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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151. 삼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151. 삼

건방진방랑자 2020. 4. 19.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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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삼가(三加)

관례 때의 가관(加冠)의 예로서, 먼저 치포관(緇布冠)을 쓰고 다음에 피변(皮弁)을 가하고 또 그 다음에 작변(爵弁)을 가하므로 이른 말이다. 예기(禮記)』 「관의(冠義)

 

삼가(三家)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세 대부(大夫)를 말하는데, 모두 노 환공(魯桓公)의 자손이므로 삼환(三桓)이라고도 한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삼가례(三加禮)

관례(冠禮)때 세 번 관을 갈아 씌우는 의식. 초가(初加)ㆍ재가(再加)ㆍ삼가(三加)로 나뉘는데 초가에는 단령(團領)ㆍ도아(絛兒)차림에 갓을 씌우고, 재가에는 단령 각대(角帶)차림에 사모(紗帽)를 씌우고, 삼가에는 공복(公服)차림에 복두(幞頭))를 쓴다.

 

삼가시(三家詩)

한대(漢代)시경(詩經)을 전승해 온 삼가(三家), 곧 원고생(轅固生)이 해설한 제시(齊詩), 신배(申培)가 해설한 노시(魯詩), 한영(韓嬰)이 해설한 한시(韓詩)를 삼가시(三家詩)라 한다.

 

삼각(三恪)

왕자(王者)가 선왕(先王)을 공경하는 뜻이다. 주 무왕(周武王)이 은()을 멸한 뒤에 우()ㆍ하()ㆍ은()의 자손을 봉()하여 삼각(三恪)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삼각(三閣)

진 후주(陳後主)가 세운 임춘각(臨春閣)ㆍ결기각(結綺閣)ㆍ망선각(望仙閣)을 말한다.

 

삼간두옥(三間斗屋)

세 칸의 썩 작은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작은 오막살이집을 의미한다.

 

삼간상(三竿上)

해가 세 길쯤 올라온 오전 8시 경을 말한다.

 

삼간초가(三間草家)

세 간이 되는 초가. 썩 작은 집.

 

삼강(三綱)

명명덕(明明德)ㆍ신민(新民)ㆍ지어지선(止於至善)3강령을 말한다. 대학(大學)1

 

삼강(三剛)

불교의 도를 깨치려면 반드시 닦아야 하는 세 가지 법으로, 계학(戒學)ㆍ정학(定學)ㆍ혜학(慧學)을 말한다. / 유의어: 삼학(三學).

 

삼강(三江)

압록강(鴨綠江)의 별칭으로, 압록강이 의주 부근에서 세 갈래로 흐르므로 이렇게 부른다.

 

삼강(三綱)

유교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강령(綱領). 부위자강(父爲子綱),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부강(夫爲婦綱). 이 삼강(三綱)은 아버지와 자식,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가 마땅히 지켜할 도리이다.

 

삼강오륜(三綱五倫)

세 가지 벼리가 되는 것과 다섯 가지 인륜. 유교 도덕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 유교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강령(綱領)과 다섯 가지 인륜. 삼강은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과 오륜은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삼강칠택(三江七澤)

삼강(三江)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고 칠택(七澤)은 초() 나라의 일곱 연못을 말하는데, 보통 악양(岳陽)의 삼강(三江)과 운몽택(雲夢澤)을 가리킨다. 이백(李白)의 시에 洞庭蕭湘意渺綿 三江七澤情洄沿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태백집(李太白集)7 當塗趙炎少府粉圖山水歌

 

삼거(三擧)

세 마디의 곡() 소리. 포숙아(鮑叔牙)관중(管仲)을 얻고 나서 세 마디의 곡을 했으니, 관중이 금방 죽게 된 순간에 가까스로 얻어진 것을 슬퍼한 때문이다. 관자(管子)』 「소광(小匡)

 

삼거(三車)

당 나라 자은대사(慈恩大師)불경(佛經)를 많이 읽어서, 출입할 때에 반드시 책을 세 수레(三車)에 싣고 다녔으므로 삼거법사(三車法師)라 한다.

 

삼거(三車)

우차(牛車)ㆍ양차(羊車)ㆍ녹차(鹿車)3(三車)인데, 불교에서 그것을 대승(大乘)ㆍ성문승(聲聞乘)ㆍ연각승(緣覺乘)에 비유한다.

 

삼걸(三傑)

한 고조(漢高祖)가 말하기를, “관중(關中)에서 군사와 군량(軍糧)을 징발하여 전장으로 보내어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은 소하(蕭何), 장막 가운데서 계책을 내어 천리 밖의 승리를 결정하는 것은 장량(張良)이요, 싸움하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것은 한신(韓信)이니, 이 세상 사람은 다 인걸(人傑)이다.” 하였다.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

 

삼경(三京)

남경(南京)인 서울, 중경(中京)인 개성(開城), 서경(西京)인 평양(平壤)을 말한다.

 

삼경(三逕)

도연명(陶淵明)귀거래사(歸去來辭), “삼경(三逕)은 황무(荒蕪)하여졌으나, 솔과 국화는 오히려 있다.” 하였으며, () 나라 은사(隱士) 장허(蔣詡)가 대밭 속에 세 갈래 길을 내었으므로, 은사(隱士)의 집에 삼경(三逕)이란 말을 쓴다.

뜨락의 세 갈래 소로(小路). () 나라 때 은사(隱士) 장후(蔣詡)가 뜨락에다 송()ㆍ국()ㆍ죽()을 심어 놓고 구중(求仲)ㆍ양중(羊仲)과 교유하며 고요하게 노닐었던 고사이다. 한서(漢書)卷七十二 장후전(蔣詡傳)

 

삼경(三鏡)

삼감(三鑑)으로 동()으로 거울을 삼고, 예를 거울로 삼으며, 사람으로 거울을 삼는다는 것인데, 이는 인심(人心)을 바로잡아서 자신의 표준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당서(唐書)위징전(魏徵傳)위징이 죽자 제()가 조회에 참석한 후 탄식하면서, 동으로 거울을 삼으니 의관(衣冠)을 바룰 수 있고, 예로 거울을 삼으니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으로 거울을 삼으니 득실을 알 수 있다. 나는 항시 이 세 가지를 소중히 여기고 안으로 나의 허물을 경계했는데 이제 위징을 잃었으니 한 개의 거울이 없어졌구나.” 하였다.

 

삼경(三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삼경오로(三更五老)

조정에서 벼슬하다가 나이가 들어 물러난 자들을 천자가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주 나라의 제도인데 한 나라 때에도 보존되었다. ()은 세 사람, 노는 다섯 사람이다.

 

삼경장후(三徑蔣詡)

한 나라 때의 은사 장후(蔣詡)는 향리에 은둔하여 지내면서 집 마당에 가느다란 세 길(三徑)을 내고서 오직 친구인 구중(求仲)ㆍ양중(羊仲) 두 사람과 종유하였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卷七十二

 

삼경취황(三逕就荒)

청빈한 은사의 생활을 말한다. 도연명(陶淵明)귀거래사(歸去來辭)세 오솔길은 묵어가는데 솔 국화는 그대로 있네(三逕就荒 松菊猶存)” 하였다.

 

삼경황송국(三徑荒松菊)

귀거래사(歸去來辭)세 길이 비록 거칠었으나, 솔과 국화는 아직 있네(三徑雖荒 松菊猶存).”라는 말이 보인다.

 

삼계(三界)

범부(凡夫)가 나고 죽고 가고 오는 세계를 말하는데, 즉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이다.

천계(天界)ㆍ지계(地界)ㆍ인계(人界) 또는 과거ㆍ현재ㆍ미래.

 

삼계(三階)

천문의 세 계단으로, 즉 상계(上階)는 천제의 자리이고, 중계(中階)는 제후(諸侯)와 공경 대부(公卿大夫)의 자리이고, 하계(下階)는 사서인(士庶人)의 자리라 한다.

하늘의 삼계로서, 즉 천자(天子)의 상계(上階), 제후ㆍ공경ㆍ대부의 중계(中階), 사서인(士庶人)의 하계(下階)를 말하는데, 삼계가 안정되면 음양(陰陽)이 조화되어 천하태평의 시대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한서(漢書)』 「동방삭전(東方朔傳)泰階六符 注

 

삼계(三季)

()ㆍ은()ㆍ주() 삼대(三代)의 말세(末世)를 이른다.

 

삼계좌(三階坐)

3층 계단이 있는 곳으로 군왕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관자(管子)』 「군신(君臣)삼계 위에 앉아 남쪽을 향하여 요구를 받아들인다.” 하였다.

 

삼고(三顧)

세 번 돌아봄(三顧), 삼국 때 유비(劉備)제갈량(諸葛亮)을 남양(南陽) 초려(草廬)로 세 번 찾아간 일이다.

 

삼고(三高)

오강(吳江)에 삼고사(三高祠)가 있는데, 삼고(三高)는 세 사람의 고사(高士),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범예(范蠡), () 나라 장한(張翰), 당 나라 육귀몽(陸龜蒙)을 말한다.

 

삼고(三孤)

주 나라의 관제(官制). 왕을 보좌하여 군사 정치의 대권을 쥔 최고의 관원으로 소사(少師)ㆍ소부(少傅)ㆍ소보(少保)를 말한다.

 

삼고초려(三顧草廬)

풀로 엮은 오두막을 세 번이나 찾아감. 인재를 얻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음 또는 임금의 두터운 사랑을 입음.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에서 유래된 말로 유현덕(劉玄德)이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얻기 위해 세 번 찾아가 겨우 만났다는 데서 유래된 말

 

삼공(三空)

흉년이 들어 제사를 궐하고, 서당에 학도들이 오지 않고, 뜰에 개가 없음을 비유하여, ‘가난을 상징하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96 진번전(陳蕃傳)/ 인용: 豪民論(허균)

 

삼공(三公)

주 나라의 관제(官制). 왕을 보좌하여 군사 정치의 대권을 쥔 최고의 관원으로 태사(太師)ㆍ태부(太傅)ㆍ태보(太保)를 말한다.

 

삼공삼고(三公三孤)

삼정승과 육경(六卿) 등 고관대작들을 말한다.

 

삼공오악(三公五嶽)

예기(禮記), “천자가 명산과 대천에 제사하면서 삼공에 비기었다.” 하였다.

 

삼과절필(三過折筆)

세 번씩 붓이 지나가야 글씨에 힘이 있다는 뜻이다.

 

삼관(三關)

눈ㆍ귀ㆍ입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 「주술훈(主術訓)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을 삼가지 않으면 신기(神氣)가 흩어지는 것이니, 삼관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삼관(三觀)

불가어로서 공관(空觀)ㆍ가관(假觀)ㆍ중관(中觀)을 말한다. 법화경(法華經)삼관 조(三觀條)空觀破見思惑 證一切智 成般若德 假觀 破塵沙惑 證道種智 成解脫德 中觀 破無明惑 證一切種智 成法身德이라 하였다.

관법(觀法)을 닦을 때의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여기서는 당()나라 징관(澄觀)이 말한 정관(靜觀)ㆍ환관(幻觀)ㆍ적관(寂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인용: 寂菴記(이색)

 

삼관(三官)

() 나라 때의 간신(諫臣)이었던 당굉(唐宏)ㆍ갈옹(葛雍)ㆍ주실(周實)이라 한다.

 

삼광(三光)

천상의 일()ㆍ월()ㆍ성()이다.

 

삼광요자미(三光耀紫微)

삼광은 해ㆍ달ㆍ별이고 자미는 천제좌(天帝座)인 자미성(紫微星)으로 대궐을 말한다. 조정에서 중요한 인물.

 

삼괴(三槐)

삼공(三公)을 뜻하는 말로, 주대(周代)에 조회(朝會)할 적에 궁정의 세 그루 회화나무 쪽으로 삼공이 얼굴을 향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주례(周禮)秋官

() 나라 왕우(王祐)는 음덕(陰德)이 많았는데, 손수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는 내 자손 중에 반드시 삼공(三公)이 될 자가 있을 것이다.” 하고는 스스로 삼괴당(三槐堂)이라 호했었다. 그 후 과연 그의 아들 왕단(王旦)이 정승에 올랐다. 송사(宋史)』 「왕단전(王旦傳)

 

삼괴구극(三槐九棘)

세 그루 홰나무와 아홉 그루 멧대추나무라는 뜻인데, ()나라 때 조정의 뜰에 홰나무 세 그루와 멧대추나무 아홉 그루를 심고 공경 대부와 삼공(三公)들이 그 아래에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중국 조정의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을 가리킨다. 주례(周禮)秋官 朝士

 

삼괴상(三槐祥)

재상이 나올 조짐을 말한다. 삼괴는 세 그루의 괴나무인데, () 나라 때 외조(外朝)에 이 나무 세 그루를 심어놓고 삼공(三公)이 이 나무를 향해 앉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삼괴수(三槐樹)

세 그루의 홰나무. () 나라 때 조정에 이 나무를 세 그루 심어서 삼공(三公)의 좌석의 표지로 삼았으므로, 삼괴수는 삼공의 뜻으로 쓰인다.

 

삼구(三九)

부추로만 만든 세 가지 반찬. 남제(南齊)의 유고지(庾杲之)가 자기 먹을 것을 자기가 가꾸면서 청빈하게 지냈는데 그의 식탁에는 언제나 부추로 만든 세 종류의 반찬만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일러 삼구(三九)라고 하였고, ()는 구()와 음이 같기 때문에 한 말이다. 남제서(南齊書)』 「유고지전(庾杲之傳)

 

삼구(三韮)

세 가지의 부추나물[韭葉]로서, 남제(南齊) 때에 유고지(庾杲之)가 매우 청빈(淸貧)하여 부추 김치, 삶은 부추, 생 부추 세 가지 만을 먹었던 데서 온 말이다.

 

삼구(三驅)

주역(周易), “삼구(三驅)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사냥할 때에 뒤쪽 왼쪽 오른쪽 삼면만으로 짐승을 몰이한다는 것이다.

 

삼구유랑(三九庾郞)

유랑은 남제(南齊) 때의 유고지(庾杲之)를 말하고, 삼구는 유고지가 매우 청빈(淸貧)하여 부추나물 세 가지(부추김치ㆍ삶은 부추ㆍ생부추)만 먹고 살았던 것을 이루는데, 부추 구()자의 음이 구() 자와 같으므로 어떤 이가 이를 전용하여 장난삼아 말하기를, “누가 유랑더러 가난하다고 하는가. 어채(魚菜)를 항상 27()씩이나 먹는다오.” 한 데서 온 말이다. 27은 곧 3×9=27을 의미한 것이다. 남제서(南齊書)卷三十四

 

삼구채(三九菜)

부추로만 만든 세 가지 나물을 말한 것으로, 자세한 것은 앞의 주 417)에 나타나 있다.

 

삼국정립(三國鼎立)

삼국에 세 발 솥처럼 나누고 있다.

 

삼군(三軍)

여말 선초(麗末鮮初)의 중()ㆍ좌()ㆍ우()의 세 군영. 이를 통제하는 기관은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였다.

천자의 군대는 육군(六軍), 제후의 군대는 삼군(三軍)이다. 좌전(左傳)襄公 14

 

삼군가탈수(三軍可奪帥)

아무리 많은 군졸의 호위도 화합하지 못한 부하들이라면 그 대장도 탈취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반대로 필부의 의지는 절대로 빼앗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삼군공취투하음(三軍共醉投河飮)

장수가 사졸(士卒)들과 고락을 같이함을 이른 말로, 옛날에 훌륭한 장수가 용병(用兵)할 적에, 어떤 이가 호리병 막걸리를 선사하자 이를 혼자 먹을 수 없다 하여 이것을 강물에 쏟게 한 다음, 수많은 사졸들과 함께 강물로 들어가 마셨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삼략(三略)』 「상략(上略)

 

삼군자(三君子)

호헌(胡憲)ㆍ유면지(劉勉之)ㆍ유자휘(劉子翬)를 이른다. 주자연보(朱子年譜), “當韋齋疾革時 手自爲書 以家事屬少傅劉公子羽 而訣於籍溪胡憲原仲 白水劉勉之致中 少傅之弟屛山劉子翬彦冲 且顧謂先生曰 此三人者 吾友也 學有淵源 吾所敬畏 吾卽死 汝往事之라고 보인다.

