.

 

산동거오몰(山動巨鰲沒)

봉래(蓬萊), 영주(瀛洲) 등 다섯 선산(仙山)이 조수에 밀려 정처없이 떠다니자, 천제(天帝)가 큰 자라 열다섯 마리로 하여금 움직이지 않게 떠받들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산동서지장상(山東西之將相)

예전부터 효산(崤山)과 화산(華山)의 서쪽에선 명장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동쪽 지역에선 명상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한서(漢書)69조충국전(趙充國傳), “진한(秦漢) 이래로 산동에선 재상이 나오고 산서에선 장수가 나왔다.” 하였다.

 

산략(刪畧)

깎아내어 간추림.

 

산뢰(山罍)

하후씨(夏后氏)의 술잔이라 하는데 산과 구름의 무늬가 있어 이렇게 이름하였다 한다.

 

산룡(山龍)

제왕의 입는 곤룡포(袞龍袍)의 무늬에 산()ㆍ용()ㆍ해()ㆍ달() 등을 수놓았는데, 공자를 문선왕(文宣王)으로 봉한 때문에 소상(塑像)에다 곤룡포를 입혔던 것이다.

 

산류(山榴)

두견화, 즉 진달래의 별칭이다.

 

산릉청초육조지(山陵靑草六朝地)

세대의 변천을 말한다. 건업(建業)에 도읍했던 육조(六朝; ()ㆍ동진(東晉)ㆍ송()ㆍ제()ㆍ양()ㆍ진())가 모두 폐허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산림처사(山林處士)

산 속에 살고 있는 선비라는 뜻으로, 산골에 살며 글이나 읽으며 지내는 초야(草野)에 사는 선비.

 

산명수려(山明水麗)

산은 맑고 물은 곱다는 뜻으로, 자연의 경치가 곱고 아름답다는 의미이다.

 

산명수자(山明水紫)

산수의 경치가 아름다움.

 

산명수청(山明水淸)

산수가 맑고 깨끗하여 경치가 좋음.

 

산목보천년(山木保天年)

산중에 있는 나무. 그 나무는 재목(材木)이 못되므로 천 년을 보전할 수가 있다는 말인데, 천 년은 곧 제 수명대로 사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장자(莊子)』 「산목(山木)

 

산목진병(山木晉兵)

적국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는 것을 말한다. 부견이 동진을 칠 적에 비수(淝水)의 싸움에서 패한 뒤 수춘성(壽春城)에 올라가 팔공산(八公山) 쪽을 바라보다가, 산 위의 나무들이 모두 사람 모습으로 보이자 두려워하는 기색을 나타냈다. 진서(晉書)114 苻堅載記下

 

산무욕성의(山霧欲成衣)

신녀(神女)가 무의(霧衣)를 입고 다닌다고 한다.

 

산문(山門)

절 또는 절의 바깥문을 말한다.

산의 어귀를 말한다. / 인용: 餓婦行(성간)

 

산보(山甫)

주 선왕(周宣王) 때의 어진 재상인데, 시경(詩經)대아(大雅) 증민(烝民)엄숙한 왕명을 중산보가 받들어 행하며 나라의 선악을 중산보가 밝히도다 이미 밝고 또 현철하여 그 몸을 보전하고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아서 천자를 섬기도다[肅肅王命 仲山甫將之 邦國若否 仲山甫明之 旣明且哲 以保其身 夙夜匪懈 以事一人].”하였다. 산보는 중산보(仲山甫)인데 주 선왕(周宣王)의 명을 받아 제() 나라에 성()을 쌓기 위해 나가면서 임금을 보필하지 못하여 불안해하자 윤길보(尹吉甫)속히 돌아오도록 선왕께 고하겠다는 시를 지어 위로하였다.

 

산불사토고능성기고(山不辭土故能成其高)

산은 사소한 흙덩이 하나라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능히 높음을 이루었듯이 도량(度量)을 널리 하여 모든 것을 포용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산불염고(山不厭高)

산은 높음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덕은 쌓을수록 좋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위무제(魏武帝) 단가행(短歌行)

 

산붕(山棚)

() 나라 때의 부족(部族) 이름으로 이들은 활을 잘 쏘고 싸움을 잘하여 이들에게 관성(官城) 호위하는 일을 맡게 했다고 하는데, 전하여 여기서는 변방의 유랑민들을 가리킨 말이다.

