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화
화각(畫角)
옛날 군중(軍中)에서 사용했던 뿔피리.
화간(禾竿)
정월 대보름날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수수깡으로 벼이삭 조이삭의 모양을 만들어 다는 것.
화간(花間)
후촉(後蜀)의 조숭조(趙崇祚)가 편(編)한 화간집(花間集)의 준말로, 내용은 곧 당(唐) 나라 말기 여러 명가(名家)들의 사(詞)인데, 진진손(陳振孫)은 이를 전사(塡詞)의 시조(始祖)라고 하였다.
화개(華蓋)
임금이나 고관이 사용하는 호화로운 일산이나 귀족이 타는 수레의 덮개를 말하는데, 흔히 ‘존귀한 사람의 행차’를 말할 때 인용된다.
화개성(華蓋星)
대제성(大帝星) 위의 아홉 개의 별로 마치 천제(天帝)의 자리를 덮어 주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 上
화견(禾絹)
황제를 가리킨다. 『남사(南史)』 「송기(宋紀)」 下 명제(明帝)에, “중서사인(中書舍人) 호모호(胡母顥)가 전권(專權)을 행하여 아뢰면 허락받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이에 당시 사람들이 이르기를, ‘화견이 눈을 가리고 승낙을 하니 호모(胡母)가 큰 주머니를 벌리고 있다.’ 하였다.” 하였는데, 화견은 상(上)을 가리키는 것이다.
화경(花卿)
당(唐)의 맹장(猛將) 화경정(花敬定)을 이른다.
화경(華鯨)
화는 종(鐘), 경은 동목(橦木)으로, 곧 종과 장대를 말한다.
화계두노장(花溪杜老莊)
사천성(四川省) 성도시(成都市) 서쪽 교외의 금강(錦江) 지류인 완화계(浣花溪)에 두보(杜甫)의 ‘완화초당(浣花草堂)’이 있었다.
화곤(華袞)
옛날 왕공(王公) 귀족(貴族)이 입던 화려한 의복인데 영총(榮寵)을 말한다. 『서언고사장예류(書言故事獎譽類)』에 “남이 포창해 줌을 사례하니 영광이 화곤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전하여 화곤은 제왕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 인용: 進三國史略箋(권근)
화곤부월정노사(華袞鈇鉞正魯史)
화곤은 고관이 입는 화려한 예복(禮服)이고, 부월(鈇鉞)은 형벌에 쓰는 작두와 도끼로, 역사서에서 포폄(褒貶)을 가해 기리고 내치는 것을 말하며, 노사(魯史)는 노 나라의 역사로 춘추(春秋)를 말한다.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저술하면서 포폄의 뜻을 붙여서 저술하였다.
화공(畫栱)
건물의 대들보를 받치는 기둥 위에 있는 방형(方形)의 나무인 두공에 단청(丹靑)을 베푼 것을 말한다.
화공(化工)
천공(天工) 즉 조물(造物)과 같은 기막힌 기예의 소유자를 말한다.
화관(華館)
중국 사신이 머무는 관소.
화광(和光)
『노자(老子)』 77장에, “그 빛을 혼동하게 하며 그 먼지를 같이한다[和光同塵].”는 말이 있는데, 세상과 화합하여 다른 체하지 않음을 말한다.
화광동진(和光同塵)
화광(和光)은 빛을 늦추는 일이고, 동진(同塵)은 속세의 티끌에 같이 한다는 뜻이다. 자기의 지혜를 자랑함 없이 오히려 그 지혜를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동화함을 말한다. 부처⋅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지혜와 본색을 감추고 모습을 바꾸어 인간계에 나타남. 『노자(老子)』 77장
화괴(花魁)
매화(梅花)의 별칭인데, 또는 난초(蘭)와 연꽃(藕花)의 별칭으로 쓰기도 한다.
화교(和嶠)
사람 이름으로, 도량이 좁다는 뜻으로 인용한 것이다. 『진서(晉書)』 권 45卷 「화교전(和嶠傳)」에 “화교가 태감(太監) 순욱(荀勗)의 사람됨을 비루하게 여겨 한수레에 같이 타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화교애전(和嶠愛錢)
화교(和嶠)는 진 혜제(晉惠帝) 때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이른 명신(名臣)이었으나, 재산이 매우 많아 왕자(王者)와 견줄 만하였는데도 성품이 지극히 인색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특히 두예(杜預)는 그를 일러, 돈을 탐하는 버릇(錢癖)이 있다고까지 하였다. 『진서(晉書)』 卷四十五
화교자촉(和嶠刺促)
화교(和嶠)는 진 무제(晉武帝) 때의 대신으로 매우 임금의 총애를 받았는데, 반악(潘岳)이 당시에 산도(山濤)ㆍ왕제(王濟)ㆍ배해(裵楷)ㆍ화교 등이 임금의 총애받는 것을 그르게 여겨, 각도(閣道)에다 요(謠)를 만들어 쓰기를 “왕제는 말의 가슴걸이와 같고, 배해는 말의 꼬리 끈과 같으며, 화교는 너무 바빠서 쉬지를 못한다[王濟鞅 裵楷緧 和嶠刺促不得休].”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卷五十五
화교전(和嶠錢)
화교(和嶠)는 진 혜제(晉惠帝) 때에 벼슬이 태자태부에 이르렀고 가산(家産)도 대단히 풍부하였으나, 그는 성품이 매우 인색하였으므로, 두예(杜預)가 “화교는 돈에 대한 탐벽이 있다(有錢癖嶠).”고 한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卷四十五
화국수(華國手)
한림원(翰林院)이나 사관(史館)에 벼슬하여 제고(制誥)나 외교(外交)에 관한 문장(文章)을 짓는 것을 나라를 빛내는(華國) 문장이라 이른다.
화궁(花宮)
불사(佛寺)를 일컫는 말이다.
화극(畫戟)
당(唐) 나라 때 3품 이상 고위 관원의 저택 문 앞에 세워 두었던 채색(彩色)한 목창(木槍)으로 고관의 집을 말한다. / 인용: 鞍峴歌(김창흡)
화금(火金)
옛날 불씨를 만들던 도구로 ‘부시’를 말한다.
화기염염경조벽(火旂焰焰驚趙壁)
붉은 깃발은 한(漢) 나라는 적색(赤色)을 숭상했으므로 곧 한 나라 기를 가리킨다. 한신(韓信)은 진여를 맞아 싸울 적에 거짓 패하여 달아나면서 미리 군사들에게 조 나라 군사들이 추격해 오는 틈을 타서 한 나라의 붉은 깃발을 꽂도록 하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발견한 조 나라 군사들은 크게 놀라 도망쳤으므로 한신은 쉽게 승리하였다. 『한서(漢書)』 「한신전(韓信傳)」
화누역경(火耨力耕)
‘역(力)’은 ‘도(道)’의 잘못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엄장광덕전(嚴莊廣德傳)」에 “대종역경(大種力耕)”이라 한 것도 “화종도경(火種刀耕)”의 잘못이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호이자, 개성 박연폭포 아래에 있던 못 이른다.
화당(華堂)
관원의 역소(役所)를 가리킨다.
화당(畫堂)
‘단청한 큰 집’을 말한다.
화당전위(畫堂傳位)
황제가 죽고 황태자가 제위(帝位)에 오르게 된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성제(成帝)가 갑관 화당(甲館畫堂)에서 태어나 적황손(適皇孫)이 된 고사에서 유래하여 이후 화당을 황태자의 전고(典故)로 쓰게 되었다. 『한서(漢書)』 「원후전(元后傳)」
화덕(火德)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가 화덕(火德)으로 왕(王)하였다.
화덕(和德)
‘천지 음양의 조화’를 말한다.
