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 홍
홍간조오객(虹竿釣鼇客)
당 나라 이백(李白)을 칭하는 말이다. 전하여 인품이 호매(豪邁)함을 비유한다. 당 나라 개원(開元) 연간에 이백이 재상(宰相)을 찾아뵙고 쪽지에다 “바다에서 자라 낚는 나그네[海上釣鼇客].”라고 써 바쳤다. 재상이 묻기를 “선생은 자라를 낚을 때 낚싯줄을 무엇으로 합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무지개로 낚싯줄을 삼습니다.” 하였다.
홍개정(洪介亭)
개정은 청 나라 홍점전(洪占銓)의 호이다.
홍거절(鴻擧絶)
한(漢) 나라 고조(高祖)가 척부인(戚夫人)의 아들을 사랑하여 태자를 바꾸려 하였다가 상산(商山)의 사호(四皓)가 와서 태자를 보호하는 것을 보고 척부인에게 말하기를, “이제는 태자에게 우익(羽翼)이 생겼으니 움직이기 어렵다.” 하고 노래를 부르기를, “기러기가 높이 날았으니 그물을 칠 수 없네.” 하였다.
홍격기적(鴻隙譏翟)
『한서(漢書)』 권84 「적방진전(翟方進傳)」에 “적방진이 승상이 되어서 여남(汝南)의 홍격파(鴻隙陂)를 허물도록 아뢰었으므로, 관개(灌漑)와 어별(魚鼈)의 다대한 이익을 받고 있던 고을 사람들이 무척이나 원망하였다.” 하였다.
홍경(弘景)
남북조(南北朝) 시대 양(梁) 나라의 은사. 남제 고제(南齊高帝) 때에 제왕(諸王)의 시독(侍讀)이 되었다가 뒤에 구곡산(句曲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는데, 양 무제(梁武帝)가 즉위한 뒤에는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그에게 자문을 하였으므로, 당시에 산중재상(山中宰相)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양서(梁書)』 卷五十一
홍경망(洪景望)
경망(景望)은 홍방(洪雱)의 자(字)이다.
홍경비(弘慶碑)
고려 현종(顯宗)이 병부 상서(兵部尙書) 강민첨(姜民瞻)을 시켜 절을 짓게 하고 이름을 봉선홍경사라 내리는 동시에 비를 세워 한림학사 최충(崔冲)을 명하여 글을 짓게 하였는데 지금은 절은 없어지고 비만 남았음. 백광훈(白光勳)의 “秋草前朝事 殘碑學士文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이라는 시가 있다.
홍경사(弘慶寺)
고려 추숭왕(追崇王) 안종(安宗)의 원당(願堂)을 말한다.
홍경사비(弘慶寺碑)
고려 현종(顯宗)이 직산(稷山) 북쪽 15리 지점에 승려 형긍(逈兢)에게 명하여 사찰을 건립하게 하고, 병부 상서 강민첨(姜民瞻) 등에게 감독을 명하여 2백여 칸의 거찰(巨刹)을 세우게 한 뒤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의 이름을 내렸는데, 그 뒤 절은 없어지고 한림학사(翰林學士) 최충(崔冲)이 글을 지은 비석만 남아 있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卷16 「직산현(稷山縣)」
홍계통(洪季通)
계통(季通)은 홍명형(洪命亨)의 자(字)이다.
홍곡(鴻鵠)
『맹자(孟子)』 「고자(告子)」 上에,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는데, 한 사람은 전심치지(專心致志)하여 혁추(奕秋)의 시키는 것만 듣고, 한 사람은 홍곡(鴻鵠)이 날아온다면 활을 당겨서 쏠 것만 생각한다.” 하였다. 마음에 다른 것을 생각하는 비유.
홍곡영렴연작기(鴻鵠寧嬚燕雀欺)
훌륭한 사람은 못난 사람의 업신여김을 개의치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연작은 제비나 참새 따위의 작은 새이며 홍곡(鴻鵠)은 큰 새이다. 옛날 진승(陳勝)은 자기의 뜻을 몰라주는 사람에게 “연작이 어떻게 홍곡의 뜻을 알겠는가?[燕雀安知鴻鵠之志哉]” 하였다. 『한서(漢書)』 卷三十一 「진승전(陳勝傳)」
홍관일(虹貫日)
백홍관일(白虹貫日)의 흉조(凶兆)를 말한다. 흰 무지개는 병란(兵亂)을 상징하고 해는 임금 즉 국가를 상징한다.
홍교(虹橋)
①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다리로 이 지역은 옛날 초(楚) 나라의 땅이었다.
