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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헌문 제십사 - 17. 관중의 제후들을 규합하였기에 인(仁)의 공로가 있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헌문 제십사 - 17. 관중의 제후들을 규합하였기에 인(仁)의 공로가 있다

건방진방랑자 2022. 12. 1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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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관중의 제후들을 규합하였기에 인()의 공로가 있다

 

 

14-17. 자로가 여쭈었다: “제나라의 임금이 된 환공(桓公)이 라이벌 공자 규(公子 糾)를 죽이자, 그를 모시던 소홀(召忽)은 같이 순직하였는데, 관중(管仲)은 살아 남았으니, 관중이야말로 인하지 못하다 말해야 할 것 아닙니까?”
14-17.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 未仁乎?”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환공은 제후들을 아홉 번이나 규합시키면서도 병거(兵車)를 쓰지 않았으니 이는 관중의 역량이다. 누가 과연 관중의 인()함에 미치겠는가? 누가 과연 관중의 인()함에 미치겠는가!”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와 소백(小白)은 모두 제나라의 못난 군주 양공(襄公)의 두 동생들이다. 양공은 성격파탄자였다. 그 누이동생 문강(文姜)16년 이상이나 남매상간(男妹相姦)을 즐겼다. 시경의 국풍에도 이들의 관계를 야유한 노래들이 있다. 문강의 남편 노환공(魯桓公)이 이 문강 때문에 갈비뼈가 으스러져 죽은 이야기는 이미 전술한 바와 같다(2-5). 양공 밑에서 위기를 감지한 똘똘한 두 동생들은 각기 피신한다. 규와 소백은 배가 달랐다. 형규는 엄마가 노나라 여자였기에 노나라로 피신했다. 그러나 동생 소백은 엄마가 위나라 여자였는데 위나라로 가지 않았다. 벌써 연줄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미래를 내다보는 형안이 있고, 보다 의지가 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백은 제나라에서 멀지 않은 거()라는 지방을 망명지로 택했는데 현재의 산동성 거현(莒縣)이다. 내가 대만에서 유학할 때만 해도 사방에 우리가 지금 거나라에 있다는 것을 잊지말라[물망재거(勿忘在莒)]!’라는 표어가 붙어있었다. 장개석이 대만에 와있는 것이 소백이 거 나라에 와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대륙을 탈환하여 제환공(齊桓公)과 같은 패자가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어이다. 이 소백이 바로 훗날의 제환공이다.

 

소백에게는 포숙아(鮑叔牙)라는 탁월한 가정교사가 있었다. 포숙아야말로 춘추오패의 첫 꿈을 실현시킨 장본인으로 참으로 노자(老子)와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물 같이 흐르며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자기 공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의 장점을 부각시켜 주는, 아량이 거대한 인물이었다. 이 포숙아의 불알친구가 바로 관중(管仲)인데, 관중이 규의 참모가 된 것도 포숙아의 천거에 의한 것이었다. 어차피 제나라의 군주는 규나 소백이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고, 규 밑에 관중이 있고, 소백 밑에 포숙아가 있게 되면 대권이 이 두 사람의 참모 밖으로 새어나갈 길은 없다. 포숙아는 이 같이 대세의 판국을 읽고 있었다.

 

양공이 사촌형 공손무지(公孫無知) 일당에게 살해되고, 무지(無知)는 이름 그대로 무지막지한 놈이라 몇 개월 안 가서 부하들에게 살해되고 만다. 제나라 권좌는 공석이 되었다. 이제 이 빈자리를 향해 누가 먼저 달려오느냐? 이것만 문제였다. 소백은 이 상황을 먼저 읽었다. 노나라에 있던 규와 거()에 있던 소백은 이미 상대가 되질 않았다. 거가 노나라보다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관중이 모를 리 없다. 관중은 별동대를 조직하여 급히 달려가서 소백이가 제나라로 가는 길목을 지켰다. 드디어 소백과 포숙아의 행렬이 나타났다. 자기를 어려서부터 사랑하고 또 사랑해준 포숙아의 주군 소백이지만, 자기는 규를 모시고 있는 몸! 관중다웁게 화살을 당겼다. 화살촉에는 무서운 짐독까지 발라 놓았다. 소나무가지 사이로 소백의 마차가 나타나자 관중은 활시위를 놓았다. 관중의 화살은 소백에게 명중했으나, 운명의 신은 소백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화살이 소백의 혁대 걸쇠[]에 맞아 안전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엎드린 소 백은 일행에게 곡을 하라고 명했다! 행렬을 갑자기 영구차행렬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관중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유유하게 노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진군했지만 이미 소백은 막강한 제군(齊軍)을 손에 넣은 제나라의 임금이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규와 관중의 모가지에 떨어지는 칼날뿐이었다.

 

노군은 대패했고, 노나라는 굴복하고 소백, 즉 제환공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규의 모가지를 날려라! 같은 참모였던 소홀(召忽)과 관중(管仲)은 감옥수레(함거檻車)에 보내라! 규의 모가지는 핏방울을 튀기며 날아갔다. 소홀은 자결한다. 관중은 제나라에 도착한다. 소백, 제환공은 자기에게 독화살을 쏜 관중을 자기 손으로 처단코자 했다. 이때 또 한 번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우정은 발동된다. 포숙아가 왈: “주군께서 이 제나라 하나만을 다스리시려 한다면 능히 소신이 재상직을 맡아 해나갈 수 있나이다. 허나 중원 천지를 호령하시고 싶으 시다면 반드시 저 관중을 재상으로 기용하십시오!”

 

이렇게 해서 제나라의 재상이 된 관중! 관중은 개혁정치를 단행하고 부국강병의 실적을 올리고 내분을 억제하고 주변의 제후들을 위복(威服)시킨다. 북적(北狄)의 남침과 강성해진 남방 초()나라의 북진을 막아 중원의 제후들을 보호하였다. BC 651년 규구(葵丘)에서 제후들의 회맹으로 명실공히 제환공(齊桓公)을 춘 추의 제1패자로 만든 것이다. 과거에는 관자(管子)라는 서물이 전혀 관중(管仲)이라는 역사적 인물과는 관련이 없는 후대 직하학파의 앤톨로지(anthology)로 간주했으나, 간백문헌이 대량 출토되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병서나 기타 관련 문헌의 정황으로 보아 관자의 내용이 부분적으로는 상당히 오래된 사유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이 방면으로도 후학들의 연구를 기대한다.

 

하여튼 의리를 사랑하는 자로의 입장에서는 규()와 더불어 죽지 않은 관중을 인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대인다웁게 당대의 역사적 진취적 정황을 정확히 읽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미 관중의 등장은 개인적 의리의 차원에서 형량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구합제후(九合諸侯)’()’를 고주는 아홉 번이라고 읽고 신주는 (, 감독한다는 뜻)’자로 고쳐 읽는다. 나는 번역은 양자를 종합했으나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고주를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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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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