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허엽 가문의 시
許氏自麗朝埜堂以後, 文章益盛. 奉事澣生曄, 是爲草堂. 草堂生三子, 其二篈, 筠季, 女號蘭雪軒. 澣之從叔知中樞輯, 再從兄忠貞公琮, 文貞公琛, 皆以文章鳴.
或傳許氏祖山有玉柱長丈餘, 及筠椎碎之後, 文章遂絕云. 今摘各人一篇, 以見豹斑.
輯之「實性寺」詩曰: ‘梵宮金碧照山椒, 萬壑雲深一磬飄. 僧在竹房初入定, 佛燈明滅篆烟消.’
琮之「夜坐卽事」詩曰: ‘滿庭花月寫窓紗, 花易隨風月易斜. 明月固應明夜又, 十分愁思屬殘花.’
琛之「春寒次太虛韻」詩曰: ‘銅臺滴瀝佛燈殘, 萬壑松濤夜色寒. 喚起十年塵土夢, 擁爐新試小龍團.’
澣之「村庄卽事」詩曰: ‘春霖初歇野鳩啼, 遠近平原草色齊. 步啓柴門閒一望, 落花無數漲南溪.’
曄之「箕城戱題」詩曰: ‘許椽東來下界塵, 大平江上喚眞眞. 相將去作吹簫伴, 浮碧樓高月色新.’
篈之「謫夷山」詩曰: ‘經春鄕夢滯天涯, 四月湖山發杏花. 江路艸生看欲偏, 放臣憔悴泣懷沙.’
筠之「義昌邸晩詠」詩曰: ‘重簾隱映日西斜, 小院回廊曲曲遮. 疑是趙昌新畫就, 竹間雙雀坐秋花.’
蘭雪之「夜坐」詩曰: ‘金刀剪出篋中羅, 裁取寒衣手屢呵. 斜拔玉釵燈影畔, 剔開紅焰救飛蛾.’
해석
許氏自麗朝埜堂以後, 文章益盛.
허씨는 고려의 야당(埜堂)【허금(許錦, ?~1388)의 호이며 전리판서(典理判書) 등을 맡았다.】 이후로부터 문장이 더욱 좋아졌다.
奉事澣生曄, 是爲草堂.
봉사(奉事)를 역임한 허한(許澣)이 허엽(許曄)을 낳았는데 이가 초당(草堂)이 되었다.
초당이 세 아들을 낳았는데 둘째가 허봉(許篈), 막내가 허균(許筠), 딸이 허난설헌(許蘭雪軒)이다.
澣之從叔知中樞輯, 再從兄忠貞公琮, 文貞公琛, 皆以文章鳴.
허한(許澣)의 종숙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를 지낸 허집(許輯)과 재종형인 충정공(忠貞公) 허종(許琮)과 문정공(文貞公) 허침(許琛)은 모두 문장으로 세상에 유명해졌다.
或傳許氏祖山有玉柱長丈餘, 及筠椎碎之後, 文章遂絕云.
혹 전하기론 허씨의 조상 산에 옥 기둥의 길이가 1장여 남짓인데 허균이 쇠몽둥이로 부순 후로 문장이 마침내 끊어졌다고도 한다.
今摘各人一篇, 以見豹斑.
이제 각 사람들의 한 편을 뽑아 시문의 아름다움【표반(豹斑): 산림에 숨어사는 표범의 무늬처럼 시문이 아름다운 것을 뜻하는 말이다. 열녀전(烈女傳) 현명(賢明)에 “남산의 현표(玄豹)가 7일의 무우(霧雨)에도 먹이를 찾아 내려가지 않는 것은 그 털을 윤택하게 하여 문장을 이루고자 함이다.”라는 말이 있다.】을 보인다.
輯之「實性寺」詩曰: ‘梵宮金碧照山椒, 萬壑雲深一磬飄. 僧在竹房初入定, 佛燈明滅篆烟消.’
허집(許輯)의 「실성사(實性寺)」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梵宮金碧照山椒 | 사찰의 금빛과 푸름은 산 마루에 비추고 |
萬壑雲深一磬飄 | 온 골짜기 구름 깊은 곳 한 경쇠소리 날리네. |
僧在竹房初入定 | 스님은 대나무 방에 있어 막 선정에 드니 |
佛燈明滅篆烟消 | 사찰의 등불 켜졌다 꺼졌다 연기는 사라져 가네. |
琮之「夜坐卽事」詩曰: ‘滿庭花月寫窓紗, 花易隨風月易斜. 明月固應明夜又, 十分愁思屬殘花.’
