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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를 읽다 - 17. 당시와 비슷해지기 본문

책/한시(漢詩)

우리 한시를 읽다 - 17. 당시와 비슷해지기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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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당시와 비슷해지기

 

 

청신쇄락(淸新灑落)한 시

 

 

1. 이이가 중국 한시를 선발하여 이이(李珥)가 지은 정언묘선서(精言妙選序)에서 밝힌 시를 선발한 기준

1) 충담소산(沖淡蕭散): 이 기준을 먼저 들고 수식에 힘쓰지 않아야 자연스러움 속에 오묘한 멋이 깊어진다고 함.

2) 한미청적(閑美淸適): 조용한 가운데 유유자적하며 흥겨움에서 시가 나오므로 사색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시를 읽으면 권세나 이익, 명예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고 함.

3) 청신쇄락(淸新灑落): 매미가 가을바람에 이슬을 맞아 허물을 벗은 것처럼 밥을 지어 먹는 인간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위장 속의 비릿한 피를 씻어내어 영혼과 골격이 맑아져 인간세상의 냄새가 마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함.

 

 

2. 이이(李珥)가 청신쇄락(淸新灑落)의 작품으로 꼽은 작품은 이백(李白)남헌송(南軒松)이다.

南軒有孤松 柯葉自綿冪 남헌에 외로운 소나무 있는데 가지와 잎사귀가 절로 빼곡히 덮였네.
淸風無閑時 瀟洒終日夕 맑은 바람 한가로울 때 없이 불고 낮과 저녁 내내 맑고 깨끗하지.
陰生古苔綠 色染秋煙碧 음지에서 오래된 이끼가 나니, 그 빛이 가을 안개를 물들여 푸르니,
何當凌雲霄 直上數千尺 어찌 마땅히 구름과 하늘까지 뻗어 곧 수 천척에 오르랴.

 

1) 맑은 바람이 늘 불어오니 소나무는 밤낮으로 맑은 기운을 뿜는다.

2) 고색창연한 이끼가 파랗게 끼어 있어 시원한 기운이 이는데, 푸른 솔잎으로 인하여 뿌연 안개조차 푸르게 보이기에 시원함이 느껴진다고 함.

3) 이 시가 청신쇄락(淸新灑落)한 이유는 청풍(淸風), 소쇄(瀟洒) 때문이다. 계절적으론 늦여름, 그리고 시원한 바람과 맑은 샘, 대숲이나 솔숲이면 안성맞춤.

 

 

3. 청신쇄락(淸新灑落)한 시들

1) 이백(李白)자모행(慈姥竹)

翠色落波深 虛聲帶寒早 비취빛 물결 깊이 떨어지고 텅빈 소리 일찍 한기를 띠네

 

2) 이백(李白)유태산(遊泰山)

山明月露白 夜靜松風歇 달이 훤히 밝으니 산은 분명하고 소나무 바람 쉬니 밤은 고요하네

 

3) 맹호연(孟浩然)숙업사산방대정대부지(宿業師山房待丁大不至)

松月生夜凉 風泉滿淸聽 소나무의 달로 밤의 서늘한 기운 생기고 바람 부는 샘으로 온통 맑은 소리 들려

 

4) 맹호연(孟浩然)하일남정회신대(夏日南亭懷辛大)

山光忽西落 池月漸東上 산의 해는 홀연히 서쪽으로 지고 못의 달은 점점 동쪽으로 떠올라
散髮乘夕凉 開軒臥閑敞 머리 풀으니 저녁의 서늘함이 느껴지고 창을 열고 누우니 한가하고 시원해.
荷風送香氣 竹露滴淸響 연꽃 바람 향기를 실어 보내고 대나무 이슬 맑은 향기로 적시네

 

5) 이러한 시에는 유난히 ()’, ‘()’ 등의 글자가 자주 쓰였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음.