화도박수(鞾刀帕首)
무인(武人)의 상복(常服)이다.
화도편(和陶篇)
진(晉) 나라 도잠(陶潛)의 시에 화운(和韻)한 시편(詩篇)을 말한다.
화두(話頭)
종사(宗師)가 어떤 법을 말하여 후배를 지도하는 것이 마치 훌륭한 장인(匠人)이 재료를 마음대로 다루어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 선(禪)을 참구할 때에는 종사로부터 크게 의문되는 한 법을 받아 일념으로 그 의문을 참구하여 심지(心地)를 깨닫게 하는 공부의 한 방법이다.
화령(和寧)
함경도 영흥(永興)의 고호이다.
화로(垂老)
① 노경에 이르다
② 노년(老年)
③ 늙어 가다
④ 나이를 먹다 / 인용: 無盡亭記(유몽인)
화록(畫鹿)
정홈(鄭弘)이 어느 날 자기 수레 뒤에 백록(白鹿)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주부(主簿)에게 묻자 “삼공(三公)의 수레에는 다 사슴을 그렸는데 지금 백록이 뒤를 따르니 명공(明公)은 반드시 재상이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한 고사이다. 『한서(漢書)』
화록점상(畵鹿占祥)
‘재상이 될 상서로움’을 말한다. “정홍(鄭弘)이 임회(臨淮) 태수가 되어 행차하는데 두 사슴이 수레를 따라 오는지라, 주부(注簿) 황국(黃國)이 절하며 하례하되, 듣건대 삼공(三公)의 수레에는 사슴을 그린다 하오니, 명부(明府)께서 마땅히 재상이 되리이다.” 하였다. 홍이 과연 태위(太尉)가 되었다.
화룡(火龍)
더운 기운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모양. 왕곡(王轂)의 「고열행(苦熱行)」에, “축융이 남으로 와 화룡을 매질하니, 화기가 이글이글 하늘을 불사르네[祝融南來鞭火龍 火旗焰焰燒天紅].” 하였다.
화룡점정(畵龍點睛)
용을 그릴 때 마지막으로 눈동자에 점을 찍어 완성시킴. 곧,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하여 일을 끝냄. 남양(梁)나라 장승요(張僧繇)가 용을 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점 찍으니 용이 살아 움직여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이다.
화룡지사백제월(火龍之祀白帝月)
화룡은 간지(干支)로 병진(丙辰)을 뜻하고 백제(白帝)는 가을을 맡은 신(神)이므로, 즉 1616년인 병진년 가을을 가리키는데, 이때에 광해군(光海君)은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기 위해 김제남(金悌男)을 추형(追刑)하였고, 참신(讒臣)정조(鄭造) 등은 광해군의 비행을 적극 도우면서 선량한 조신(朝臣)들을 많이 처벌하였다.
화류(花柳)
화가 유항(花街柳巷)의 준말이다. 기생 또는 유곽(遊廓)을 말한다.
화류(驊騮)
대추 빛깔의 준마(駿馬)로 주목왕(周穆王)이 타고서 서왕모(西王母)를 만나러 갔다는 팔준마(八駿馬)의 하나이다.
화륜(火輪)
해를 가리킨다.
화리(花梨)
종려나무(棕櫚)이다.
화림(花林)
안음(安陰)의 고호이다.
화무(華膴)
화(華)는 사헌부ㆍ사간원ㆍ홍문관의 삼사(三司)와 같은 청환(淸宦)을 이름이요, 무(膴)는 호조와 같은 후한 녹을 받는 관직을 말한다. / 인용: 哀魚將軍(이희풍)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꽃이 열흘 동안 붉은 것은 없다’는 말로, ‘한번 성하면 반드시 쇠퇴한다’는 뜻이다. 부귀영화(富貴榮華)가 오래가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화문(花門)
거연해(居延海)에서 북쪽으로 3백 리 되는 곳에 있는 산 이름으로, 당 나라 초기에 보루를 설치하고서 오랑캐의 침입을 막았는데, 천보(天寶) 연간에 회흘(回紇)에게 점령당하였다. 뒤에는 이로 인해 회흘의 대칭(代稱)으로 쓰이게 되었다.
화미구미(畫眉求媚)
한(漢) 나라 장창(張敞)은 위의(威儀)가 너무도 부족하여 그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항상 아내의 눈썹을 그려 주었다. 『한서(漢書)』 「장창전(張敞傳)」
화미장경윤(畫眉張京尹)
한(漢) 나라 선제(宣帝) 때 경조윤(京兆尹)을 지낸 장창(張敞)을 이름이니, 평양(平陽) 사람으로 자는 자고(子高)이다. 벼슬에 있을 때마다 치적이 많았으며 일찍이 그의 아내를 위해 눈썹을 그린 일이 있었다. 『한서(漢書)』 卷七十六 「장창전(張敞傳)」
화반(火伴)
화반(伙伴)이라고도 쓰는데 동반(同伴)을 말한다.
화발치진(華髮緇塵)
화발(華髮)은 백발을 뜻함이고, 치진은 풍진(風塵)에 분주하여 의복이 검어짐을 말한다. 사조(謝朓) 「수왕진안시(酬王晉安詩)」에 “누가 경락(京洛)에 오래 머물면서 흰옷을 치진에 더럽히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화벽(和璧)
옛날 초(楚) 나라 사람 화씨(和氏)가 초산(楚山)에서 박옥(璞玉)을 얻어가지고 여왕(厲王)에게 바치니, 여왕은 돌을 가지고 거짓말을 한다고 그의 왼발 발꿈치를 잘라버렸고, 그 후 또 무왕(武王)에게 바치니, 무왕 역시 거짓말을 한다고 그의 오른발 발꿈치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그후에 마침내 문왕(文王)에게 바치니, 문왕은 옥인(玉人)을 시켜 그 박옥을 다듬게 하여 보물을 얻자, 마침내 화씨벽(和氏璧)이라 불렀다 하였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화병(畫餠)
‘능력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위 문제(魏文帝)의 조서에 “허명(虛名)만 있는 사람은 마치 땅바닥에 그려 놓은 떡을 먹을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였다.
화보(花譜)
사철 동안 피는 꽃을 시절의 순서로 그린 책을 말한다.
화복동문(禍福同門)
화와 복은 모두 자신이 불러들인다. / 유의어: 화복유기(禍福由己), 화복무문(禍福無門)
화복무문(禍福無門)
“화와 복은 들어오는 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부르는 대로 온다[禍福無門 惟人所召].”는 옛말이 있다.
화복무문화불단행(禍福無門禍不單行)
화(禍)와 복(福)이 들어오는 정해진 문이 없으며, 화는 한 번만 행해지지 않는다.
화봉(華封)
요(堯) 임금 때에 화봉(華封) 사람이 요 임금에게 ‘수(壽)ㆍ부(富)ㆍ다남자(多男子)’의 세 가지 일로 축수했다는 화봉삼축(華封三祝)의 준말로, 곧 임금에게 축수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화봉삼축(華封三祝)
옛날 화(華)의 봉인(封人)이 요(堯)를 두고 수(壽)ㆍ부(富)ㆍ다남자(多男子)를 축원했다는 고사. 『장자(莊子)』 「천지(天地)」
화봉인(華封人)
화(華) 땅의 봉인이란 뜻인데, 요(堯) 임금이 화 땅을 시찰나갔을 때 그 봉인이 요임금에게 수(壽)ㆍ부(富)ㆍ다남자(多男子) 세 가지로 축원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화불단행(禍不單行)
불단행(不單行)은 홀로 가지 않음. 불행은 종종 하나로 그치지 않고 여러 개가 잇달아 한꺼번에 옴
화사첨족(畫蛇添足)
뱀을 그리는데 실물에는 없는 발까지 더하여 그렸다는 것을 쓸데 없는 행동을 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옛 사람이 술 한 잔을 놓고는 각각 뱀을 그려서 먼저 그리는 사람이 그 술을 마시기로 하였는데 한 사람이 먼저 그려서 다시 뱀의 발을 그렸다. 나중 그린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먼저 그렸어도 발이 있는 것은 뱀이 아니다.” 하고는 술을 빼앗아 먹었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 유의어: 화사(畫蛇), 화사착족(畫蛇着足)
화산(花山)
① 강화부(江華府) 남쪽 5리쯤에 위치한 산으로 곧 강화를 가리킨다.