② 무지개 모양처럼 굽은 다리. 또는 무지개 다리로 신선들이 다니는 다리이다.
홍군(紅裙)
붉은 치마, 즉 기녀(妓女)를 지칭하는 말이다.
홍기(紅旗)
작전용 군기(軍旗)를 말한다.
홍노(洪爐)
큰 용광로로, 만물을 생성하는 본원(本源)을 말한다.
홍농도하(弘農渡河)
태수가 선정을 하여 호랑이가 강을 건너 피해감. 진(晉)의 유곤(劉琨)이 홍농 태수(弘農太守)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호랑이가 새끼를 업고 그를 피해 황하를 건너갔다고 한다. 『연감유함(淵鑑類函)』
홍니(紅泥)
붉은 찰흙. 한(漢)나라 때 황제가 내리는 조서는 붉은 찰흙으로 봉함을 하였다 하여 흔히 왕이 내리는 글을 말한다.
홍니(鴻泥)
설리홍조(雪裏鴻爪)의 약칭인데 행종(行蹤)이 정처 없이 우연히 서로 만난 것을 이른다. 소식의 「화자유민지회구시(和子由澠池懷舊詩)」에 “人生到處知何事 應是飛鴻蹈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라 하였다.
홍당(哄堂)
어사대의 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한꺼번에 떠들썩하게 웃는 것을 말한다.
홍대(紅帶)
고려 때 4품 이상의 문관(文官)이 띠던 띠로 정대를 말한다.
홍도(鴻都)
한(漢) 나라 때의 문명(門名)인데, 영제(靈帝) 때에 그 안에 학궁을 설치하고 제생(諸生)을 모집하였는바, 척독(尺牘)ㆍ사부(詞賦) 등을 가지고 천여 명이나 시험을 보았고, 홍도문 학사(鴻都門學士)를 두어 학문을 숭상하게 되었다 한다. 『후한서(後漢書)』 「영제기(靈帝紀)」
홍도설니(鴻蹈雪泥)
생각없이 우연히 지나쳐 온 과거의 행적을 말한다. 소동파(蘇東坡)의 시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에 “지나온 인생길 뭐와 비슷하다 할까, 눈 밭 위의 기러기 발자국 같다 하리. 눈 위에 우연히 흔적을 남겼을 뿐, 기러기 다시 날면 동으로 갈지 서로 갈지[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蹈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홍두(紅兜)
청나라 때 관리들이 쓰던 진홍색 모자, 또는 그 모자를 쓴 관리를 말한다. 『몽경당일사(夢經堂日史)』의 「자금쇄술(紫禁瑣述)」 12월 21일 기사에, “朝官들의 모자로는 위를 두꺼운 진홍색 융사(絨絲)로 덮어서 그 빛깔이 아주 고우니, 紅兜라는 것이 이것인가 싶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홍라(紅羅)
명 나라의 별칭이다.
홍라기성(紅羅記姓)
무관(武官)이 되었음을 말한다. 송(宋) 나라 때 악비(岳飛)가 장군이 되어 역적 이성(李成)을 토벌할 적에 붉은 비단으로 기치(旗幟)를 삼고 그 위에다 자기의 성인 악(岳) 자를 수놓아가지고 출전했던 데서 온 말이다. 『송사(宋史)』 卷三百六十五
홍려(鴻臚)
중국 조정의 조하(朝賀)나 경조(慶弔)의 의식 때 그 의식의 진행을 맡은 관직이다.
홍려시(鴻臚寺)
외교를 맡은 직책이다.
홍련녹수막중빈(紅蓮綠水幕中賓)
남제(南齊) 유고지(庾杲之)가 왕검(王儉)의 위군 장사(衛軍長史)가 되었을 때 당시에 왕검의 막부를 연화지(蓮花池)에 비겼으므로, 안륙후(安陸侯) 소면(蕭沔)이 이를 찬미하여 말하기를 “유경행이 녹수에 떠서 부용에 기대고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庾景行 汎綠水 依芙蓉 何其麗也].”라고 했던 고사가 있다. 경행(景行)은 유고지의 자(字)이다.
홍련막(紅蓮幕)
막부(幕府)를 말한다. 『남사(南史)』 제49권 유고지전(庾杲之傳)에, “왕검(王儉)이 유고지를 위장군장사(衛將軍長史)로 삼으니, 안륙후(安陸侯) 소면(蕭緬)이 왕검에게 편지를 보내어서 말하기를, ‘막부의 원료(元僚)는 참으로 선발하기가 어려운데 유경행(庾景行)이 푸른 물에 떠다니다가 부용꽃에 의지하게 되었으니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왕검의 막부를 연화지(蓮花池)라고 하였으므로 소면이 글을 보내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하였는데, 후대에는 홍련막을 막부의 미칭으로 쓰게 되었다.