 

삼굴(三窟)

토끼가 위험한 상황을 감안하여 미리 세 개의 굴을 뚫어 놓는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준말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퇴로(退路)를 미리 확보해 놓는 것을 말한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4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파놓고서 죽음을 면할 방도를 강구한다[狡兎有三窟 僅得免其死耳].”라고 하였다.

 

삼권(三權)

()ㆍ부()ㆍ친().

 

삼귀(三歸)

()의 이름이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ㆍ법()ㆍ승()ㆍ삼보(三寶)에 귀의함을 말한다.

 

삼귀의(三歸依)

불법에 삼귀의는 불()에 귀의(歸依)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에 귀의한다는 것이다.

 

삼귀정(三龜亭)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풍산현(豐山縣) 서쪽 6리 지점에 있는 정자로, 거북이 엎드린 모양의 암석 세 개가 있었으므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삼극(三極)

동극ㆍ남극ㆍ서극을 말한다.

삼재(三才). , ()ㆍ지()ㆍ인()을 말한다.

 

삼극최가(三戟崔家)

()은 고관들의 집 정문 앞에 배치된 위장(衛仗)을 말한다. () 나라 최림(崔琳)은 최신경(崔神慶)의 아들로 정치에 밝았다. 개원(開元) 중에 태자소부(太子少傅)가 되었는데, 그와 그의 아우 태자첨사 규()와 광록경(光祿卿) () 삼형제가 모두 고관이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삼극최가(三戟崔家)라고 했다 한다. 당서(唐書)』 「최신경전(崔神慶傳)

 

삼급(三級)

용문삼급(龍門三級)의 준말로, 황하(黃河)의 상류에 있는 세 단계로 된 용문 폭포를 이르는데, 강해(江海)에서 모여든 수천 마리의 대어(大魚)들 중에 이곳을 통과하여 올라간 고기는 용()이 된다고 하므로, 전하여 과거(科擧)에 급제한 것을 여기에 비유한다.

 

삼급비등(三級飛騰)

황하(黃河)의 상류에 있는 용문(龍門)의 여울에는 폭포가 3단계로 나누어졌는데, 대어(大魚)가 그곳을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즉 과거(科擧)에 급제하는 것을 비유한다.

 

삼기(三紀)

36. 1()12년이다.

 

삼기(參旗)

성좌(星座)의 이름으로, 높은 곳을 의미한다. 삼성(參星).

 

삼년과구극(三年過駒隙)

3년이 빠르기가 달리는 망아지가 문틈을 넘어 가는 것처럼 빠르다는 말이다.

 

삼년불비(三年不飛)

3년 동안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훗날 큰 일을 행하려고 얼마동안 자중하여 소극적인 태도를 취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나라의 장왕(莊王)이 왕위에 오른 지 3년이 지나도 영을 내리지 않았으므로 신하 오거(伍擧)가 간한 말이다.

 

삼년수축실(三年羞築室)

자공(子貢)이 공자가 죽자 심상 삼년(心喪三年)을 마치고 다시 무덤 곁에 작은 집을 짓고 삼 년 동안 시묘(侍墓)살이를 하였다한다. 맹자(孟子)』 「등문공(藤文公)

 

삼년애(三年艾)

큰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양약(良藥)을 이른다. 7년 동안 앓아 온 큰 병에 뜸질을 하기 위해 3년 묵은 약쑥을 구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七年之病求三年之艾也]. 맹자(孟子)』 「이루(離婁)

 

삼년작저엽(三年作楮葉)

옛날 송() 나라 사람이 임금을 위해 3년 동안 공을 들인 끝에 옥()으로 닥나무 잎사귀를 감쪽같이 만들었는데, 이에 대해 가령 천지(天地)가 만물을 낼 때 3년 걸려 잎사귀 하나를 만든다면 잎사귀 있는 물건이 많지 않을 것이다.[使天地之生物, 三年而成一葉, 則物之有葉者寡矣]”고 비평한 글이 있다. 열자(列子)』 「설부(說符)

 

삼년적(三年笛)

3년 동안 시끄럽게 들려오는 호적(胡笛) 소리. 두보(杜甫)세병마행(洗兵馬行)시에 “3년 동안 호적 소리에 관산의 달 비치누나[三年笛裏關山月].” 하여 당시의 안녹산(安祿山)의 난리를 말하였다.

 

삼노(三老)

장년 삼로(長年三老)의 준말로 뱃사공을 말하는데, 혹은 뱃사공을 장년, 노젓는 사람을 삼로라 하기도 한다.

 

삼농(三農)

, 여름, 가을 세 철에 철에 맞게 농사짓는 것을 말한다.

산농(山農), 야농(野農), 택농(澤農)으로, 농사짓는 것을 가리킨다.

 

삼다(三多)

많이 보고 많이 짓고 많이 생각함을 말한다.

 

삼다학(三多學)

많이 읽고 많이 짓고 많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옥해(玉海)

 

삼달덕(三達德)

()ㆍ인()ㆍ용()을 말하는데, 중용(中庸)20지ㆍ인ㆍ용 세 가지는 천하의 달덕이다.” 하였다.

 

삼달존(三達尊)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존경하는 세 가지 존귀한 것으로, 즉 작위(爵位)가 높고, 나이가 높고, ()이 높음을 말한다[天下有達尊三爵一, 齒一, 德一].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삼당(三黨)

낙당(洛黨)ㆍ촉당(蜀黨)ㆍ삭당(朔黨).

 

삼당(三唐)

당대(唐代)를 시학(詩學) 연구상의 분류로, ()ㆍ성()ㆍ중()ㆍ만()의 사기(四期)로 나누어 사당(四唐)이라 하는데, 삼당(三唐)은 초ㆍ성ㆍ중만을 말한 것이다.

당시(唐詩)에 조예가 깊었던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이달(李達)을 말하며, 이들을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 한다.

 

삼대(三代)

()ㆍ상()ㆍ주() 시대를 말한 것이다.

 

삼대의원(三代醫員)

삼대 동안 의술을 가업(家業)으로 하여 솜씨가 좋은 의원을 말한다.

 

삼대편(三大篇)

두보(杜甫)의 소작으로 북정(北征)ㆍ봉선현영회(奉先縣詠懷)ㆍ장유(壯遊)를 말한 것이다.

 

삼도(三島)

일본을 지칭한 말이다.

삼신산(三神山)으로,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말한다. 이 산들은 발해(渤海) 바다 가운데 있는데, 신선들이 살고 불사약(不死藥)이 있으며, 새와 짐승이 모두 희고 궁궐이 황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선가(仙家)의 십주삼도(十洲三島)를 말한다.

 

삼도(三都)

세 도읍. 서울인 한성(漢城)과 개성(開城)ㆍ평양(平壤)을 이르는바, 삼경(三京)이라고도 칭한다.

 

삼도(三度)

세 차례.

 

삼도(三塗)

중국에서 험준하기로 유명한 산 이름이다. 좌전(左傳)昭公 4

혹도(惑道)ㆍ업도(業道)ㆍ고도(苦道). 혹도는 우주의 진리와 사물의 진상을 알지 못하는 데서 일어나는 망심(妄心), 업도는 망심으로 일어나는 몸ㆍ입ㆍ뜻으로 짓는 업, 고도는 3계ㆍ6도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삼도(三刀)

() 나라 왕준(王濬)이 대들보 위에 칼 세 개(三刀)가 걸리고 얼마 뒤에 다시 칼 하나가 더 걸리는 꿈을 꾸고 나서 매우 불쾌하게 여기자, 주부(主簿) 이의(李毅)가 축하하며 말하기를, “칼 세 개는 주()를 뜻하고 거기에 칼 하나가 덧붙여졌으니() 익주 자사(益州刺史)로 승진해서 나갈 것이 분명하다.” 하였는데, 과연 그 뒤에 그 말대로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왕준전(王濬傳)

 

삼도몽(三刀夢)

지방관이 됨을 비유한 말이다. () 나라 때 왕준(王濬)이 어느날 밤에 칼 세 자루를 들보에 걸어놓고 조금 뒤에 한 자루를 더 걸어놓는 꿈을 꾸고 나서 이를 불길하게 생각하였는데, 주부(主簿) 이의(李毅)가 말하기를 삼도(三刀)는 바로 고을주[] 자인데, 하나를 더했으니 익주(益州)가 된다. 그러니 익주 태수가 될 길몽(吉夢)이다.”고 하였던바, 과연 그의 말대로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왕준전(王濬傳)

 

삼도부(三都賦)

() 나라 때의 문장가인 좌사(左思)10년 걸려서 지었다는 촉도부(蜀都賦), 오도부(吳都賦), 위도부(魏都賦)를 가리키는데,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다가 황보밀이 서문을 써 주자 천하에 명문장으로 회자(膾炙)되어 사람마다 이것을 베낌으로 인하여 낙양(洛陽)의 종이 값이 폭등했다고 한다. 진서(晉書)』 「좌사전(左思傳)

 

삼도원(三桃苑)

반악(潘岳)은 진() 나라 사람으로 자()는 안인(安仁). 일찍이 하양(河陽)의 원이 되어 곳곳에 복숭아를 심었다. 삼도(三桃)는 후도(候桃)ㆍ앵도(櫻桃)ㆍ호도(胡桃)를 말하는데 그의 한거부(閑居賦)삼도는 앵도와 호도의 다른 종류를 표했다.” 하였다. 진서(晉書)』 「심악전(潘岳傳)

 

삼독(三毒)

불가어. 하나는 탐독(貪毒)으로 탐람(貪婪)의 마음이고, 하나는 진독(瞋毒)으로 분에(憤恚)의 마음이고, 하나는 치독(癡毒)으로 우매(愚昧)의 마음이다. 대승의장(大乘義章)此三毒統攝三界 一切煩惱 能害衆生 有如毒蛇毒龍 故名爲毒이라 하였다.

 

삼독(三獨)

어사대부(御史大夫)ㆍ상서령(尙書令)ㆍ사예교위(司隸校尉)는 조회(朝會) 때에 모두 전석(專席)으로 앉기 때문에 삼독좌라 한다.

 

삼독좌(三獨坐)

후한(後漢) 선병(宣秉)이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는데, 광무제(光武帝)가 특히 명하여 어사중승과 사예교위(司隸校尉)와 상서령(尙書令)이 회동(會同)하되 각기 전석(專席)으로 앉으라 하니, 경사(京師)에서 이르되 삼독좌(三獨坐)”라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선병전(宣秉傳)

 

삼동족용(三冬足用)

() 나라 동방삭(東方朔)의 글에, “나이 열둘에 글을 배워, 삼동(三冬) 공부에 문사(文史)를 족히 쓸 만하다.”는 말이 있다.

 

삼두(三毒)

속어(俗語)에 이른바 밥벌레ㆍ잠벌레ㆍ글벌레를 말한다.

 

삼두(三斗)

서 말은 많은 양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삼두담(三斗膽)

담이 커서 겁이 없다는 말이다. 두보(杜甫)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집주(集注)당사습유(唐史拾遺)를 살펴보니, 여양왕 진(汝陽王璡)이 어느 날 임금 앞에서 취하여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므로, 임금이 사람을 시켜 겨드랑을 부축하여 계단을 내려가게 하니, 진이 사죄하기를 ()이 삼두(三斗)쯤 되는 장담(壯膽)을 지니고서 이런 지경에 이를 줄은 몰랐습니다.’ 했다.” 하였다.

 

삼라만상(森羅萬象)

온갖 만물과 온갖 현상이라는 뜻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모든 물건과 현상을 의미한다.

 

삼락(三樂)

군자의 세 가지 낙. 곧 부모가 모두 생존하고 형제들이 무고함이 한 가지 낙이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 없는 것이 두 가지 낙이요, 천하의 영재(英才)들을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가지 낙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공자가 태산(太山)에 노닐 적에 영계기(榮啓期)가 녹피(鹿皮)의 갖옷을 입고 새끼() 띠를 허리에 매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것을 보았다. 공자가 묻기를 선생의 낙()은 무엇입니까?” 하자, 영계기가 대답하기를 나의 낙은 퍽 많다오. 하늘이 만물을 냈으나 사람이 가장 귀한데,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한 가지 낙이요,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은데 남자로 태어났으니 두 가지 낙이요, 사람이 태어나서 강보(襁褓)도 벗어나지 못하고 죽는 자가 많은데 나는 나이가 90세이니 세 가지 낙입니다.” 하였다. 열자(列子)』 「천서(天瑞)

 

삼랑(三郞)

당 현종(唐玄宗)의 소명(小名). 현종황제는 그 집안에서 같은 항렬 중에 셋째가 되므로 이삼낭(李三郞)이라고 자칭하였다.

 

삼랑갈고(三郞羯鼓)

삼랑은 당 현종(唐玄宗)의 소명(小名)인데, 현종이 일찍이 내정(內庭)의 복사꽃ㆍ살구꽃이 머금은 것을 보고는 갈고(羯鼓)를 가져다가 스스로 춘호광(春好光)이란 곡조를 지어 한 곡을 치고 나서 보니, 복사꽃ㆍ살구꽃이 모두 이미 피었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삼량섬(三良殲)

삼량은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훌륭한 신하로서 목공(穆公)의 순장(殉葬)에 희생되었던 자거씨(子車氏)의 엄식(奄息)ㆍ중항(仲行)ㆍ겸호(鍼虎)3형제. 시경(詩經)진풍(秦風) 황조(黃鳥)나는 꾀꼬리여, 뽕나무에 그치누나. 누가 목공을 따라 순장(殉葬)하는가 하면 자거씨의 중항이로다. 이 중항이여 백 명을 당해낼 만하네. 구덩이에 임하여 몹시도 두려워하누나. 저 하늘이여 이 훌륭한 사람 죽이네. 만일 저들을 대신 구원할 수 있다면 사람마다 자기 몸을 백 번이라도 바칠 걸세[交交黃鳥 止于桑 誰從穆公 子車仲行 維此仲行 百夫之防 臨其穴 惴惴其慄 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 하였다.

 

삼려경수(三閭敬嬃)

너무 강직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의 삼려 대부(三閭大夫) 굴원(屈原)이 쓴 이소경(離騷經)안에, 굴원의 누이(女嬃)가 굴원을 끌어당기면서 너무 유별나게 강직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고 했다.

 

삼려대부(三閭大夫)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관명(官名)으로, 왕족인 소씨(昭氏)ㆍ굴씨(屈氏)ㆍ경씨(景氏) 세 집안의 계보(系譜)와 인재 등용을 관장하였는데 이 벼슬을 지낸 굴원(屈原)을 가리킨 것이다.

 

삼려찬국(三閭餐菊)

()의 삼려대부(三閭大夫) 굴원(屈原)을 이른다. 초사(楚辭)』 「이소(離騷)아침에는 목란(木蘭) 위의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국화꽃을 먹는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했다.

 

삼련(參連)

주례(周禮)의 오사(五射) 가운데 한 가지 활쏘는 법으로서, 즉 앞에 화살 하나를 쏘고 뒤에 세 화살을 연속으로 쏘는 것을 말한다.

 

삼령(三靈)

천신(天神), 지기(地祇), 인귀(人鬼)를 말한다.

해ㆍ달ㆍ별, 혹은 천()ㆍ지()ㆍ인()을 가리킨다.

 

삼령오신(三令五申)

세 번 호령하고 다섯 번 거듭 말한다. 곧 군대에서 자세히 명령한다. 사기(史記)』 「손무전(孫武傳), “약속이 이미 보고되자 바로 부월(鈇鉞)을 설비하고 삼령 오신을 하였다[約束旣布, 乃設鈇鉞, 即三令五申之].” 하였다.

 

삼례(三禮)

유가의 경전으로, 주례(周禮)ㆍ의례(儀禮)예기(禮記)의 합칭이다.

 

삼로(三老)

고대에 삼로(三老)와 오경(五更)의 자리를 설치하여 노인을 봉양하였다.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

노젓는 사람을 삼로라 한다.

정직(正直)ㆍ고명(高明)ㆍ침잠(沈潛)의 삼덕(三德)을 아는 장로(長老)로 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세 사람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임금이 부형(父兄)에 대한 예로써 우대하던 노인을 말하는데, 그는 한 향중(鄕中)의 교화를 맡았다고 한다.