② 고종(高宗) 때 옮겨 도읍했던 강도(江都)의 주산(主山)이다.
③ 안동(安東)의 옛 이름이다.
화산(華山)
① 주(周) 나라 무왕(武王)이 상(商)을 정벌한 뒤에 전쟁이 끝났다는 뜻에서 말을 방목하였던 곳이다.
② 중국의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이다.
③ 삼각산(三角山)의 이름인데, 진(秦)ㆍ한(漢)의 수도(首都) 장안(長安) 뒷산 근처의 산인 화산에 견준 것이다.
화산기(華山畿)
악부(樂府) 가곡(歌曲)의 한 가지이다. 송 소제(宋少帝) 때에 한 선비가 화산기로부터 운양(雲陽)을 가다가 여관에서 약 18~19세쯤 된 여인을 보고는 좋아하였으나 어찌할 수가 없어 마침내 심질(心疾)을 얻어 죽게 되자, 자기 모친에게 유언하기를 “나를 장사지낼 적에 화산을 경유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모친이 그의 말대로 관(棺)을 싣고 화산을 들러 그 여인의 문앞에 이르자, 말이 더 이상 가지 않으려고 마구 버티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목욕하고 단장한 다음, 문을 나와서 노래하기를 “화산기여, 그대는 이미 나를 위해 죽었으니, 혼자 살아서 누구를 위해 이 몸 바치랴. 예뻐할 때처럼 좋아한다면, 관목이 나를 위해 열려다오[華山畿 君旣爲儂死 獨活爲誰施 歡若見憐時 棺木爲儂開]”하니, 관목이 과연 열리자 그 여인이 관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죽으므로, 마침내 그 선비와 합장하여 이를 신녀총(神女冢)이라 부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 인용: 毛女篇(신광하)
화삼변(禾三變)
‘벼가 세 번 변한다’는 뜻으로 도(道)가 행해지지 않아서 귀여(歸歟)의 탄식을 내보인 것이다. 『회남자(淮南子)』에, “부자(夫子; 孔子)는 벼가 세 번 변하는 것을 보고서 탄식하며 하는 말이, ‘여우가 죽을 적에는 언덕으로 머리를 향하는데, 나는 벼에로 머리를 향하련다.’ 하였다.” 했다. 벼라는 것이 싹이 나서 그 싹이 빼어나 열매를 맺으니, 무릇 세 번을 변해 고개가 드리워 그 뿌리로 향하는 때문이다.
화삼월(火三月)
진 나라 궁궐 아방궁(阿房宮)이 얼마나 굉장하였던지 항우(項羽)가 거기에 불을 질렀더니 불이 석 달이 되도록 꺼지기 않았다 한다.
화삽(畫翣)
① 관(棺)을 치장하는 것인데 그 모양이 부채와 같다. 상여가 나갈 때에 수레를 가리고 곽(槨)에 넣을 때에는 널을 가리는 것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上
② 상여의 양쪽에 세우고 가는 제구(祭具)이다. 원래는 깃으로 만들었으나 후세에 네모진 화포(畫布)에 다섯 자 길이의 자루를 달고 깃털로 장식하였다. 『예기(禮記)』 「상대기(喪大記)」
화상치(畵象治)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에 “옛날에는 백성들이 순박하므로 죄인의 옷에 오형(五刑)의 형상을 그려 입게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고 서로 경계하게 하였다.” 했다.
화서(華胥)
『열자(列子)』 「황제(黃帝)」에 “옛날 황제(黃帝)가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음을 근심하고 있었는데, 낮잠을 자다가 꿈에 화서 나라에 가서 그 나라가 아주 태평하게 다스려지는 것을 구경했다.”는 고사이다.
화서국(華胥國)
전설에 나오는 이상국(理想國)으로, 엄주(弇州)의 서쪽, 태주(台州)의 북쪽에 있다고 하는 나라인데, 일찍이 황제(黃帝)가 꿈에 가보았다는 평화스러운 나라. 『열자(列子)』 「황제(黃帝)」에 “황제가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음을 걱정하다가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화서국에 갔다. 그 나라에는 관장(官長)이 없어도 다스려지고, 백성들은 생사에 대해 기뻐하거나 슬퍼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살고 있었다.” 하였다.
화서지몽(華胥之夢)
황제(黃帝)가 낮잠을 자다가 꿈에 화서국(華胥國)에 가서 그 나라가 잘 다스려진 것을 보았다는 고사에서, 길몽(吉夢) 또는 그냥 꿈의 뜻으로도 쓰인다. 『열자(列子)』 「황제(黃帝)」
화서풍일(華胥風日)
태평시대의 뜻이다. 『열자(列子)』 「황제(黃帝)」에 “황제씨가 낮잠을 자던 중 꿈속에 화서의 나라에서 놀았는데, 그 나라는 임금도 없이 자연스럽게 살았고 백성들도 욕심이 없었다. 꿈을 깬 후 깨달음이 있어 천하를 잘 다스렸다.” 하였다.
화석(華席)
‘번화한 자리’를 말한다.
화석(花石)
화석정(花石亭)
본디 지돈녕(知敦寧)으로 시호가 강평(康平)인 이명신(李明晨)의 별장인데, 그가 죽은 뒤에 여기가 황폐해졌다가 그의 손자인 이의석(李宜碩)에 이르러 다시 그 자리에 중건(重建)되었다.
화성(畫省)
상서성(尙書省)을 말한다. 상서성 안에 호분(胡粉)으로 벽을 바르고 옛날 현인과 열사를 그려놓았기 때문에 화성이라 한다.
화성(華省)
청직(淸職)의 관청을 가리키는 말이다. 맡은 직무가 임금과 밀접하고 존귀한 관서.
화성(火城)
① 당 나라 때 원단(元旦)이나 동지(冬至)가 되면 크게 조회를 열어 촛불을 수백 개 베풀었는데, 이를 화성(火城)이라 했다. 『당국사보(唐國史補)』
② 횃불로 성(城)을 에워싸서 성을 수비하는 것을 이른다. 양(梁) 나라 때 양간(羊侃)이 후경군(侯景軍)의 핍박을 받았을 때 성(城) 주위에 횃불을 많이 던져 화성을 만들어서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데서 온 말이다.
화성(化城)
법화(法華) 제 칠유(七喩)의 하나. 여러 사람이 보배 있는 곳을 찾아가다가 길이 험악하여 사람들이 피로해하므로, 그때에 길잡이가 한 계교를 내어 신통력으로써 임시로 큰 성(城)을 나타내어 여기가 보배 있는 곳이라 하자, 여러 사람이 대단히 기뻐하여 이 성에서 쉬었다. 길잡이는 여러 사람의 피로가 풀림을 보고는 이 화성을 없애버리고, 다시 참으로 보배 있는 곳에 이르게 하였다 한다. 그래서 이 화성을 방편교(方便敎)의 깨달음에, 참으로 보배 있는 곳을 진실교(眞實敎)의 깨달음에 비유한다. 불사(佛寺)의 별칭이다.
화성(花城)
하양(河陽)의 옛 이름이다.
화성부(華城府)
지금의 경기도 수원(水原)을 말한다.