 

산붕(山棚)

산대(山臺), 즉 산디놀이를 벌이는 높다란 연극 무대를 말한다.

 

산산(汕汕)

고기잡이를 함,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양

 

산산([滻滻]

많음, 우는 모양

 

산산(山山)

() 자의 파자(破字). 밖으로 나감.

 

산상수훈(山上垂訓)

예수가 산꼭대기에서 행한 설교. 예수의 사랑의 윤리가 표현되어 있다.

 

산서(山西)

()나라 때에 산동(山東)에서는 정승이 많이 났고, 산서(山西)에서는 장수가 많이 났다.

 

산서곡음(山棲谷飮)

산에 깃들어 살며 계곡 물을 마신다는 뜻으로, 은자(隱者)의 생활을 비유하는 말이다. / 유의어: 산림처사(山林處士), 산림학사(山林學士).

 

산서철간(山西鐵幹)

산서는 원() 나라의 산서도(山西道)를 가리킨 것이요, 철간은 소나무의 경절(勁節)을 말한다.

 

산서철간교(山西鐵幹喬)

() 나라 때에 산동(山東)에서는 재상()이 나고, 산서(山西)에서는 장수(將帥)가 났다.

 

산서출장(山西出將)

산서는 효산(崤山)과 화산(華山)의 서쪽 지역으로, 예로부터 이곳에서는 장수가 많이 난다고 한다.

 

산서호기(山西豪氣)

옛날 연()ㆍ조()의 땅인 유주(幽州)ㆍ병주(幷州) 지역을 이르는데, 그곳 풍속은 기절(氣節)을 숭상하고 유협(游俠)을 일삼았으므로, 전하여 시풍(詩風)의 호협(豪俠)함을 비유한다.

 

산석여랑(山石女郞)

산석의 글귀란 바로 한유(韓愈)산석(山石)시를 말하고, 여랑(女郞)의 시란 곧 여인같이 온순한 풍의 시를 말한다. () 나라 때의 시인 원호문(元好文)의 논시절구(論詩絶句)정이 있는 작약은 봄 눈물을 머금었고 기력 없는 장미는 저녁 가지가 누웠다(이상은 송나라 진관(秦觀)의 시임) 하니, 이를 한퇴지(韓退之)산석시에 대조해 보면, 이것이 여랑의 시임을 비로소 알리라[有情芍藥含春淚 無力薔薇臥晩枝 拈出退之山石句 始知渠女郞詩].” 한 데서 온 말로, 즉 송() 나라 진관(秦觀)의 시를 한유의 산석시와 비유하면 한유의 시는 장부에 해당하고, 진관의 시는 여랑에 해당한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卷三

 

산선(散仙)

선계(仙界)에도 관부(官府)의 일이 있다고 봄에 따라 즉 직무가 없는 신선이란 뜻이다.

 

산설(霰雪)

싸라기눈

 

산수조(山水操)

전국시대(戰國時代) 진에 멸망당한 조왕(趙王)이 자기 고향이 그리워서 지은 노래. 회남자(淮南子)』 「진족훈(泰族訓)

 

산수주아현(山水奏牙絃)

백아가 태산에다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鍾子期)좋다, 높다란 태산 같도다.” 하더니, 백아가 다시 유수(流水)에다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는 또 좋다, 양양한 강하 같구나.”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산시(刪詩)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고대의 시가 3천여 편이었는데, 공자가 그 중복된 것을 버리고 예악(禮樂)에 시용(施用)될 만한 것을 취택하여 35편으로 산정(刪正)했다.” 하였다.

 

산양(山陽)

옛날에 친구와 함께 놀던 곳을 말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모여서 노닐었던 혜강(嵇康)의 우거(寓居), 중국 하내(河內)의 산양현(山陽縣)에 있었다. 혜강이 죽은 뒤에 상수(向秀)가 그곳을 지나다가 누군가가 부는 젓대 소리를 듣고는 혜강과 여안(呂安)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서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다고 한다. 진서(晉書)』 「향수전(向秀傳)

죽림칠현 가운데 완적(阮籍)과 완함(阮咸)이 들어 있었던 관계로, 간혹 숙질(叔姪)간의 즐거운 모임에 빗대기도 한다.