 

삼롱적(三弄笛)

있는 실력을 모두 발휘하여 한껏 뽐내면서 피리를 부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왕휘지(王徽之)가 피리의 명인 환이(桓伊)를 만나 한 곡조 청하자 아무 말 없이 세 곡조나 불어 주고(三弄) 떠난 고사가 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삼료응시(參寥凝始)

언어와 문자의 길이 끊어진 현묘(玄妙)한 상태를 말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오구(於謳)는 현명(玄冥)에게서 듣고, 현명은 삼료(參寥)에게서 듣고, 삼료는 의시(疑始)에게서 들었다.”고 되어 있다.

 

삼료자(參廖子)

() 나라의 고승(高僧) 도잠(陶潛)의 호이다. 삼료자집(參寥子集) 12권을 남겼다.

 

삼룡(三龍)

파지국(波知國)의 삼지전(三池傳)에 의하면, 큰 못에 용왕(龍王)과 용부(龍婦)와 용자(龍子)가 있는데, 행인(行人)들이 제사를 지내면 편히 그 곳을 지날 수가 있으나,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반드시 풍우(風雨)를 만나게 된다고 하였다.

 

삼류대화성(三流大火星)

3년이 지났음을 말한다. 화성(火星)은 심성(心星)을 말한 것으로, 음력 7월이 되면 그 별이 서쪽으로 흐른다. 시경(詩經)빈풍(豳風) 칠월(七月)칠월유화(七月流火)’라는 구절이 나온다.

 

삼리술(三里術)

후한(後漢) 장해(張楷)가 도술(道術)을 좋아하여 5리 안개를 만들고, 같은 때의 관서(關西) 사람 배우(裴優)가 또한 3리 안개를 만들었다. 후한서(後漢書)

 

삼마(三摩)

삼마발저(三摩鉢底)로 정()을 가리키는데, 곧 정력(定力)에 의하여 혼침(惛沈)ㆍ도거(掉擧)의 번뇌를 여의고 마음이 평등 평정(平靜)해짐을 말한 것으로 불교의 진리를 가리킨 것이다.

 

삼마지(三摩地)

불가의 말로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산란하지 않게 하는 정신작용.

 

삼마태수(三馬太守)

한고을의 수령이 부임지로 나갈 때나 또는 임기가 끝날 때 감사의 표시로 보통 그 고을에서 가장 좋은 말 여덟마리를 바치는 것이 관례인데 송흠(宋欽)이라는 사람은 새로 부임해 갈 때 세 마리만 받아 삼마태수(三馬太守)라 불렸다 한다.

 

삼막삼보(三藐三菩)

불교 용어로서, 이는 곧 부처의 깨달은 지혜를 말한다.

 

삼매(三昧)

불교 용어로, 삼매는 원래 범어(梵語)의 음()을 단순히 표기한 것. 잡념을 버리고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집중시키는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 어떤 일에 열중하여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

 

삼매강(三昧講)

삼매는 불교의 용어로, 즉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이른 말이니, 바로 강론(講論)에 마음을 집중시킴을 말한다.

 

삼매경(三昧境)

잡념이 없이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정신력을 집중하는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를 의미하는 불교의 범어(梵語).

 

삼매수(三昧手)

마음속에 잡념이 없는 오묘한 경지에 든 솜씨를 말한다.

 

삼맹호(三猛虎)

조선시대 연산군(燕山君) 때 상주목사(尙州牧使) 신극성(愼克成), 선산부사(善山府使) 남경(南憬), 의성현령(義城縣令) 이장길(李長吉) 등 세 사람이 읍민에게 과도한 징세를 부과하고 학대함이 심하므로 영남인들이 이들을 지적하여 부른 별명이다.

 

삼면(三眠)

누에가 세 번 잠자는 것을 이르는데, 누에는 세 번을 자면 섶에 올라 고치를 짓으므로 늘그막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의 원중(苑中)에 있는 버들인데 모양이 사람처럼 생겼으므로 인류(人柳)라고 하는데, 하루에 세 번 자고 세 번 일어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삼면잠우레(三眠蠶遇雷)

석 잠을 잔 누에는 아무리 우레를 만나도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인간 세상 그 어찌 봄날 한 꿈이 있으려나, 이 몸 장차 석 잠 잔 누에처럼 늙으리[人間何有春一夢 此身將老蠶三眠].”하였다.

 

삼명(三命)

거듭 왕명을 받고 2()인 경()의 지위로 승진된 것을 말한다. 주대(周代)에 관직을 9()으로 나누고 이를 9()이라 칭했는데, 삼명(三命)은 공후백(公侯伯)의 경() 벼슬에 해당된다.

 

삼명순장(三命循墻)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의 조상 정고보(正考父)가 송()나라의 상경(上卿)으로 제수 될 때 처음에 명이 내리자 고개를 숙이고, 두 번째 명이 내리자 몸을 구부리고, 세 번째 명이 내리자 허리를 완전히 굽히고서 담장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달아났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昭公 七年 九月條

 

삼모(三謨)

서경(書經)의 편명인 대우모(大禹謨)고요모(皐陶謨)익직(益稷)를 가리킨다.

 

삼모호사(參眸豪士)

()항우(項羽)는 모두 눈에 동자가 둘이었다고 한다[舜目蓋重瞳子, 又聞項羽亦重瞳子].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삼묘(三泖)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묘수(泖水)를 상ㆍ중ㆍ하로 나누어 부르는 이름인데, 강남(江南) 사람들은 특히 여울이 없이 조용히 고여 있는 물을 묘()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삼무오다(三無五多)

울릉도에는 도둑ㆍ거지ㆍ바퀴 달린 물건이 없고, 눈ㆍ바람ㆍ오징어ㆍ향나무ㆍ미인이 많다는 말이다.

 

삼물교합(三物交合)

건축재료의 하나. 석회(石灰)ㆍ세사(細沙)ㆍ황토(黃土) 세가지를 배합한 것인데, 주로 기초(基礎)를 다지는데 썼다.

 

삼박(三亳)

땅 이름이다. 황보밀(皇甫謐)의 설에 의하면, 삼박(三亳)은 곡숙(穀熟)인 남박(南亳), () 임금의 도읍지와 몽()이 북박(北亳) 즉 경박(景亳)으로 탕임금이 명()을 받은 곳과 언사(偃師) 즉 서박(西亳)으로 곧 반경(盤庚)이 도읍을 옮긴 곳이라 하였다.

 

삼반(三反)

사색이 깊은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한쪽 모서리를 들어보였을 때 그 나머지 세 모서리를 헤아리지 못하면 더 이상 말해주지 않는다[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 하였다.

 

삼발(三發)

세 곳에서 출발한다. 옛날에 제주도를 가려면 세 곳에서 출발하게 되었었다. 즉 나주(羅州)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무안ㆍ영암ㆍ해남 등을 거쳐 7주야 만에 추자도에 이르고, 해남(海南)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삼재포로 해서 삼내도를 거치며, 탐진(耽津)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군영포로 해서 모든 섬을 거치는데, 모두 3주야만에 추자도에 이르게 된다. 세 곳에서 출발한 배는 다 이 추자도를 거쳐서 조천관(朝天館)에 이르렀던 것이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이 성 아래 왔을 때 최명길이 상국(相國) 홍학곡(洪鶴谷)과 함께 찾아가니 그가 초구(貂裘)를 주었다. 두 사람은 그것을 받아 입고 춤을 추면서 황은(皇恩)에 감사하다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 후 나왔다.

 

삼배통대도(三杯通大道)

이태백(李太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청주 탁주 성현의 술 이미 다 마셨으니, 신선을 구태여 찾을 필요 뭐 있으랴. 석 잔의 술에 대도를 통하고, 한 말술에 자연과 합치됐느니.(賢聖旣已飮 何必求神仙 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라는 표현이 있다.

 

삼배통도(三杯通道)

이백(李白)월하독작(月下獨酌)하필 신선을 구할 게 뭐랴, 석 잔 술에 대도를 통하고, 한 말 술에 자연과 합한다[何必求神仙 三杯通大道 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라는 구절이 있다.

 

삼백(三白)

납전삼백(臘前三白)에서 나온 말로 풍년의 징조라 한다. 본초(本草) 납설(臘雪)동지(冬至) 지난 뒤 세 번째 술일(戌日)이 납()인데 납 이전에 세 차례 눈이 오면 보리 농사에 아주 좋다.” 하였다.

 

삼백기송시(三百其誦詩)

공자의 말에, “시경(詩經)3백 편을 읽고, 외국에 사신으로 가서 전대(專對)하지 못하면 많이 읽은 것이 무슨 소용이랴.” 하였다. 시경(詩經)은 모두 3백 편이며, 옛날 중국에서는 시경(詩經)이 외교에 매우 많이 응용되었다. 논어(論語)』 「자로(子路)

 

삼백전(三百廛)

삼백은 다수(多數)를 뜻하고 전은 단위 백 묘(百畝)에 해당하는 것으로, 시경(詩經)위풍(衛風) 벌단(伐檀)씨뿌리고 거두지 않으면 삼백전의 곡식을 어떻게 취하랴[不稼不穡 胡取禾三百廛兮].” 한 데서 온 말이다.

 

삼백편(三百篇)

시경(詩經)에 수록된 시를 가리킨다.

 

삼법사(三法司)

법의 집행을 맡은 세 관사(官司). 특히 의금부(義禁府)ㆍ사헌부(司憲府)ㆍ형조(刑曹)를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삼변(三變)

당나라 문장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초당(初唐)ㆍ중당(中唐)ㆍ만당(晩唐)으로 구별된다.

자하(子夏)가 군자의 용태를 말하면서 군자의 용태는 세 가지 변화가 있으니 멀리 바라보면 장중하고 그의 면전에 나아가면 온화하면서도 그의 말을 들어보면 매우 엄정하다.” 하였다. 논어(論語)』 「자장(子張)

 

삼보(三寶)

불가에서 말하는 불보(佛寶)ㆍ법보(法寶)ㆍ승보(僧寶)를 이르는데, 전하여 부처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삼보(三輔)

서울에서 가까운 고을을 말한다.

서한(西漢) 때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었던 경기(京畿) 지방의 합칭(合稱)이다.

서한(西漢) 때 서울 장안(長安)의 주변을 다스리는 세 벼슬로, 우내사(右內史)ㆍ좌내사(左內史)ㆍ도위(都尉) 등을 말한다.

도성(都城) 부근의 지방장관을 말한다. () 나라 때 장안(長安) 부근에 경조윤(京兆尹)ㆍ좌풍익(左馮翊)ㆍ우부풍(右扶風)을 두었던 데서 온 말이다.

 

삼보결록(三輔決錄)

() 나라 조기(趙岐)의 찬으로 총 2. 본래의 책은 전하지 않고 현재의 것은 청() 나라 사람의 집본(輯本)이다.

 

삼보호(三輔豪)

도성(都城) 부근의 지방장관을 말한다. () 나라 때 장안(長安) 부근에 경조윤(京兆尹)ㆍ좌풍익(左馮翊)ㆍ우부풍(右扶風)을 두었던 데서 온 말이다. / 인용: 北山移文(공치규)

 

삼복(三復)

논어(論語)』 「선진(先進), 공자의 제자 남용(南容)이 시를 읽다가 백규장(白圭章)에 이르면 그 뜻을 음미하며 세 번 반복해서 읽었다고 하였다.

 

삼복백규(三復白圭)

백규를 세 번 반복한다는 말로, 말을 신중하게 한다. 시경(詩經)대아(大雅) ()편에 백옥(白玉)으로 만든 규()의 흠은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 말을 한 번 잘못하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 시를 남용(南容)이 하루에 세 번 반복해서 외우자(三復白圭), 공자가 칭찬하며 조카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고 한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삼부(三賦)

세 시부(詩賦). () 나라 강총(江總)의 일일성삼부응령시(一日成三賦應令詩)붓을 들어 삼부를 이루고, 술잔을 전하면서 구추를 대하누나[下筆成三賦 傳觴對九秋].” 하였다.

 

삼부속(三釜粟)

아주 작은 양의 곡식을 말한다. ()는 용량의 단위로서 6() 4()에 해당한다.

 

삼부양(三釜養)

박봉(薄俸)으로나마 어버이를 잘 봉양함을 이른다. 일부(一釜)6() 4()이니, 삼부는 아주 작은 봉록을 뜻하는데,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내가 어버이 계실 때 벼슬하면서는 삼부의 봉록으로도 마음이 즐거웠는데, 어버이 돌아가신 뒤에는 삼천종(三千鐘)의 봉록을 받아도 내 마음이 슬프기만 하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우언(寓言)

 

삼분(三墳)

상고(上古) 시대 삼황(三皇)의 책을 가리키는 말인데, 즉 매우 소중함을 의미한다.

 

삼분구구(三墳九丘)

삼분은 고서(古書)로서 삼황(三皇)의 책을 이르고, 구구(九丘) 또한 고서로서 옛날 중국 구주(九州)의 지리서(地理書)인데, 둘 다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삼분오전(三墳五典)

삼황오제(三皇五帝) 때에 있었다는 책이라 하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여기서는 공부를 많이 했다는 뜻이다. 좌전(左傳)소공(昭公) 12년에 좌사(左史) 의상(依相)이 왕을 뵈매, 왕이 그대는 훌륭한 사관(史官)이라, 삼분 오전과 팔색 구구(八索九丘)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한다.

 

삼분위주(三分危主)

삼분은 후한(後漢) 말기에 천하를 삼분하여 할거(割據)한 촉(), (), ()의 세 나라를 가리키고, 위주는 곧 후한의 맨 끝 황제(皇帝)로 나이 9세에 즉위했던 헌제(獻帝)를 가리킨다.

 

삼분정족(三分鼎足)

셋으로 나뉜 것이 솥의 발 같다는 뜻으로, 솥발처럼 삼자(三者) 천하를 삼분(三分)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삼불거(三不去)

칠거지악(七去之惡)의 이유가 있는 아내라도 버리지 못하는 세 가지 경우. 즉 보내도 아내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 부모의 삼년상을 같이 치른 경우, 장가들 때에 가난하다가 뒤에 부귀하게 된 경우.

 

삼불후(三不朽)

덕업(德業)을 이루고 뛰어난 공을 세우고 훌륭한 말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 24년에 최상은 입덕(立德)이요, 그 다음은 입공(立功)이요, 그 다음은 입언(立言)이니,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는 이것을 불후(不朽)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삼사(三事)

삼공(三公)의 지위로, 즉 재상(宰相)을 가리킨다.

삼공(三公). 곧 고려 때 정1품인 태위(太尉)ㆍ사공(司空)ㆍ사도(司徒)를 말한다.

삼농(三農)과 같은 뜻으로, 즉 평지(平地)ㆍ고원(高原)ㆍ저습(低濕) 세 지대의 농사를 이른다.

정덕(正德)ㆍ이용(利用)ㆍ후생(厚生).

불서(佛書)에 의()ㆍ식()ㆍ자리라는 구절이 있다.

 

삼사(三士)

춘추시대(春秋時代) 진 문공(晉文公)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할 적에 고락(苦樂)을 함께 하며 제후의 패자(霸者)가 되게 했던 호언(狐偃)ㆍ조쇠(趙衰)ㆍ가타(賈佗) 3인을 가리킨다.

 

삼사(三事)

임금, 부모, 스승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삼사(三司)와 양사(兩司)

삼사(三司)

양사(兩司)

사헌부(司憲府)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

사간원(司諫院)

홍문관(弘文館)

 

 

삼사관(三司官)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관리.

 

삼사또(三使道)

조선 시대 관찰사(觀察使)ㆍ병사(兵使)ㆍ수사(水使)를 합쳐 일컬은 명칭.

 

삼사생(三舍生)

성균관 유생이라는 말이다. () 나라 때 태학(太學)에 상사(上舍), 내사(內舍), 외사(外舍)의 삼사(三舍)를 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사속(森似束)

묶어둔 것처럼 많이 서있다.

 

삼산(三山)

삼각산(三角山)을 빗대어 옛날 이백(李白)이 노닐던 금릉(金陵)의 봉황대(鳳凰臺)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 시적 표현이다. 이백의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三山半落靑天外 一水中分白鷺洲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삼신산(三神山)으로,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말한다. 이 산들은 발해(渤海) 바다 가운데 있는데, 신선들이 살고 불사약(不死藥)이 있으며, 새와 짐승이 모두 희고 궁궐이 황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유희해(劉喜海)의 호이다.

