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왕국을 꿈꾸며
주원장(朱元璋)이 조선을 회의적으로 바라본 데는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볼 때 조선은 생겨날 필요가 없는 나라다. 이미 고려 말에 명나라를 섬기겠다는 세력이 확실히 자리를 굳힌 마당에 왜 굳이 새 왕조를 세워야 했을까? 중국의 원-명 교체는 민족 주체가 바뀌었으니 나름대로 필연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겠지만, 고려-조선 교체에는 그런 필연성이 없다. 바꿔 말하면 고려와 조선은 성격상의 차이가 없고 겨우(?) 왕실의 성씨만 달라졌을 뿐이다. 주원장과 정도전(鄭道傳)이 허허실실한 신경전을 벌인 이유도 서로가 그런 배경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차이를 만들면 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뀔 만한 타당하고 합리적인 명분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도전(鄭道傳)은 그 차이의 핵심이 바로 유학 이념이라고 판단한다. 고려는 비록 유학을 건국 이념으로 채택했지만, 왕실에서도 스스럼없이 승려를 배출할 만큼 불교가 융성한 나라였다. 또한 고려는 비록 과거제(科擧制)를 도입했으나 사대부-관료 체제를 이룩하지 못하고 끝내 귀족 지배체제에 머물고 말았다. 정도전(鄭道傳)은 바로 그런 점이 고려 왕조의 치명적인 결함이었다고 생각하고, 조선을 완벽한 사대부 국가로 만들고자 한다(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고려는 단계적으로 점차 유교 국가로 발전해가고 있었으니 실은 굳이 조선으로 대체되지 않았다 해도 어차피 사대부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한반도에 조선이 들어서야 할 역사적 필연성이 되어줄 것이다.
정도전(鄭道傳)이 국호를 결정한 다음 곧바로 『조선경국전』의 저술에 들어간 것은 그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경영하기 위한 책’이라는 뜻의 제목에 어울리게 『조선경국전은 새 왕조의 정치ㆍ경제ㆍ사회 ㆍ문화ㆍ군사ㆍ법 등 모든 부문을 총망라한 종합 교과서다. 교과서라면 모름지기 내용이 객관적이어야 하겠지만, 오늘날에도 걸핏하면 제기
되는 역사 교과서 왜곡 논쟁에서 보듯이 객관적인 교과서란 사실상 없다. 즉 모든 교과서는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이씨 왕실을 위한 교과서인 『조선경국전』에 담긴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바로 유학이다.
정도전(鄭道傳)이 이 책의 목차를 구성하는 데 가장 크게 참조한 문헌은 『주례』(周禮)다. 『주례』는 『의례(儀禮)』, 『예기(禮記)』와 더불어 이른바 ‘3례’를 이루는 중국 국가제도에 관한 최고(最古)의 문헌으로, 일찍이 주 무왕의 일급 참모였던 주공(周公)이 편찬했다고 알려진 책이다. 무려 2500년 전에 있었던 중국 주나라의 예법을 다룬 문헌을 참고서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주나라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유학 국가였기 때문이다. 유학의 고향 주나라는 일찍이 공자(孔子)가 이상적인 국가의 모델로 삼았고 중국 역대 왕조들이 늘 돌아가야 할 영원한 이상향으로 추앙했던 나라가 아닌가? 국호를 정할 때도 주 무왕과 기자의 관계를 떠올렸던 정도전(鄭道傳)이었으니 『주례』를 참고서로 삼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아마 정도전은 주원장(朱元璋)을 주 무왕에 비유하면서도 은근히 명나라가 옛 주나라에 미칠 수 있겠느냐는 뜻을 내비치고 싶었을 것이다. 주나라 이후 중국의 모든 왕조들은 저마다 그 ‘좋았던 옛날’을 계승한다고 표방했으나 실은 어느 왕조도 주나라의 후예라는 영예를 얻지는 못했다. 따라서 정도전이 주나라를 내세운 이유는 물론 실제로도 유학 이념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지만, 그와 더불어 명나라에게 우리 조선도 유학과 중화의 이념을 소중히 여기며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측에서 볼 때 그런 태도가 오만한 자세로 비쳐졌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가뜩이나 비천한 신분의 콤플렉스를 지닌 주원장(朱元璋)은 그런 정도전(鄭道傳)의 태도에서 불편한 심기를 느꼈을 것이며, 그게 조선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조선경국전』은 『주례』의 6전(六典)에서 본떠 국정의 부문을 치(治), 부(賦), 예(禮), 정(政), 헌(憲), 공(工)의 여섯 가지로 나누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吏), 호(戶), 예(禮), 병(兵), 형(刑), 공(工), 즉 각각 관리, 백성, 제사, 군사, 사법, 산업을 다루는 부서들에 해당한다(『주례』에는 治, 敎, 禮, 政, 刑, 事로 나누고 있으나 각각의 의미는 똑같다. 『조선경국전』의 6전 부분만을 따로 뽑아 별책으로 만든 게 경제육전經濟六典이다).
당대의 위정자와 관리, 백성들에게는 그 구체적인 조항과 내용들이 중요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보다 전체적인 성격이 더 중요하다. 『조선경국전』에서 주목할 것은 우선 서론에서 강조되는 ‘인(仁)’의 정치다. 상권에서 보았듯이 공자(孔子)는 주나라 시대에 탄생한 예(禮)의 개념에 인을 더해서 유학의 골조를 구성했다(맹자도 역시 인에 의한 왕도王道 정치를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정도전(鄭道傳)이 이성계에게 인을 주문한 것은 곧 조선의 국왕이 유교 정치 이념에 충실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유교 국가의 왕은 원래 실무를 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도전은 재상이 통치의 실질적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국왕은 군림하는 존재이고 실제 정치와 행정은 재상 중심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는 바로 천자를 정점으로 하고 사대부들이 천자를 보좌하는 전형적인 유교 정치의 밑그림이며, 주자학(성리학)을 정립한 주희(朱熹, 1130~1200)의 정치 사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도전이 제시한 조선 건국의 이념은 이제 분명해진다. 그는 옛 주나라의 예법을 기본 바탕으로 하면서 주희가 체계화한 성리학의 정신에 따라 조선을 유교왕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아울러 개인적인 동기로, 정도전은 비록 이성계가 국왕이지만 조선의 기획자인 자신이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왕이 상징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관료가 실무를 담당하는 체제가 가장 바람직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조선은 유교왕국, 바꿔 말해 사대부 관료 체제를 공언하면서 출발한다. 역사상 어느 나라도 이렇듯 처음부터 지배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명확히 밝히고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정도전(鄭道傳)의 그 원대한 야망은 곧 예상치 못한 거센 반격을 받게 된다
▲ 조선의 설계도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三峰集)』에 실린 「조선경국전」의 첫 부분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성계는 정도전의 디자인에 따라 조선의 시공만 담당한 ‘십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조선경국전」은 조선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셈이다. 과연 나중에 이 책은 세조 때 본격적인 국가운영 지침서인 『경국대전』의 모태가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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