화성함향(畫省含香)
시종신이 있는 관아를 말한다. 옛날 상서랑(尙書郞)이 임금에게 아뢸 때에는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하여 계설향(鷄舌香)을 입에 머금었다 한다. 『통전(通典)』 職官 4
화성흘연(化城屹然)
법화도사(法華道師)가 험한 길 가운데서 변화(變化)를 부려 한 성(城)을 만들어 피로한 대중(大衆)들을 그 안에 들어가서 쉬게 하였다. 『법화경(法華經)』
화속전(火粟田)
나무를 베어 버리고 밭을 개간하여 한 해만 경작하고 묵혀 버리는 전지를 말한다.
화수(火樹)
① 등불의 빛이 성한 것을 말한다.
② 영산홍의 꽃이 불같이 붉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火樹風來飜絳焰 瓊枝日出晒紅紗”라 하였다.
화수(火宿)
심수(心宿)라 부르며 28수(宿) 중 동방 창룡칠수(蒼龍七宿)의 하나이다.
화숙(和叔)
박순(朴淳)의 자(字)이다.
화숭(華嵩)
중국 오악(五嶽)의 하나인 화산(華山)과 숭산(嵩山)으로 높은 산의 대명사가 되었다.
화승(華勝)
머리를 꾸미는 꽃 모양의 장식물을 말한다.
화승(花勝)
부인의 머리에 꽂는 채색 조화(造花)를 말한다.
화승상투(花勝相投)
중국에서 정월 7일 인일(人日)에 일곱 가지 채소국을 먹고 채단(綵緞)을 오려서(翦綵) 머리 장식(花勝)을 만들어 서로 선물하고 머리에 꽂고 다니며 높은 언덕에 올라가 시를 읊는 풍속이 있었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이것은 전설적인 선녀 서왕모(西王母)가 머리에 꽂고 있던 대승(戴勝)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장수(長壽)와 행복을 비는 뜻이 담겨 있다.” 하였다.
화시(華始)
한(漢) 나라 때의 음악 이른다. 음률을 만물의 영화(英華)의 시작에 비긴 것이다.
화시감온포(花時甘縕袍)
꽃피는 계절에 아직도 솜옷을 좋아한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7 유우(遺遇)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시구이다.
화식(火食)
속세에 사는 사람. 화식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함은 신선 같다는 얘기이다. 『왕직방시화(王直方詩話)』
「화식열전(貨殖列傳)」
『사기(史記)』 열전(列傳)의 하나로서 이 글은 모두 재물을 불리는 일에 관해서 기술한 것이다.
화신풍(花信風)
소한(小寒)에서부터 곡우(穀雨)까지 모두 8개 절기인데 그것을 날짜로 따져보면 1백 20일이며, 매 5일이 하나의 철이 되어 모두 24철이 되고 철마다 한 종류의 꽃 소식이 서로 응한다 하여 이것을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이라 부른다. 이것은 시기에 맞춰 차례로 피어나는 봄철의 꽃에 의해 흘러가는 세월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봄바람 속에 이십사번 꽃 가운데 한 번의 꽃이 또 피었다는 것이다.
화씨(和氏)
화씨벽(和氏璧) 고사의 주인공인 변화(卞和)를 말한다.
화씨박(和氏璞)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 나라 변화(卞和)가 산중에서 얻은 옥박(玉璞)을 말하는데, 이것이 천하에 뛰어난 보옥(寶玉)이었으므로, 여기서는 훌륭한 인품에 비유한 것이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화씨벽(和氏璧)
초(楚) 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초(楚) 나라 여왕(厲王)에게 올리니, 여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다. 옥공이 돌이라고 하니 임금이 속였다고 하여 좌족(左足)을 베어 버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또 박옥을 올리니, 무왕이 옥공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는데 또 돌이라고 하매 그 우족(右足)을 베어버렸다. 그후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박옥을 안고 형산 아래에서 통곡하니, 문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연유를 물었다. 변화가 말하기를 “보옥을 돌이라 하고 정직한 선비를 간사한 자라고 하니, 그것이 슬퍼서 그런다.” 하였다. 왕이 마침내 옥공을 시켜 박옥을 쪼개보니 과연 진귀한 보옥이 나오므로 드디어 화씨벽(和氏璧)이라 이름하였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화씨성(和氏城)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 나라가 화씨벽(和氏璧)이란 보옥을 얻었는데, 진(秦) 나라가 15개의 성과 바꾸자고 했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화씨양(華氏羊)
춘추 때에 송(宋) 나라 화원(華元)이 양(羊)을 잡아 여러 사람을 대접하였는데, 그 어자(御者) 양침(羊斟)은 얻어먹지 못하여 불평을 품었다가, 그 뒤에 송 나라와 정(鄭) 나라가 싸울 때에 양침이, “전일에 양을 잡아 대접할 때는 당신의 마음대로 하였지마는, 오늘 전쟁에 수레를 모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 하고는 화원의 탄 수레를 몰고 정 나라 군중으로 달려들어갔으므로 화원이 패하였다.
화씨지박(和氏之璞)
화씨(和氏)는 변화(卞和)인데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 나라 사람이다. 변화가 옥덩이 하나를 발견하여 전후로 초 나라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모두 기만의 죄로 몰려 양쪽의 발꿈치가 잘렸다. 문왕(文王) 때에 이르러 변화가 또 옥덩이를 안고 형산(荊山) 밑에서 통곡하자 문왕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옥덩이를 쪼개어 가공한 결과 보옥(寶玉)을 얻었는데 이를 화씨벽(和氏璧)이라고 일컬었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화씨지벽(和氏之璧)
천하에서 가장 이름난 옥. 초(楚) 나라의 변화(卞和)가 형산(刑山)에서 얻은 유명한 구슬. 조(趙)에서 그것을 얻었으며, 진(秦) 나라에 가져갔다가 오롯이 돌려왔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화악(華嶽)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오악(五嶽)의 하나이다.
화악(龢樂)
오음(五音)을 가지고 악곡(樂曲)을 조율시키는 것을 말한 것으로, 『국어(國語)』 「주어(周語)」에 “오성으로 악을 고르고 율로써 오성을 균평하게 한다[聲以龢樂 律以平聲].” 한 데서 온 말이다.
화악루(花萼樓)
당 나라 양황제(讓皇帝)가 흥경궁(興慶宮) 서남쪽에 다락을 짓고 화악상휘지루(花萼相輝之樓)라 제액(題額)하였다. 제왕(諸王)들이 풍류를 아뢰면 반드시 곧 불러 다락에 오르라 하여 같은 탑(榻)에 앉아 즐기며 황금과 비단을 하사한 고사가 전한다. 화악(花萼)이란 이름은 대개 『시경(詩經)』 소아(小雅) 「상체(常棣)」의 뜻을 취한 것인데 상체꽃은 형제의 우애(友愛)에 비유한 것이다. 『구당서(舊唐書)』 「양황제헌전(讓皇帝憲傳)」
화양(華陽)
은자(隱者)가 사는 곳을 가리킨다. 양(梁)의 도홍경(陶弘景)이 구곡산(句曲山)에 숨어살며 자호를 화양은거(華陽隱居)라고 하고, 무제(武帝)가 예를 갖추어 맞이하려했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음. 「양서(梁書)」 「도홍경전(陶弘景傳)」
화양건(華陽巾)
은자(隱者)가 쓰는 두건. 「신선전(神仙傳)」에 이런 기록이 있다. “경조(京兆)사람인 위절(韋節)이 화산(華山)의 남쪽 기슭에 은거하면서 호를 하양자(華陽子)라고 하였으며, 그가 쓰고 다니는 두건을 화양건이라고 하였다.”