충청북도 보은(報恩)의 옛 이른다. 보령(報令)이라고도 한다.

 

삼산도(三山島)

해로(海路)로 북경에 가는 도중에 있는 섬으로, 정자산(亭子山)과 평도(平島)의 사이에 있다.

 

삼산수천심(三山水淺深)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는 말이다. 마고 선녀(麻姑仙女)가 신선인 왕원(王遠)을 만났을 때, “예전에 당신을 만난 이후로 동해 바다가 세 번이나 뽕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번에 봉래산(蓬萊山)으로 오다 보니 저번보다 물이 반이나 줄었으니 어쩌면 다시 땅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왕원이 성인들도 모두 바다 속에서 다시 먼지가 풀풀 날릴 것이라고 하였다.”고 대답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신선전(神仙傳)

 

삼산약(三山約)

조운(朝雲)소식(蘇軾)의 애첩(愛妾) 이름인데, 여러 첩 가운데 유독 조운이 소식의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므로, 소식이 장난삼아 지은 조운시(朝雲詩)단약 이루러 나를 따라 삼산으로 가서 무양의 운우 선녀가 되지를 않았네[丹成逐我三山去 不作巫陽雲雨仙].”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소동파집(蘇東坡集)卷三十八

 

삼산은궐(三山銀闕)

바다 속 삼신산 꼭대기에 금은 주옥으로 만든 누대와 전각이 서 있다는 전설이 있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삼삼(三三)

바둑판의 가로세로 각각 제3선이 만나는 네 귀의 점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세 가지 삼매(三昧), 즉 공삼매(空三昧)ㆍ무상삼매(無想三昧)ㆍ무원삼매(無願三昧)를 말한다.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구궁(九宮)을 의미한다.

 

삼삼(毿毿)

털이 긴 모양, 버들가지 같은 것이 가늘고 길게 늘어진 모양

 

삼삼(參參)

빽빽이 선 모양

 

삼삼경(三三徑)

() 나라 때 은사(隱士)인 장후(蔣詡)가 자기 마당에 세 길을 내놓고 송()ㆍ국()ㆍ죽()을 심었다는, 즉 삼경(三徑)과 같은 뜻이다.

 

삼상(三上)

구양수(歐陽修), “시를 지을 때는 대개 베개 위ㆍ뒷간ㆍ말 위에서 생각한다.” 하였다.

시문을 지을 때 생각이 잘 떠오른다는 세 곳. 곧 말을 탔을 때(馬上), 베개를 베고 누웠을 때(枕上), 뒷간에 갔을 때(廁上)를 말한다.

 

삼상(三湘)

상강(湘江) 유역과 동정호(洞庭湖) 일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삼상(參商)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삼성(參星)은 서남쪽에 있고 상성(商星)은 동쪽에 있어서 서로 방향이 달라 동시에 뜨는 일이 없다. 좌전(左傳)소공(昭公) 원년(元年)옛날 고신씨(高辛氏)가 두 아들이 있었는데, 형은 알백(閼伯), 아우는 실침(實沈)으로 광림(曠林)에 거하여 서로 우애하지 못하고 날마다 싸움을 벌였다. 이에 상제(上帝)는 괘씸하게 여겨 알백을 상구(商邱)에 옮기니 이것이 상성이 되었고, 실침을 대하(大夏)에 옮기니 이것이 삼성이 되었다.” 하였다.

 

삼상(三湘)

중국 장사부(長沙府)에 있는 소상(瀟湘)ㆍ증상(蒸湘)ㆍ원상(沅湘)의 세 강을 말한다.

중국 호남(湖南)의 상향(湘鄕), 상담(湘潭), 상음(湘陰)으로, 상강(湘江)의 유역 및 동정호(洞庭湖) 일대 지방을 가리킨다.

 

삼상구인난(三湘舊紉蘭)

조정에서 쫓겨나 불우하게 보낼 적에도 지조를 잃지 않았다는 말이다. () 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방축(放逐)된 뒤 상강(湘江) 언덕을 거닐며 비가(悲歌)를 읊조렸던 고사가 있다.

 

삼상리(參商離)

서남방 신위(申位)에 있는 삼성(參星)과 동방 묘위(卯位)에 있는 상성(商星)처럼 멀리 떨어진 채 만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삼상별(參商別)

삼성(參星)과 상성이란 두 별 이른다. 삼성은 서남방 신()의 위치에 있고, 상성은 동방 묘()의 위치에 있어서 서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서로 흩어져 만나지 못한다는 비유이다.

 

삼상서(三上書)

한유(韓愈)의 글에 三上書去官이라는 표현이 있다.唐正議大夫尙書左丞孔公墓誌銘 벼슬을 그만두고 떠나는 이를 전송한 시의 서()에도 三獻書不報長揖而去라는 구절이 있다. 한창려집(韓昌黎集)補遺 送張道士 幷序

 

삼색도화(三色桃花)

인조 때 이조 판서(吏曺判書)인 남이웅(南以雄)이 관리(官吏)를 전주(銓注)할 때 반드시 서인(西人)ㆍ남인(南人)ㆍ북인(北人)의 삼색인(三色人)을 삼망(三望)에 올렸으므로 당시에 그것을 가라켜 삼색도화라고 하였다.

 

삼색리(三色李)

() 나라 때 부현(傅玄)의 이부(李賦)……방릉(房陵)의 표청리(縹靑李 옥색 오얏)는 한 나무에 세 가지 색깔의 오얏이 열리고 맛과 이름이 각기 다르다.” 하였다.

 

삼생(三生)

불가(佛家)의 용어로, 사람이 태어나는 과거, 현재, 미래로, 즉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을 가리킨다. () 나라 간의대부(諫議大夫) 이원(李源)이 낙양 혜림사(惠林寺)의 승려 원관(圓觀)과 깊은 우정을 나누다가 원관이 죽은 뒤 그가 다시 환생한 목동을 만나 서로들 알아보았다는 삼생석(三生石)의 전설이 전한다. 감택요(甘澤謠)」 「원관(圓觀)

 

삼생(三牲)

소ㆍ양ㆍ돼지이다.

 

삼생석(三生石)

전생의 숙연(宿緣)을 말한다. 삼생은 불가(佛家)의 용어로,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을 가리킨다. 당 나라 때 이원(李源)과 중 원관(圓觀)이 서로 친하게 지내었는데, 함께 삼협(三峽)을 유람하다가 물을 긷는 어떤 부인을 보고 원관이 말하기를, “임산부 가운데 왕씨(王氏) 성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내가 몸을 의탁할 곳이다.” 하고는 12년 뒤 중추(中秋) 달밤에 항주(杭州)의 천축사(天竺寺)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날 밤에 원관이 죽고 임산부가 출산을 하였다. 그 뒤에 만나기로 약속한 날짜가 되어 이원이 약속 장소에 가서 어떤 목동(牧童)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는 그 목동이 바로 원관의 후신인 줄을 알았다. 후대에는 이를 인해서 천축사 뒷산에 있는 돌을 삼생의 돌이라 하였다.

 

삼생숙계(三生夙契)

삼생은 불교에서 말하는 과거ㆍ현재ㆍ미래, 즉 인간의 전생(前生)ㆍ현생(現生)ㆍ후생(後生)을 이른 말이고, 숙계는 즉 전세(前世)의 약속이란 뜻이다.

 

삼생업(三生業)

불가어로 삼세전생(三世轉生)의 뜻이다.

 

삼생유행(三生有幸)

서로간에 각별한 인연이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삼선(三禪)

운문선사(雲門禪師)가 대중을 교화한 삼자선(三字禪)으로, (; 나를 돌아봄), (남을 비춰 봄), (; 일체를 초월하여 자적(自適))를 말한다.

 

삼선(三羨)

훌륭한 선비, 좋은 경치, 좋은 명절 등 이 세 가지 부러운 일이란 뜻으로 쓰인 말이다.

 

삼선설(三禪舌)

절가에서 즐겁게 나누는 정담(情談)을 말한다. 능엄경(楞嚴經)안온(安穩)한 마음 가운데 환희(歡喜)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을 이름하여 삼선이라 한다.” 하였다.

 

삼성(參星)

28(宿)의 하나. 오리온 좌()에 속한 남쪽의 세 개의 별과 그 부근의 별들을 가리킨다. 마치 쟁기의 형상과 비슷하여 여성(犁星)이라고도 하는데, 겨울에 가장 똑똑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별자리이다.

 

삼성(三省)

강상죄인(綱常罪人)을 추국하는 세 아문(衙門). 곧 의정부(議政府)ㆍ사헌부(司憲府)ㆍ의금부(義禁府)

세 가지 면에서 반성하는 것.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 나는 매일 세 가지 일을 가지고 자신을 향해 반성해 보는데, 남을 위하여 일을 할 때 충실히 나의 능력을 다하는지, 벗과 사귀면서 성실하지 않은 점은 없는지, 스승이 나에게 전수한 학업을 힘써 익히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하였다.

 

삼성(三聲)

군호(軍號)를 말한다. 옛날에 군중(軍中)에서 금고(金鼓), (), ()의 소리로 명령을 전하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三性)

불교에서 모든 법을 성질상으로 보아 세 가지로 나눈 것, 첫째 미망(迷妄)한 소견과 억측으로 실체가 있는 것처럼 잘못 판단하는 변계소집성(徧計所執性), 둘째 다른 인연에 의하여 생긴 만유(萬有)에 집착하는 의타기성(依他起性), 셋째 현상의 본체인 원만ㆍ성취ㆍ진실의 진여(眞如)인 원성실성(圓成實性)을 가리키며, 또한 선성(善性)ㆍ악성(惡性)ㆍ무기성(無記性)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성(三聖)

설이 많아 유가(儒家)에서는, 복희씨(伏羲氏)ㆍ주 문왕(周文王)ㆍ공자(孔子) 또는 요()ㆍ순()() 또는 문왕(文王)무왕(武王)ㆍ주공(周公)을 일러 삼성이라 하고, 불가(佛家)에서는 이른바 법화삼성(法華三聖), 화엄삼성(華嚴三聖), 미타삼성(彌陀三聖)으로 칭하기도 하며, 혹은 공자ㆍ석가(釋迦)노자(老子)를 들어 삼성이라고도 한다.

 

삼성(三聲)

세속에 전하는, 이른바 인가(人家)에 있어야 할 세 가지 소리로서 글 읽는 소리, 베 짜는 소리, 아기 우는 소리를 가리킨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삼성(三聖)

주역(周易)을 찬한 세 성인으로 ()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를 가리킨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나도 인심을 바루어 사설(邪說)을 없애고 나쁜 행실을 막고 음란한 말을 물리쳐 삼성(三聖)을 받들고자 한다.” 하였다.

 

삼세의(三世醫)

삼대 동안 의술을 가업(家業)으로 하여 경험과 문견이 풍부한 명의(名醫)를 말한다. 특히 군부(君父)의 병은 아무 의원에게나 맡기지 않고 반드시 삼대(三代) 동안 계속하여 의료에 종사한 의원의 약을 쓴다는 데서 온 말이다. 예기(禮記)곡례 하(곡례(曲禮))삼대 이상 의원을 한 사람이 아니면 그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息邪說, 距詖行, 放淫辭, 以承三聖者].” 하였다.

 

삼세지습지우팔십(三歲之習至于八十)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삼소(三蘇)

북송(北宋) 시대 문장가였던 소순(蘇洵)과 그의 아들인 소식(蘇軾)ㆍ소철(蘇轍) 형제를 합칭한 말이다. 모두 글을 잘 하므로 세상에서 삼소(三蘇)라 한다.

 

삼소(三疏)

윤증약(尹曾若)의 호이다.

 

삼소(三笑)

()의 고승(高僧) 혜원(慧遠)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할 때 호계(虎溪)를 지나온 줄도 모르고 마음을 논하면서 서로 크게 웃었다는 고사이다. 지금의 삼소도(三笑圖)가 여기서 기인된 것이다.

 

삼소과계동(三笑過溪東)

옛날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손님을 전송하면서 호계(虎溪)를 넘은 일이 없었는데, 언젠가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이 찾아왔을 때 그들을 전별하면서는 서로 의기가 상합하여 얘기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호계를 지나치고는 세 사람이 껄껄 웃었다고 한다. 노산기(廬山記)

 

삼소도(三笑圖)

혜원(慧遠)이 여산(驪山) 동림사(東林寺)에 있었는데,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이 찾아 왔다가 돌아갈 때, 혜원이 전송하매, 평일에는 손님 전송에 호계(虎溪)를 넘지 않았는데 이 날은 세 사람이 이야기하다가 어느덧 호계를 지나왔으므로 모두 웃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삼소도(三笑圖)를 그려서 전하였다.

 

삼수(三手)

사람을 해치는 세 가지 방법으로 평지수(平地手)ㆍ대급수(大急手)ㆍ소급수(小急手)를 가리키는 말이다. 평지수는 돈으로 내시(內侍)들과 교결하여 죄에 얽어넣어 조정에서 내쫓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고, 대급수는 궁중(宮中)에 은밀히 숨어 들어가서 직접 임금을 시해하는 자객(刺客)을 가리키는 말이고, 소급수는 독약(毒藥)으로 임금을 시해하는 일을 맡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삼수(三秀)

지초(芝草)를 이른다. 지초는 일 년에 꽃이 세 번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아익(爾雅翼)

 

삼수지(三秀芝)

영지(靈芝)를 말한다. 영지는 1년에 세 번 꽃이 피므로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삼수초(三秀草)

상서로운 풀로 불리는 영지초(靈芝草)의 별칭이다. 1년에 세 번 꽃이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숙(三宿)

승려가 만행(萬行)을 할 때 뽕나무 아래에서 쉬되 한 나무 아래에서는 3일 이상을 쉬지 않고 자리를 옮기는데, 이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연연해하는 마음이 생길까 염려해서, 세속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기 위하여 사흘 이상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30양해열전(襄楷列傳)

조정을 떠나면서 왕이 다시 부르기를 기대하여 천천히 가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가 천리 먼길을 꺼리지 않고 제() 나라 왕을 찾아갔다가 뜻이 맞지 않자 떠나면서 왕이 다시 부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3일 동안이나 제 나라 동남쪽에 있는 주()라는 고을에서 묵고 간 일을 말한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3일 동안을 묵고 주 고을(晝邑)을 나왔다[三宿而出晝].” 하였다.

 

삼숙상하지연(三宿桑下之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정이 든다는 말로, 부도(浮屠)가 애착을 두지 않으려 한 데서 나온 것이다. 후한서(後漢書)30 하 양해전(襄楷傳)부도가 뽕나무 아래 3일을 머물지 않는 것은 오래 있어 은애(恩愛)가 생기지 않게 하고자 함이니, 정신(精神)을 지극하게 하려는 것이다[浮屠不三宿桑下 不欲久生恩愛 精之至也].” 하였다.

 

삼숙출주(三宿出晝)

맹자가 제 나라에서 불우(不遇)하여 타국으로 떠나면서도 아직 희망을 가져 차마 얼른 떠나지 못하고 사흘 밤이나 주()에서 머물렀다가 떠났다 한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삼순구식(三旬九食)

한달(30, 三旬)에 아홉 끼를 먹는다는 뜻으로, 빈궁하여 먹을 것이 부족함을 말한다.

 

삼승(三乘)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성문(聲聞)ㆍ연각(緣閣)ㆍ보살(菩薩)에 대한 세 가지 교법(敎法)을 말한다. 성문승(聲聞乘)ㆍ연각승(緣覺乘)ㆍ보살승(菩薩乘)

 

삼승법(三乘法)

중생을 태우고 생사의 바다를 건널 때의 세 가지 교법(敎法). 곧 성문승(聲聞乘)ㆍ연각승(緣覺乘)ㆍ보살승(菩薩乘).

 

삼시(三尸)

사람의 몸속에 들어앉아 재앙을 일으키며 상제에게 고자질한다는 도가(道家)의 귀신 이름이다. “사람의 몸에 삼시충(三尸蟲)이 있는데, 그것이 없어져야 오래 산다.” 하였다. () 나라 유종원(柳宗元)의 글에 매시충문(罵尸蟲文)이 있다.

