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7a-35. 맹자의 제자인 도응(桃應)【조기 주에 의하여 그가 맹자의 제자라는 것만 안다. 이 대화는 말년의 것이다】이 여쭈었다. “순이 천자가 되었고, 고요(皐陶)【3a-4에 기출, 순임금을 모신 명신하로서 덕망이 높고 특히 법리(法理)에 밝았다. 법을 만들고 형(刑)을 제정하고, 또 옥(獄)을 만들었다】가 재판관이 된 상황에서, 순임금의 아버지인 고수(瞽瞍)【4a-28, 5a-2, 5a-4, 6a-6에 기출】가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겠습니까?” 7a-35. 桃應問曰: “舜爲天子, 皐陶爲士, 瞽瞍殺人, 則如之何?”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물론 법에 따라 고수를 체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체포하는 것까지만 내가 말할 수 있다.” 孟子曰: “執之而已矣.” 여쭈었다: “그렇다면 순임금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체포하는 것을 저지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然則舜不禁與?”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대체 순임금이라고 해서 어떻게 살인범을 체포하여 구금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대저 벌을 받아야 만 할 확실한 법적 근거가 있으니 임의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조기는 ‘부유소수지야(夫有所受之也)’를 ‘천하를 요(堯)로부터 받은 마당에 마땅히 하늘을 위하여 백성을 다스려야 할 것이요, 왕법은 왜곡할 수 없다[夫天下乃受之於堯, 當爲天理民, 王法不曲]’라고 해석하였고, 주희도 ‘고요의 법은 전수받은 바가 있으니 감히 사사롭게 할 수 없다[皐陶之法, 有所傳受, 非所敢私].’라고 해석하였다. 모두 법이 전수된 바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였다. 나는 ‘수(受)’를 ‘벌을 받는다’로 해석하였다. 형벌을 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曰: “夫舜惡得而禁之? 夫有所受之也.” 도응은 여쭈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순은 과연 어떻게 대처 할까요? 아버지가 사형에 처해지는 것을 묵묵히 쳐다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然則舜如之何?”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순은 본시 천자라는 권좌(權座)도 헌신짝 버리듯이【우리말의 용례가 여기 ‘기폐사(棄敝蹝)’에서 왔다. ‘사(蹤)’는 물론 짚신이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권좌에서 물러나 몰래 아버지를 등에 업고 도망쳐나와, 머나먼 바닷가에 숨어 살며, 종신토록 아버지를 모시는 것을 흐뭇하게 생각하며, 그런 생활을 즐기면서 자기가 천자였다는 것도 잊어버릴 것이다.” 曰: “舜視棄天下, 猶棄敝蹝也. 竊負而逃, 遵海濱而處, 終身訢然, 樂而忘天下.” |
아주 드라마틱하게 설정된 가설적 상황의 질문을 통해 유교의 본질을 잘 드러낸 명문답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법치주의적 원칙에 비추어 보면 세부적인 면에서 ‘불가(不可)’한 요소들이 많지만 맹자의 답변은 법치의 사회적 대강을 인정한 틀 속에서 순이 인륜의 진정성을 위해 천자의 지위라도 포기한다는 그 ‘희생’에 더 강조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의 최고통치자나 고위관료들은 나중에 휘몰려 결국 구치소로 갈지언정 미연에 책임을 지고 권좌에서 물러나는 자들이 없다. 그러한 더티 게임에 비하면 여기 맹자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오직 자신의 생명존재의 원천인 ‘아버지’라는 이 한마디에 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4년에는 대의(大義)를 위하여 멸친(滅親)도 불사한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大義滅親, 其是之謂乎]? 국민을 괴롭히는 군주를 죽음으로 휘몰기 위하여 자기 친자식을 죽게 만드는 비장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음에 방치한다는 것은 유교적 상식으로는 허용되지 않는다. 『논어(論語)』 「자로」편에 양을 훔친 아버지의 죄를 숨겨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직(直)’이라는 것을 설파하는 유명한 섭공과의 담론이 있다(13-18).
결국 법률적 ‘직궁(直窮)’에 대하여 인정적 직궁을 우위에 놓은 것이다. 맹자의 담론도 이러한 『논어』의 담론을 계승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법제에도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있다. 정상이란 ‘情狀’이라고 쓰는데 역시 인간의 감정을 고려한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정상참작이니 작량감경(酌量減輕)이니 하는 것이 모두 유교적 전통에서 계승된 것이다. 청대(淸代)의 형법전까지만 해도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숨기는 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으며,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폭로하여 아버지의 죄가 입증되어도 오히려 아들이 벌을 받는 규정이 상존하였다.
다산(茶山)은 이 장을 특별히 주목하여 기존의 주석에 대하여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순이 그 고약한 아버지 하나를 구하기 위하여 왕위를 짚신짝처럼 버리는 것 자체가 통치자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며, 또 왕위를 사임하고 나면 필부일 뿐인데, 필부로서 옥에 갇힌 죄수를 빼돌리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다. 고요가 순임금이 아버지를 훔치러 오는 것을 알고서도 옥문과 담장을 느슨하게 하여 탈출을 도왔다면 옥관으로서의 직무를 속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장은 맹자가 직접 지은 것일 수 없으며 후대의 문인들이 지은 것이 삽입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번 질문에 맹자라면 간결하게 ‘감히 법을 집행하지 못한다[不敢執].’라고 한마디로 끝내버렸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다산의 담론이지만, 다산은 결코 맹자사상의 전모(全貌)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국시대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체득하지 못했다. 따라서 왕과 옥관과 죄수와 법을 바라보는 눈이 결국 조선왕조의 체제에 국한되어 있다. 맹자의 인의의 사상은 나에게 가장 리얼한 감정의 핵으로부터 확충되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순이 자기가 천자였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즐겁게 살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맹자의 노경의 달관된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직(直)’의 사상이 인간세의 도덕성을 감쇄시키는 혜택주의(favoritism)의 오류를 범해서는 아니되지만, 사회적 책임을 감수하는 틀 내에서 가까운 인정의 교감을 보호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냉혹한 법제가 인간세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하여튼 본 장은 유교의 인의사상의 위대함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매우 ‘끈적끈적한’ 담론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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