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양을 죽인 양자는 정당하다
예양론(豫讓論)
이익(李瀷)
양자가 예양을 죽인 건 필연이다
昔者豫讓死於襄子, 先儒謂襄子不當殺, 余以爲不然.
豫讓必報襄子, 五起而不中, 其志不報將不休也. 襄子義而殺之, 不殺亦終不免也. 爲己之患, 忍殺義士, 徇私而害理歟.
군대의 상황만 보더라도 양자의 죽임은 마땅하다
曰其義亦不容不爾. 今使兩陣對鬨, 能用命入死地, 斬其將獲其君, 皆忠也. 敵之忠愈厲, 我之賊愈急. 其或劒及於五步之內 而曰: “彼忠不可不植, 我賊惟在謹避.” 不亦愚乎.
君子處權, 本有緩急, 緩則猶可姱以貸之, 急則其勢有不暇計其忠也.
양자가 예양을 죽이지 않고 권면함으로 더욱 의기를 충만케 했다
襄子非徒不殺, 又從而勸之, 使讓感其不殺, 遂止不報, 固無足言者. 使其益厲乎所勸, 吾見襄子之必殺後已也
예양은 재주가 모자란 사람이었고 복수의 칼날이 오가게 했다는 점에서 죽인 건 당연하다
廁之塗橋之伏, 卽襄子之幸免. 不然而或爲所陷, 此宋襄所以卒爲天下笑也. 彼讓者欲忠而短於才, 其或智足以動天下, 勇足以辦狙擊 襄子又安得而避之.
據禮殺人以義者令勿讎, 讎之則死, 父受誅子復讎, 此推刃之道也. 其殺智伯, 旣無害理, 則獨不可加法於推刃之一讓乎.
故曰: “襄子之殺讓, 晩也非過也.”
일개 강도 예양을 죽인 것에 불과하다
何以明之? 昔武王克商, 雖以紂之不仁, 尙有逋盜餘孼, 互爲心腹, 爲之致死, 武王不卹也.
天下旣定, 紂子武庚圖復舊基, 遂與三監叛. 紂雖不道, 在武庚未必爲鉅慝極惡之歸, 而周公誅之.
武王ㆍ周公何不戢戈弛刑, 彌奬忠孝, 爲人臣子之勸哉. 紂獨夫也, 當是時爲獨夫左袒者, 雖有區區吠堯之誠, 均之爲可罪也.
襄子晉之權臣, 縱不可比幷於商周之際, 而智伯之惡, 與紂同科. 上而脅君, 旁呑列卿, 無故而殘滅之. 至不免而亡, 則其願忠之臣, 不過餘孼, 感呴濡之恩者也已. 與古所謂殺身成仁者, 大相背馳.
而其言則曰: “彼嘗遇以國士.” 若此類何足以知國士哉. 果也知微, 國也慮患, 絺疵察勢, 讓則不與, 只拱手而坐視淪喪, 其所以爲相得者, 不過同惡以濟之, 其智未足多也
及其欲報, 又不出於劫盜細行, 使讓計得行, 史臣將特書曰: ‘盜殺襄子.’ 畢竟事不遂而被戮, 不過除一劫盜之懷呴濡者也, 於襄子何憾焉.
지백은 권신임에도 배신자이기에 죽인 게 당연하고 그렇게 됐다면 예양은 복수 운운할 수 없었으리
抑又有一說, 智ㆍ趙俱是陪臣之執國命者, 使晉法得行而兩家就訟, 則智伯當死, 豫讓不敢報. 以此爲斷而已矣. 『星湖先生全集』 卷之四十七
해석
양자가 예양을 죽인 건 필연이다
昔者豫讓死於襄子,
옛적에 예양이 양자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先儒謂襄子不當殺,
선배 유학자들은 양자가 마땅히 죽이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余以爲不然.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豫讓必報襄子, 五起而不中,
예양이 반드시 양자를 죽이려 다섯 번 일어나 적중하질 않았으니
其志不報將不休也.
그의 뜻은 원수를 갚지 않으면 장차 그만두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襄子義而殺之, 不殺亦終不免也.