 

삼시기해(三豕己亥)

문자(文字)를 잘못 알고 있음을 말한다. 삼시(三豕)와 기해(己亥)는 글자 모양이 비슷하여 기해를 삼시로 잘못 판독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

 

삼시충(三尸蟲)

사람의 몸에 삼시충(三尸蟲)이란 벌레가 있어서, 경신일(庚申日)마다 하늘에 올라가서 그 사람이 지은 허물을 고해 바친다 하는데, 신선이 되려면 이 삼시충을 몸에서 제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삼신(參辰)

유시(酉時)에 서방(西方)에 나오는 삼성(參星)과 묘시(卯時)에 동방(東方)에 나오는 신성(辰星)처럼 서로 동떨어져 있는 관계로, 세불양립(勢不兩立) 혹은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따지는 일을 말한다.

 

삼신(三辰)

()ㆍ월()ㆍ성신(星辰)을 합칭한 말이다.

 

삼신(參辰)

삼상(參商)과 같은 말인데, 삼성(參星)은 서쪽에 상성(商星)은 동쪽에 서로 등져 있어 동시에 두 별을 볼 수 없으므로, 친한 사람과 서로 헤어져서 만나지 못하는 데에 비유한다.

 

삼신산(三神山)

중국 전설에 나오는 봉래산(蓬萊山)ㆍ방장산(方丈山)ㆍ영주산(瀛州山)의 세 산을 가리키는데, 동해(東海)에 있다 한다.

 

삼십만수백(三十萬樹白)

오난설의 부춘매은설(富春梅隱說)九里洲在富春山水佳處 計畝種梅 可得三十萬樹라 하였다.

 

삼십삼동파(三十三東坡)

고려 문사(文士)들이 오로지 동파를 숭상하였기 때문에 매년 과거 합격자를 발표할 때면 사람들이 올해도 또 33명의 동파가 배출되겠구나.”라고 하였다 한다.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第六卷

 

삼십오년진일별(三十五年眞一瞥)

진시황(秦始皇)이 신선의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려 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임금이 된지 35년 만에 죽었다.

 

삼십육계 주위상계(三十六計走爲上計)

일의 형편이 불리할 때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란 의미이다.

 

삼십육궁(三十六宮)

중국 고대 역법(曆法)30()가 한 궁()이므로, 한 주천(周天)11, 봄ㆍ여름ㆍ가을 세 철을 양()으로 잡으면 합하여 36. 겨울만이 음()인데 동지(冬至)에 양()이 처음 발생하므로 동지로부터 36궁의 봄이 벌써 시작된다 한다. “36궁이 모두 다 봄[三十六宮 都是春]” 소옹(邵雍)

 

삼십육린(三十六鱗)

잉어 양 옆면에 모두 36개의 비늘이 있고 비늘 위에는 작은 흑점(黑點)이 있다.

 

삼아(三雅)

석 잔의 술을 이른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못()을 수축하다가 마치 술찬처럼 생긴 동기(銅器) 세 개를 얻었는데, 가장 큰 것은 백아(伯雅), 다음 큰 것은 중아(仲雅), 가장 작은 것은 계아(季雅)라고 각각 전서(篆書)로 쓰여 있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魏文帝典論 荊州牧劉 表弟子以酒器命三爵 上曰伯雅 中曰仲雅 小曰季雅].

 

삼아오엽(三椏五葉)

인삼(人蔘)을 이른다.

 

삼악삼토(三握三吐)

밥을 먹거나 머리를 감을 때에 손님이 오면 먹던 밥은 뱉고, 감던 머리는 쥐고 바로 나가 마중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삼야(三耶)

삼야삼불(三耶三佛)의 준말로, 정변지(正遍智)ㆍ정등정각(正等正覺) 등의 뜻인데, 곧 부처가 깨달은 지혜를 말한다. 삼막삼보리(三藐三菩提)라고도 한다.

 

삼양(三壤)

고구려의 중요한 근거지와 요충지였던 요양(遼陽)ㆍ평양(平壤)ㆍ한성(漢城)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37 잡지(雜誌)百濟“13세 근초고왕(近肖古王)에 이르러 고구려의 남평양(南平壤)을 취하여 한성을 도읍으로 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이고, 동사강목(東史綱目)2 하에도 고구려 북한산군(北漢山郡)을 혹은 남평양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한양(漢陽)이다.”라는 안정복(安鼎福)의 주석이 보인다. 그리고 김경선(金景善), 1788~1853연원직지(燕轅直指)1 봉황성기(鳳凰城記)살펴보건대 당서안시성은 평양과의 거리가 500리이고 봉황성은 또한 왕검성(王儉城)이라 한다.’ 하였으며, 지지에는 또한 봉황성을 평양이라 한다.’ 하였다[按唐書, 安市城, 距平壤五百里, 鳳凰城, 亦稱王儉城. 地誌, 又以鳳凰城稱平壤.].”라고 하고, 그 아래에 평양과 패수(浿水)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평양은 수도를 뜻하고 패수는 그 근처에 있는 강이라고 언급한 다음, 당시 요양현(遼陽縣)을 예전의 평양으로 비정하였다. / 인용: 浮碧樓記(성현)

 

삼양(三陽)

세 개의 양효(陽爻)로 음력 정월을 가리킨다. 열두 달을 주역(周易)의 육십사괘(六十四卦)에 연관시켜, 동짓달에는 한 양()이 처음 아래에서 생긴 복괘(復卦)가 되고 섣달에는 두 양인 임괘(臨卦)가 되고 정월에는 세 양인 태괘(泰卦)가 되므로 말한 것이다.

 

삼양지회(三陽之會)

음력 정월을 인월(寅月)이라고 하는데, 정월은 봄인 동시에 목위(木位)이며 3()이 이미 생겼기 때문에 삼양교태(三陽交泰)의 달이라고도 한다.

 

삼양진(三陽進)

주역(周易)태괘(泰卦)는 정월에 해당하며, ()이 물러가고 양()이 전진하는 상이므로 이른 말이다.

 

삼양회태(三陽回泰)

11월은 1()이 처음으로 생기기 때문에 복괘(復卦)가 되고, 12월에는 2양이 생겨나서 임괘(臨卦)가 되고, 정월이면 3양이 생겨서 태괘(泰卦)가 된다.

 

삼어연(三語掾)

연은 연리(掾吏)의 뜻이다. () 나라 때 사도(司徒) 왕융(王戎)이 완첨(阮瞻)을 처음 만나서 성인은 명교(名敎)를 귀히 여겼고, 노자(老子)장자(莊子)는 자연(自然)을 밝혀놓았으니, 그 지취가 같은가?”고 묻자, 완첨이 대답하기를 결국 서로 같지 않겠는가(將無同).” 하니, 왕융이 그를 대단하게 여겨 즉시 불러 연리로 삼았으므로, 당시에 완첨을 삼어연이라고 일컬었다. 삼어는 곧 장무동(將無同)’ 세 글자를 가리킨다. 진서(晉書)』 「완첨전(阮瞻傳)

 

삼어이상(三語貳相)

인조(仁祖) 25년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 민형남(閔馨男)은 차자를 올려 시무를 논하면서 당론(黨論)이 성하여 일어나는 온갖 폐단에 대해 진언하였다. 이에 대해 인조는 그가 다른 신하들과는 달리 세력있는 자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진언한 것을 극찬하고 몇일 뒤에 그를 우찬성(右贊成)에 제수하였다. 이에 당시 사람들은 그가 당론이 성하다(黨論盛)”는 세 글자 때문에 이상(貳相)이 되었다 하여 삼어이상이라고 하였다.

 

삼업(三業)

불교(佛敎)에서 쓰는 말인데, 몸으로 짓는 것(身業), 입으로 짓는 것(口業), 마음으로 짓는 것(意業)을 말한다. 신업은 살생ㆍ투도 등 몸으로 짓는 죄업, 구업은 입으로 짓는 죄업, 의업은 사념(思念)으로 짓는 죄업을 말한다.

 

삼여(三餘)

바쁜 가운데 잠깐 한가한 시간을 말한다. 여는 세()와 일()과 시()의 여()인 동(), (), 음우(陰雨). 위략(魏略)겨울은 해의 나머지이고 밤은 낮의 나머지이고 날이 흐린 것은 때의 나머지이다[冬者歲之餘 夜者日之餘 陰雨者時之餘].” 하였다. 공한(空閑)한 시간을 이용해서 독서하는 것을 말한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왕숙전(王肅傳)의 주()학문을 함에 있어서 이 나머지 시간만 이용해도 충분하다[讀書當以三餘]”라 하였다. 도잠이 책자(責子)’ 시에서 자기 자식들이 게을러서 공부하지 않는 것을 한탄하였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의 호이다. 창협의 동생으로 시문에 뛰어났다.

 

삼연(參淵)

공자의 제자들로 증자(曾子)의 이름이 삼()이요, 안자(顔子)의 자가 연()이다.

 

삼연옹(三淵翁)

조선 숙종 때의 시인인 김창흡(金昌翕)을 가리킨다.

 

삼연유사(三椽遺事)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꿈을 해몽한 이야기인 석왕사(釋王寺)의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말한다. 이성계가 어느 날 밤 꿈에, 여러 닭이 만 집에서 일제히 울어대고 다듬이 소리가 천 집에서 동시에 나는데 몸은 무너진 집에 들어가서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왔고 꽃은 휘날리고 거울은 떨어져 깨지는 꿈을 꾸었다. 이에 하도 이상하여 수소문 끝에 무학대사(無學大師)를 만나 꿈의 해몽을 부탁하였더니, 사양하다가 해몽하기를, “길몽이오. 만 집에서 닭이 고귀위(高貴位)하였으니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며, 천 집에서 다듬이 소리가 일제히 났으니 만 백성 천 벼슬들이 임금된 경사를 알리는 풍악소리요, 서까래 세 개를 지었으니 임금 왕() 자요, 꽃이 날렸으니 필경 열매를 맺을 것이요, 거울이 떨어져 깨졌으니 반드시 큰 소리가 날 것이라, 이는 임금이 될 꿈이니, 여기 설봉산(雪峯山)에 절을 짓고 기원하면 소원을 성취할 것이오.” 하였다. 이것이 이성계가 즉위하기 8년 전의 일로, 이성계는 기원소(祈願所)로 석왕사(釋王寺)를 짓고 길주(吉州)의 천불사(千佛寺)에서 오백나한을 배로 실어날라 석왕사에 안치시켰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삼오(三五)

삼황오제(三皇五帝)를 가르킨다. 중국고대의 전설적 제왕, 3()은 일반적으로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가르키지만, 문헌에 따라서는 복희(伏犧), 신농(神農), 황제(黃帝)를 들기도 한다. 또는 수인(燧人), 축융(祝融), 여왜(女媧) 등을 꼽는 경우도 있다. 사마천(司馬遷)3()의 전설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사기(史記)의 기술을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마천이 5()로 든 것은 황제헌원(皇帝軒轅),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방훈(帝堯放勳), 제순중화(帝舜重華) 등이며, 별도로 복희(伏犧), 신농(神農) 또는 소호(小昊) 등을 드는 경우도 있어 일정하지 아니하다. 원래 이 전설은 다양한 신화 전설이 혼입된 것이며, 도덕적 정치적으로 끌여들인 것이어서, 그 기원은 애매하다. 오행설이 일반화된 전국시대(戰國時代) 말 이후 이야기 경향을 띠게 되었다.

 

삼오(三吳)

지명. 오흥(吳興)ㆍ오군(吳郡)ㆍ회계(會稽), 또는 오왕(吳王)부차(夫差)의 도읍지인 고소(姑蘇), ()가 도읍했던 광릉(廣陵), 손권(孫權)이 도읍했던 건업(建鄴), 또는 동오(東吳)인 소주(蘇州), 중오(中吳)인 윤주(潤州), 서오(西吳)인 호주(湖州)등으로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르게 불리움. 양자강(揚子江)을 비롯한 많은 강하의 합류 지대로서 삼오수고(三吳水考)ㆍ삼오수리록(三吳水利錄)등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강하가 많은 곳이다. 사고제요(四庫提要)史 地理類

 

삼오기변(參伍機變)

주역(周易)계사 상에, “삼오(參伍)로써 변하여 그 수효를 착종(錯綜)한다.” 하였는데, 설문(說文), “세 사람이 서로 섞인 것을 삼()이라 하고 다섯 사람이 서로 섞인 것을 오()라 한다.” 하였다.

 

삼오유애(三吳遺愛)

삼오는 세 곳의 지명(地名)으로, () 나라 때는 오흥(吳興), 오군(吳郡), 회계(會稽)를 말하고, () 나라 때는 오흥(吳興), 오군(吳郡), 단양(丹陽)을 말하고, () 나라 때는 소주(蘇州), 상주(常州), 호주(湖州)를 말한다. 진서(晉書)손은전(孫恩傳), “천하에 군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진() 나라 국운이 다하였다고 판단하여 백성을 선동하였더니, 삼오 지방의 백성들이 많이 따라왔다.” 하였다. 삼오에 끼친 사랑이란 이것을 지적하여 말한 것이다.

 

삼오재자삼한사(三吳才子三韓士)

삼오(三吳)의 재자(才子)는 절강(浙江)에서 살던 육비(陸飛)ㆍ엄성(嚴誠)ㆍ반정균(潘庭筠)이며, 삼한(三韓)의 선비는 홍대용을 가리킨다. 삼오(三吳)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체로 오군(吳郡)ㆍ오흥(吳興)ㆍ회계(會稽)를 말한다.

 

삼오칠언(三五七言)

삼오칠언은 시의 별체로서 당()의 시인 이백(李白)이 일찍이 3자ㆍ5자ㆍ7자로 된 육구시(六句詩)를 지어 삼오칠언이라 제()하였다. 가을바람 시원도 하고, 가을달 밝기도 하여라. 낙엽은 모였다 다시 흩어지고, 갈가마귀는 나무에 앉았다 다시 놀래어 나도다. 서로 생각하니 어느날에나 만나 볼까? 이때 이 밤 심정 가누기 어렵네[秋風淸 秋月明 落葉聚還散 寒鴉棲復驚 相思知見知何日 此時此夜難爲情].” 하였는데 바로 이 시의 체를 따른 것이다.

 

삼오풍미(三吳風味)

삼오는 장강(長江) 하류 지역을 가리킨다. () 나라 때 깨끗한 지조로 이름 높았던 장한(張翰)이 가을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고향인 오중(吳中)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살이에 있어서는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한 법인데, 어찌 벼슬에 얽매여서 수천 리 밖을 떠돌면서 명예와 관작을 노리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수레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 고사를 가리킨다. 진서(晉書)92 문원열전(문원열전(文苑列傳))張翰

 

삼옹(三雍)

벽옹(辟雍), 명당(明堂), 영대(靈臺)를 통틀어 일컫는데 고대 제왕들이 제사와 전례를 거행하는 장소이다.

 

삼왕묘(三王墓)

간장(干將)이 초왕을 위해 검을 주조하였는데, 자검ㆍ웅검 한 쌍으로 삼 년을 고생하여 겨우 완성하였다. 그는 자신이 검을 너무 늦게 만들어낸 것 때문에 초왕이 필히 그를 해칠 것임을 알고, 당시 임신 중이던 아내 막야(莫邪)에게 웅검을 감춰두었다가 후에 만약 아들을 낳으면 그가 성인이 되기를 기다려 아버지를 위해 원수를 갚게 하도록 당부하였다. 초왕은 과연 막야를 죽였다. 막야의 유복자 적비(赤比)는 장성한 후 아버지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연유를 알게 되었고, 곧 웅검을 찾아내고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초왕은 이 소문을 접한 후, 전국에 상을 내걸고 적비를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적비는 산중을 유랑하다 한 협객을 만나는데, 협객은 만약 적비가 자신의 머리와 검을 건네준다면 그가 적비를 대신해 복수를 하겠다고 한다. 적비는 전혀 망설임 없이 즉시 스스로 목을 베어 두 손으로 머리와 검을 받쳐들고 그에게 바쳤다”. 협객은 적비의 머리와 검을 초왕에게 바쳤고, 초왕은 크게 기뻐한다. 협객은 초왕에게 적비의 머리를 큰 가마솥에 넣어 삶도록 권했는데, 초왕이 그 앞에 나아가 구경을 하자 협객은 잠시 무방비한 틈을 타서 그의 목을 베어 암살하고, 그 또한 동시에 스스로 목을 베었다. 세 사람의 머리가 가마솥에서 함께 삶아지면서 구분할 방도가 없었으므로 초나라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세 사람을 함께 장사지냈고, 그곳을 세 왕의 무덤이라 불렀다.