 

산양감구(山陽感舊)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산양은 하남(河南)에 있는 지명으로, () 나라의 혜강(嵇康), 상수(向秀) 등이 일찍이 이곳에 살면서 죽림(竹林)의 놀이를 하였다. 그 뒤에 상수가 산양 땅을 지나면서 누군가가 부는 젓대 소리를 듣고는 죽은 친구인 혜강과 여안(呂安)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서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다고 한다.

 

산양객(山陽客)

() 나라 향수(向秀)가 산양(山陽)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었는데, 피리() 소리를 듣고 죽은 친구 혜강(嵇康)ㆍ완적(阮籍)과 그곳에서 놀던 것을 생각하여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다.

 

산양관원(山陽灌園)

춘추시대(春秋時代)의 고사(高士)진중자(陳仲子)가 벼슬을 마다하고 아내와 함께 산양(山陽)으로 피해 가서 남의 집 전원(田園)을 가꿔 주며 살았다 한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산양구여(山陽舊侶)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막역하게 어울려 노닐던 친구들이라는 말이다. () 나라 혜강(嵇康)의 우거(寓居)인 하내(河內) 산양현(山陽縣)에 죽림칠현들이 모이곤 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삼국지(三國志)21 魏書 왕찬전(王粲傳)

 

산양기왕년(山陽記往年)

막역한 벗들끼리 고향 산골에서 즐겁게 노닐던 추억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 나라의 이른바 죽림칠현(竹林七賢)이 혜강(嵇康)의 우거(寓居)인 하내(河內) 산양현(山陽縣)의 죽림에서 노닌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삼국지(三國志)21 魏書 왕찬전(王粲傳)

 

산양려(山陽侶)

막역지우(莫逆之友)를 말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깊이 마음을 허여하며 격의 없이 지냈다는 말이다. 삼국 시대 위() 나라의 이른바 죽림칠현(竹林七賢)이 혜강(嵇康)의 우거(寓居)인 하내(河內) 산양현(山陽縣)의 죽림에서 노닌 고사에서 기인한 것이다. 삼국지(三國志)21 魏書 왕찬전(王粲傳)

 

산양루(山陽淚)

세상을 떠난 벗을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을 말한다. () 나라 상수(向秀)가 혜강(嵇康), 여안(呂安) 등과 산양(山陽)에서 친하게 지냈는데, 두 사람이 죽고 나서 상수가 다시 옛 벗의 집을 찾았을 때 이웃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던 고사가 있다. 진서(晉書)49 향수전(向秀傳)

 

산양린적(山陽鄰笛)

() 나라 때 상수(尙秀)가 친구 혜강(嵇康)이 죽은 뒤 산양에 있는 혜강의 옛 집을 지나다가 이웃 사람이 피리 부는 소리를 듣고 회구심(懷舊心)을 일으킨 고사에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卷四十九

 

산양적(山陽篴)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산양은 하남(河南)에 있는 지명이다. () 나라 때 상수(向秀)가 산양 땅을 지나면서 누군가가 부는 젓대 소리를 듣고는 죽은 친구 혜강(嵇康)과 여안(呂安)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서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다고 한다.

 

산양적성(山陽篴聲)

() 나라 상수(向秀)가 산양의 옛집을 지나다가 이웃 사람이 부는 피리 소리를 듣고 지금은 죽고 없는 혜강(嵇康)과 여안(呂安)을 생각하여 사구부(思舊賦)을 지어 읊었는데, 그 뒤로 산양의 피리 소리는 옛 친구를 생각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진서(晉書)卷四十九 향수열전(向秀列傳)

 

산양택(山陽宅)

세상을 떠난 친구의 고택(故宅)을 말한다. () 나라 상수(向秀)가 친구인 혜강(嵇康)과 여안(呂安)이 사마소(司馬昭)에게 피살된 뒤 산양(山陽)에 있는 그들의 옛집을 찾아갔을 때,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를 듣고는 감회에 젖어 사구부(思舊賦)를 지은 고사가 있다. 진서(晉書)49 향수전(向秀傳)

 

산옹(筭甕)