홍련막리빈(紅蓮幕裏賓)
훌륭한 상부(相府)의 막료(幕僚)를 비유한 말로, 전하여 일반적으로 대신의 막료의 뜻으로 쓰이다. 진(晉) 나라 때 재상 왕검(王儉)이 유고지(庾杲之)를 장사(長史)로 삼자, 소면(蕭緬)이 왕검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성부(盛府)의 원료(元僚)는 실로 선발하기 어려운데, 유고지의 인품은 마치 ‘푸른 물에 떠서 연꽃에 의지한 것(泛綠水依芙蓉)’ 같으니, 어찌 그리도 화려한가.”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왕검의 상부를 연화지(蓮花池)라 하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남사(南史)』 「유경지전(庾杲之傳)」
홍렬(鴻烈)
서명. 홍렬훈(鴻烈訓)의 약인데, 즉 『회남자(淮南子)』이다.
홍로(洪爐)
큰 용광로로, 만물을 생성하는 본원(本源)을 말한다.
홍로(鴻臚)
각종 의식(儀式)을 관장하는 아문인 통례원(通禮院)의 이칭이다.
홍로(洪鑪)
큰 용광로로,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지금 천지(天地)를 큰 용광로로 생각하고 조물주를 훌륭한 야금(冶金)쟁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디로 가든 안 될 것이 있겠는가[今一以天地爲大罏, 以造化爲大冶, 惡乎往而不可哉].” 하였다.
홍로점설(紅爐點雪)
홀로상일점설(紅爐上一點雪)의 준말이다. 뜨거운 불길 위에 한 점 눈을 뿌리면 순식간에 녹듯이 사욕이나 의혹이 일시에 꺼져 없어지고 마음이 탁 트여 맑음을 일컫는 말이다. 크나큰 일에 작은 힘이 조금도 보람이 없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홍록현(紅綠眩)
대단히 취하여 물건의 빛깔을 잘 구별하지 못하게 됨을 이른다. 소식(蘇軾)의 시에 “나는 취해서 아무 것도 알 수 없어 홍록의 빛 아른거림만 느끼었네[我醉都不知 但覺紅綠眩]”하였다.
홍루(紅淚)
여인의 눈물을 가리킨다.
홍류적(鴻留迹)
정처없이 떠도는 인생의 허무한 자취를 말한다. 소식(蘇軾)의 “떠도는 인생살이 무엇과 같다 할꼬, 눈 위에 찍힌 기러기의 발자국. 우연히 발톱 자욱 남겨 놓고는, 날아가면 어찌 다시 동서남북 따지리요[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蹈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라는 시구에서 나온 것이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3 和子由澠池懷舊
홍류화저(虹流華渚)
세자가 태어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온자승순묘비(溫子昇舜廟碑)」에 “무지개 기운 신령을 내려 요씨의 터에 성인이 탄생되었다.”는 말이 있다.
홍릉담(紅綾餤)
당(唐) 나라 희종(僖宗)이 바야흐로 떡을 먹다가 그때 진사(進士)들이 곡강(曲江)에서 문희연(聞喜宴)을 한다는 말을 듣고 어주(御廚)에 명하여 사람 수효대로 각기 홍릉병담(紅綾餠餤)을 하사했다.
홍릉병(紅綾餠)
붉은 비단으로 겉을 싼 맛좋은 떡의 일종으로 중국의 왕이나 고관 귀족의 집안에서 주로 먹었다.
홍린약빙(紅鱗躍氷)
효성이 지극함을 말한다. 『진서(晉書)』 권49에 “왕상은 효도가 극진하였는데, 어머니가 겨울에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므로 강에 가서 옷을 벗고 얼음 깨고 고기를 잡으려 하자, 잉어 두 마리가 얼음 위로 뛰어나왔다.” 하였다.
홍매(洪邁)
송 나라 반양(鄱陽) 사람으로 자는 경로(景盧), 호는 용재(容齋)이다. 경(經)ㆍ사(史)ㆍ백가(百家)와 의학ㆍ복서ㆍ천문ㆍ산술 등 서적을 두루 읽었으며 효종(孝宗) 때 단명전 학사(端明殿學士)가 되었다.
홍면숙(洪勉叔)
면숙(勉叔)은 홍무적(洪茂績)의 자(字)이다.
홍명익(鴻冥弋)
벼슬을 우습게 보는 고사(高士)의 비유이다. 가물가물 나는 기러기를 활 쏘는 사람이 어찌 잡으랴. 『법언(法言)』
홍모(鴻毛)
기러기 털로, 아주 가벼운 것을 말한다.