허종(許琮)의 「야좌즉사(夜坐卽事)」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滿庭花月寫窓紗 | 정원에 가득한 꽃과 달이 비단 창에 쏟아졌다가 |
花易隨風月易斜 | 꽃은 쉽게 바람 따라 날고 달은 쉽게 기우네. |
明月固應明夜又 | 밝은 달은 진실로 응당 환한 밤이 또 올 테지만 |
十分愁思屬殘花 | 가득한 근심스런 생각은 진 꽃에 붙었구나. |
琛之「春寒次太虛韻」詩曰: ‘銅臺滴瀝佛燈殘, 萬壑松濤夜色寒. 喚起十年塵土夢, 擁爐新試小龍團.’
허침(許琛)의 「춘한차태허운(春寒次太虛韻)」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銅臺滴瀝佛燈殘 | 구리 누대의 물방울 떨어지고 사찰의 등불은 꺼지며 |
萬壑松濤夜色寒 | 온 골짜기 소나무에 파도쳐 밤 빛 차가워. |
喚起十年塵土夢 | 10년 동안의 속세 꿈을 불러 일으켜 |
擁爐新試小龍團 | 화로 끼고서 새로 소룡단을 시험해보네. |
澣之「村庄卽事」詩曰: ‘春霖初歇野鳩啼, 遠近平原草色齊. 步啓柴門閒一望, 落花無數漲南溪.’
허한(許澣)의 「촌장즉사(村庄卽事)」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春霖初歇野鳩啼 | 봄 부슬비 막 개어 들판의 비둘기 울고 |
遠近平原草色齊 | 멀고 가까운 평원엔 풀색이 같아졌네. |
步啓柴門閒一望 | 걸어 사립문 열고서 한가롭게 한 번 바라보니 |
落花無數漲南溪 | 낙화 무수하고 남쪽 시냇물 불어났구나. |
曄之「箕城戱題」詩曰: ‘許椽東來下界塵, 大平江上喚眞眞. 相將去作吹簫伴, 浮碧樓高月色新.’
허엽(許曄)의 「기성희제(箕城戱題)」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許椽東來下界塵 | 허연이 하계 속세에 놀러와서 |
大平江上喚眞眞 | 대동강 가에서 진진을 불러 |
相將去作吹簫伴 | 서로 어울리다가 떠날 적에 퉁소 부는 짝 되어주니 |
浮碧樓高月色新 | 부벽루의 높은 달빛 새로워라. |
篈之「謫夷山」詩曰: ‘經春鄕夢滯天涯, 四月湖山發杏花. 江路艸生看欲偏, 放臣憔悴泣懷沙.’
허봉(許篈)의 「적이산(謫夷山)」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經春鄕夢滯天涯 | 봄 지나도록 고향의 꿈으로 하늘 가에 머무는데 |
四月胡山發杏花 | 4월 오랑캐의 산에 살구나무꽃 피었네. |
江路草生看欲遍 | 강길에 난 풀이 두루 피려는 걸 보노라니 |
放臣憔悴泣懷沙 | 추방된 신하는 초췌하게 「회사(懷沙)」에 눈물짓네. |
筠之「義昌邸晩詠」詩曰: ‘重簾隱映日西斜, 小院回廊曲曲遮. 疑是趙昌新畫就, 竹間雙雀坐秋花.’
허균(許筠)의 「의창저만영(義昌邸晩詠)」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重簾隱映日西斜 | 겹겹의 발에 은은히 비추며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
小院回廊曲曲遮 | 작은 집의 회랑은 굽이굽이 가려지네. |
疑是趙昌新畫就 | 조창의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 듯이 |
竹間雙雀坐秋花 | 대나무 사이 두 마리 참새가 가을 꽃에 앉았네. |
蘭雪之「夜坐」詩曰: ‘金刀剪出篋中羅, 裁取寒衣手屢呵. 斜拔玉釵燈影畔, 剔開紅焰救飛蛾.’
허난설(許蘭雪)의 「야좌(夜坐)」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金刀翦出篋中羅 | 상자 속의 비단을 쇠칼로 잘라 |
裁取寒衣手屢呵 | 겨울옷을 다 지으려 손에 자주 입김을 불어대네. |
斜拔玉釵燈影畔 | 옥 비녀를 등불 그림자 곁에서 비끼어 뽑아 |
剔開紅焰救飛蛾 | 붉은 불꽃을 없애 날던 나방을 구해주네.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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