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떠나기로 맘먹은 이의 자세
7b-23. 제나라가 한발(旱魃)이 심해 기근에 시달렸다. 이때 맹자의 제자 진진(陳臻)이 맹자께 여쭈었다: “선생님! 지금 제나라 국민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일전에 제선왕께 부탁하여 미창(米倉)을 열어 백성들을 진휼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임치성(臨淄城)내의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께서 다시 한 번 부탁하셔서 당(棠)【산동성 즉묵현(卽墨縣) 남쪽 80리에 감당사(甘棠社)가 있다. 즉묵은 당시 제나라의 대도(大都)였고 곡식창고가 여기 있었다】의 곡창을 열어 쌀을 방출하게 해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이미 제나라를 떠나시기로 결심하셨으니, 두 번 다시 제선왕께 부탁하기가 어려우시겠지요?” 7b-23. 齊饑. 陳臻曰: “國人皆以夫子將復爲發棠, 殆不可復.”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은 풍부(馮婦)【‘풍(馮)’이 성, ‘부(婦)’가 명. 엄청난 장사로서 용맹스러웠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능력이 있었다】가 한 짓을 되풀이하는 것과도 같다. 진나라에 풍부라는 자가 있었는데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 후 어떤 계기로 감화를 받아 공부하는 선비가 되었다. 선비가 된 후로는 호랑이 때려잡는 일 따위는 안 하기로 작심하고 살았다. 孟子曰: “是爲馮婦也. 晉人有馮婦者, 善搏虎, 卒爲善士. 그런데 어느 날【‘즉(則)’에 관해 이설이 분분하나 나는 그것을 ‘이(而)’로 본다】 풍부가 들에 나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몰이를 하고 있었다【沃案: 중국 산동 지역, 동북 지역, 한반도에 걸쳐 호환(虎患)이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네에 호랑이가 나타나거나 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토끼몰이를 하듯이 호랑이몰이를 하여 잡곤 했던 민속풍경도 규탐할 수 있다. 이때 호랑이를 때려잡는 용 맹한 인물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호랑이가 몰리다가 가파른 산 절벽을 등 뒤로 하고 오히려 몰던 사람들을 째려보니, 어느 누구도 감히 호랑이에게 덮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때 멀리 풍부가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그에게 구세주를 맞이하듯 달려갔다. 그러자 풍부는 옛날의 기분을 되살려 팔뚝을 걷어 부치고 장쾌하게 수레에서 내렸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박수갈채를 했다. 그러나 이 광경을 바라보던 생각 있는 신사(紳士)들은 풍부가 또다시 옛 기분을 내며 우쭐대는 것을 가소롭게 생각했다.” 則之野, 有衆逐虎. 虎負嵎, 莫之敢攖. 望見馮婦, 趨而迎之. 馮婦攘臂下車. 衆皆悅之, 其爲士者笑之.” |
진진(陳臻)은 맹자의 제자로서 맹자를 평생 매우 진지하게 모신 사람이다. 나는 그가 맹자학단 내에서 재정(財政)을 담당하였던 인물이라고 말했는데 본 장에서도 역시 경제관계의 질문을 하고 있다. 나의 설은 관철될 수 있다. 그가 출현한 모든 단편 속에서 그는 학단 내의 재정출납이나 혹은 사회의 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진은 제(齊)나라 사람이었으며, 제나라에서 맹자의 학단에 입문하였고, 맹자가 죽을 때까지 그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학단을 형성하여 『맹자』 편찬에도 도움을 주었다. 2b-3에서 맹자가 받은 전별금(餞別金)에 관하여 묻고, 2b-10에서는 제선왕이 맹자에게 1년 1만 종의 곡식을 기부하겠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6b-14에서는 군자의 거취에 관해 묻고, 여기서는 제나라 기근의 구제에 관하여 묻고 있다
언어는 애매하지 않고 이야기도 깔끔하게 떨어지기는 하지만 무엇인가 전체적인 의미맥락이 명료하게 쏘옥 들어오지는 않는다. 우선 두 번 진휼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도 나쁜 명분일까? 풍부(馮婦)가 아무리 공부하는 선비가 되었다지만 상황에 따라 무용(武勇)을 과시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요시다 쇼오인(吉田松陰)은 풍부를 참된 용사의 자격을 지닌 인물이라고 변호한다. 주희는 제왕과 맹자의 사이가 이미 금이 갈대로 간 사이이기 때문에 맹자가 부탁을 한다 해도 그 부탁이 먹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그러한 구체적 정황은 이 프라그먼트 자체에 드러나 있지 않다. 『공자가어』 「정론해(正論解)」나 『예기』 「단궁」하에 보면 시아버지가 법에 물려 죽고, 남편도 법에 물려 죽고, 또 자식마저 범에게 물려 죽은 여인의 한탄스러운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 지역에 예로부터 호환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풍부의 행동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지 않을까?
대체적으로 이 장의 논지는 아무리 정의로운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실천하는 데는 적절한 때가 있다고 하는 ‘시중(時中)’의 사상이 깔려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사나이가 일단 새로운 삶의 결심을 세우면 지나간 공로나 관행에 의해 오늘의 결심을 흐리게 만들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풍부의 태도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의 자세가 아니라 자신의 괴력(怪力)을 대중 앞에 과시하는 무용(武勇)의 즐거움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맹자는 자신의 진휼(賑恤)의 부탁이 그러한 과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떠나기로 결심이 섰으면 떠나야 한다. ‘좋은 일 한 번 더’라는 양념은 필요가 없다. 나는 이 장은 역사적 맹자, 그 인간의 문제와 결부시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확한 정황은 추론키 힘들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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