양자는 의롭게 여기며 그를 죽였으니 죽이지 않았다면 또한 마침내 피하질 못했으리라.
爲己之患, 忍殺義士,
자기의 우환을 위해 차마 의로운 선비를 죽였으니
徇私而害理歟.
사사로움을 따라 이치를 해쳤다는 것인가.
군대의 상황만 보더라도 양자의 죽임은 마땅하다
曰其義亦不容不爾.
의리로 또한 그러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라 말하겠다.
今使兩陣對鬨, 能用命入死地,
지금 두 진영이 대면하고 싸우는데 목숨을 써서 사지에 들어가
斬其將獲其君, 皆忠也.
장수를 베고 임금을 잡는 것은 모두 충성스러운 것이다.
敵之忠愈厲, 我之賊愈急.
적의 충성스러움이 더욱 매서워질수록 나의 적대감은 더욱 급박해진다.
其或劒及於五步之內 而曰: “彼忠不可不植,
간혹 검이 5보 내에 이르러오는데 “저들의 충성심을 자라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我賊惟在謹避.” 不亦愚乎.
우리가 대적함에 오직 삼가 피해야 한다.”라고 한다면 또한 어리석지 않은가.
君子處權, 本有緩急,
군자가 권도를 처리함에 본래 완급이 있으니,
緩則猶可姱以貸之,
여유로울 때는 오히려 자랑하며 느슨하게 할 수 있지만,
急則其勢有不暇計其忠也.
위급할 때는 기세가 충성스러운지를 계산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양자가 예양을 죽이지 않고 권면함으로 더욱 의기를 충만케 했다
襄子非徒不殺, 又從而勸之,
양자는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따르며 그를 권면하니【처음에 예양(豫讓)이 변소의 벽을 칠하는 죄인으로 변장하여 양자(襄子)를 죽이려고 하다가 사로잡혔는데, 양자가 죽이지 않고 “저자는 의인(義人)이니, 내가 조심하면 된다. 그리고 지백(智伯)이 죽고 후사(後嗣)가 없어 그 신하가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니, 이 사람은 천하의 현인(賢人)이다.”라고 칭찬하며 풀어 준 것을 가리킨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豫讓』】,
使讓感其不殺,
예양에게 죽이지 않음을 감격하게 하여
遂止不報, 固無足言者.
마침내 원수를 갚지 않고 그만 둘 거라는 것은 진실로 말할 것도 없다.
使其益厲乎所勸,
그러나 그로 하여금 더욱 권면한 바에 분발하였으니
吾見襄子之必殺後已也.
나는 양자가 반드시 죽임을 당한 이후에 그만두었을 것을 볼 수 있다.
예양은 재주가 모자란 사람이었고 복수의 칼날이 오가게 했다는 점에서 죽인 건 당연하다
廁之塗橋之伏, 卽襄子之幸免.
예양이 측간의 벽을 바르기도 다리에 숨기도 했으니, 곧 양자는 요행히 피한 것이다.
不然而或爲所陷, 此宋襄所以卒爲天下笑也.
그렇지 않아 혹 빠져들었다면 이것은 송양공이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까닭이었으리라【송 양공이 홍수(泓水)에서 초(楚)나라와 전쟁을 벌일 때에 인의(仁義)에 입각하여 적의 어려운 사정을 봐주다가 패전하여 세상의 비웃음을 산 일을 가리킨다. 『春秋左氏傳 僖公22年』】.
彼讓者欲忠而短於才,
저 예양은 충성하려 했지만 재주는 모자랐으니
其或智足以動天下, 勇足以辦狙擊,
혹 지혜가 천하를 움직일 만했고 용기가 저격을 주관할 만했다면
襄子又安得而避之.
양자는 또한 어찌 피할 수 있었겠는가.
據禮殺人以義者令勿讎, 讎之則死,
예에 근거하면 ‘의로움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복수하지 말고 복수한다면 죽인다【『주례(周禮)』 〈지관사도 하(地官司徒下)〉 조인조(調人條)에 보인다.】’고 했고
父受誅子復讎, 此推刃之道也.