홍모척(鴻毛擲)
기러기털을 집어던졌다는 것은 더없이 귀중한 목숨을 사물 가운데 가장 가볍다는 기러기털처럼 여겨 미련없이 버렸다는 것이다.
홍몽(鴻濛)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천지의 원기, 혹은 그와 같은 혼돈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나 하늘을 뜻하기도 한다.
홍무(洪武)
명 태조(明太祖)의 연호이다.
홍무체(洪武體)
홍무(洪武)는 명 나라 태조의 연호로, 그때 새로 나온 서체라는 뜻이다.
홍문관(弘文館)
궁중의 경서(經書)ㆍ사적(史籍)ㆍ문한(文翰), 문서의 관리 및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일을 관 장하던 관서로, 예조의 속아문.
이칭은 옥당(玉堂)ㆍ옥서(玉署)ㆍ영각(瀛閣)ㆍ서서원(瑞書院)ㆍ청연각(淸燕閣)
관원은 다음의 표와 같다.
품계 | 관직 | 정원 | 비고 |
정1품 | 영사(領事) | 1명 | 의정(議政) |
정2품 | 대제학(大提學) | 1명 | 겸직 |
종2품 | 제학(提學) | 1명 | 겸직 |
정3품 | 부제학(副提學) | 1명 | |
정3품 | 직제학(直提學) | 1명 | |
종3품 | 전한(典翰) | 1명 | |
정4품 | 응교(應敎) | 1명 | |
종4품 | 부응교(副應敎) | 1명 | |
정5품 | 교리(校理) | 2명 | |
종5품 | 부교리(副校理) | 2명 | |
정6품 | 수찬(修撰) | 2명 | |
종6품 | 부수찬(副修撰) | 2명 | |
정7품 | 박사(博士) | 1명 | |
정8품 | 저작(著作) | 1명 | |
정9품 | 정자(正字) | 3명 | |
**조선시대 청요직(淸要職)의 상징
「홍범(洪範)」
『서경(書經)』의 편명. 홍(洪)은 대(大), 범(範)은 법(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큰 법이라는 뜻이다. 기자가 주 무왕(周武王)에게 진술한 것인데, 모두 9조목으로 되어 있어 홍범구주(洪範九疇)라 칭한다.
홍범구주(洪範九疇)
홍범은 『서경(書經)』의 편명(篇名)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법이란 뜻이며, 구주는 아홉 가지 무리란 뜻으로 옛날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낙수(洛水)에서 거북이가 나왔는데 그 등에 1에서 9까지의 점이 그려져 있었다 한다. 그리하여 이것을 보고 홍범 구주를 만들었다 하는데, 첫번째는 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ㆍ토(土)의 오행(五行)이고, 두 번째는 모(貌)ㆍ언(言)ㆍ시(視)ㆍ청(廳)ㆍ사(思)의 오사(五事)이며, 세 번째는 식(食)ㆍ화(貨)ㆍ사(祀)ㆍ사공(司空)ㆍ사도(司徒)ㆍ사구(司寇)ㆍ빈(賓)ㆍ사(師)의 팔정(八政)이고, 네 번째는 세(歲)ㆍ월(月)ㆍ일(日)ㆍ성신(星辰)ㆍ역수(曆數)의 오기(五紀)이며, 다섯 번째는 황극(皇極)이고, 여섯 번째는 정직(正直)ㆍ강극(剛克)ㆍ유극(柔克)의 삼덕(三德)이며, 일곱 번째는 우(雨)ㆍ제(霽)ㆍ몽(蒙)ㆍ역(驛)ㆍ극(克)ㆍ정(貞)ㆍ회(悔)의 계의(稽疑)이고, 여덟 번째는 우(雨)ㆍ양(暘)ㆍ욱(燠)ㆍ한(寒)ㆍ풍(風)ㆍ시(時)의 서징(庶徵)이며, 아홉 번째는 수(壽)ㆍ부(富)ㆍ강녕(康寧)ㆍ유호덕(攸好德)ㆍ고종명(考終命)의 오복(五福)과 흉단절(凶短折)ㆍ병(病)ㆍ우(憂)ㆍ빈(貧)ㆍ악(惡)ㆍ약(弱)의 육극(六極)이다.
홍범수(洪範數)
『서경(書經)』 홍범의 아홉 조항의 수를 말하는데, 그 아홉 조항은 곧 오행(五行), 오사(五事), 팔정(八政), 오기(五紀), 황극(皇極), 삼덕(三德), 계의(稽疑), 서징(庶徵), 오복(五福)이다.