화양귀마(華陽歸馬)
화양은 화산(華山)의 남쪽. 주(周) 무왕(武王)이 주(紂)를 치는 전쟁을 끝낸 뒤에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馬)을 화산(華山)에 돌려보내고 군수 물자를 나르던 소는 도림(桃林)의 들에 놓았다 한다. 『서경(書經)』 「무성(武成)」
화양동(華陽洞)
도가(道家) 삼십육동천(三十六洞天)의 제 8동으로 모군(茅君)이 다스리는 신선들이 산다는 곳이다.
화양은거(華陽隱居)
산중에 은거하면서도 매양 국사를 자문받았던 양(梁) 나라 때의 도홍경(陶弘景)을 힐난하는 말이다. 도홍경은 은사(隱士)로서 자호가 화양은거(華陽隱居)이며, 일찍이 제 고제(齊高帝) 때에 제왕시독(諸王侍讀)을 지냈고 뒤에 구곡산(句曲山)에 은거하였다. 그는 특히 음양(陰陽)ㆍ오행(五行)ㆍ선술(仙術)ㆍ의술(醫術) 등에 뛰어났는데, 양 무제(梁武帝) 때에는 모든 국가의 대사(大事)를 반드시 그에게 자문하였으므로 당시 산중재상(山中宰相)이라는 칭호가 있었다. 『남사(南史)』 卷七十六 隱逸下
화어소장(禍於蕭墻)
소장은 병풍으로 가까운 데에서 화란이 싹튼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나는 계손(季孫)의 걱정이 전유(顓臾)에게 있지 않고 소장(蕭墻) 안에 있을까 걱정이다[吾恐季孫之憂, 不在顓臾, 而在蕭牆之內也].” 하였다.
화엄누각풍(華嚴樓閣風)
경각간에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화엽난겸여각치(花葉難兼如角齒)
뾰족한 뿔이 달린 짐승은 예리한 이빨이 없듯이 꽃이 아름다운 초목은 대체로 잎이 곱지 않다는 것이다.
화영(華英)
‘예쁜 꽃’을 말한다.
화예부인(花蕊夫人)
오대(五代) 후촉주(後蜀主)인 맹창(孟昶)의 부인인데, 문장에 능하여 궁사(宮詞) 1백 수(首)를 지었다. 후촉이 망한 후에도 항상 후촉을 잊지 않고 맹창의 초상에 제사하였다.
화옥(華屋)
화려한 집으로 영화로운 삶을 말한다.
화옥산구(華屋山丘)
흥망성쇠와 인생의 무상함을 뜻하는 말이다.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조식(曹植)의 공후인(箜葔引)의 “살아서 화려한 집 거처하더니, 쓸쓸히 산 언덕으로 돌아갔구나[生在華屋處 零落歸山丘].”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화옹(禾翁)
호가 화곡(禾谷)인 정사호(鄭賜湖)를 말한다.
화완포(火浣布)
남방에서 난다고 하는 베 이름으로, 세탁할 때 불 속에다 넣으면 베는 빨갛게 되고 때는 베 빛으로 되는데, 끄집어내어 털면 하얗게 된다고 한다.
화왕(花王)
모란을 가리킨다.
화왕풍간서(花王諷諫書)
화왕이 풍간한 글. 설총(薛聰)이 장미꽃과 할미꽃의 이야기로 임금에게 풍간한 화왕계(花王戒)를 가리킨다.
화요(花妖)
『유사(遺事)』에 “처음에 목작약(木芍藥)이 있어 어느 날 갑자기 한 가지에 두 송이가 피었는데, 아침에는 짙붉고 한낮에는 짙푸르고 해질 무렵에는 노랗고 밤중에는 희어, 낮과 밤으로 그 향기롭고 고움도 각기 달랐다. 임금이 ‘이는 꽃나무의 요정(妖精)이니 의아해할 바가 아니다.’ 했다.” 하였다.
화요입벽도(花妖入壁逃)
화요(花妖)는 화월(花月)의 요귀(妖鬼)인데, 기생 따위들이 가까이하지 못하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육훈(陸勳) 집이지(集異志)에 “무삼사(武三思)가 첩을 두었는데 얼굴이 절색이어서 사대부들이 모두 그를 방문하여 구경하였다. 어느 날 양공(梁公) 적인걸(狄仁傑)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그의 첩이 도망가버려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삼사가 사방으로 수색해 보니, 벽틈에 숨어서 ‘나는 화월의 요귀인데, 하늘이 나를 보내어 당신을 모시고 이야기도 하고 웃으면서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양공은 일세의 정대(正大)한 사람이므로, 내가 볼 수 없습니다.’ 했다.” 하였다.
화용(華容)
‘미인(美人)’을 말한다.
화용월태(花容月態)
꽃같은 얼굴과 달같은 자태. 아름다운 여자의 고운 얼굴과 자태를 이르는 말이다.
화우(火牛)
등에다가 용 무늬를 그려 넣고, 양쪽 뿔에다가 병기를 매달고, 꼬리에 기름 먹인 섶을 매단 다음, 여기에 불을 붙여서 적진으로 돌진하게 하는 소를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연(燕) 나라가 제(齊) 나라를 쳐들어와 제 나라의 모든 성이 함락되고 즉묵성(卽墨城)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 전단(田單)이 즉묵성에 있으면서 이 화우를 이용해 한밤중에 연 나라 군사를 쳐 승리를 거둔 뒤, 그 승세를 타고 삽시간에 제 나라의 72성을 수복하여 거의 망해 가던 제 나라를 재건하였다. 그리고는 당시 거(莒) 땅으로 피해 있던 양왕(襄王)을 맞이하여 임치(臨淄)로 들어갔다. 『사기(史記)』 卷82 「전단열전(田單列傳)」
화우(花雨)
부처가 설법을 할 때 제천에서 꽃비가 쏟아져 내렸다는 불경의 기록을 인용하여, 불문(佛門)의 신령스러운 자취를 암시하는 표현으로 쓰이게 되었다.
화우지계(火牛之計)
쇠뿔에 칼을 잡아매고 꼬리에 기름 바른 갈대 다발을 매단 다음 그 소떼를 적진으로 내모는 전술.
화운(火雲)
여름에 더운 기운을 머금은 붉은 구름.
화웅(畫熊)
수레의 식(軾)을 곰의 형상으로 꾸민 화려한 수레를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여복지(輿服志)」 上에 “삼공(三公)과 열후(列侯)는 녹교(鹿較)ㆍ웅식(熊軾)에 검은 깃발을 단 수레를 탑승한다.”고 하였다. 두보(杜甫)의 시에 “中丞問俗畫熊頻 愛弟傳書綵鷁新”이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18 奉送蜀州柏二別駕 將中丞命 赴江陵 起居衛尙書太夫人 因示從弟行軍司馬位
화웅권학(和熊勸學)
어머니가 자식 교육에 정성을 들인 것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 나라 때 유중영(柳仲郢)의 모친 한씨(韓氏)가 곰의 쓸개를 수종(數種)의 약재와 섞어 환(丸)을 지어서 공부하는 여러 자식들에게 주었던 데서 온 말이다.
화원(花園)
고려 최영(崔瑩)이 송도(松都)의 화원(花園)에서 이성계(李成桂)에게 잡혔다.
