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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시평 감상 - 하권 52. 죽은 이를 그리는 방법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52. 죽은 이를 그리는 방법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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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를 그리는 방법

 

 

소화시평권하 52에선 동악과 석주, 그리고 체소와의 진한 우정이 담겨 있다. 이미 석주와의 인연과 마음에 대해선 글을 쓰기도 했으니, 둘의 관계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체소와도 가까운 관계란 건 이번 글을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 석주와 동악은 정철 스승에게 동문수학한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고 단순히 동문수학한 동기 정도가 아니라 남다른 서로에 대한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에 권필에 궁류시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유배를 가다가 죽은 이후 곡석주(哭石洲)라는 정말 친한 사이에서 억지로 꾸며내려 하지 않아도 절로 우러나는 만시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동악이었으니 석주와 체소의 아이들이 강화도에 살고 있는 자신을 찾아왔을 때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어떤 연유로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가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이들 또한 아버지의 절친이자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고, 자신들이 직접 가서 그런 마음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는 건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강화도까지 험한 길을 불원천리하고 가서 마음을 나누려 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런 자제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악의 눈엔 참 이 세상 별 것 없네라는 자조적인 생각과 함께 옛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이 살짝 비쳤을지도 모른다.

 

 

 

 

 

藝文檢閱李僉正 예문관 검열을 지낸 이검정
司憲持平權敎官 사헌부 지평을 지낸 권교관
天下奇才止於此 천하의 기재들이 이 벼슬에 멈췄으니
人間行路何其難 세상 살아가는 길이 어찌 그리 험난한가.
陽春白雪爲誰唱 양춘곡(陽春曲)백설곡(白雪曲)을 누구를 위해 부르겠으며
流水高山不復彈 류수곡(流水曲)고산곡(高山曲)을 다신 타지 않으리.
皓首今逢兩家子 희끗한 머리로 이제야 두 집 아이들 만나니,
一樽江海秋雲寒 한 술잔 든 바다에 가을구름이 쓸쓸하네.

 

이처럼 이번 편은 서로의 관계에 대한 배경지식을 밑바탕에 깔고 본다면, 동악이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감정이 쉽게 와 닿는다.

 

하지만 이 시를 해석할 때 두 부분을 크게 잘못 해석했었다. 바로 3구와 5구가 그것이고, 이 두 구절을 잘못 해석함으로 이 시에서 동악이 말하고자 했던 내용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나는 이 시를 해석할 때 석주와 체소에 대한 비감이 너무 이른 나이에 죽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 3구의 ()’가 가르키는 건 한창 때인 젊은 나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고 있으니 ()’의 의미도 그 정도에서 그쳤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죽었다는 의미로 해석하게 됐던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천하의 기재인 내 친구들이 한창 젊은 나이에 죽었다니정도의 의미가 되고 동악이 느꼈을 비감이 잘 살아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이 이 시구를 껴 맞춘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의 의미로까지 이해하는 건 과잉해석에 가까워 너무도 어거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님과 함께 해석하며 다시 보니 3구의 내용은 1, 2구와 연결해서 보는 게 당연하고 그래야 ()’의 의미도 분명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 2구에선 그 둘이 죽기 전에 지낸 벼슬을 이야기하고 있다. 굳이 왜 벼슬을 얘기했을까? 초반엔 이렇게 높은 관직이 오를 정도로 수재였던 내 친구들이란 자랑스러운 마음인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 1, 2구에 묘사된 벼슬들은 그렇게 높은 벼슬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1, 2구의 내용은 재주도 있고 능력도 있던 내 친구들이 세상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고작 낮은 벼슬에서 전전했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 상태에서 3구를 보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된다. 그건 바로 벼슬이 겨우 이 정도에 그쳤으니라는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악은 1~4구까지 시의 내용을 통해 자신의 친구들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세상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天下奇才止於此
천하의 기재가 여기에서 죽었으니 천하의 기재가 이 벼슬에서 그쳤으니

 

인정받지 못한 친구들, 그리고 그렇게 낮은 직책만을 허용하며 그들이 험난한 삶을 살아가도록 방조한 조정, 여기에 비판의 칼날을 여지없이 드러내놓고선 5~8구까지는 갑자기 문의를 바꾼다. 6구 같은 경우는 지음의 고사가 있는 구절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했다면 5구도 그런 전거가 있는 구절로 봤어야 맞을 텐데, 지식이 형편없이 짧은 까닭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볕 좋은 봄날에 흰 눈 내린 겨울날에 누구를 위해 부르랴정도로 얘기한 것이다. 그렇게 아끼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볕 좋은 봄날이든, 눈 내린 겨울날의 적적함이든 보통 땐 시를 짓기 알맞은 날임에도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했던 것이다.

 

하지만 양춘(陽春)’백설(白雪)’엔 전거가 있더라. 그건 바로 노래의 이름이었고 모든 사람이 다 부를 수 있는 대중가요가 아닌 수준 높은 가곡으로 아는 사람들만 함께 부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노래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건 곧 노래를 알던 사람이 함께 있을 때나 겨우 부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럴 때 희열은 당연히 배가 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아랫구절에 나오는 지음의 고사처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죽었으니 이젠 더 이상 시를 짓거나 하지 못하겠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陽春白雪爲誰唱
볕 좋은 봄날이나 흰 눈 내릴 때 누가 수창하랴. 陽春曲白雪曲을 누구를 위해 부르겠으며

 

 

결국 이 시를 통해 동악은 두 가지 전거가 담긴 곡조를 이야기하면서 석주와 체소를 종자기에 비유하고, 수준 높은 가곡을 함께 부를 수 있는 예인에 비유하며 그들을 먼저 보낸 서글픔을 극대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 시를 읽다 보니 자연스레 연암의 제정석치문(祭鄭石癡文)이 떠오른다. 연암은 이미 누님에 대한 묘지명에서 묘지명에 대한 일반적인 흐름을 깨며 절절한 느낌을 담았었는데 이 묘지명에서도 去者丁寧留後期, 猶令送者淚沾衣. 扁舟從此何時返, 送者徒然岸上歸라고 정감을 폭발시켜 있는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처럼 이 시는 짧음에도 불구하고 연암이 묘지명에 담았던 절절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건 두 친구를 평소에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한시는 만시(挽詩)라는 장르를 통해 죽은 이를 기리곤 했었다. 하지만 이 시는 만시라는 형식을 굳이 띄지 않더라도 얼마나 죽은 이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담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울림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줬다.

 

 

 

 

 

 

 

 

인용

목차

상권 목차

하권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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