홍벽천구(弘璧天球)
홍벽(弘璧)과 천구(天球)는 다 아주 귀중한 보옥(寶玉) 이름인데, 즉 그런 귀중한 보옥처럼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뜻이다.
홍보(鴻寶)
한(韓) 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베개 속에 비장(祕藏)했다는 도술서(道術書), 즉 홍보원비서(鴻寶苑祕書)를 말한다. 이 책에는 신선이 귀신을 시켜 금단(金丹)을 만드는 방술이 적혀 있다고 한다.
홍부(紅腐)
오래되어서 붉게 썩은 곡식을 말한다. 『한서(漢書)』 가연지전(賈捐之傳)에 “태창의 곡식이 붉게 썩어서 먹을 수 없다.” 한 말이 있다.
홍불자(洪佛子)
송 나라 선화 연간에 홍호가 쌀을 풀어 6만 5천 사람을 살리매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손을 이마에 얹으며 불자라고 불렀다. 만년에,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봉양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되, “경의 뜻이 임금을 잊지 않거늘 어찌 짐을 버리고 가는가.” 하였다.
홍비명명(鴻飛冥冥)
기러기가 까마득하게 난다는 말은, 높이 초월하거나 멀리 가는 사람에게 비유하여 쓰는 말이다. 양자(揚子)의 『법언(法言)』에, “기러기가 아득아득 날아가니 활 쏘는 사람이 어찌 잡을소냐[鴻飛冥冥 弋人何簒焉].” 한 것에 보이는데, 즉 어지러운 세상을 미리 보고 벼슬자리를 떠나는 것을 비유한다.
홍비명원음(虹飛明遠飮)
한 나라 때 무지개가 내려와 궁중의 샘물을 다 마시는 바람에 물이 고갈되었다는 고사가 전하는데, 이런 현상은 재해(災害)가 앞으로 없어지는 상서(祥瑞)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서(漢書)』 武五子 「연자왕단전(燕刺王旦傳)」
홍비준저(鴻飛遵渚)
얼마 후에는 조정으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말한다. 『시경(詩經)』 빈풍(幽風) 「구역(九罭)」에 “기러기는 날아서 물가를 따르나니 공이 돌아갈 곳이 없으랴[鴻飛遵渚 公歸無所].”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주공(周公)이 동산(東山)에 가 있을 적에, 동인(東人)들이 주공이 곧 그 곳을 떠나 조정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서로 주공을 그리워하여 부른 노래다.
홍사미(虹沙彌)
무지개 사미란 말로, 고려 때 미천한 소생으로서 중이 된 왕자, 즉 소군(小君)을 가리킨다. 무지개는 한 끝은 땅에 닿고, 한 끝은 하늘에 닿기 때문에 소군은 왕자이기는 하나 어미가 천함을 비유한 것이다. 사미(沙彌)는 출가(出家)하여 십계(十戒)를 받은 남자를 말한다.
홍사신(洪士信)
사신(士信)은 홍여순(洪汝諄)의 자(字)이다.
홍삼(紅衫)
오난설(吳蘭雪)의 시화(詩畵)에 “홍삼배화(紅袗拜花)”가 있으므로 그를 가리킨다.
홍상(紅裳)
아름다운 여자
홍설(紅雪)
복숭아꽃을 표현한 말이다.
홍섬(洪暹)
자는 퇴지(退之), 호는 인재(忍齋).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문장에 능하고 경서(經書)에 밝았음. 저서에는 인재집(忍齋集)ㆍ인재잡록(忍齋雜錄)이 있다. 의정(議政)까지 되었으며 82세의 나이로 죽었다.
홍성민(洪聖民)
자는 시가(時可), 호는 졸옹(拙翁)으로 찬성까지 되었으며 59세의 나이로 죽었다.
홍속(紅粟)
① 오래 저장한 나머지 썩어서 붉게 변한 미곡이다. 보통 시에서는 풍부한 물자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② 큰 창고에 듬뿍 쌓여 빨갛게 썩어 가는 곡물을 말한다.
홍수(紅袖)
송(宋) 나라 때 위야(魏野)가 구준(寇準)과 함께 어느 절에 가 놀면서 똑같이 시를 써 붙여 놓았다가, 뒤에 다시 함께 그 절을 찾아가 보니, 구준의 시는 푸른 깁으로 잘 싸서 보관하고 있고, 자신의 시는 먼지가 잔뜩 낀 채 그대로 있으므로, 그들을 따라갔던 관기(官妓)가 붉은 소매로 그 먼지를 털어 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홍숙경(洪叔京)
숙경(叔京)은 홍호(洪鎬)의 자(字)이다.