화원(華元)
춘추시대(春秋時代) 송(宋) 나라 우사(右師)로서, 어느날 염소를 잡아서 그 부하 군사를 먹이는데, 그 어자(御者) 양짐(羊斟)이 참여하지 못하였다. 급기야 싸우는데 양짐이 말하기를, “지난날 염소는 그대 마음대로 했으니, 오늘날 일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 하였다. 『좌전(左傳)』 宣公 二年
화원귀(華元歸)
화원(華元)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송(宋) 나라 장군으로, 침입해 온 정(鄭) 나라 군대와 맞서 싸우던 중에, 앙심을 품은 마부가 수레를 몰고 적진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포로로 잡혔다가 다시 도망쳐 돌아온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 卷38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화월(花月)
아름다운 기첩(妓妾)을 비유한다. 당(唐) 나라 때 무삼사(武三思)에게 소아(素娥)라는 기첩이 있어 천하의 절색(絶色)이었으므로, 당시 사대부들이 모두 가서 구경을 하는지라, 적인걸(狄仁傑) 역시 따라가 보았더니, 그녀가 나오지 않고 벽 틈에 숨어서 말하기를 “나는 화월(花月)의 요괴(妖怪)로 상제(上帝)의 명을 받고 공(公; 무삼사를 가리킴)의 마음을 방탕하게 만들려고 내려왔는데, 적공(狄公)은 한 시대의 정인(正人)이므로 내가 만나볼 수 없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화유(火維)
남방(南方)을 말한다. 남방은 화(火)에 속한다.
화유(火維)
남방화(南方火)에 해당한다 하여 형산(衡山)을 달리 이른 말인데, 한유(韓愈)의 「알형악묘시(謁衡嶽廟詩)」에 “화유의 땅은 거칠어서 요괴가 많기에 하늘이 귀신의 힘 빌어 웅을 지키게 하였네[火維地荒足妖怪 天假神柄司其雄].”하였다.
화음(華陰)
후한(後漢) 장해(張楷)가 화음산(華陰山)에 숨어살며 도술(道術)을 부려 사방 5리(里)에 안개를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다. 『후한서(後漢書)』 卷36 「장해전(張楷傳)」
화의(化衣)
이교(李嶠)의 「상전원시(想田園詩)」에 “벼슬 따라 이곳저곳 괴롭기만 하구나, 풍진 속에 옷 바꿔 입은 지가 오래로군[游宦勞牽網 風塵久化衣].” 한 시가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군자는 사람들과 친화하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는다. 곧 대인관계에 있어 중용(中庸)의 덕을 지켜, 다른 사람과의 친화를 도모하되 편당(偏黨)을 짓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논어(論語)』 「자로(子路)」
화익(畫鷁)
배 앞에 그려 붙인 수조(水鳥)의 상(像). 익은 잘 나는 물새인데 수신(水神)을 제압한다고 한다.
화익선(畫鷁船)
익(鷁)이라는 물새의 형상을 선수(船首)에 새긴 배. 이 새는 풍파를 잘 견디어 내므로 이 새를 장식한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본경훈(本經訓)」
파일(化日)
만물(萬物)을 화생(化生)시킨다는 뜻에서 늦은 봄의 일기를 이른 말이다.
파일(畫一)
한(漢)나라 초대(初代) 승상(丞相) 소하(蕭何)가 죽은 뒤에, 후임으로 조참(曹參)이 들어 와서 소하가 제정한 법을 그대로 준수하니, 백성들이 좋아하여 노래하기를, “소하가 법을 제정한 것을 획일(畫一)한 것 같은데, 조참은 그것을 잘 지키네.” 하였다.
화자(華子)
화양 은거(華陽隱居)ㆍ화양 진인(華陽眞人)이라 자호한 양(梁) 나라 때의 은사 도홍경(陶弘景)을 이르는데, 그가 구곡산(句曲山)에 은거할 적에 양 무제(梁武帝)가 나라에 대사(大事)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그에게 자문을 하였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산중의 재상이라고 일컬었다. 『양서(梁書)』 卷五十一
화자발(和子鉢)
중국 오대시대에 화웅(和凝)이라는 사람이 주시관으로 있을 때에 범질(范質)이라는 사람의 성적이 매우 좋아서 당연히 장원으로 뽑힐 사람인데도, 전에 자기가 13번으로 합격하였지만 지금 세상에 이름이 높은 것을 생각하고 이 범질도 13번으로 합격시키고 나의 의발(衣鉢)을 이 사람에게 전한다고 말하였다는 고사.
화잠(華簪)
현달(顯達)한 고관이 쓰는 화려한 머리 장식이다.
화재어호한(禍在魚狐閒)
진(秦)나라의 수졸(戍卒)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킬 때에 군사의 마음을 선동하기 위한 술책으로 비단에다, “진승이 왕이 된다.”고 글을 써서 물고기 뱃속에 넣어 사람을 시켜서 그 물고기를 팔게 하였고, 또 밤에 오광이 숲속의 신사(神祠)에 몰래 들어가서 여우의 소리로, “진승이 왕이 된다.”고 울었다.
화저(花猪)
돼지를 말한다. 소식(蘇軾)의 시에 “五日一見花猪肉 十日一遇黃鷄粥”이라고 한 구가 있다.
화전(花甎)
① 꽃무늬를 놓아 만든 벽돌. 한림원(翰林院)에 화전을 깔았으므로 한림원을 말한다. 당(唐) 나라 한림원이 있는 북청(北廳) 앞의 섬돌을 꽃벽돌로 장식하였는데, 겨울에는 해 그림자가 꽃벽돌의 다섯 번째 계단에 이르렀을 때 한림학사들이 입직(入直)했다 한다. 한림지(翰林志)에 “북청(北廳) 앞뜰에 화전(花甎)을 깐 길이 있다” 하였다.
② 당(唐) 나라 때 대궐 북청(北廳) 앞에 꽃무늬의 벽돌길이 있었는데, 겨울철이면 해그림자가 다섯 벽돌에 이를 때가 바로 입직(入直)하는 시각이었으나, 한림학사(翰林學士) 이정(李程)은 천성이 게을러 항상 늦게 와서 해그림자가 여덟 벽돌을 지나서야 도착함으로써 당시에 모두 그를 팔전학사(八甎學士)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있다. 『신당서(新唐書)』 卷131 「이정열전(李程列傳)」
화전원부진(火傳不盡)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활활 타는 장작불, 화력(火力)이 다해 가도, 그 불씨 남아 있어 꺼질 줄을 모른다[指窮於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라고 하였다.
화전유염(華牋濡染)
화전(華牋)은 종이를 가리킨다. 곧 종이에다 내 글을 쓰겠다는 말이다.
화접시(化蝶翅)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다. 마음에 흐뭇하여 주(周)인 줄을 몰랐더니, 문득 깨고나니 장주였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화접유룡(化蝶猶龍)
장자(莊子)와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화접(化蝶)은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蝴蝶)가 되었다.” 한 말을 인용한 것이며, 유룡(猶龍)은 『사기(史記)』 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서 공자(孔子)가 노자를 “용과 같다[猶龍].”라고 한 것을 인용하여 한 말이다.
화정(和靖)
어려서 고아가 되어 빈한한 생활을 하며 학문에 힘을 쏟으면서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은 채 서호(西湖)에서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살았던 송(宋) 나라 임포(林逋)의 시호(諡號)이다. 그는 항주(抗州)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살면서 20년 동안 속세를 나가지 않았고, 매화를 심고 학(鶴)을 기르면서 일생을 마쳤다.