 

 

 

당풍의 맑고 시원한 시

 

 

1. 이이(李珥)는 청신쇄락(淸新灑落)한 시를 선발하며 이백(李白)맹호연(孟浩然)ㆍ위응물(韋應物)의 시를 뽑았는데, 당나라 때 시인들이 이런 시를 썼다는 걸 알 수 있음.

 

 

2. 우리나라 한시의 시대별 경향

신라 말~ 고려 초 조선전기~ ~조선 중기
만당풍(晩唐風) 송풍(宋風)
  강서시파(江西詩派)
  당풍(唐風)

1) 황정견(黃庭堅)진사도(陳師道)의 영향을 받은 박은(朴誾)이행(李荇)박상(朴祥)정사룡(鄭士龍)노수신(盧守愼)황정욱(黃廷彧)최립(崔岦) 등이 강서시파(江西詩派)를 연마함.

2) 강서시파(江西詩派)의 난삽한 병폐에 반대하며 부드럽고 맑은 흥을 지닌 시를 짓고자 하는 시도가 생겨남.

3) 이주(李胄)ㆍ유호인(俞好仁)ㆍ신종호(申從濩)ㆍ신광한(申光漢) 등이 외롭게 당시를 짓고자 했음.

4)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박순(朴淳)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ㆍ이순인(李純仁)이달(李達) 등이 당시 스타일을 구사하려 함. 미감은 맑고 시원함.

 

 

3. 최경창(崔慶昌)영월루(映月樓)

玉檻秋來露氣淸 옥으로 만든 난간에 가을이 와 이슬 기운이 맑고
水晶簾冷桂花明 수정 같은 주렴은 서늘하고 계수나무의 꽃(달빛)은 환하네.
鸞驂一去銀橋斷 난새가 끄는 수레 한 번 가서 은교가 끊어졌으니,
惆悵仙郞白髮生 슬프구나, 선랑은 흰 머리만 나네.

 

1) 기씨(奇氏)라는 사람의 소유인 영월루에 올라 쓴 것이지만, 당나라 시인 왕창령(王昌齡)이 궁중 여인의 비애를 노래한 규원(閨怨)처럼 보이도록 애씀.

2) 영월루를 궁궐의 화려한 집처럼 치장한 것도 왕창령의 시와 비슷해지고자 표현한 데서 나옴.

3) 보통 누각에서 쓴 시는 누각에서 보이는 경치를 시인의 흥과 함께 적지만 이 시는 틀을 완전히 벗어 신선을 노래한 유선사(遊仙詞)처럼 됨.

4) 허균(許筠)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이 사람의 절구는 모든 작품이 다 매우 맑다. 당나라 때에 두더라도 왕창령 등에 양보할 것이 없다.”고 함.

 

 

4. 백광훈(白光勳)삼차송월(三叉松月)

手持一卷蘂珠篇 손에 한 권 예주편을 잡고
讀罷空壇伴鶴眠 읽기를 다하자 텅 빈 단에서 학과 짝하며 잠드네.
驚起中宵滿身影 한밤 중 몸에 가득한 그림자에 놀라 일어나니,
冷霞飛盡月流天 차가온 노을 날아가길 다하자 달이 하늘을 흐르네.

 

1) 이 시는 노직(盧稙)이라는 사람의 여주(驪州) 망포정(望浦亭)의 팔경을 노래한 작품 중 하나임.

2) 강물과 소나무, 달빛, 맑고 시원한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가 갖춰져 있고, 여기에 신선의 이미지까지 더함.

3) 예주편(蕊州篇)은 도사들이 즐겨 읽는 경전으로 신선이 되었다가 학과 함께 잠이 든다고 함.

4) 한숨 자고 있는 동안 해는 훤히 비추고 구름과 노을도 다 흩어지고 달빛마저 맑아 신선의 것으로 환골탈태.

5) 허균(許筠)국조시산(國朝詩刪)에서 얼음을 품은 듯하여 한여름에 서리가 내렸다.”고 함. 홍만종은 소화시평(小華詩評)권상 108에선 시가 맑아서 아무런 찌꺼기가 없다[瑩澈無滓]”고 함.