혼자 멋대로 생각을 치달리며 망상하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항아리 하나를 애지중지하면서 밤에도 끌어안고서 자곤 하였는데, 어느 날 저녁 항아리 하나를 밑천 삼아 부자가 되는 생각에 젖은 나머지 기쁨에 겨워 춤을 추다가 그 항아리를 밟아 깨뜨려 버렸다는 옹산(甕算)’의 고사가 전한다. 매간시화(梅磵詩話)卷中

 

산왕(山王)

높이 출세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산왕은 진() 나라 산도(山濤)와 왕융(王戎)의 병칭인데, 남조 송()의 안연지(顔延之)가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대한 시를 지으면서, 산도와 왕융은 벼슬로 현달(顯達)했다 하여 제외시키고는 오군영(五君詠)’을 지은 고사가 있다. 송서(宋書)73 안연지전(顔延之傳)

 

산왕(山王)

불경 용어로 산 중에 가장 높은 산. 보주는 마니(摩尼)의 별칭이다. 곧 가장 높은 산이 마니산으로 생겨났다는 것.

 

산왕락사(山王樂事)

산왕은 진()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산도(山濤)와 왕융(王戎)을 합칭한 말인데, 그들은 특히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겼으므로 즐거운 일이란 바로 이것을 이른 말이다.

 

산왕종괴오군편(山王終愧五君篇)

산왕은 진() 나라의 산도(山濤)와 왕융(王戎)의 병칭인데, 남조 송()의 안연지(顔延之)가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대해서 시를 지을 적에, 산도와 왕융은 현달하여 귀인(貴人)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 두 사람은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사람에 대해서만 시를 지어 오군영(五君詠)’이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송서(宋書)73 안연지전(顔延之傳)

 

산용(山龍)

왕이 입는 옷에 수놓인 산무늬와 용무늬로, 곧 곤룡포를 말한다.

 

산용대축빈(山容黛蹙顰)

산의 능선이 마치 미녀가 검푸른 눈썹을 찡그리는 듯하다는 말이다. 홍루몽(紅樓夢) 30()가보옥(賈寶玉)이 어떤 여자 아이를 보니, 눈썹을 찡그리는 것이 봄의 산과 같고(眉蹙春山)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가을 물을 연상시켰는데[眼顰秋水],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임대옥(林黛玉)과 흡사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산유(山楰)

산에 있는 광나무. 상록관목(常綠灌木)으로 과실이 약재로 쓰이는데, 시경(詩經)소아(小雅) 남산유대(南山有臺), “남산에는 구()가 있고, 북산에는 유()가 있네. 즐거울사 우리 님 오래오래 사시리로세……[南山有枸, 北山有楰. 樂只君子, 遐不黃耈].” 하였다.

 

산유화(山有花)

민요 메나리의 다른 이른다.

 

산융(山戎)

북방의 오랑캐를 가리킨다. 만주(滿洲)의 야인(野人)을 산융(山戎)이라 불렀다.

 

산음방선인(山陰榜船人)

() 나라의 왕자유 휘지(王子猷徽之)가 산음(山陰)에 있다가 밤에 폭설이 내리자 홀연히 친구인 대안도 규(戴安道逵)의 생각이 나서 밤새 배를 저어 섬()에 있는 그 집 문앞까지 가서는 그냥 돌아온 고사가 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산음설(山陰雪)

산음은 산의 북쪽이란 뜻으로, () 나라 때 왕희지(王羲之)가 살던 곳이다. 왕희지가 산음에 살고 있었는데, 밤에 눈이 내렸다. 그러자 왕희지는 갑자기 친구인 대규(戴逵)가 보고 싶어서 밤중에 작은 배를 타고 그를 찾아갔는데, 문 앞에 도착해서는 만나 보지 않고 되돌아왔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왕희지는 내가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왔는데, 하필 대규를 만나 볼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다. 후대에는 친구를 방문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산음설야주(山陰雪夜舟)

() 나라 때 산음에 살던 왕휘지(王徽之)가 어느 날 밤에 눈이 막 개고 달빛이 청랑하자 갑자기 섬계(剡溪)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나서, 그날 밤에 바로 조그마한 배를 타고 밤새도록 가서 대규의 집 문 앞에 당도했다가 들어가지는 않고 다시 돌아왔는데, 누가 그 까닭을 물으니 왕휘지가 대답하기를, “내가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온 것인데, 어찌 꼭 대규를 만날 필요가 있겠는가.”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卷八十