화정림(和靖林)
화정(和靖)은 송(宋) 나라 임포(林逋)의 시호(諡號)로, 명리(名利)를 구하지 않고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해 살았다. 서화를 잘 그리고 시를 잘 지었으며, 장가도 들지 않고 자식도 없이 매화나무를 심고 학을 기르면서 지냈으므로 세상에서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송사(宋史)』 卷457 「은일열전(隱逸列傳)」 임포(林逋)
화정사녹(和靖辭祿)
화정(和靖)은 송(宋) 나라 윤돈(尹焞)의 호이다. 윤돈은 정이(程顥)의 문인(門人)으로, 여러 차례 천거를 받았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송사(宋史)』 卷428 「도학열전(道學列傳)」 윤돈(尹焞)
화정재월선(華亭載月船)
진(晉) 나라 육기(陸機)는 화정에 살면서 학(鶴) 우는 소리를 듣곤 하였는데, 뒤에 참소를 입어 죽게 되자 “화정의 학 우는 소리를 어찌 다시 들을 수 있으랴.” 하였다. 『진서(晉書)』 卷五十四 「육기전(陸機傳)」
화정지학(華亭之鶴)
부귀영화로 인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경우로서, 진(晉) 나라 육기(陸機)가 일개 나그네로 성도왕 영(成都王穎)에 의해 갑자기 후장군 하북대도독(後將軍河北大都督)에 오름으로써 시기하는 자들의 참소를 입고 수감되었는데, 그가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탄식하기를 “내가 옛날에 듣던 화정의 학 울음소리를 어찌 다시 들을 수 있으랴.”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육기전(陸機傳)」
화정택(和靖宅)
화정(和靖)은 송(宋) 나라의 은군자(隱君子) 임포(林逋)의 시호이다. 임포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면서 처자(妻子)도 없이 매화와 학만을 좋아하였으므로 당시에 사람들이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補 「서일(棲逸)」
화정학(華亭鶴)
화정(華亭)은 상해(上海)의 옛 이름이다. 진(晉) 나라 때에 육기(陸機)라는 사람이 서울에 와서 버슬하다가 생명을 잃게 되었는데 죽을 때에, “아, 고향 화정의 학 우는 소리를 어찌 다시 들을 수 있겠는가.” 하고 탄식하였다 한다.
화정학려(華亭鶴唳)
화정(華亭)의 학소리는 장한과 동시의 사람인 육기(陸機)가 오(吳)나라에서 왔다가 잡혀 죽으며, “화정의 학(鶴) 우는 소리를 언제나 다시 들으랴.” 하였다.
화제(花蹄)
꽃모양 같은 마소[馬牛]의 발굽.
화제(火帝)
오방(五方) 천제(天帝)의 하나인 염제(炎帝)로 여름을 맡은 신(神)인 적제(赤帝)를 가리킨다. 남방과 여름과 불을 담당한다고 한다. 불은 방위로는 남쪽이고 사시(四時)로는 여름이며 색깔은 적색이다.
화제(火齊)
① 화제주(火齊珠)의 준말로 보주(寶珠)의 일종이다. 자주색이 찬란한 옥으로 가볍기가 운모(雲母)와 비슷하다고 한다.
② ‘불을 알맞게 땐다’는 뜻이다.
화조(花朝)
음력 2월 12일이 모든 꽃의 생일(生日)이라 하여 그 날을 화조(花朝)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15일을 화조라고 한다고 한다. 『제요록(提要錄)』
화조(火棗)
안기생(安期生)이 먹던 오이 크기의 대추를 말하는데, 그 과일을 먹으면 우화(羽化)하여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한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한무내전(漢武內傳)』
화조절(花朝節)
음력 이월 십오일은 백화(百花)의 생일이라 하여 화조절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몽량록(夢梁錄)』의 이월망(二月望)에 보인다. 어떤 책은 이월 십이일, 혹은 이월 이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화종구생(禍從口生)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화주(火珠)
상투를 짠 뒤에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물건. 산호(珊瑚) 따위로 만드는 동곳을 이른다.
화주(和州)
영흥(永興)의 고려 초 이래의 이름이다. 현종(顯宗) 9년 화주 방어사(防禦使) 본영을 두었고, 고종(高宗) 때 이곳을 지키던 장수가 반란하여 원(元) 나라에 붙었는데, 공민왕(恭愍王) 5년에 군사를 보내어 수복하였다.
화주선학거(華柱仙鶴去)
요동(遼東) 사람 정령위(丁令威)가 도(道)를 배워서 학이 되었다. 나중에 요동에 돌아와 성문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으니, 어떤 소년이 활을 들어 쏘려 하기에, 날아가면서 말하기를, “새야 새야 정령위야,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인제야 돌아왔구나. 성곽은 옛날 같다만 사람은 다르구나. 어째서 신선을 안 배우고 무덤들만 총총한고.” 했다 한다.
화중인(畫中人)
운대(雲臺)나 기린각(麒麟閣)과 같은 공신각(功臣閣)에 화상(畫像)으로 그려져 안치되리라는 것이다.
화중지병(畵中之餠)
그림 속의 떡. 탐이 나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사물. 곧, 그저 바라만 보았지 소용이 없음. 또는 실속 없는 일을 비유
화지고침(畫紙敲針)
두보(杜甫)의 시에, “늙은 아내는 종이를 그어 바둑판을 만들고 어린 자식은 바늘을 두드려 낚시를 만든다.”는 구절이 있다.
화창(華倉)
옛날의 명의(名醫)인 창공(倉公)과 화타(華陀)를 합칭한 말이다.
화처(花妻)천인(賤人)이 본처 이외에 딴 여자를 얻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첩이라고 감히 부를 수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청궁(華淸宮)
당(唐)의 궁전 이른다. 여산(驪山)의 온천(溫泉) 지대에 있는 궁전으로 처음에는 탕천궁(湯泉宮)이라 하였다가 현종(玄宗) 때에 와서 화청궁(華淸宮)으로 이름을 고치고 온천은 화청지라 하고, 그 곳에 행행하여 잔치를 베풀고 양귀비와 즐겼음. 『당서(唐書)』 「현종기(玄宗紀)」
화청지(華淸池)
섬서성(陝西省)에 있던 당(唐) 나라 화청궁(華淸宮)의 온천 욕지(浴池)인데, 양 귀비(楊貴妃)가 여기에서 목욕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 나온다. 안사(安史)의 난에 당 현종(唐玄宗)이 촉(蜀) 땅으로 피난갈 때, 군사들의 원성(怨聲)에 어쩔 수 없이 양귀비를 마외(馬嵬)에서 죽게 하고는 거기에 묻어 주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신당서(新唐書)』 卷76 「양귀비전(楊貴妃傳)」
화초(華貂)
‘궁중의 담비가죽’을 말한다.
화초주맹(花草主盟)
모란을 화중왕(花中王)이라 한다.
화촉(華燭)
결혼을 상징하는 붉은 색 양초를 일컫는 고사성어다.
화총(花驄)
푸른 털과 흰 털이 뒤섞인 얼룩말로, 곧 썰매를 가리키는데, 당 현종(唐玄宗)이 타고 다닌 준마 이름이 바로 옥화총(玉花驄)이었다고 한다.
화축(華祝)
화봉삼축(華封三祝)의 준말로, 당요(唐堯) 때 화(華) 땅에 봉해진 사람이 요임금에게 장수하고(壽) 부유하고(富) 아들을 많이 낳기(多男子)를 축원하였다는 데서 임금에게 다복하기를 축원한다는 용어로 쓰인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화태수신재초방(禍胎須信在椒房)
옛날 한 나라 때에 황후 있는 궁중의 내전(內殿)을 호초(胡椒)로 방 바람벽을 발랐으므로 황후 있는 내전을 초방이라 한다. 여기서는 안녹산이 문제가 아니라 궁중 안에 있는 양귀비가 문제라는 말이다.
화택(火宅)
불교 용어로, 번뇌(煩腦)가 많은 속세를 이르는 말이다. 『법화경(法華經)』 「비유품(譬喩品)」에 “편안치 못한 이 삼계, 불타는 집과 같도다[三界無安 猶如火宅].” 하였다.
화택(火澤)
『주역(周易)』 64 괘 중의 하나인데, 상리하태(上離下兌) 즉 상괘(上卦)와 하괘(下卦)가 위로 치솟는 불과 아래로 스며드는 늪으로 되어 있어 서로 어긋나는 상황을 상징한다.