‘아버지가 형벌을 받았는데 자식이 다시 복수하면 이것은 복수가 시작되는 길이다【아버지가 합당한 죄도 없이 죽음을 당했으면 그 자식이 복수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버지가 죄를 지어 죽음을 당했으면 그 자식은 복수를 해서는 안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하게 되면 서로 싸움을 주고받게 되어 피차간에 온전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이다. 『春秋公羊傳 定公4年』】’라고 했다.
其殺智伯, 旣無害理,
양자가 지백을 죽였으니 이미 이치에 해가 되지 않는데
則獨不可加法於推刃之一讓乎.
유독 복수하는 일개 예양에게 법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겠는가.
故曰: “襄子之殺讓, 晩也非過也.”
그러므로 “양자가 예양을 죽인 것은 늦었지만 잘못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일개 강도 예양을 죽인 것에 불과하다
何以明之?
어떻게 그것을 설명할까?
옛날에 무왕이 상나라를 칠 적에 비록 주왕이 불인하더라도
尙有逋盜餘孼, 互爲心腹,
오히려 도망간 도둑과 남은 자손들이 있어 서로 심복이 되어
爲之致死, 武王不卹也.
주왕을 위해 죽음을 바쳤지만 무왕은 긍휼이 여기지 않았다.
천하가 이미 안정되었지만 주왕의 자식인 무경이 옛 터를 회복하길 도모하여
遂與三監叛.
마침내 세 감시인【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천하를 통일한 뒤에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을 제후로 봉하여 은(殷)나라의 제사를 받들게 하는 한편, 자신의 숙부인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霍叔)으로 하여금 무경을 감시하게 하였다. 『史記 卷4 周本紀』】과 함께 일으켰다.
주왕은 비록 도가 없었다 해도 무경은 반드시 매우 간사하고 몹시 악랄함으로 귀의하지 않았음에도
而周公誅之.
주공은 그를 죽였다.
武王ㆍ周公何不戢戈弛刑, 彌奬忠孝,
무왕과 주공은 어째서 창을 거두고 형벌을 감하고 더욱 충효를 권장하여
爲人臣子之勸哉.
신하나 자식이 된 사람을 권면하지 않았나?
紂獨夫也, 當是時爲獨夫左袒者,
주왕은 한 명의 사내로 이때에 한 명의 사내를 위해 생사를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左袒: 좌측 어깨의 맨살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같은 편이 되어 생사를 같이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漢)나라 고후(高后) 8년(기원전 180)에 여후(呂后)가 죽은 뒤에, 우승상(右丞相) 진평(陳平)과 태위(太尉) 주발(周勃)이 여씨(呂氏)들을 숙청하려고 모의하고 나서, 주발이 북군(北軍)에게 호령하기를 “여씨를 위하는 자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유씨를 위하는 자는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爲呂氏右袒 爲劉氏左袒〕”라고 하였는데, 군중(軍中)이 모두 좌단을 하니, 주발이 마침내 북군을 이끌고 여씨를 토벌한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漢書 卷3 高后紀』】
雖有區區吠堯之誠, 均之爲可罪也.
비록 구구하게 요임금을 보고 짓는 정성【개는 제 주인이 아니면 요 임금과 같은 성인을 보고도 짖는 것과 같이 누구나 각자 자기 주인을 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제(齊)나라의 대부 초발(貂勃)이 항상 안평군(安平君) 전단(田單)을 소인(小人)이라고 비방하자, 전단이 초발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초발이 대답하기를 “도척 집의 개가 요 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도척을 귀하게 여기고 요 임금을 천하게 여겨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개는 그 본성이 주인이 아니면 짖는 것이다.” 하였다. 『戰國策 齊策6』】이 있더라도 그들을 고르게 죄를 줄 수 있어서였다.
襄子晉之權臣, 縱不可比幷於商周之際,
양자는 진나라의 권신인데 가령 상나라와 주나라의 병합 즈음에 비교할 수 없지만
而智伯之惡, 與紂同科.
지백의 악함은 주왕과 같은 등급이었다.
上而脅君, 旁呑列卿,
위로는 임금을 위협하고 곁으론 여러 경들을 병탄하여
無故而殘滅之.