 

산음설월(山陰雪月)

() 나라 왕자유(王子猷)가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하루 밤에는 설월(雪月)의 경치를 보다가 홀연히 섬계(剡溪)에 있는 친구 대안도(戴安道)가 그리워서 배를 타고 밤새도록 가서 안도(安道)의 문 앞에 이르러서는 만나보지 않고 돌아왔다. 누가 물으니 그는 답하기를, “()을 타고 왔다가 흥이 다 되면 돌아가는 것이지 하필 안도를 볼 것이랴.” 하였다.

 

산음승흥객(山陰乘興客)

() 나라 왕휘지(王徽之)가 산음(山陰) 땅에서 눈 경치에 취한 나머지, 친구인 대규(戴逵)를 찾아볼 흥이 발동하여 밤중에 배를 몰고 그의 집 문 앞까지 갔다 와서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다[乘興而行 興盡而返].”고 한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산음아(山陰鵝)

왕희지가 거위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때 산음(山陰)의 한 도사(道士)가 좋은 거위를 기르고 있었다. 희지가 가서 보고 마음에 들어 그 거위를 팔 것을 권하자 그 도사가 말하기를, “나에게 도덕경(道德經)를 써주면 이 거위들을 주겠노라.” 하여, 희지는 그가 요구한 대로 다 써주고 그 거위를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진서(晉書)』 「왕희지전(王羲之傳)

 

산음이현편(山陰理縣編)

남제(南齊) 때 부염(傅琰)이 산음령(山陰令)으로 있으면서 매우 선정을 베풀어 그 고을에서 신명(神明)으로 일컬어졌는데, 그의 부자(父子)가 똑같이 산음현을 잘 다스렸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르기를, “부씨(傅氏) 집안에는 고을 다스리는 문서(理縣譜)가 있어 자손이 대대로 전한다.” 한 데서 온 말이다. 남제서(南齊書)卷五十三

 

산음진적(山陰陳迹)

왕희지(王羲之)33일에 회계(會稽) 산음(山陰)에 있는 난정(蘭亭)에서 명사(名士) 40명과 놀면서 각각 시()를 짓고 희지가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난정집서(蘭亭集序), “한 번 구부리고 한 번 우러러 보는 사이에 벌써 묵은 자취가 된다[俯仰之間 己成陳迹].”는 구절이 있다.

 

산음회도흥(山陰回棹興)

() 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한밤중에 눈이 내리자 친구인 대규(戴逵)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에 즉시 밤을 새워 배를 타고 대규가 사는 집 문 앞까지 갔는데,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왔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나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온 것이다.” 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산음흥(山陰興)

() 나라 왕휘지(王徽之 왕희지(王羲之)의 아들)가 산음(山陰) 땅에 살던 때, 구름이 걷히고 사방이 눈으로 덮여 달빛이 청랑한 밤 혼자 술을 마시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던 도중 갑자기 대규(戴逵)가 생각나 작은 배를 타고 밤새 섬() 땅에 있는 대규의 집에 갔다가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고 도로 돌아왔는데, 그 까닭을 물으니 흥이 나서 왔다가 흥이 다해 갈 뿐[乘興而來 興盡而反].”이라고 했다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서원여의 모란부(牡丹賦)꽃 중에도 붉은 빛은 모란으로 다 뭉쳤네.[英之甚紅 鍾於牡丹].”라는 구절이 있다.

 

산인(散人)

세상에서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쓸모없는 나무라는 뜻의 산목(散木)에 대한 글이 있다.

 

산자견(山字肩)

사람의 양쪽 어깨가 목과 합하여 산() 자 모양이 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산자관원(山字官員)

정석견(鄭錫堅)이 홍문관(弘文館) 응교(應敎) 시절에 다른 관아(官衙)의 구사(丘史)를 빌어쓰지 않고 어디를 갈 때면 납패(鑞牌)를 단 조졸(皂卒) 한 명만을 전도(前導)로 하고 뒤에는 한 노자(奴子)만을 딸게 하여 그 행차 모양이 마치(())자 같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일컫던 말이다.