화택천대(火宅泉臺)
이승과 저승이라는 말이다. 화택(火宅)은 삼계화택(三界火宅)의 준말로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을 말한다. 천대(泉臺)는 땅속의 묘혈(墓穴)을 가리킨다. 『법화경(法華經)』 「비유품(譬喩品)」
화토필(花吐筆)
송(宋) 나라 강엄(江淹)이 일찍이 뛰어난 문장으로 유명하였으나, 꿈속에서 곽박(郭璞)에게 오색붓을 돌려준 뒤로는 재주가 상실되었다 한다.
화판(花判)
당 나라 때 중서사인(中書舍人)들의 오화판사(五花判事)를 말한다.
화포(和炮)
‘포화(飽和)’와 같은 뜻이다. 당 나라 양숙(梁肅)의 하소이상손사군인군시(賀蘇二常孫使君隣郡詩)에 “民樂其敎 且飽其和”가 있다. ‘포(炮)’는 ‘포(飽)’와 통용한다.
화표(華表)
옛날 교량이나 궁전, 능묘(陵墓) 등에 세운 거대한 돌기둥이다. 요동(遼東)사람 정령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술을 배우고, 죽어 학이 되어 고향인 요동으로 날아와서 성문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수신후기(搜神後記)』
화표주(華表柱)
무덤 앞에 있는 망주석으로, 요동 사람 정령위(丁令威)가 학이 되어 날아와서 앉았던 곳이다. 한 나라 때 요동 사람 정령위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그 뒤에 학이 되어 요동에 돌아와 화표주에 앉아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새여, 새여, 정령위여,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오늘에야 돌아왔네.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들이 아니로세. 어찌 신선 아니 배워 무덤이 총총하뇨.” 하였다. 『수신후기(搜神後記)』
화표중래학(華表重來鶴)
정령위(丁令威)는 원래 요동 사람이었는데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다가 뒤에 학으로 변하여 자기 고국 요동으로 날아가서 그곳 성문 화표주(華表柱) 위에 앉았었다. 『수신후기(搜神後記)』
화표지주(華表之柱)
요동(遼東)의 정령위(丁令威)가 신선이 되어 갔다가 뒤에 학으로 변하여 고향에 돌아와서 화표(華表)의 기둥에 앉았다.
화표천년학(華表千年鶴)
정령위(丁令威)의 고사를 말한다. 무덤 앞에 있는 망주석으로, 요동 사람 정령위(丁令威)가 학이 되어 날아와서 앉았던 곳이다. 한나라 때 요동 사람 정령위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그 뒤에 학이 되어 요동에 돌아와 화표주에 앉아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새여, 새여, 정령위여,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오늘에야 돌아왔네.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들이 아니로세. 어찌 신선 아니 배워 무덤이 총총하뇨.” 하였다. 『수신후기(搜神後記)』
화표학(華表鶴)
화표의 학(鶴)이란 곧 한(漢) 나라 때 요동(遼東)의 정령위(丁令威)란 사람이 영허산(靈虛山)에서 선술(仙術)을 배워 학으로 변하여 자기 고향에 돌아와 화표주(華表柱)에 앉았었다는 이야기가 도잠(陶潛)의 수신후기(搜神後記) 권1에 전한다.
화하도(花下倒)
‘대단히 취한 것’을 말한다.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석양은 현산의 서쪽으로 지려 하는데 흰 두건 거꾸로 쓰고 꽃 아래서 방황하네[落日欲沒峴山西 倒著接䍦花下迷].” 한 데서 온 말이다. 『이태백집(李太白集)』 卷六
화학(化鶴)
학으로 변한 사람을 말한다. 한(漢) 나라 때 요동에 사는 정령위(丁令威)가 도술을 배워 신선이 되었는데 천년이 지난 뒤에 학으로 변하여 그의 고향인 요동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수신후기(搜神後記)』 卷一
화헌(華軒)
높은 벼슬아치가 타는 수레를 말한다. 초헌(招軒).
화현(花縣)
현(縣)의 소재지를 아름답게 일컫는 말이다. 진(晉) 나라 하양 영(河陽令) 반악(潘岳)이 고을 안에 온통 도리(桃李)를 심었으므로 ‘하양일현화(河陽一縣花)’라는 말이 생겨났던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백씨육첩(白氏六帖)』 卷21
화협훈(華協勛)
순(舜)임금의 일명은 중화(重華). 요(堯)임금의 일명은 방훈(放勛)이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중화가 제에게 협화하였다[重華協予帝].” 하였다.
화형(花形)
풍수설에서 산수(山水)의 발맥(發脈)을 말한다.
화호각곡(畫虎刻鵠)
흉내를 내다가 제대로 안 됨. 후한(後漢) 마원(馬援)이 자기 조카 엄(嚴)과 돈(敦)에게, 용백고(龍伯高)를 배우다가 제대로 안 되더라도 이는 고니를 새기다가 제대로 안 되면 그래도 집오리 정도는 될 수 있는 격이어서 괜찮지만, 두계량(杜季良)을 배우려다 제대로 안 되는 날이면 이는 범을 그리려다가 되레 개를 그리는 꼴이 되어 안 된다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화호로(畫葫蘆)
모방해 본뜬다는 말이다. 송(宋) 나라 도곡(陶穀)의 문한(文翰)이 당대의 으뜸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를 철거하니 태조가 웃어 이르되, “듣건대 한림의 제서(制書) 초학이 다 전의 사람들의 옛 초본을 검사하여 사구(詞句)만 바꾼 것이라 하니, 이는 소위 본(樣)대로 호로박을 그린 것이다.” 하니 도곡이 시를 짓되, “우스워라, 한림 도학사는 해마다 본(樣)대로 호로박만 그리누나.” 하였다.
화호불성반위구자(畵虎不成反爲狗子)
범을 그리다가 잘못하여 강아지가 됐다는 말이다.
화호불성호(畫虎不成虎)
학문과 기예의 성취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마원(馬援)이 조카인 엄돈(嚴敦)을 훈계하면서, “고니를 그리다 보면 오리와 비슷하게라도 되겠지만, 호랑이를 잘못 그리면 거꾸로 개처럼 되기 십상이다[刻鵠不成尙類鶩 畫虎不成反類狗].”라고 한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화호유구(畵虎類狗)
서툰 솜씨로 어려운 일을 하려다 도리어 잘못되는 것으로 결과가 목적과 어긋난다는 뜻이다. “고니를 그리다 보면 오리와 비슷하게라도 되겠지만, 호랑이를 잘못 그리면 거꾸로 개처럼 되기 십상이다[刻鵠不成尙類鶩 畫虎不成反類狗].”라고 한 고사에서 나왔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화홍옥백(花紅玉白)
두목(杜牧)의 「송이군옥시(送李群玉詩)」에 “玉白花紅三百首 五陵誰唱與春風”의 글귀가 있다.
화후(火候)
도가(道家)에서 단약(丹藥)을 소련(燒煉)할 적에 불의 열도(熱度)를 조절하는 것을 이르는데, 전하여 단약 고는 것을 가리킨다. 참동계의 주에, “옛날부터 단서(丹書)가 있어 화후(火侯)의 공용(功用)을 나타냈는데, 이것을 화기(火記)라 말한다.” 하였다.
화훈(華勛)
요순(堯舜)처럼 훌륭한 임금. 요(堯)는 공(勛)이 크다 하여 방훈(放勛), 순(舜)은 요의 뒤를 이어 거듭 밝았다 하여 중화(重華)라 한 데서 온 말이다.
화희(和熹)
한나라 장제(章帝)의 황후인 등씨(鄧氏)이니, 그는 그 아들인 화제(和帝)가 일찍 죽고 그 아들이 어린데 섭정이 되어 잘 운영해 갔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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