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장구(離婁章句) 하(下)
1. 순임금과 문왕은 부절(符節) 같다
4b-1.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순은 동쪽의 저풍(諸馮)【산동성 제성현(諸城縣)】에서 태어나 부하(負夏)【위나라 지역으로 추정】로 이주하였고 명조(鳴條)【산동성 정도현(定陶縣) 부근, 『서경』 「탕서」편의 서(序)에는 탕왕(湯王)과 걸왕(桀王)이 싸운 곳으로 나온다. 이상은 모두 확실한 지명이 아니다】에서 생애를 마치었으니 그는 동쪽 오랑캐 사람[東夷之人]이다. 문왕(文王)은 기주(岐周)【섬서성 기산현(岐山縣) 동북. 주나라의 구읍(舊邑)】에서 태어나 필영(畢郢)【『여씨춘추(呂氏春秋)』 「구비(具備)」편에는 필정(畢程)으로 되어있다. 필정은 섬서성 함양시(咸陽市) 동 21리에 있다. 필영을 문왕이 도읍한 풍(豐)지역으로 보는 설도 있고, 무왕(武王)이 도읍한 호(鎬) 지역으로 보는 설도 있다】에서 생애를 지역으로 마치었으니 그는 서쪽 오랑캐 사람[西夷之人]이다. 4b-1. 孟子曰: “舜生於諸馮, 遷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文王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人也. 출신지역의 거리가 떨어진 것이 천여 리이고, 세월을 서로 격한 것만 해도 천여년이다. 그러나 뜻을 얻어 천하의 중심인 중원에서 도를 행하였다는 측면에서는 두 사람이 부절(符節)【반으로 갈랐다가 맞추는 인신(印信), 옥(玉)ㆍ각(角)ㆍ동(銅)ㆍ죽(竹)을 소재로 쓴다】을 맞추는 것처럼 정확히 일치한다. 선성(先聖)인 순(舜)과 후성(後聖)인 문왕(文王)의 생각이나 행동이 한 몸에서 나온 것처럼 동일하다.” 地之相去也, 千有餘里; 世之相後也, 千有餘歲. 得志行乎中國, 若合符節. 先聖後聖, 其揆一也.” |
중국문명의 양대 패러곤(paragon, 본보기)을 ‘오랑캐’라고 규정하는 맹자의 언어를 보면, 결코 ‘오랑캐’라는 말이 부정적인 함의(含意)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전국시대에는 중원중심사고를 고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변세계와의 교섭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중국문명은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오랑캐문화를 흡수하면서 도약의 계기를 맞이한 것이다. 여기 맹자의 논의의 핵심은 인간의 본성은 고ㆍ금ㆍ동ㆍ서의 차이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인 그 무엇이라는 신념의 방이다. 그의 ‘성선론(性善論)’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은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사단(四端)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가장 위대한 두 성인도 서쪽 오랑캐, 동쪽 오랑캐였으며, 이들 오랑캐나 전국시대에 살고 있는 천하의 모든 사람이 결국 같은 본성의 바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율곡이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의고 18세에 3년상을 마친 뒤, 인생이 하도 무상하고 의지할 데가 없어 19세 되던 해 3월에 불교에 귀의하고자 금강산에 들어갔다. 어느 날 혼자서 깊은 골짜기를 몇 리쯤 걸어 들어가니 작은 암자가 있었다. 한 노승이 가사를 걸치고 정좌한 채 율곡을 보고 일어나지도 않고 말도 한마디 없는데, 부엌에는 불땐 자취도 없었다.
그래서 율곡이 물었다: “여기서 무얼 하시오[在此何爲]?” 노승은 빙그레 웃을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무엇을 잡숫고 굶주림을 면하시오[食何物以療飢]?” 노승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저게 내 양식이라오[此我糧也].” 했다.
율곡은 그의 말문이 터졌다고 생각해 내쳐 물었다: “공자와 석가모니 중 누가 진짜 성인이오[孔子釋迦孰爲聖人]?” 노승은 답한다: “보아하니 영민한 선비 같은데 노승을 놀리지 마오[措大莫瞞老僧].”
율곡은 이어 물었다: “불교는 이적 오랑캐의 교법이니 우리 동방 문명국에는 베풀 것이 못 되지 않겠소이까[浮屠是夷狄之敎, 不可施於中國].” 그러자 노승이 되묻는다: “순임금도 동쪽 오랑캐의 사람이요, 문왕도 서쪽 오랑캐의 사람이니, 그 두 사람 다 이적 오랑캐가 아니겠소[舜, 東夷之人也; 文王, 西夷之人也. 此亦夷狄耶]?”
율곡이 또 물었다: “불교의 오묘한 교설(巧舌)이라 해봐야 우리 유교의 울타리를 벗어날 만큼 특별한 것도 없는데 어찌하여 유교를 버리고 불법을 구하시오[佛家妙處, 不出吾儒, 何必棄儒]?” 노승이 묻는다: “유가에도 마음만 깨달으면 곧 부처님 이라는 가르침이 있소[儒家亦有卽心卽佛之語乎]?”
율곡은 말한다: “맹자는 항상 인간의 본래 성품이 선하다는 것을 말하였고, 말끝마다 인간은 누구든지 요순이 될 수 있다 말하였는데 마음만 깨달으면 곧 부처님이 된다는 가르침과 뭐가 다를 게 있소이까? 단지 우리 유교는 그것을 현실에서 찾아 얻을 뿐이오[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 何異於卽心卽佛? 但吾儒見得實].”
노승은 수긍치 아니 하고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다가 이렇게 물었다: “색도 아니요, 공도 아니라는 것은 무슨 말이겠소[非色非空, 何等語也]?” 율곡이 곧 대답하였다: “내앞에 펼쳐진 저 경치가 바로 그 말이 아니겠소[此亦前境也].” 노승이 다시 빙그레 웃었다.
이 뒤로도 재미있는 대화가 이어지지만 생략한다. 『율곡전서』 권1 「풍악중소암노승 병서(楓嶽贈小菴老僧 幷序)」라는 제목하에 실려 있는 글인데 옛 사람들의 대화의 품격을 잘 그려내고 있다. 노승도 『맹자』 본 장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율곡 또한 『맹자』의 대의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다. 19세의 소년이나 노승이나 유ㆍ불의 핵심을 모두 다 투철히 꿰고 있지 못하면 나눌 수 없는 대화임에 틀림이 없다. 옛 사람들의 공부와 정진의 수준을 엿볼 수 있기에 여기 소개해 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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