 

삼우도(三友圖)

근세 화가들은 송()ㆍ죽()ㆍ매()를 합해 그려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도 하고 또한 매ㆍ죽ㆍ석()을 그리는 자도 있다. 소동파(蘇東坡)가 문여가(文與可)의 그림에 제하여 이르기를 梅寒而秀 竹瘦而壽 石醜而文 是爲三益之友라 하였다.

 

삼우반(三隅反)

네 모퉁이가 있는 물건이 있을 때, 한 모퉁이를 들어서 나머지 세 모퉁이를 유추(類推)하여 알아내는 것을 이른 말로, 즉 학문에 대단히 힘쓰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공자가, “한 귀퉁이(一隅)를 가르쳐 주거든 그가 삼우(三隅)로 미루어서 돌려 생각하지 못하면 말해 주지 않았다.” 하였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삼우제(三虞祭)

장사를 지낸 뒤 죽은 이의 혼백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장사 당일 지내는 제사를 초우(初虞), 다음날 지내는 제사를 재우(再虞), 그 다음날 지내는 제사를 삼우(三虞)라 한다. 오늘에 와서는 흔히 장사 지낸 후 삼일째 되는 날 삼우제만 지내고 있다. 흔히 삼오제라고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삼원(三元)

(), (), ()이 새로 시작된다는 뜻에서 정월 초하루를 일컫는 말이다.

향시(鄕試), 회시(會試), 정시(廷試)에서 모두 장원(壯元)한 것을 이르는데, 전하여 인재를 의미한다.

 

삼원(三垣)

천체의 항성(恒星)을 크게 나눈 세 개의 분야로, 태미원(太微垣), 자미원(紫微垣), 천시원(天市垣)을 말한다.

 

삼원각상합(三元角上合)

삼원(三元), 즉 연(), (), ()의 시작인 새해의 첫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을 말한다.

 

삼원변혁년(三元變革年)

삼원은 연월일(年月日)의 시작이 되는 정월 초하루를 뜻하는 말로, 황제가 새로 즉위하여 연호가 바뀌게 된 것을 가리킨다.

 

삼원일(三元日)

(), (), ()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를 말한다.

 

삼원절(三元節)

정월 초하루를 이른다. 세시(歲始)이고 월시(月始)이며 일시(日始)라는 뜻에서 이렇게 말한다.

 

삼월불위인(三月不違仁)

공자가 말하기를 안회(顔回)는 그 마음이 석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는다.” 한 데서 온 말로, 즉 사욕(私欲)이 없음으로써 그 선심(善心)을 오래도록 잡아 간직함을 말한 것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삼월회일(三月晦日)

가도(賈島)를 비웃는다는 것은 곧 가도가 봄이 가는 것을 몹시 애석하게 여기어, 삼월회일증류평사(三月晦日贈劉評事) 시에 삼월이 정히 삼십일에 딱 당하였으니, 봄 경치가 괴로이 읊는 나를 작별하려 하네. 오늘 밤엔 그대와 함께 잠을 자지 말자꾸나, 새벽 종이 울리기 이전은 아직 봄이라오[三月正當三十日 風光別我苦吟身 共君今夜不須睡 未到曉鐘猶是春].” 한 것을 조롱한 말이다. 장강집(長江集)卷十

 

삼위(三緯)

노신이 한문학사요강2편에서 ()ㆍ비()ㆍ흥()은 체()로 시를 판가름하는 것이니, ()는 곧바로 정()을 펴내는 것이고, ()는 사물을 빌려 뜻을 말하는 것이며, ()은 사물을 의탁하여 말을 흥기시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경󰡕의 삼위(三緯)가 된다.”고 썼다. / 인용: 辭辨(이식), 詩則(시경준)

 

삼의(三衣)

승려(僧侶)의 세 가지 의복. 즉 궁중(宮中)이나 마을을 출입할 때에 입는 승가리(僧伽梨)와 예불(禮佛)ㆍ독경(讀經) 등을 할 때에 입는 울다라승(鬱多羅僧)과 절 안에서 작업할 때에 입는 안타회(安陀會)를 합칭한 말이다.

 

삼의사(三醫事)

천명은 어쩔 수 없음을 말한다. 옛날 양주(楊朱)의 친구 계량(季梁)이 죽게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이 세 의원(三醫)인 교씨(矯氏)ㆍ유씨(兪氏)ㆍ노씨(盧氏)를 데려와 부친의 병을 진찰한 결과, 교씨는 한온(寒溫)과 허실(虛實)에 절도를 잃은 것이니 점차로 치료할 수 있다 하였고, 유씨는 하루아침에 생긴 병이 아니니 치료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노씨는 이미 타고난 명이 다했으니 어찌할 수 없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열자(列子)』 「역명(力命)

 

삼이용(三耳湧)

총명(聰明)이 더욱 뛰어난다는 뜻이다. 속수신기(續搜神記)장심통(張審通)이 꿈에 태산부군(泰山府君)의 부름을 받아 갔더니 이마 위에 귀 하나를 붙여 주었다. 얼마 후에 꿈을 깨니 과연 이마가 가려우면서 귀 하나가 더 생겨나 더욱 총명하여졌다.” 하였다.

 

삼익(三益)

세 가지 유익한 관상물(觀賞物)로 매화ㆍ수석(壽石)ㆍ대나무를 가리킨다. 소식(蘇軾)의 찬문여가매석죽(贊文與可梅石竹) 시에 매화는 차갑지만 빼어나고 대나무는 깡마르지만 장수(長壽)하고 수석은 못생겼지만 문채가 있으니, 이는 삼익의 벗이다.” 하였다.

세 가지 유익한 벗을 말한다. 논어(論語)』 「계씨(季氏)유익한 벗이 셋이 있으니, 정직하고 성실하고 견문이 많은 이가 바로 그들이다[益者三友 友直友諒友多聞 益友].”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삼익우(三益友)

세 가지 유익한 벗. 매화ㆍ대나무ㆍ돌을 말한다.

세 가지의 유익한 벗. 논어(論語)』 「계씨(季氏)유익한 벗이 셋이 있으니 정직한 벗, 신실한 벗, 식견이 많은 벗이다[益者三友 友直友諒友多聞 益友].” 하였다.

 

삼인(三仁)

미자(微子)기자(箕子)비간(比干)으로, 논어(論語)』 「미자(微子), “미자는 떠나가고 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는데, 공자가 이르기를, ‘은나라에는 삼인이 있었다.’ 하였다.” 하였다.

 

삼인검(三寅劍)

대체로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에 그 검이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세상에 전해 오는 말로는 삼인검은 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물리쳐 준다 한다.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냄. 거리에 범이 나왔다고 여러 사람이 함께 말하면 거짓말이라도 참말로 들린다는 말, 근거없는 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곧이 듣는다는 뜻이다.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삼아 배울 만한 사람이 있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삼일유가(三日遊街)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사흘 동안 온 거리로 돌아다녔던 관례.

 

삼일천하(三日天下)

짧은 동안 정권을 잡았다가 곧 실패함을 이름, 영화가 짧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삼자각모외(三子各慕外)

자로(子路),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가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 증점보다 먼저 자신들의 뜻을 말했는데, 모두 정치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뜻이었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삼자부(三字符)

() 나라 때 유자휘(劉子翬)가 위원리(魏元履)에게 부친 시에 일찍이 머지않아 회복한다는 말을 듣고 이것을 삼자부로 삼아 찼노라[嘗聞不遠復 佩作三字符].” 한 데서 온 말인데, 머지않아서 회복한다는 것은 바로 주역(周易)』 「복괘(復卦)의 초구효사(初九爻辭)머지 않아서 회복하는 것이라, 후회하는 일이 없으리니, 크게 길하다[不遠復 無祗悔 元吉].” 한 것을 가리킨다.

주자(朱子)가 친구에게 지어준 시에, “주역(周易)의 불원복(不遠復)으로 삼자부(三字符)로 삼아 찬().” 하였다. 불원복(不遠復)은 허물 있는 이가 머지 않아 빨리 뉘우쳐서 회복된다는 뜻이다.

 

삼잔(三孱)

()은 연약하여 무능한 것으로 (劣弱)한 자는 아무리 많아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 황정견(黃庭堅)曳長裾(豫章集) 6 차운양명숙시(次韻楊明叔詩)필사는 능히 나라를 빛내지만 삼잔은 한 구석도 못 채운다오[匹士能光國 三孱不滿隅].” 한 데서 온 말이다. 황산곡시집(黃山谷詩集)卷十二

 

삼장(三藏)

불전(佛典)의 경()ㆍ율()ㆍ논()의 총칭이며. 이에 통달한 고승의 총칭이기도 하다.

 

삼장(三長)

()를 짓는 데는 재()ㆍ학()ㆍ식()의 세 가지 장점이 있어야 한다. / 인용: 進三國史略箋(권근)

 

삼장(三章)

지방관(地方官)을 청하는 세 차례의 상소문이라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외직(外職) 청하는 세 차례 상소 글자가 반쯤 기울어져, 혹시 눈병 걸렸냐고 조정의 비웃음을 받았다오[乞郡三章字半斜 廟堂傳笑眼昏花].”라는 표현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36 七年九月 自廣陵召還 復館於浴室東堂 八年六月 乞會稽 將去 汶公乞詩 乃復用前韻 三首

한 고조(漢高祖)가 처음 진() 나라를 평정하고 관중(關中)에 들어가서 진()의 가혹한 법률을 모두 폐지하고 부로(父老)들을 불러 말하기를, “진 나라의 법은 너무 혹독하고 까다로웠으므로, 나는 이제부터 진 나라 법을 모두 없애고, 법 삼장(三章)만을 약속한다. 살인한 자는 죽이고, 사람을 상해(傷害)한 자와 도둑질한 자는 처벌한다.” 하니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한다.

 

삼장사(三壯士)

김성일(金誠一)ㆍ조종도(趙宗道)ㆍ이노(李魯)를 가리킨다.

 

삼장지약(三章之約)

한 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진 나라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한 뒤, 진의 가혹하고 번다한 법률 대신 삼장(三章)의 법만으로 다스리도록 했다. 살인자는 죽이고 상해를 입힌 자와 도적은 처벌한다는 세 가지 법만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 인용: 嬰處稿序(박지원)

 

삼재(三宰)

좌참찬(左參贊)의 별칭이다.

 

삼재(三才)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천지 만물을 가리킨다.

 

삼적사적금포만(三摘四摘今抱蔓)

여러 자식을 잃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아들이 4형제인데, 태자(太子) ()은 매우 어질었으나 무후가 그를 짐살(鴆殺)하자, 차자(次子) ()이 태자가 된 다음, 스스로 늘 두렵게 여기어 황대과사(黃臺瓜辭)를 지어서 상()을 감오(感悟)시키려 하였으니, 그 황대과사에 황대의 아래 오이를 심어 오이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 세 번 땄을 땐 그래도 괜찮더니 네 번 따매 덩굴만 남는구나[種瓜黃臺下 瓜熟子離離 …… 三摘尙云可 四摘抱蔓歸]” 한 데서 온 말이다. 그런데 현() 역시 끝내 무후에게 배척되어 죽었다. 당서(唐書)』 「건녕왕전(建寧王傳)

 

삼전(三典)

()ㆍ중()ㆍ중() 세 종류의 형법.

 

삼전(三田)

고대 의학용어로서 삼단전(三丹田)인 상원단전(上元丹田; ())ㆍ중원단전(中元丹田; ())ㆍ하원단전(下元丹田; 정문(精門))을 말한다.

 

삼전(三鱣)

공경(公卿)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양진(楊震)이 뛰어난 학문을 가지고서도 여러 차례 소명(召命)에 응하지 않고 있었는데, 새가 전어(鱣魚) 세 마리를 물고 날아와 강당(講堂)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형상을 하였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전어는 대부들이 입는 옷의 무늬이고, 세 마리는 삼태(三台)의 조짐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 양진이 과연 태위(太尉)에 올랐다. 후한서(後漢書)54 양진열전(楊震列傳)

 

삼전(三箭)

() 나라 때 장군 설인귀(薛仁貴)가 화살 셋을 쏘아 적병 3명을 죽이자, 10여 만의 적군이 기가 꺾이어 모두 항복함으로써 마침내 천산(天山)을 평정했던 데서 온 말이다.

 

삼전(三殿)

천자ㆍ태후(太后)ㆍ황후(皇后)를 가리킨다.

 

삼전정천산(三箭定天山)

당나라 장수 설인귀(楔仁貴)가 천산(天山)에서 세 화살로 세 사람을 쏘아 죽이니 적병이 물러갔다. 사람들이, “장군삼전정천산(將軍三箭定天山)이라.” 하였다.

 

삼절(三絶)

()ㆍ서()ㆍ화()의 뛰어난 재주를 말한다.

 

삼절굉(三折肱)

경험을 많이 쌓으면 저절로 조예가 깊게 된다는 뜻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정공(定公) 13년 조(), “팔을 세 번 꺾어서 세 번 고친 다음에야 부러진 팔을 치료하는 방법을 안다.” 하였다.

 

삼절기(三絶技)

()ㆍ서()ㆍ화() 세 가지에 다 뛰어난 것을 삼절이라 하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삼접(三接)

하루에 세 번을 접견한다는 뜻으로 임금의 신하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지칭하는 말이다. 주역(周易)진괘(晉卦), “안정적으로 다스리는 제후에게 많은 말을 하사하고 하루에 세 번씩이나 접견한다[晝日三接].”하였다.

 

삼정(三鼎)

돈정(豚鼎)ㆍ어정(魚鼎)ㆍ석정(腊鼎)을 말한다. 의례(儀禮)의 사혼례(士昏禮)와 사우례(士虞禮)삼정(三鼎)을 차려 놓는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집안의 혼사(婚事)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삼정(三精)

해ㆍ달ㆍ별. 후한서(後漢書)광무제기 찬(光武帝紀贊)구현에 회오리바람이 일고 삼정은 안개가 끼어 깜깜하였다.(九縣飆廻三精霧塞)” 하였다.

 

삼정(三政)

조선 때 국가 재정의 3대 요소인 전정(田政)ㆍ군정(軍政)ㆍ환곡(還穀). 전정은 전세(田稅)를 주로 하는 토지에서의 조세 제도(租稅制度), 군정은 병역을 치르는 대신 군포(軍布)를 바치는 보포제(保布制), 환곡은 가난한 농민에게 미곡을 대여해 주었다가 가을에 이식을 붙여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전부고(田賦考)ㆍ재용고(財用考)ㆍ시잡고(市雜考)/ 인용: 僧拔松行(황상)

 

삼정(三庭)

①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내경(內景), 외경(外景), 중경(中景)의 황정(黃庭)에서 자라는 가곡(嘉穀)에 황명(蝗螟)이 발생한다.”라는 말이 있다. 삼정(三庭)은 바로 황정(黃庭)이다.

도교(道敎)의 용어로, 황정궁(黃庭宮)3개 부위 즉 뇌(), (), ()를 말한다.

 

삼정촉(三丁燭)

보통 촛불 세 자루를 가지면 하룻밤을 난다고 한다.

 

삼조(三條)

공경(公卿)들이 왕께 올리는 중요한 진언(進言). 북조(北朝) 위문제(魏文帝)가 공경들에게 달마다 봉사(封事) 3조씩을 올려 득실(得失)을 극언(極言)토록 조서(詔書)를 내렸다.

 

삼조(三俎)

돼지()ㆍ어물()ㆍ포()를 가리키는데 모두 제수(祭需)이다

세 개의 인끈으로서, 즉 세 가지 직무를 겸대한 것을 말한다. () 나라 때 양복(楊僕)이 주작도위(主爵都尉)가 되고 또 누선장군(樓船將軍)이 되어 장량후(將梁侯)까지 겸대하여 세 인끈을 한꺼번에 차고서 향리에 과시했던 데서 온 말이다.

