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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 삶을 만나다,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 사유를 발생시키는 조건들, 사건과 무의미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 삶을 만나다,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 사유를 발생시키는 조건들, 사건과 무의미

건방진방랑자 2021. 6. 2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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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무의미

 

 

지금까지 우리는 생각이 발생하는 조건을 음미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의 비밀에 어느 정도 접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생각의 비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생각이 우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은 우리가 낯선 사건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비자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이 발생하는 조건을 음미하고자 할 때 우리는 최종적으로 사건이라는 개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장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사건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를 갖도록 할 것입니다.

 

사건을 다루기 위해서 예를 다시 하나 들어봅시다. 그에게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첫 월급을 타서 사랑하는 그녀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약속 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리지만, 그녀는 조금 늦게 오는 것 같습니다. , 그래도 그에게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한두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그가 있는 카페에 들어옵니다. 그는 늦게 온 것에 대해 별다른 투정을 부리지 않고, 그녀가 평소에 갖고 싶어하던 예쁜 시계를 선물로 내놓습니다. 시계를 잠시 차보는 듯하더니, 그녀는 보일 듯 말 듯 갑자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바쁜 일이 있다고 일어섭니다. ‘그녀가 언뜻 내비쳤던 눈물’, ‘서둘러 나가는 그녀의 뒷 모습’,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중대한 사건이자 기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던진 이 모든 기호는 그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것들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너무나 낯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눈물은 무슨 의미를 감추고 있을까? 선물을 받고 내 사랑에 너무 감격해서 흘린 눈물일까? 아니면 이제 와서 이런 선물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회한의 눈물일까? 그렇다면 그녀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니야! 분명 그녀는 내가 준 시계를 차보지 않았던가? 맞아! 그녀는 다른 바쁜 일이 있어서 경황이 없었던 것이 분명해. 그런데 오늘 그녀는 내 눈을 한번도 보지 않은 것 같아………여러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녀의 눈물의 의미가 곧 떠오르나요? 아마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그녀의 눈물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품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그녀의 눈물이 헤어짐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눈물이 너무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흘린 것으로, 감격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확실치 않은 의미 때문에 이 상황은 하나의 사건이자 기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강요하기는 하되, 아직 확정된 의미를 갖지 않았다는 점 말입니다.

 

사건이 분출하는 기호는 분명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기호가 어느 한 방향의 의미만을 강제하지 않고, 오히려 모순되어 보이는 여러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모순율(law of contradiction)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모순율은 보통 논리학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모순적인 두 진술은 동시에 참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이 사과는 붉다이 사과는 붉지 않다라는 것은 동시에 참일 수 없다는 말이죠. 이 점에서 모순율은 모순이 곧 법칙이라는 뜻이 아니라, 모순을 피하자는, 혹은 피해야 한다는 규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으며, 훗날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 되기도 했다. 경험의 다양성을 강조했던 그는 형상이란 경험되는 대상의 구성 원리이기 때문에, 경험상이 소멸하면 같이 소멸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그의 사유를, 경험 대상이 소멸해도 형상은 영원하다고 주장했던 플라톤과 구별시켜주는 점이다. 주요 저서로 형이상학, 정치학, 분석론 전서등이 있다의 생각을 한번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모순율을 최초로 진지하게 생각했던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모순율을 설명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모든 논증의 출발점은 우리와 논쟁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것은 존재한다거나 혹은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들 가운데 하나만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논증의 출발점은 그가 그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horismenon)’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형이상학(Metaphysica)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하는 모순율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던 것과 미묘한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이해에 따르면 모순율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규칙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논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모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어떤 정보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과가 붉으면서도 동시에 붉지 않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이것이 무의미한 이야기라고 짜증을 내기 쉽습니다. ‘사과가 붉다는 거야 아니면 붉지 않다는 거야, 도대체 뭐야?’ 사과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 정보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목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의 생각이 옳다면 애인의 눈물이란 기호는 분명 모순적인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고, 그래서 결국 그 남자에게 아무런 구체적 정보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파블로 피카소, [우는 여자]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이 아닐까요? 애인의 눈물은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해서, ‘사랑한다는 의미와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를 골치 아프게 했던 것이 아닐까요? 사실 우리가 기호를 해독하려고 하는 것은, 기호가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내용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볼 때 모순이란 말처럼 사건기호의 논리를 잘 표현해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다라는 모순된 사태와 우리가 마주쳤다면, 그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것은 A일까, 아니면 A가 아닐까? 도대체 이것은 무엇일까?’ ‘사건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은, 이것이 바로 모순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모순이란 말은 무의미(non-sense)’와도 연결되어 이해되곤 합니다.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모순된 주장은 어떤 정보도 없다고 쉽게 생각해버리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실 사건과 그것을 표현하는 모순은 어떤 의미나 정보가 부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의미나 정보가 너무 많이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무의미라는 것 역시 의미가 결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가 과잉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들뢰즈가 알아차린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부조리의 철학에서 무의미란 단순히 의미와 대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부조리는 의미의 결핍, 부족함에 의해 정의된다. (……) 그러나 무의미란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의미를 주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의미의 부재에 대립하는 것이다.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u)

 

 

들뢰즈의 말처럼 무의미는 단순히 의미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표면적으로 확정된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만, 무의미는 오히려 의미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무의미에는 다양한 의미, 모순되기까지 한 많은 의미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무의미는 무한한 의미라고도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기호에 하나의 의미만이 있다면 그것은 습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지, 결코 우리의 생각을 강제하지는 못합니다. 사실 하나의 의미로 확정된 것은 더 이상 기호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요. 예를 들어 애인의 눈물이 분명하게 이별만을 의미한다면, 이 눈물은 우리를 직접적으로 슬프게 할 뿐,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강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의미란 마치 일종의 블랙홀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의미는 바로 우리의 생각을 끌어당기는, 사건이 분출하는 기호가 가진 힘이기 때문입니다.

 

무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의미를 채우도록 강제하는 힘, 즉 생각하도록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몰래 사랑하던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느 날 우리에게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보냈습니다. 우리에게는 낯선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경우 그 사람의 미소는 어떤 의미도 결여하고 있다는 뜻에서 무의미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복잡한 의미, 심지어는 모순적이기까지 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에서 그 사람의 미소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가소롭다는 것인가?’ 의미를 확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사람의 미소 속에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제 우리는 생각이란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 생각이 직접 세계를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세계와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낯설게 다가올 경우, 오직 이때에만 우리는 생각이란 말에 걸맞게 사유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건과 마주치며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사건이 내뿜는 기호와 무의미 속에서 우리는 낯섦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이 점에서 우리의 생각은 바로 이 낯섦을 친숙한 것으로 바꾸려는 삶의 무의식적인 의지로부터 기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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