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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위령공이 무도(無道)함에도 나라를 잃지 않은 이유
14-20. 공자께서 위나라 영공(公)의 무도함을 말씀하시자, 계자가 여쭈었다: “그토록 무도한데도 어찌하여 그 자리를 잃지 아니 하였습니까?” 14-20. 子言衛靈公之無道也, 康子曰: “夫如是, 奚而不喪?” 이에 공 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중숙어(仲叔園)는 외국의 사신으로 온 빈객을 잘 다스리고, 축타(祝鮀)는 종묘를 잘 다스리고, 왕손가(王孫賈)는 군대를 잘 다스린다. 이와 같이 유능한 신하들이 잘 버티고 있는데 어찌 그 자리를 잃겠는가?” 孔子曰: “仲叔圉治賓客, 祝鮀治宗廟, 王孫賈治軍旅. 夫如是, 奚其喪?” |
‘강자(康子)’는 바로 계강자이다. 그러니까 이 대화는 귀로 후의 대화이다. 그러나 위령공은 귀로 전에 죽었다. 귀로 9년 전, BC 493년에 늙어 자연사하였다. 그래서 나는 과거형으로 번역하였다. 공자로서는 위령공과의 기나긴 애증의 관계가 있다.
계강자의 질문에 ‘그 자리를 잃는다[喪]’라는 표현은 이미 군주라도 무도하면 제거된다는 관념이 상식화되어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미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계강자는 공포감이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개차반으로 산 사람이 제거되지 않고 그토록 오래 버티었는가?
공자의 대답은 명료하다. 아무리 멍청한 리더라도 참모만 잘 두면 자리를 잃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훌륭한 참모를 거느리는 리더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사람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재능 을 적재적소에 박아둘 줄만 안다면 오케이.
“중숙어(仲叔圉)‘는 5-14의 ‘공문자(孔文子)’와 동일인, ‘축타(祝鮀)’는 6-14에 기출, ‘왕손가(王孫賈)’는 3-13에 나온 인물, 왕손가는 「팔일(八佾)」에서는 좀 부정적인 맥락에서 등장했지만 여기서는 현신(賢臣)으로 평가되고 있다. 『논어』에서는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긍정ㆍ부정이 엇갈린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진실이고, 째지(jazzy)한 『논어』의 위대함이다. 역사기술에 있어서는 일관성을 위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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