홍술(洪術)
고려 초기의 의성부(義城府)의 성주(城主)인 김홍술(金洪術)을 가리키는데, 왕 태조(王太祖) 12년에 견훤(甄萱)의 군대가 의성에 쳐들어와 김홍술이 전사하자, 왕 태조가 울면서 자신의 팔을 잃었다고 애통해 했다 한다.
홍승(紅繩)
‘붉은 색 노끈’이란 말로, ‘남녀의 인연을 맺음’을 말한다. 당(唐)나라 2대 황제인 태종(太宗)때 위고(韋固)라는 젊은이가 여행 중에 송성(宋城)에 갔는데 때 달빛 아래 한 노인[月下老]이 손에 붉은 색 노끈을 들고서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위고가 “무슨 책을 읽고 있습니까?” 하고 묻자 그 노인이 “이 세상 혼사(婚事)에 관한 책일세. 이 책에 적혀 있는 남녀를 이 빨간 끈으로 한 번 매어 놓으면 어떤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네.” 하였다. 『속현괴담(續玄怪錄)』 「정혼점(定婚店)」 / 인용: 女史行(이규상)
홍시(鴻視)
공자(孔子)가 위령공(衛靈公)과 이야기하는데, 위령공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날아가는 기러기를 쳐다보므로 공자는 곧 위(衛)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로 갔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홍아(紅牙)
붉은 향나무로 만든 악기로, 악곡의 장단을 조절하기 위해 치는 널판지이다.
홍안선왕(鴻鴈宣王)
『시경(詩經)』 소아(小雅) 「홍안(鴻雁)」장은 주나라 선왕(宣王)이 국가를 중흥시킨 업적을 찬양한 시이다.
홍안소년(紅顔少年)
‘나이가 젊고 얼굴이 곱게 생긴 남자’를 지칭한다.
홍안택중음(鴻雁澤中吟)
유민(流民)이 배고파 우는 참상을 기러기 소리에 비긴 것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홍안(鴻雁)」에 “기러기 날아와 못 가운데 모였다……기러기 날아와 슬피 울어대네……” 하였는데 집전(集傳)에는 “유민이 기러기의 슬피 우는 모습을 자신의 처지에 비겨서 이 시를 만든 것이다.” 하였다.
홍애(洪崖)
서산(西山)에 있는 큰 절벽을 말하는데, 여기에 은거했던 상고(上古)의 선인(仙人) 홍애 선생(洪崖先生)이 일컫기도 한다.
홍애견박(洪崖肩拍)
홍애(洪崖)는 옛날 신선(神仙)의 이름인데, 『문선(文選)』 「곽박유선시(郭璞遊仙詩)」에 “왼손으로 부구(浮丘)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홍애(洪崖)의 어깨를 친다.” 하였다.
홍애자(洪厓子)
보통 홍애 선생(洪厓先生)으로 불리는 상고(上古)의 선인(仙人)이다. 위숙경(衛叔卿)이 몇 사람과 장기를 두었는데, 그 아들 도세(度世)가 “아까 장기를 둔 분은 누구입니까?”하고 묻자, 바로 홍애 선생이었다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신선전(神仙傳)」 二 「위숙경(衛叔卿)」
홍애자(洪厓子)
홍애선생(洪崖先生)이라고도 하는 상고의 선인(仙人)을 가리킨다.
홍약(紅藥)
사조(謝眺)가 중서성(中書省)에서 지은 중서성입직시(中書省入直詩)에, “붉은 작약꽃은 뜰에서 펄럭인다[紅藥當階翻].”는 구(句)가 있다. 당 나라 때 중서성이 궁문의 서쪽에 있었다.