이유 없이 그들을 잔혹하게 멸망시켰다.
至不免而亡, 則其願忠之臣,
지백이 피하지 못하고 망했으니 충성을 원한 신하들은
不過餘孼, 感呴濡之恩者也已.
남은 재앙에 불과하고 보살펴준 은혜【呴濡: 애처롭게 여겨 알뜰살뜰 보살펴 주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의 “물이 바짝 말라 물고기들이 땅바닥에 처하게 되면, 서로들 김을 내뿜어 축축하게 해 주고 서로들 거품으로 적셔 준다[相呴以濕 相濡以沫]”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에 감격하여 남은 사람들에 불과하여
與古所謂殺身成仁者, 大相背馳.
옛날에 소위 살신성인한 사람들과는 크게 서로 배치된다.
而其言則曰: “彼嘗遇以國士.”
그러나 “저분이 일찍이 국사로 예우해줬다.”라고 말하니,
若此類何足以知國士哉.
이 같은 부류가 어찌 국사를 알겠는가.
果也知微, 國也慮患,
지과(智果)는 기미를 알았고【지과가 기미를 알았다는 것은 지 선자(智宣子)가 지백(智伯)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하자 지씨(智氏) 일족(一族)인 지과가 지백이 어질지 못하므로 후계자가 되면 지씨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견한 일을 가리킨다.】, 지국(智國)은 환난을 염려했으며【지국(智國)이 환란을 염려했다는 것은 지백이 지 선자의 후계자가 되어 한 강자(韓康子), 위 환자(魏桓子)와 연회를 벌일 때에, 한 강자를 농락하고 한 강자의 가신(家臣)인 단규(段規)를 모멸하자, 지백의 가신인 지국이 그 사실을 알고는 “주군께서 대비하지 않으시면, 환난이 반드시 닥칠 것입니다.”라고 간언한 일을 가리킨다.】,
絺疵察勢, 讓則不與.
치자(絺疵)는 기세를 살폈으니【치자(絺疵)가 상황을 잘 살폈다는 것은 지백이 한 강자, 위 환자와 함께 진양(晉陽)에서 조 양자(趙襄子)를 공격할 때에, 지백의 모신(謀臣)인 치자가 사람들의 동태를 살펴서 한 강자와 위 양자가 지백을 배반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지백에게 알려 주었던 일을 가리킨다. 『資治通鑑 卷1 周紀』】, 예양은 여기에 참여할 수 없다.
只拱手而坐視淪喪,
다만 손을 낀 채 앉아 망하는 것을 보아
其所以爲相得者, 不過同惡以濟之,
서로 얻게 된 까닭은 악을 함께 하여 이룬 것에 불과하니,
其智未足多也.
지혜가 많다고 할 수가 없다.
及其欲報, 又不出於劫盜細行,
복수를 하고자 함에 이르러선 또한 으르며 도적질하는 하찮은 행위에 지나지 않으니
使讓計得行, 史臣將特書曰: ‘盜殺襄子.’
만약 예양의 계책이 실행되었다면 사신은 장차 ‘도둑이 양자를 죽였다.’라고 특별히 썼으리라.
畢竟事不遂而被戮,
필경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임 당해
不過除一劫盜之懷呴濡者也,
한 명의 으르며 도적질하며 보살핌에 감격한 사람을 제거한 것에 불과하니
於襄子何憾焉.
양자는 무엇이 섭섭하랴.
지백은 권신임에도 배신자이기에 죽인 게 당연하고 그렇게 됐다면 예양은 복수 운운할 수 없었으리
抑又有一說, 智ㆍ趙俱是陪臣之執國命者,
아니면 또한 일설이 있어 지씨와 조씨는 함께 배신들로 국명을 집행한 사람이었는데
使晉法得行而兩家就訟, 則智伯當死,
만약 진나라 법이 실행되어 두 집안이 재판을 받았다면 지백은 마땅히 죽었으리니,
豫讓不敢報.
예양은 감히 복수하지 못했으리라.
以此爲斷而已矣. 『星湖先生全集』 卷之四十七
이것으로 단안을 삼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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