 

 

5. 권필(權韠)창랑정(滄浪亭)

蒲團岑寂篆香殘 부들포 자리 아주 적막하고 꼬여 올라가던 분향 향기는 가물거리네.
獨抱仙經靜裏看 홀로 선경을 안고 고요한 속에 보고
江閣夜深松月白 강가의 누각 밤이 깊자 소나무에 걸려 있는 달은 환하여
渚禽飛上竹闌干 물가의 새는 날아 대나무 난간으로 오른다.

 

1) 창랑정(滄浪亭)은 전라도 동복(同福)에 있는 정자로 그 주인은 임제(林悌)의 아우인 임타(林㙐).

2) 시의 내용이나 미감에서는 백광훈(白光勳)이 올랐던 망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음.

3) 부들로 엮은 소박한 자리에 향불을 피우고 조용하게 앉아 도사들이 보는 책을 읽는다.

4) 깊은 밤 강가의 누각, 그 곁에 있는 소나무에 달이 휘영청 걸렸다. 훤한 달빛 아래 물가의 새들이 창랑정 위로 훨훨 날아오름.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이 담긴 시

 

 

당풍 송풍
가슴으로 쓰는 시 머리로 쓰는 시
익숙한 것을 지향 새로운 것을 지향

 

 

1. 최경창(崔慶昌)봉은사승축(奉恩寺僧軸)

三月廣陵花滿山 3월의 광릉엔 꽃이 산에 한 가득.
晴江歸路白雲間 갠 강에 돌아오는 길은 흰 구름 사이에 있네.
舟中背指奉恩寺 배속에서 등지고 봉은사를 가리키네
蜀魄數聲僧掩關 소쩍새 자주 소리 내니 스님은 문을 닫는구나.

 

1) 꽃이 만발한 3월에, 봉은사에서 스님과 헤어지면서 준 작품.

2) 이 시는 저광희(儲光羲))기손산인(寄孫山人)나 위응물(韋應物)수유낭중춘일귀양주남국견별지작(酬柳郎中春日歸楊州南國見別之作)와 흡사하다.

新林二月孤舟還 신림의 2월 외로운 배로 돌아오니,
水滿淸江花滿山 맑은 강엔 온통 물이고, 산엔 온통 꽃이네.

 

廣陵三月花正開 광릉의 3월 꽃이 정히 피니,
花裏逢君醉一廻 꽃 속에 그대 만나 취하도록 한 잔하세.

 

3) 이 시에서의 광릉은 광주를 이른 말이다.

4) 가슴으로 쓴 시는 전고(典故)를 확인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음. 당시를 추구한 작품은 당시의 구절을 점화(點化)하기에 위응물의 시나 저광희의 시라해도 어색하지 않음.

 

 

2. 창작 방법으로 인해 당시를 배운 사람들의 시는 청신(淸新)함을 얻었지만 표절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무개성적이란 비판을 받음.

1) 권필(權韠)은 이달의 반죽원(斑竹怨)을 두고 이백의 시집에 넣으면 안목을 갖춘 사람도 구분할 수 없다고 칭찬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개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욕이기도 함. 지봉유설(芝峰類說)』 「문장부(文章部)

2) 김창협(金昌協)잡지(雜識)에서 송시를 배우던 선조 이전에는 비록 격조가 부드럽지 못하고 음률이 거칠지만 질박하고 꾸미지 않아 일가를 이루었는데, 선조 이후에는 당시를 배우는 자들이 많아지고, 또 왕세정(王世貞), 이반룡(李攀龍) 등의 복고파(復古派) 시가 들어오면서 모방을 일삼아 시가 한결같아졌으며, 이 때문에 선조 이전의 시에서는 개성을 볼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시에서는 개성을 볼 수 없다.”고 함.

3) 허균(許筠)국조시산(國朝詩刪)에서 삼당시인의 시를 매우 많이 선발하고서도 한두 편 읽을 때는 좋지만 몇 편 이상 읽어 나가면 지겹다고 밝힘.

 

 

 

 

인용

목차

한시사 / 略史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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