 

산자수명(山紫水明)

산은 붉고 물은 맑음. 산수의 경치가 아름다움을 말함

 

산장가(酸漿歌)

산장은 꽈리풀을 말한 것 같다.

 

산재녕외부근구(散材寧畏斧斤求)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 이런 내용이 있다. 혜자(惠子)가 말하기를, “내가 큰 나무가 있는데, ()라 부른다. 그 뿌리는 옹종(擁腫)하여 먹줄에 맞지 않고, 작은 가지는 굽어져 규구(規矩)에 맞지 않으므로, 길 가에 서 있어도 대목이 돌아보지도 아니한다.” 하니,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자네가 그런 큰 나무가 있어 쓸 데 없는 것이 걱정되거든 그 나무를 무하유향(無何有鄕) 광막(廣漠)한 들에 심어 놓고 그 옆에서 방황(彷徨)하여 무위(無爲)하고, 그 밑에서 소요(逍遙)하여 누웠으면 그 나무는 도끼와 자귀(斧斤)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산재저력(散材樗櫟)

세상에서 버림받아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 다행히 목숨을 보전했다는 말이다. 상수리나무()와 가죽나무()장자(莊子)인간세(人間世)소요유(逍遙遊)에서 대표적인 산목(散木)으로 등장하는 나무 이름이다.

 

산저귀저(山底貴杵)

산밑에서 절구공이가 귀하다는 뜻으로, 물건이 그 생산지(生産地)에서 도리어 더 귀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산전수전(山戰水戰)

산과 물에서 싸웠다는 뜻으로, 세상의 온갖 고생과 시련을 다 겪어 경험이 많음을 이르는 말이다.

 

산주(山廚)

산 속의 푸줏간을 이르는 말이다.

 

산죽렬(山竹裂)

두견새 울음을 말한다. 두견새가 울면 그 소리가 너무도 처절하여 산죽(山竹)이 갈라진다 한다. 두보(杜甫)의 현도단가기원일인(玄都壇歌寄元逸人)두견새가 밤에 우니 산죽이 갈라진다.” 하였다.

 

산중목천장(山中木千章)

부친이 물려주신 산골의 가산(家産)이라는 말이다. 한말(漢末)의 청렴한 관리였던 이형(李衡)이 남몰래 감귤 일천 그루를 심어 놓고는 임종할 적에 자기 아들에게 일러 주었던 고사가 전한다. 삼국지(三國志)48 吳書 孫休傳

 

산중백운(山中白雲)

산 속의 흰 구름이라는 뜻으로, 산중의 백운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지만 선물로 당신에게 줄 수 없다는 의미에서 방문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산중편편가저작(山中片片可抵鵲)

() 나라 재상(宰相) 장영(張影), 산의 까치가 날아(飛翔) 원석(圓石)이 된 것을 얻어 깨어 보니, “충효후인(忠孝侯印)”이라고 새겨진 금인(金印)을 얻었다 한다

 

산지사방(散之四方)

산산이 흩어지다.

 

산진동해금(散盡東海金)

()나라 소광(疏廣)이 태자(太子)의 스승으로 있다가 하루아침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동해(東海)로 돌아가니, 임금과 태자가 황금을 많이 주었는데, 그는 돌아가서 금으로 매일 잔치를 차려 친척 친구들과 즐기며 다 써 버렸다.

 

산진습령지하처(山榛隰苓知何處)

시경(詩經)패풍(邶風) 간혜(簡兮), “산에는 개암이 있고, 진펄에는 감초가 있다네.” 한 구절이 있는데, 이 시는 위() 나라가 어진 자들을 등용하지 않은 것을 풍자한 시이다.

 

산처(山妻)

은사(隱士)의 처라는 뜻으로, 보통 자신의 아내를 가리키는 겸사(謙辭)로 쓰인다.

 

산천우공외(山川禹貢外)

중국 땅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공(禹貢)서경(書經)의 편명인데 우()의 치산치수(治山治水) 실상을 적어놓은 내용이다.

 

산천의구(山川依舊)

자연은 옛 모양대로 변함이 없음.

 

산천초목(山川草木)

산과 물과 풀과 나무의 뜻으로, 자연을 일컫는 말이다.