 

삼조(三朝)

(), (), ()의 시작이라는 뜻으로, 정월 초하루를 가리킨다.

 

삼조보서(三鳥報書)

세 마리의 새. 초사(楚辭)』 「구가(九歌)삼조에게 말을 붙이려 해도 빨리 가버려 잡을 수 없다.” 한 주에 첫째는 기러기, 둘째는 학, 셋째는 제비이다.” 하였다.

 

삼조양(三朝養)

하루에 세 차례를 조현(朝見)하는 것으로, 예기(禮記)문왕세자(文王世子), “문왕이 세자로 있을 적에는 왕계(王季)에게 매일 세 번씩 조현하였다.” 하였다.

 

삼조지(三條止)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곤륜산(崑崙山)을 북()ㆍ중()ㆍ남()의 세 가닥으로 나눌 수 있다.” 하였다.

 

삼족오(三足烏)

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을 가진 까마귀. 이것이 곧 태양의 정기(精氣)라고 한다. 논형(論衡)』 「설일(說日), “태양 속에는 삼족오(三足烏)가 살고 달 속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산다.” 하였다.

 

삼족정(三足鼎)

재상의 지위를 말한다.

 

삼존달(三尊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존경하는 세 가지의 조건으로 높은 벼슬, 많은 나이, 훌륭한 덕행을 말한다[天下有達尊三爵一, 齒一, 德一].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삼종(三終)

36. 12년을 일기(一紀) 또는 일종(一終)이라 하는데, 이는 세성(歲星) 곧 목성이 일주천(一周天)하는 기간이다.

 

삼종(三宗)

부족(父族)ㆍ모족ㆍ처족을 말한다.

 

삼주(三住)

도가(道家)에서 수련(修鍊)하는데 쓰이는 말로 기주(氣住)ㆍ신주(神住)ㆍ형주(形住)를 말한다. ()의 시견오(施肩吾) 삼주명(三住銘)에 이르기를, “기가 안정되면 정신이 안정되고, 정신이 안정되면 형체가 안정되는데, 이는 장생(長生)의 방법인 것이다.” 하였다.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십주(十住) 가운데 제삼주(第三住)에 해당하는 즉 만선 만행(萬善萬行)을 닦는 지위인 수행주(修行住)를 말한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삼주(三酒)

주례(周禮)천관(天官)주정(酒正), “주정(酒正)이 삼주(三酒)의 물()을 분변하는데, 1은 사주(事酒), 2는 석주(昔酒), 3은 청주(淸酒).” 하였고, 그 주에 사주(事酒)는 일이 있어 마시는 술이요, 석주(昔酒)는 일 없이 마시는 술이요, 청주(淸酒)는 제삿술이다.’ 하였다.

 

삼주수(三珠樹)

() 나라 때 왕거(王劇)ㆍ왕면(王勔)ㆍ왕발(王勃) 3형제가 모두 재사(才士)로 이름이 높아 당시에 이들을 삼주수(三珠樹)라 일컬었다.

염화(厭火)의 북쪽 적수(赤水)의 위에서 자란다는 신선 세계의 나무로, 잣나무와 비슷한데 잎이 전부 구슬로 이루어졌다 한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남경(海外南經)

 

삼중제실동가회(三重緹室動葭灰)

후기(候氣)의 법에 의하면, 삼중의 밀실(密室)을 만들고 그 안에 명주[]를 펴고서 그 위에 십이율관(十二律管)을 각각 방법대로 안치한 다음, 그 율관에 갈대의 재를 채우고 다시 그 위에 명주로 덮어놓으면, 동지(冬至)이 될 경우, ()이 황종관(黃鐘管)에 맞아서 황종관에 들어있는 갈대 재가 날아 움직이게 되는 것 등을 이른 말이다.

 

삼지(三池)

개성 용화원 숭교사에 있던 연못 이름이다.

 

삼진록(三秦錄)

신씨(辛氏)의 삼진기(三秦記)한 무제(漢武帝)의 과원(果園)에 있는 큰 밤은 열 다섯 개로 한 말()이 된다.” 하였다. 연감유함(淵鑑類函)卷四百三 果部五 栗

 

삼징칠벽(三徵七辟)

여러 차례 소명(召命)을 받음을 말한다. ()나라 왕부(王裒)는 자기 부친이 비명에 세상을 떠난 것을 애통하게 여겨 은거한 채 학생을 가르치면서 조정에서 세 차례 소명을 내리고[三徵] 주군(州郡)에서 일곱 차례 불렀으나[七辟]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진서(晉書)88 왕부열전(王裒列傳)/ 인용: 五學論(정약용)

 

삼차(三車)

우차(牛車)ㆍ양차(羊車)ㆍ녹차(鹿車)3(三車)인데, 불교에서 그것을 대승(大乘)ㆍ성문승(聲聞乘)ㆍ연각승(緣覺乘)에 비유한다.

 

삼차로(三叉路)

() 나라 은사(隱士) 장후(蔣詡)가 죽림(竹林) 속에 세 갈래 길을 내어 놓고 친구 양중(羊仲) 구중(裘仲)과 서로 왕래하였다.

 

삼차하(三叉河)

북경(北京) 동북방에 있다.

 

삼창(三昌)

광해군(光海君) 때 군호(軍號)()’자가 있는 3인의 권신(權臣)을 일컫는 말이다. 이이첨(李爾瞻)은 광창부원군(廣昌府院君), 유희분(柳希奮)은 문창부원군(文昌府院君), 박승종(朴承宗)은 밀창부원군(密昌府院君)이었음.

 

삼창(三蒼)

서명(書名)인데 이라고도 한다. () 나라 승상 이사(李斯)가 창힐편(倉頡篇) 칠장(七章)을 짓고, 중거부영(中車府令) 조고(趙高)가 원력편(爰歷篇) 육장(六章)을 짓고, 태사령(太史令) 호모경(胡母敬)이 박학편(博學篇) 칠장을 지었는데, 모두가 옛 주서(籒書)를 합하여 만든 것으로 무릇 33백 자이다. 한 나라 때에 창힐ㆍ원력ㆍ박학을 합하여 60자를 끊어 한 장()씩 만들었는데 모두 55장으로 아울러 창힐편이라 하였다. 세상에서는 이를 삼창이라 칭한다.

 

삼책(三策)

세 가지 계책. 원래는 소진(蘇秦)이 조왕(趙王)을 유세하면서 쓴 말이었으나 국가의 긴요한 정책을 들어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

 

삼처굴(三處窟)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교활한 토끼란 세 굴이 있어서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다.(狡免有三窟 僅得免其死耳)” 한 데서 온 말이다.

 

삼척검(三尺劍)

3척쯤 되는 칼. 한 고조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나는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일어나서 삼 척(三尺)의 검을 쥐고 천하를 취했으니, 이것이 천명(天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8 고조본기(高祖本紀)

 

삼척동자(三尺童子)

키가 석 자 정도 되는 어린 아이, 한 자는 약 30cm이니 4-5세 정도의 어린 아이에 해당한다. 철모르는 어린 아이나 혹은 그처럼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킨다.

 

삼척수(三尺水)

()을 가리킨다. 당 나라 이하(李賀)의 시 춘방정자검자가(春坊正字劍子歌)’, “선배의 칼집 속의 삼척수는, 일찍이 오 연못에 들어가서 용자를 베었다네[先輩匣中三尺水 曾入吳潭斬龍子].”하였다.

 

삼척신규시발감(三尺神虯始發礛)

신검(神劍)을 말한다. () 나라 때 오() 땅에 자색 기운이 하늘의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치는 것을 보고 장화(張華)가 뇌환(雷煥)을 시켜서 돌감옥을 파고 용천검(龍泉劍)과 태아검(太阿劍)을 얻었는데, 이 두 보검이 나중에 신룡으로 화하였다 한다.

 

삼척자(三尺子)

()을 가리킨다. 당 나라 이하(李賀)춘방정자검자가(春坊正字劍子歌)’, “선배의 칼집 속의 삼척자는, 일찍이 오 연못에 들어가서 용자를 베었다네[先輩匣中三尺水 曾入吳潭斬龍子].”하였다.

 

삼척죽(三尺竹)

옛날에는 종이가 없어서 법률이나 역사를 세 자쯤 되는 댓조각에 기록하였다.

 

삼척훼장(三尺喙長)

육여경(陸餘慶)이 모든 일에 있어 말로는 잘하나 판결력이 부족하므로 사람들이 말할 적에는 부리가 석 자나 길어지고 판결할 적에는 손이 닷 근처럼 무거워진다.”고 조소하였다. 당서(唐書)』 「육여경전(陸餘慶傳)

 

삼천(三天)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신선이 사는 곳. 옥청(玉淸)ㆍ상청(上淸)ㆍ태청(太淸)을 삼청경(三淸境)이라 하며 또 삼천(三天)이라고도 한다.

삼천은 불교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이다.

 

삼천(三川)

부주(鄜州)의 현() 이름으로, 화수(華水), 흑수(黑水), 낙수(洛水)의 세 강물이 모이는 곳이라서 이렇게 이름하며, 안녹산(安祿山) 난리에 두보(杜甫)가 숨으러 갔던 곳이다.

의주(義州) 앞에 있는 압록강(鴨綠江)의 별칭이 삼강(三江)이다.

 

삼천(參天)

양지는 지수(地數)2를 말하고 삼천(參天)은 천수(天數)3을 말한 것으로, 지수 2와 천수 3을 서로 곱하면 6(六同)이 된다.

 

삼천결자도(三千結子桃)

훌륭한 물건은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신선의 세계에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매를 맺는 반도(蟠桃)가 있는데 이것을 먹으면 장수(長壽)를 누린다고 한다.

 

삼천경(三千境)

화엄경(華嚴經)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도()를 구하여 남방으로 다니며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방문하였다. 수희(隨喜)는 남의 착함을 따라서 기뻐한다는 뜻이다.

 

삼천계(三千界)

삼천 세계는 삼천 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는 불가의 용어로, 온 천하를 말한다.

 

삼천대계(三千大界)

무량무변한 세계를 말한다. 불설(佛說)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1천을 합하면 소천세계(小千世界)가 되고, 소천세계 1천을 합하면 중천세계(中千世界)가 되고, 다시 중천세계 1천을 합하면 대천세계(大千世界)가 되어 총합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된다는 것이다.

 

삼천도(三千桃)

선계(仙界)에 있다고 하는, 3천 년 만에 꽃이 한 번 피고 열매가 한 번 맺는 복숭아나무를 말한다.

 

삼천독(三千牘)

임금에게 올리는 장편의 상소문. 뛰어난 문장력을 비유한 말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 동방삭(東方朔)이 처음 장안(長安)에 들어가 상서(上書)할 적에 모두 3천 통의 서찰을 올리어, 공거령(公車令) 두 사람이 겨우 맞들어 임금에게 올렸는데, 임금은 무려 두 달이 걸려서야 그 서찰을 다 읽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卷一百二十六

 

삼천리(三千履)

상등의 빈객을 말한다. 춘추 때 초() 춘신군(春申君) 문객 3천인 중에 상객(上客)은 모두 구슬 신(珠履)을 신었다. 사기(史記)』 「춘신군전(春信君傳)

 

삼천세계(三千世界)

불경에서 이 우주계를 삼천세계(三千世界)라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천으로 된 것을 소천세계(小千世界), 소천세계가 천()으로 된 것을 중천세계(中千世界), 중천세계가 천으로 된 것을 대천세계(大千世界)라 한다.

 

삼천심여덕개동(三千心與德皆同)

주 무왕(周武王)이 주()를 칠적에 힘이 같을 적엔 덕()으로 헤아리고 덕이 같을 적엔 의()로 헤아린다. ()는 억만 명의 신하가 있지만 억만 명의 마음이 각기 다른데, 나에게 있는 3천 명의 신하는 모두 한 마음이다.”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서경(書經)』 「진서(泰誓)

 

삼천약수(三千弱水)

산해경(山海經)서해(西海)의 남과 유사(流沙)의 가에 큰 산이 있어 이름은 곤륜산이고 그 아래는 약수가 감돌았다.” 하였고, 그 주에 이르기를 그 물은 홍모(鴻毛)도 이기지 못한다.” 하였다.

 

삼천육백조(三千六百釣)

태공 망(太公望)이 나이 80에 위수(渭水)에 낚시를 드리우기 시작하여 그로부터 10년 후인 90세에야 비로소 문왕(文王)을 만났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삼천죄대(三千罪大)

삼천 가지 죄 가운데 불효가 제일 큰 죄라는 것을 말한다.

 

삼첩(三疊)

시나 노래에서 같은 구절을 세번 반복하는 즉 첩음법(疊音法). 이별을 말한다. () 나라 때 왕유(王維)가 친구를 송별하면서 양관곡(陽關曲)을 불렀던 데서 온 말인데, 삼첩은 곧 제4()西出陽關無故人을 세 번 반복하여 노래한 것을 가리킨다. 그 뒤에 악부(樂府)에 올려 송별곡으로 유행된 것이다.

 

삼청(三淸)

도교(道敎)의 삼신(三神)인 옥청원시천존(玉淸元始天尊)ㆍ상청령보도군(上淸靈寶道君)ㆍ태청태상로군(太淸太上老君)을 말하며, 삼동(三洞)의 교주(敎主)가 사는 최고의 선경(仙境)인 옥청경(玉淸境), 상청경(上淸境), 태청경(太淸境)의 세 선경을 말한다.

 

삼초(三楚)

동초(東楚)ㆍ서초(西楚)ㆍ남초(南楚)를 가리키는 듯하다.

 

삼촌설(三寸舌)

장량(張良)이 유후(留侯)에 봉해진 뒤에 말하기를, “내가 세 치 혀(三寸舌)로써 임금의 스승이 되었으니 만족하다. 이제는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놀겠노라.” 하고, 화식(火食)을 끊고 도인법(導引法)을 배웠다.

 

삼최일박(三崔一朴)

최씨 셋은 최치원(崔致遠)최승우(崔承祐)ㆍ최언위(崔彦撝)를 말하며, 박씨(朴氏) 하나는 박인범(朴仁範)을 가리키니, 이들은 모두 당 나라에 유학하고 과거에 급제하였다.

 

삼추(三秋)

가을 석 달인데, 정든 사람끼리 서로 그리는 마음을 노래한 시경(詩經)왕풍(王風) 채갈(采葛)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삼추처럼 지루하네[一日不見 如三秋兮].”에서 나온 말이다.

 

삼출(三黜)

논어(論語)』 「미자(微子)유하혜(柳下惠)가 사사(士師)의 직책을 수행하다가 세 번이나 쫓겨나자(三黜) 왜 다른 나라로 떠나가지 않느냐고 어떤 이가 물었는데, 이에 대답하기를 올곧게 도를 행하면서 섬긴다면 어디를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겠는가[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라고 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삼출(蔘朮)

인삼(人蔘)과 백출(白朮). 모두 한약재(韓藥材)로 인삼은 강장제, 백출은 소화제로 널리 쓰인다.

 

삼출도(三黜道)

직도(直道)를 말한다. 옥관(獄官)으로 있던 유하혜(柳下惠)가 세 번이나 쫓겨나면서도(三黜) 직도(直道)를 견지하며 굽히지 않았던 고사에 기인한다. 논어(論語)』 「미자(微子)

 

삼취(三臭)

논어(論語)』 「향당(鄕黨)자로(子路)가 꿩을 잡아 바치자 공자는 세 번 냄새만 맡고 일어났다[子路共之, 三嗅而作].” 하였다.

 

삼탄슬(三嘆瑟)

조촐하면서도 근엄한 여운(餘韻)이 있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청묘(淸廟)의 주악(奏樂)에 쓰는 비파는 붉은 줄을 매고 밑에 구멍을 뚫어 소리가 느리게 나며, 한 사람이 선창하면 겨우 세 사람이 화창할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은 아니나 그 속에는 끝없는 여운이 있다.” 하였다.