홍연(弘演)
춘추시대(春秋時代) 위 의공(衛懿公)의 충신인데, 그가 타국에 사신 간 동안에 적인(狄人)이 쳐들어와서 위 의공을 죽이어 그의 살을 다 먹어 버리고 간(肝)만을 남겨 놓았으므로, 홍연이 돌아와서는 의공의 간을 향해 복명을 한 다음, 자기의 배를 갈라 뱃속의 것들을 모두 꺼내고 임금의 간을 자기 뱃속에 넣고 죽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卷十一 「충렴(忠廉)」
홍연대소(哄然大笑)
입을 크게 벌리고 떠들썩하게 껄껄 웃는 큰 웃음
홍엽제시(紅葉題詩)
당 희종(唐僖宗) 때 우우(于祐)가 어구(御溝)에서 시(詩)가 적힌 붉은 나뭇잎 하나를 주웠는데, 그 시에 “흐르는 물은 어이 그리 급한고, 깊은 궁중은 종일토록 한가롭네. 다정히도 붉은 잎새 작별하나니, 인간이 있는 곳으로 잘 가거라[流水何太急 深官盡日閒 殷勤謝紅葉 好去到人間].” 하였으므로, 우우 역시 붉은 나뭇잎에다 “일찍이 나뭇잎에 깊은 원망 쓴 것을 보았나니, 나뭇잎에 시 써서 누구에게 부쳤던고?[曾聞葉上題紅怨 葉上題詩寄阿誰].”라는 시를 써서 다시 어구에 흘려 보낸 결과, 이 시는 당시 궁녀(宮女)였던 한 부인(韓夫人)이 주웠다. 그런데 뒤에 희종이 궁녀들을 풀어 시집을 보내게 되자, 공교롭게 우우와 한 부인이 서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홍우(紅雨)
붉은 꽃잎이 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형용한 표현한 것이다.
홍우점(鴻羽漸)
기러기가 날 때 서서히 상승하듯이 벼슬이 점점 올라감을 말한다. / 유의어: 홍점(鴻漸).
홍우정(洪宇定)
조선조 선조~효종 연간의 지사(志士)로 자는 정이(靜而), 호는 두곡(杜谷). 조정에서 누차 벼슬에 임명했으나 끝내 나가지 않고 영남 문수산(文殊山)에 은거, 생애를 마침. 저서에는 두곡집(杜谷集)이 있다.
홍운(紅雲)
제왕을 상징한다. 하늘의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홍색 구름이 감싸고 있다고 한다. 『익성기(翼聖記)』
홍운봉일상(紅雲捧日上)
황제의 궁궐을 가리킨다. 선인(仙人)이 사는 곳에는 늘 붉은 구름이 에워싸고 있다고 한다. 소식(蘇軾)의 시에 “侍臣鵠立通明殿 一朶紅雲捧玉皇”이라는 구절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36 上元侍飮樓上三首呈同列
홍운전(紅雲殿)
옥황상제의 궁궐로, 늘 붉은 구름으로 에워싸여 있다고 한다.
홍운전각(紅雲殿閣)
황제의 궁성(宮城)을 가리킨다. 선인(仙人)이 사는 곳에는 늘 붉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홍원로(洪元老)
원로(元老)는 홍명구(洪命耈)의 자(字)이다.
홍유보불(弘儒黼黻)
홍유(弘儒)는 신라의 명유(名儒) 설총(薛聰). 보불은 관복(官服)에 수놓은 무늬인데 곧 훌륭한 예악문물(禮樂文物)을 가리킨다.
홍유손(洪裕孫)
자는 여경(餘慶), 호는 소총(篠叢). 조선조 세조가 찬위(簒位)하자 세속의 영화를 버리고 남효온(南孝溫)ㆍ이총(李摠) 등과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자처 노장(老莊)을 토론하며 시주(詩酒)로 세일을 보내어 청담파(淸談派)로 일컬어졌음.
홍유효법곤(鴻猷效法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상에 “지혜는 높이는 것이요, 예법은 낮추는 것이니, 높이는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낮추는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다[知崇禮卑 崇效天 卑法地].”라는 말이 나온다.
홍의(紅衣)
천주교(天主敎)를 말한 것. / 유의어: 홍의주교(紅衣主敎).
홍이상(洪二相)
고려 후기 문신인 홍언박(洪彦博)을 가리킨다.
홍이포(紅夷砲)
성능이 우수한 대포를 말한다. 홍이(紅夷)는 안남(安南)의 서쪽에 있는 나라로 대포를 잘 만들었다.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국조(國祖) 단군의 건국이념으로 고조선개국 이래 우리나라 정치, 교육의 기본정신이다.
홍일점(紅一點)
푸른 잎 가운데 오직 한 송이 붉은 꽃이 피어 있는 것, 혹은 여럿 속에서 오직 하나 특별한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많은 남자들 사이에 단 한 사람뿐인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다.
홍자(紅紫)
홍색(紅色)과 자색(紫色)의 꽃을 말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간색(間色)인 보랏빛이 정색(正色)인 적색(赤色)의 지위를 침범하는 것이 보기 싫고, 음란한 정(鄭) 나라 노래가 아악(雅樂)을 어지럽히는 것이 밉다[惡紫之奪朱也, 惡鄭聲之亂雅樂也].”는 공자(孔子)의 말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 ‘홍자탈주(紅紫奪朱)’라는 성어(成語)가 나오게 되었다.
홍장(紅粧)
‘어여쁜 여인’을 의미하는 말이다.