 

산첨(蒜尖)

뾰족하게 돋은 마늘의 새순.

 

산택능장질(山澤能藏疾)

좌전(左傳)선공(宣公) 15년 조()川澤納汚 山藪藏疾이라 하였다.

 

산택일구선(山澤一癯仙)

① 『사기(史記)』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 나오는 말로, 속진(俗塵)을 벗어난 청수(淸瘦)한 은사(隱士)를 말한다.

매화를 가리키는 시어(詩語)로도 쓰인다.

 

산토월(山吐月)

두보(杜甫)의 시에, “사경에 산은 달을 토하고(四更山吐月)”란 명구(名句)가 있다.

 

산패(滻浿)

원시의 (浿)’는 원래 ()’이다. 파수와 산수는 중국 장안(長安)의 동남쪽을 북으로 흐르다가 위수로 들어가는데, 우리 나라 서울 부근의 지방을 말한다.

 

산하대려(山河帶礪)

() 고조(高祖)가 공신(功臣)들에게 나라를 봉해 주면서 맹세한 글에, “황하가 띠와 같이, 태산이 숫돌과 같이 되도록 나라가 길이 있게 하고 이것이 후손들에게 미치리라.” 하였다. 사기(史記)』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

 

산하보위국(山河寶魏國)

사기(史記)65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무후(武侯)가 서하(西河)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중간에서 오기(吳起)를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아름답구나, 산하의 튼튼함이여. 이는 우리 위() 나라의 보배이다.’ 하니, 오기가 대답하기를, ‘나라가 튼튼한 것은 덕()에 있지 험함에 있지 않습니다. 임금께서 만약 덕을 닦지 않는다면 이 배 안에 탄 사람이 모두 적국 사람일 것입니다.’ 하였다.” 하였다.

 

산하서(山河誓)

공신(功臣)에게 작()을 봉하는 맹세. 한 고조(漢高祖)가 공신에게 땅을 봉해 줄 때에 그 맹세하는 글에 황하(黃河)가 띠()가 되기까지, 태산이 숫돌이 되기까지 나라가 길이 보전하고 자손에게까지 미치라.”는 말이 있다. 한서(漢書)』 「공신표서(功臣表序)

 

산하여대(山河礪帶)

공신(功臣)을 봉()해 주는 맹세의 말인데, “황하의 물이 띠()와 같이 줄고, 태산이 숫돌같이 작게 되도록 영원히 서로 나라를 보전하여 후손에게까지 미치게 하자.”는 것이다.

 

산하표리(山河表裏)

외산 내하(外山內河)의 뜻으로, 즉 큰 산과 큰 강으로 둘러싸인 험한 요새지를 가리킨다. 좌전(左傳)희공(僖公) 28년에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밖과 안으로 산과 강물이 막고 있으니 반드시 해 될 것은 없다[若其不捷 表裏山河 必無害也].”라는 말이 나온다.

 

산해지(山海誌)

산해경. 작자(作者)를 알 수 없는 지리서(地理書)로서 특히 인류(人類)를 비롯하여 산천(山川), 초목(草木), 조수(鳥獸) 등에 관한 기괴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산해진미(山海珍味)

산과 바다의 진귀한 맛이라는 뜻으로, 산과 바다의 산물을 다 갖추어 썩 잘 차린 진귀한 음식의 의미이다. / 유의어: 산진해미(山珍海味), 수육진미(水陸珍味).

 

산행병마사(山行兵馬使)

고려 명종 때에 공주(公州) 명학소(鳴鶴所)의 망이(亡伊)ㆍ망소이(亡所伊)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는 스스로 일컬은 이름이다.

 

산호(山胡)

새 이름이다.

 

산호격(珊瑚擊)

()나라 왕개(王愷)와 석숭(石崇)이 서로 호부(豪富)를 자랑하였는데, 왕개는 진무제(晉武帝)의 외숙이었므로 무제가 왕개에게 높이가 이척(二尺)이나 되는 산호수(珊瑚樹)를 주므로 석숭에게 보이자, 석숭이 쇠방망이로 때려부수니 왕개가 노하였다. 이에 석숭이, “내가 지금 자네에게 갚아 주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자기 집에 있는 산호수를 모두 가져오게 하니 석 자 넉 자 되는 것이 6, 7개나 되고, 왕개의 것과 같은 것은 매우 많았다.