 

삼태(三笞)

옛날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 그의 숙부(叔父)인 강숙(康叔)과 함께 입조(入朝)하였다가 아버지인 주공을 세 차례 뵈었는데 번번이 매를 맞았다. 강숙의 제의로 상자(商子)라는 현인(賢人)을 찾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남산(南山)의 양지쪽과 음지쪽에 있는 두 나무를 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보니 남산 양지쪽에는 교()라는 나무가 쳐들려 있었고 음지쪽에는 자()라는 나무가 수그러져 있었다. 백금이 다녀와서 본 대로 말하자 상자는 교는 부도(父道), 자는 자도(子道)를 의미한 것이다.” 말하였다. 백금이 그 이튿날 주공을 뵈올 때 정문에 들어서서는 빨리 걷고 당()에 올라서는 무릎을 꿇자 주공이, “어디서 군자를 만났더냐.” 하고 위로해 주었다. 설원(說苑)』 「건본(建本)

 

삼택방(三宅邦)

자는 원여(元與)이고 일본 가하(加賀) 사람이다.

 

삼통(三通)

군대의 북소리를 말한다. 삼통(三通)의 통은 북을 칠 때 하나의 단락을 이루는 단위 이름으로, 위공병법(衛公兵法) 부오영진(部伍營陳)일출(日出)과 일몰(日沒) 때에 1천 번씩 북을 울리는데, 333번 치는 것을 1()이라 한다.” 하였다.

 

삼파(三巴)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일대 지역인 파군(巴郡), 파동(巴東), 파서(巴西)의 지역을 말한다. 즉 파촉(巴蜀) 지방으로 사천분지(四川盆地)를 가리킨다.

 

삼팔서중종공맹(三八書中宗孔孟)

삼팔은 삼황(三皇)의 일을 기록한 삼분(三墳)과 팔괘(八卦)의 이치를 서술한 팔색(八索)으로 삼분ㆍ오전(五典)과 팔색ㆍ구구(九丘)의 모든 서적을 지칭한 것으로 보이며, 공맹(孔孟)은 공자(孔子)맹자(孟子)를 가리킨 것이다.

 

삼팽(三彭)

삼시신(三尸神)으로, 병마(病魔)가 찾아드는 것을 말한다. 도가(道家)의 설에 의하면, 사람 몸 속에 빌미를 일으키는 세 신이 있어 이를 삼시신이라고 하는데, 경신일(庚申日)마다 사람의 잘못을 천신에게 아뢰면 천신이 그 사람의 수명을 줄인다고 한다.

세 마리의 벌레를 말하는데 삼시(三尸)라고도 한다. 이 벌레가 인체 내에 숨어 있으면서 그 사람의 잘못을 낱낱이 기억했다가 경신일(庚申日)이 되면 그 사람이 잠든 틈을 타 하늘로 올라가서 상제(上帝)에게 그 사실을 다 일러바치기 때문에 도()를 배우는 자는 언제나 경신일이면 잠을 자지 않고 그 벌레가 못 나가도록 하는데, 이를 일러 수경신(守庚申)이라고 하였다. 피서녹화(避暑錄話)

 

삼팽참(三彭讒)

삼팽은 도가(道家)의 말로 인체 중에 있는 세 시신(尸神)을 말하는데, 상충(上蟲)은 뇌속에, 중충(中蟲)은 명당(明堂; 이마), 하충(下蟲)은 배에 있다 한다. 유종원(柳宗元)의 매시충문(罵尸蟲文)도사가 말하기를 사람에게 시충 셋이 있는데 뱃속에 있다가 사람이 조금만 잘못한 것을 보면 경신일에 나가 제에게 참소한다[道士言 人皆有尸蟲三處腹中伺人隱微失誤 日庚申 出讒於帝].” 하였다.

 

삼표(三表)

() 나라 가의(賈誼)가 올린 흉노(匈奴)에 대한 회유책(懷柔策)으로 삼표오이(三表五餌)의 준말이다. 삼표는 인도(仁道)ㆍ상의(常義)ㆍ연낙(然諾)이고, 오이는 이()ㆍ목()ㆍ구()ㆍ복()ㆍ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신서(新書)』 「흉노(匈奴)

 

삼품(三品)

주자(朱子)는 제사 음식용, 빈객 대접용, 주방 비축용이라고 해설하였다.

 

삼풍(三風)

십건(十愆)을 묶어 말한 정사를 그르치는 세 가지 풍인데, 곧 무풍(巫風)ㆍ음풍(淫風)ㆍ난풍(亂風)이다.

 

삼풍십건(三風十愆)

무풍(巫風)ㆍ음풍(淫風)ㆍ난풍(亂風)에 해당한 사항으로서 늘 궁중에서 춤을 추거나 실내에서 술에 취해 노래하면 그것이 무풍이고, 재물 또는 여색에 목숨을 걸거나 놀이와 사냥만을 즐기면 그것이 음풍이며,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충직(忠直)한 이를 거역하고, 덕망 있는 원로를 멀리하고, 완악한 동자를 가까이하면 그것이 난풍이라는 것으로 ()이 후세 자손을 경계하는 뜻에서 관형(官刑) 제도를 두고 이러한 풍습을 제재하였다. 서경(書經)』 「이훈(伊訓)

 

삼하(三河)

낙양(洛陽) 부근의 세 강물을 가리키는 말로, 북방(北方)을 말한다.

중국의 하남(河南)ㆍ하동(河東)ㆍ하북(河北)을 가리킨다. 후한서(後漢書)』 「광무기찬(光武紀贊)

 

삼하(三夏)

음력 사ㆍ오ㆍ륙 삼개월.

 

삼한(三韓)

상고 시대에 우리나라 남부에 있었던 마한(馬韓)ㆍ진한(辰韓)ㆍ변한(弁韓)의 합칭이다.

 

삼한갑족(三韓甲族)

우리나라의 옛적부터 문벌이 높은 집안

 

삼한사온(三寒四溫)

우리나라의 겨울 날씨로, 삼일은 춥고, 나흘은 따뜻한 날씨.

 

삼한외방장(三韓外方丈)

두보(杜甫)의 시 봉증태상장경기(奉贈太常張卿垍)’, “방장산은 삼한 나라 밖이고, 곤륜산은 만국의 서쪽이라네[方丈三韓外 崑崙萬國西].”하였다.

 

삼한지외방장산(三韓之外方丈山)

삼한(三韓)은 마한(馬韓)ㆍ진한(辰韓)ㆍ변한(弁韓)인데, 두보(杜甫)의 시에 방장산은 삼한의 밖에 위치하고, 곤륜산은 만국의 서쪽에 솟아 있네[方丈三韓外 崑崙萬國西].”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3 奉贈太常張卿垍 20

 

삼함(三含)

입을 세 겹으로 봉한다는 뜻으로 말조심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주() 나라에 가서 후직(后稷)의 사당에 들어가면서 보니, 사당 우측계단에 금인(金人)이 서 있는데 그 금인의 입은 세 겹으로 봉해졌고 그 등에는 옛날에 말을 삼가던 사람이다.(古之愼言人也)”고 새겨져 있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

 

삼함각(三緘刻)

말조심하는 사람. 공자(孔子)가 주()의 태묘(太廟)에 갔더니 바른편 뜰 앞에 쇠붙이로 주조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입을 세 군데를 얽어매고는 그 등에다 조각하기를, “옛날에 말을 조심했던 사람이다.”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

 

삼함계금구(三緘戒金口)

설원(說苑)』 「경신(敬愼), “공자(孔子)가 주()에 갔을 때에 태묘(太廟)에서 보니 오른쪽 계단 곁에 금인(金人)이 있었는데, 그 입을 세 겹으로 봉하였으며, 등에다가는 명()하기를, ‘옛날에 말을 삼간 사람이다.’ 하였다.” 하였다. 후대에는 이를 인해 말을 신중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

 

삼합(三合)

()ㆍ지()ㆍ인() 셋이 합하여 덕()을 이룸을 말한다.

 

삼해(三亥)

()의 일진(日辰)이 세 번 든 것인데, 그 해에는 장마가 진다는 말이 있다.

 

삼해주(三亥酒)

음력 정월 상해일(上亥日)에 찹쌀가루로 죽을 쑤어 누룩과 밀가루로 반죽한 다음 독에 넣고, 다시 중해일(中亥日)에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쪄서 독에 넣고, 하해일(下亥日)에 또 흰쌀을 쩌서 독에 넣어 빚은 술인데 춘주(春酒)라고도 한다.

 

삼허(參墟)

삼성(參星) 분야를 말하는데 사천(四川) 지방을 가리킨 것이다.

 

삼헌(三獻)

초 여왕(楚厲王) 때 변화(卞和)가 산중에서 옥박(玉璞)을 얻어 이를 받들고 가서 여왕에게 바치자, 여왕이 옥인(玉人)에게 감정(鑑定)을 시킨 결과, 옥박이 아니고 돌이라 하므로, 여왕이 변화가 임금을 속였다 하여 그의 왼쪽 발꿈치를 베었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한 다음 변화가 다시 그 옥박을 무왕에게 바치자, 역시 옥인에게 감정을 시킨 결과 또 돌이라 하므로, 무왕이 또 변화가 임금을 속였다 하여 그의 오른쪽 발꿈치를 베었다. 그 후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그 옥박을 안고 초산(楚山) 아래에서 3일 낮밤을 울었더니, 문왕이 그 전후 내막을 듣고는 옥인을 시켜 그 옥박을 쪼개어 과연 보배를 얻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삼헌옥(三獻玉)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박옥(璞玉)을 얻어 초 여왕(楚厲王)에게 바쳤더니, 여왕은 속인다고 하여 그의 왼쪽 발꿈치를 잘랐다. 그 후 초 무왕(楚武王)이 즉위하여 다시 바치니, 무왕 역시 그의 오른쪽 발꿈치를 잘랐다. 그 후 초 문왕(楚文王)이 즉위하여 그 옥을 갈게 하였더니 보옥(寶玉)이 되었다 한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삼협(三峽)

사천(四川)ㆍ호북(湖北) 두 성()의 경계에 있는 양자강(揚子江; 長江) 중류의 세 협곡(峽谷). 사천(四川) 봉절(奉節)에서부터 호북(湖北) 의창(宜昌)지역까지의 산악지대를 흐르는 장강 줄기 가운데 가장 험난하기로 이름난 구당협(瞿塘峽)ㆍ무협(巫峽)ㆍ서릉협(西陵峽)을 말한다.

 

삼호(三號)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노담(老聃)이 죽자, 친구 진일(秦佚)이 세 번 호곡하고(三號) 나왔다.” 하였다.

 

삼호(三壺)

전설 속에 나오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봉래산(蓬萊山)ㆍ방장산(方丈山)ㆍ영주산(瀛洲山)을 말한다. 이 산들은 발해(渤海) 바다 가운데 있는데, 신선들이 살고 불사약(不死藥)이 있으며, 새와 짐승이 모두 희고 궁궐이 황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삼호(三戶)

()의 삼대성(三大姓)인 소()ㆍ굴()ㆍ경()인데 여기는 초의 유장(遺將)인 항량(項梁)항우(項羽)를 말한다. 사기(史記)』 「항우기(項羽紀)초가 비록 유민밖에 남지 않았지만 진()을 멸망시킬 자는 반드시 초의 사람이다[楚雖三戶, 亡秦必楚].” 하였다.

 

삼호(參乎)

효성스럽고 우애로운 사람을 말한다. 삼은 증자(曾子)의 이름으로, 공자가 증자를 부를 때 이렇게 불렀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었느니라[參乎! 吾道一以貫之].”라는 말이 있다. 논어(論語)』 「이인(里仁)위령공(衛靈公)

 

삼호가보(三戶可報)

전국(戰國) 말년에 진 나라에서 초 회왕(楚懷王)을 속여서 청하였다가 붙잡아 보내지 아니하고, 그 곳에서 죽었으므로 초 나라 사람이 진 나라에 대한 원한이 매우 깊었다. 그러므로 당시에, “초 나라가 비록 세집(三戶)이라도 진 나라를 망치는 것은 반드시 초 나라일 것이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뒤에 초 나라 항우(項羽)가 군사를 이끌고 삼호(三戶; 지명)를 건넜으니, 그 말이 예언(豫言)이 된 것이다.

 

삼화(三花)

패다수(貝多樹)를 이른다. 패다수는 1년에 꽃이 세 번 피므로 삼화수(三花樹)로 불리운다.

 

삼화수(三花樹)

1년에 꽃이 세 번 피는 나무라는 뜻으로 패다수(貝多樹)를 말한다. 운급칠첨(雲笈七籤), “역시 모두 유리(琉璃)요 수정(水晶)인데, 그 속에는 삼화(三花)의 나무와 오색(五色)의 열매가 있었다.” 하였다.

 

삼화수(三花樹)

인도(印度)에서 나는 패다수(貝多樹)의 이명(異名)으로 이 나무는 1년에 꽃이 세 번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백(李白)이 오애산(五崖山)으로 들어가는 자기 숙부를 전송한 시에 가실 때 응당 숭소 사이를 들르시리니, 날 생각하여 삼화수를 꺾어 보내소서[去時應過嵩少間 相思爲折三花樹].” 한 데서 온 말이다. 이태백집(李太白集)卷七

 

삼황(三皇)

태고 시대 전설적인 성왕(聖王)으로 즉 천황(天皇)ㆍ지황(地皇)ㆍ인황(人皇)을 말하는데, 천황씨는 형제 12인이 각각 18천세 씩 왕위를 누리었고, 지황씨 또한 형제 11인이 각각 18천세씩 왕위를 누렸다 한다. 사략(史略)卷一 / 상고 시대(上古時代)의 세 황제로 천황(天皇)ㆍ지황(地皇)ㆍ인황(人皇)이라고도 하며, 태호 복희씨(太昊伏羲氏)ㆍ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ㆍ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라고도 한다.

 

삼황강삼치(三皇降三畤)

삼황이 삼치(三畤)에 내린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으나, 설문(說文)()천지(天地)오제(五帝)에게 제사하는 땅이다. 우부풍(右扶風) ()에 오치(五畤)가 있는데, 호치(好畤)와 녹치(鄜畤)는 다 황제(黃帝) 때에 쌓았다 하고 혹은 진 문공(秦文公)이 세웠다고 한다.” 하였다.

 

삼홍(三紅)

() 나라 때 응자화(應子和)가 시를 잘하여 일찍이 남쪽 언덕의 석양빛 붉어라[兩岸夕陽紅]’, ‘납의 불꽃이 짧게 타오르나 붉구나[蠟炬短燒紅]’, ‘바람이 불자 낙화 붉어지네[風過落花紅]’란 세 명구(名句)를 지어 당시 사람들에게 삼홍수재(三紅秀才)로 일컬어졌던 데서 온 말이다. 山堂肆考103 三影先生/ 인용: 江上女子歌(이광정)

 

삼회곡구방천앵(三回谷口放遷鶯)

세 번 과거의 시관(試官)으로 급제자들을 뽑았음을 말한다.

 

삼후(三嗅)

두보(杜甫)의 시 추우탄(秋雨歎), “당상의 서생 괜히 머리만 세었기에, 바람 따라 몇 번이고 향내 맡고 우누나[堂上書生空白頭 臨風三嗅馨香泣].”하였다

 

삼훈욕(三薰浴)

향초를 넣어 끓인 물에 머리를 감고 또 몸에 향수를 수차 발라서 몸을 맑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삼휴(三休)

사람이 휴식하여야 할 세 가지 조건. 삼휴는 당() 나라 시인 사공도(司空圖) 호로, 만년에 중조산(中條山) 왕관곡(王官谷)에 정자를 짓고 이를 삼휴정(三休亭)이라 이름하고 은거했던 데서 온 말이다. 즉 재능을 헤아린 결과(量才) 이것이 첫 번째 휴식해야 할 조건이요, 분수를 헤아린 결과[揣分] 이것이 두 번째 휴식해야 할 조건이며, 늙어서 귀가 어두운 것(耄聵)이 세 번째 휴식해야 할 조건이라고 하였다. 당서(唐書)』 「탁행전(卓行傳)

세 번 휴식한다는 말이다. 하손칠소(何遜七召)걷다가 세 번 휴식하니 반도 못 되고 길은 중간에서 자면서 바야흐로 희미해졌네.” 하였는데, 여기서는 도학의 길이 쉽지 않으니 쉬어가면서 차분히 간다는 뜻이다.

 

삼희(三希)

성인은 하늘같이 되기를 바라고[聖希天], 현인은 성인같이 되기를 바라고[賢希聖], 선비는 현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士希賢]을 세 가지 바람이라고 한다. 통서(通書)』 「지학(志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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