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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6. 후사가와 죽지사(이덕무)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6. 후사가와 죽지사(이덕무)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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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李德懋, 1741 영조17~1793 정조17, 懋官, 炯庵雅亭靑莊官嬰處東方一士)는 멀리 정종대왕(定宗大王)의 별자(別子)인 무림군(茂林君)의 후예(後裔)이지만, () 성호(聖浩)와 모() 반남박씨(潘南朴氏) 사이에서 서자(庶子)로 태어났기 때문에 크게 등용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이덕무(李德懋)의 시세계는 법고(法古)창신(創新)을 결합하고 진심(眞心)과 진상(眞象)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지원(朴趾源)영처시고서(嬰處詩稿序)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덕무(李德懋)이백(李白)두보(杜甫)ㆍ황정견(黃庭堅)ㆍ진사도(陳師道) 등의 옛시인에게 얽매일 까닭이 없다고 하였으며, 그래서 그는 진솔한 생활모습과 정서를 담은 풍속시를 많이 남겼으며 사랑의 열정으로 가득 찬 죽지사(竹枝詞)를 남기는가 하면, 세련된 솜씨로 체험적인 염정시(艷情詩)를 보여주었다.

 

이덕무(李德懋) 스스로도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일권에서 체법(體法)은 스스로 법()을 법()삼지 않는 가운데서 이루어진다[法自具於不法之中]”고 하여 모방을 배척하고 천연(天然)과 천진(天眞)에 힘쓸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개성에 대한 고려가 없이 하나의 풍격에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여 공안파(公案派)의 초탈(超脫)한 시작(詩作)마저도 시인을 구속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덕무(李德懋) 자신은 엄우(嚴羽)의 묘해투오(妙解透悟)와 왕사정(王士禎)의 신운설(神韻說)에 경사되면서 의고(擬古)와 창신(創新)을 아우르려 하였다.

 

 

그래서 스스로 평범(平凡)을 거부한 이덕무(李德懋)는 그의 안광(眼光)에 들어오는 일체(一切)의 대상들을 결코 범상(凡常)한 완상물(玩賞物)로 만들지 않았다. 비상(非常)한 진기물(珍奇物)로 제조한 것이 그의 시세계에서 돋보이는 부분들이다. 진솔한 농촌의 생활 풍경을 그린 경물시(景物詩), 지방의 풍물을 사랑으로 바라본 죽지사(竹枝詞), 체험적인 염정시(艷情詩)의 세계를 차례로 보기로 한다.

 

먼저 제전사(題田舍)를 보인다.

 

荳殼堆邊細逕分

콩깍지 더미 곁으로 오솔길은 나뉘어 있고

紅暾稍遍散牛群

아침햇살 퍼지자 소떼들은 흩어진다.

娟靑欲染秋來岫

가을 든 산등성이는 고운 청색으로 물들려 하고

秀潔堪餐霽後雲

비 갠 뒤 구름은 너무 정결하여 먹음직하네.

葦影幡幡奴鴈駭

갈대 그늘 흔들리자 새끼 기러기 놀라고

禾聲瑟瑟婢魚紛

벼잎 스치는 소리에 잔 물고기떼가 야단스럽다.

山南欲遂誅茅計

산 아래에 집 짓고 살고 싶으니

願向田翁許半分

농부에게 반만이라도 빌리자고 해야겠다. 雅亭遺稿1

 

사가시집(四家詩集)에도 이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는 그가 젊은 시절에 제작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특히 함련(頷聯)은 그 구법(句法)이 노련(老練)하여 노건(老健)이덕무(李德懋)의 시세계를 한눈으로 읽게 해준다. 경련(頸聯)노안(奴雁)’비어(婢魚)’같은 것도 사대부(士大夫)의 시작(詩作)에서는 상상하는 일조차 허락될 수 없는 시어들이다. 미물이나 다름없는 자연물(自然物) ‘()’()’를 꾸미는 데에도 노비(奴婢)’ 인식이 깃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평화롭고 고운 중경(中景), 원경(遠景), 그리고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근경(近景)이 시인의 눈길에 따라 차례로 시인의 향유물이 된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사대부(士大夫)들은 물론 예사 사람들조차 보지 못하는 광경을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시인 이덕무(李德懋)에게 속해 있는 권능(權能)이다. 비가 개인 구름의 모습을 가리켜 너무 깨끗하여 먹음직하다고 한 것이 바로 그의 비범(非凡)을 시험한 현장이다.

 

 

다음은 죽지사(竹枝詞) 선연동(嬋娟洞)이다.

 

嬋娟洞艸賽羅裙

선연동의 풀들은 비단치마보다 뛰어나

剩粉殘香暗古墳

남은 분, 향기가 옛무덤에 그윽하네.

現在紅娘休詑豔

현세의 아낙네들 아름다움 자랑하지 마라,

此中無數舊如君

이 속에 무수한 사람 옛날엔 그대 같았네. 대동시선(大東詩選)7.

 

공교롭게도 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서경잡절(西京雜絶)을 통하여 꼭같이 선연동(嬋娟洞)’을 읊조리고 있으며 이들의 자유분방한 사랑에의 정감(情感)이 죽지사(竹枝詞)에 응축되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진솔이야말로 사대부의 시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며, ‘선연동초새라군(嬋娟洞草賽羅裙)과 같은 기교는 이덕무(李德懋)의 비범(非凡)이 아니고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다음엔 체험적인 사랑의 시 효발연안(曉發延安)을 본다.

 

不已霜鷄郡舍東

객사(客舍) 동쪽 새벽닭 울음 그치지 않고

殘星配月耿垂空

새벽별은 달을 짝해 하늘에 반짝인다.

蹄聲笠影矇矓野

말굽소리 갓 그림자 몽롱한 들판에

行踏閨人片夢中

꿈 속에서 아가씨를 밟으며 가네. 대동시선(大東詩選)7.

 

기생(妓生)과 부인(婦人)을 제외하고는 이성간(異性間)의 애정(愛情) 교감(交感)이 이루어질 수 없는 전통사회에서 시인이 염정시를 제작할 때에는 허구적인 추체험(抽體驗)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때 시인은 작중의 화자와 작자가 동일시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장치를 사용한다. 그 가운데 가장 흔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이 악부(樂府)의 틀을 빌리는 일이며 다음으로는 작자가 시적 정황에 개입하는 것을 억제하느라 최소한 3인칭 시점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작(詩作)을 이루어 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시인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자신의 체험적인 사실을 1인칭 시점에서 시화(詩化)하고 있다. 하루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길을 떠나는 고백적인 염정을 읊조리고 있으면서도 쉽게 비속(鄙俗)함에 떨어지지 않고 아정(雅正)한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장처(長處).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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