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6. 한순간의 불꽃 같은 인간문명
지난 시간에 공부한 17장은 ‘순기대효야(舜其大孝也)’라고 해서, 그 내용이 순(舜)임금을 찬양한 것이었는데, 이 18장은 ‘무우자기유문왕호(無憂者其惟文王乎)’라고 해서 문왕(文王)을 찬양한 글입니다. 그리고 19장을 보면, ‘무왕주공 기달효의호(武王周公, 其達孝矣乎)’라고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을 찬양한 글임을 감안할 때, 17ㆍ18ㆍ19장이 순(舜)·문(文)·무(武)·주공(周公)에 대한 한 묶음의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동일한 성격의 프라그먼트(fragment)로 볼 수 있어요. 이것은 유교의 정통적 파라곤(Paragon), 유교를 만들어간 네 인물(character)에 대한 품평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서로 비교해서 보시도록!
子曰: “無憂者, 其惟文王乎! 以王季爲父, 以武王爲子. 父作之, 子述之. 공자가 말씀하셨다 “문왕(文王)은 걱정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왕계(王季)로서 아버지로 삼았고, 무왕(武王)을 아들로 삼았으니” 此言文王之事. 『書』言‘王季其動王家,’ 蓋其所作, 亦積功累仁之事也. 여기서는 문왕의 일을 말했다. 『서경』에 ‘왕계가 왕실의 일을 부지런히 했다.”라고 되어 있다. 대체로 문왕이 창조하였다는 것은 공을 쌓아 인을 누적시킨 일이다. |
‘文王은 걱정이 없는 사람일 거라고 공자가 말씀하셨다[子曰 無憂者 其惟文王乎].’ 순(舜)·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 이런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영어에 ‘컬츄럴 히어로(Cultural Hero)’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것은 상당히 재미난 개념입니다.
도토리나무가 생태계를 만든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의 문화·문명(culture & civilization)이라는 것이 그다지 오래된 게 아닙니다. 지구상의 생물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굉장히 최근의 현상이예요. 식물의 경우에 그 지역의 풍토에 따른 식물군(植物群, flora)이라는 것이 있듯이, 모든 생명현상은 기후조건(climate)에 따라서 그 서식지(locality)가 결정되어 있어요. 활엽수는 활엽수가 자라나는 지역에서만 자랍니다.
나는 내 이름을 영어로 ‘Young-Oak’이라고 번역해서 쓰는데, 이 ‘오크(Oak)’이라는 게 도토리나무입니다. 그래서 김용옥은 ‘젊은 도토리나무’죠. 왜 이렇게 쓰냐면, 우리나라가 도토리나무 지대(Oaktree belt)이거든요. 도토리가 있어야 다람쥐가 있고, 다람쥐가 있어야 멧돼지같은 것들이 살 수 있고, 그런 게 있어야 호랑이가 사는 것이지요.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나라에 도토리가 없어지면서 호랑이가 없어진 겁니다. 그러니까 원래 자연상태에서는 ‘에코 체인(eco-chain)’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는 겁니다. 생물의 서식지역이라는 것은 흔히 ‘어디어디가 그 동물의 서식지이다’라고 결정되어 있습니다. 돌고래가 분포되어 있는 곳은 어느 해역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로컬리티(locality)’가 결정되어 있는 거지요.
인간은 문명과 문화를 건설하며 산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man) 등 고대 인류의 해골은 지구상의 어디에서든지 나타납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유골이 어디에든지 나타난다는 사실은 다른 동물의 경우에서는 볼 수 없는 굉장히 특이한(unique) 점입니다. 기후조건(climate)에 관계없이 지금 인류의 조상들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브로노프스키(Jacob Bronowski, 1908~1974)가 하는 말인데, 인간만이 지구상에서 가능한 모든 조건 그 어디에서도 사는 유니크한 동물이라는 거예요. 그것은 문명을 건설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겁니다. 문명이라는 보호(shield)가 없으면, 인간도 기후 등의 자연조건에 완전히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고, 생존가능한 지역이 한정돼버려요. 아프리카 등지의 더운 지방에서는 의상이 없었는데, 의상보다 문신(tatoo)이 더 빨리 발달했지요. 북상하면서 의상이 발달한다든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하여튼 인간은 문명과 문화라는 것을 만들면서 살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문명(civilization)과 문화(culture)의 문제도 조금 혼동을 일으키는 문제인데,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우선은 문명이라는 것은 대단위로 보고, 문화는 문명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하여튼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최근의 현상입니다. 가깝게는 오천년, 기껏 잡아야 한 만년. 이것은 고고학에서 말하는 천문학적인 숫자와 비교하면 우스운 것이죠. 소 같은 것의 화석을 보면 수백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모양이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진화의 폭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인간은 정말 눈부시게 진화했지요. 유독 인간만이 희한한 생물학적 진화를 한 겁니다.
여러분들 중에 해부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해골의 제일 밑에 있는 척추와 해골을 끼는 구멍, 즉 ‘흐라맨 마그넘(foramen magsum)’의 위치가 시대에 따라서 점점 변합니다. 구멍의 위치가 해골의 뒷부분에서 지금의 위치로, 즉 해골의 밑 부분으로 그 구멍의 위치가 이동해요. 각각의 서로 다른 두개골의 시대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빨리 인간이 진화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직립한 인간의 두개골을 척추에 끼어 얹으려면, 그 구멍의 위치가 아래쪽으로 내려와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해골만 보아도 직립이냐 아니냐를 알 수 있는 겁니다. 더군다나 인류의 삶에 있어서 문화라는 것은 그런 생물학적, 해부학적(anatomical) 진화의 가장 말단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류문명의 발생이라는 것은 그와 같이 최근의 현상이예요. 기껏해야 한 오천년 정도의 내력밖에는 갖고 있질 않죠. 갑골문이라고 해봐야 불과 삼천여년 전의 것입니다. 대강 B.C 1300년부터 1100년 사이의 일이지요.
인간의 등장과 활약은 24시간 중 1~2초의 시간
‘빅뱅(Big Bang)’으로부터 우주의 나이, 즉 150억년의 기나긴 세월을 생각한다면(요즘은 새로운 학설이 나와서 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인류문명의 출현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눈 깜짝할 시간 전에 일어난 사건에 불과합니다. 우주의 나이 150억년을 1년의 ‘캘린더(calendar)’로 쳤을 때, 5천 년전 인류문명의 발생이라고 하는 것은 12월 31일 11시 59분 59초 정도에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인간들의 지랄이라는 게 1,2초 사이에 지랄한 거지, 대단한 게 아니예요. 그리고 지진 같은 게 나면 제아무리 위대한 문명이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끝장나는 거예요. 기독교가 말하는 종말론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간단한 현실이예요. 종말이라는 게 목사들이 말하듯이 대단하게 하늘나라에서 막 꽹과리치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야. 그럴 겨를도 없어! 이번 고오베 지진의 경험으로도 알았겠지만 순간에 가는 거니까. 죽는 것은 너무 걱정할 게 없어요. 죽을 때는 다 같이 죽으니까. 종말을 걱정해서 못 사는 어리석은 휴거파(携擧派)들은 한심하다고 생각되는데, 그렇지만 종말을 부정할 필요는 없는 거야, 항상 가능하지! 태양도 100억년 정도 되면 끝난다고 하니까, 앞으로 50억년 남았다고 하는 건지. 하여튼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은 최근에 만들어진 거예요. 지각 위에다가 잠깐 건설해 놓은 것이 문명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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