홍점(鴻漸)
① “기러기가 점점 나아간다[鴻漸].”는 말이 『주역(周易)』 「점괘(漸卦)」에 있으며, 벼슬이 아래로부터 위로 차츰 올라감을 비유하였다.
② 당 나라 육우(陸羽)의 자인데 상저옹(桑苧翁)이라 자호하였다. 태상시 태축(太常寺太祝)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아니하고 두문 저서(杜門著書)하였는데 세상에 전하는 것은 오직 다경(茶經) 3권뿐이다.
홍점반(鴻漸磐)
높은 경지에 도달했음을 비유한 말이다. 『주역(周易)』 「점괘(漸卦)」에 “기러기가 점차 물가로 날아간다. 기러기가 점차 반석 위로 날아간다. 기러기가 점차 육지로 날아간다[鴻漸于干 鴻漸于磐 鴻漸于陸].”하여 점차로 진취하는 기상을 논한 데서 온 말이다.
홍정(紅丁)
버섯의 별칭이다.
홍정(紅亭)
붉게 장식한 요정(料亭), 즉 기생집을 말한다.
홍정(紅旌)
붉은 깃발.
홍제원(洪濟院)
조선 시대에 중국 사신(使臣)이 서울로 올 때 성(城)안에 들어오기 전에 묵던 공관(公館)으로, 지금의 서울 홍제동에 있었다.
홍준저(鴻遵渚)
사명(使命)을 마치고 조정으로 돌아감을 말한다. 주공(周公)이 일찍이 동쪽 지방을 다스리러 가 있을 적에 그 곳 백성들이 주공을 만나보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한편으로는 기러기가 물가를 따르듯이 주공도 의당 조정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여 노래하기를 “기러기는 날아서 물가를 따르나니 공이 돌아갈 곳이 없으랴 너에게서는 이틀 밤만 묵을 것이다[鴻飛遵渚 公無所歸 於女信處].” 한 데서 온 말이다. 『시경(詩經)』 빈풍(幽風) 「구역(九罭)」
홍중실(洪仲實)
중실(仲實)은 홍세영(洪世英)의 자이다.
홍진라착편(紅塵懶着鞭)
벼슬을 재촉하는 조정의 소명(召命)이 정말 지겹다는 말이다.
홍질발(紅叱撥)
당 현종(唐玄宗) 때 대완국(大宛國)에서 공물(貢物)로 진상한 천하 명마(名馬)의 이름이다.
홍추(鴻樞)
추밀원(樞密院)을 말한 것.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요직을 말한다. 추신(樞臣). 홍(鴻)은 아칭(雅稱).
홍탕(弘湯)
전한의 관료인 ‘공손홍(公孫洪)과 장탕(張湯)’을 합칭한 말이다.
홍택방(洪澤芳)
택방(澤芳)은 홍영(洪霙)의 자(字)이다.
홍평보(洪平甫)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홍간(洪侃). 평보는 자이고, 첨의사인(僉議舍人)으로 있다가 동래 현령(縣令)으로 폄(貶)되어 왔으며 재임 중 세상을 떠났다.
홍포(紅袍)
조정 고위 관원이 입는 붉은색 조복(朝服)을 말한다.
홍한(紅汗)
유사(遺事)에 “귀비가 매년 여름철에는 얇은 비단옷을 입고 시녀들을 시켜 부채질을 하여도 그 열(熱)이 해소되지 않고 땀이 나는데 붉고 매끄러운 가운데 향내가 많아, 혹 수건에 씻으면 그 빛깔이 홍도화(紅桃花)와 같았다.” 하였다. 또 『현종유록(玄宗遺錄)』에 “귀비가 마외역(馬嵬驛)에서 목매어 죽었을 때 고역사(高力士)가 목맨 비단을 가져왔는데 눈물 자국이 다 담혈색(淡血色)과 같았다.” 하였다.
홍홍(泓泓)
물이 깊은 모양, 물이 맑은 모양
홍화(弘化)
『서경(書經)』 「주관(周官)」에 “소사(少師)ㆍ소부(少傅)ㆍ소보(少保)는 삼고(三孤)이니, 삼공의 다음 관원으로서 교화를 넓혀야 한다.(貳公弘化)” 한 데서 온 말로, 즉 삼공의 다음 벼슬인 찬성(贊成)에 해당하는 말이다.
홍화보(洪和輔)
자는 경협(景協)인데 영조 때 파주 목사(坡州牧使)ㆍ동부승지ㆍ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홍희(洪熙)
명 나라 인종(仁宗)의 연호로, 1년 만에 인종이 죽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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