 

산호격처유교심(珊瑚擊處有驕心)

() 나라 때 왕개(王愷)와 석숭(石崇)은 부호(富豪)로 유명했었는데, 한 번은 왕개가 2()이 넘는 산호수(珊瑚樹)을 하사받고는 자랑삼아 보이자, 석숭은 하찮게 여기고 부숴버렸다. 왕개는 자기의 보물을 질투한 것이라고 하자, 석숭은 자기 집의 산호수를 모두 가져오게 하였는데, 그 중에는 34척이 넘는 것만도 67개나 있었다 한다. 진서(晉書)』 「석숭전(石崇傳)

 

산호망수(珊瑚網收)

불림(拂箖)이라는 나라에서 뱃사람들이 바다 밑바닥으로 철망을 던져 산호를 뿌리째 캐내는데, 산호를 제때에 캐지 않으면 썩어 버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당서(新唐書)』 「서역전(西域傳)

 

산호옥수(珊瑚玉樹)

전설상의 신령한 나무다. 산호와 옥수로 고귀한 두 사람을 비유하여 줄기 가지가 서로 얽히듯 짝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 인용: 李少婦詞(최경창)

 

산호전상자금용(珊瑚殿上紫金容)

법주사에 산호전이 있고, 거기 금신(金身) 장륙상(丈六像)이 있다.

 

산화녀(散花女)

법회중(法會中)에 한 천녀(天女)가 하늘꽃(天花)을 뿌렸는데, 여러 보살(菩薩)에 닿은 꽃은 다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사리불(舍利弗)ㆍ목건련(目犍連) 10대 제자에게 닿은 꽃은 떨어지지 않자 천녀가 이는 습기(習氣)가 다하지 못한 때문에 꽃이 몸에 붙어 있다.” 한 데서 인용된 말이다. 유마경(維摩經)

 

산화루(散花樓)

서촉에 있는 누각이다. 이백(李白)의 상황서순남경가(上皇西巡南京歌)비단 빨던 맑은 강이 만리를 흐르는데 구름 돛단 큰 배가 양주로 내려가네 북쪽 서울엔 비록 상림원을 자랑하지만 남경에는 도리어 산화루가 있다오[濯錦淸江萬里流 雲帆龍舸下揚州 北地雖誇上林苑 南京還有散花樓].”하였다. 이태백집(李太白集)卷七

 

산화어이(散花於爾)

유마힐(肹摩經) 관중생품(觀衆生品)유마힐(肹摩詰)이 설법하고 있을 때 한 천녀(天女)가 현신(現身)하여 그 방에서 설법을 듣는 여러 보살 제자의 머리 위에 천화(天花)를 뿌려 주었다.” 하였다.

 

산화천(散花天)

산화천녀(散花天女)의 준말로, 유마경(維摩經)에 의하면, 한 천녀(天女)가 천화(天花)를 여러 보살(菩薩)에게 뿌리자, 꽃이 몸에서 모두 떨어졌는데, 대제자(大弟子)에 이르러서는 꽃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므로, 천녀가 말하기를 결습(結習)이 미진한 때문에 꽃이 몸에 붙는 것이다.”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승려를 의미한다.

 

산화천상녀(散花天上女)

유마경(維摩經)에 의하면, 회중(會中)에 한 천녀(天女)가 있어 천화(天花)를 여러 보살들에게 흩뿌리매 꽃이 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는데, 대제자(大弟子)에 이르러서는 꽃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자, 천녀가 말하기를 번뇌의 해탈이 미진하기 때문에 꽃이 몸에 달라붙는 것이다.”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산회검극(山回劒戟)

유자후가 귀양가 있으면서 지은 시에, “바닷가 뾰족한 산이 칼날 같아 가을이 오면 곳곳에 시름하는 창자를 베누나.” 한 글귀가 있다.

 

산회용호(山回龍虎)

풍수설(風水說), 왼쪽은 청룡(靑龍)이요, 오른쪽은 백호(白虎)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경복궁(景福宮)의 동편 언덕은 청룡이요, 인왕산(仁王山)은 백호가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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