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4. 제사와 통치의 상관관계
踐其位, 行其禮, 奏其樂, 敬其所尊, 愛其所親, 事死如事生, 事亡如事存, 孝之至也. 그 지위를 밟아서 그 예(禮)를 행하고, 그 악(樂)을 연주한다. 선왕(先王)이 높인 바를 공경하고, 살아생전에 친했던 사람들을 아끼며, 죽은 자를 섬기되 산 사람을 섬기듯이 하고, 묻혀서 없어진 자를 섬기되 있는 것 같이 하는 것이 효의 극치이다. 踐, 猶履也. 其, 指先王也. 所尊ㆍ所親, 先王之祖考ㆍ子孫ㆍ臣庶也. 천(踐)은 리(履)와 같다. 기(其)는 선왕을 가리킨다. 존경하는 것과 친하게 여기는 것이란 선왕의 조상과 자손, 신하들이다. 始死謂之死, 旣葬則曰反而亡焉, 皆指先王也. 처음으로 죽었을 때를 사(死)라 하고 이미 장례지내고 돌아와서는 망(亡)이라 하니, 모두 선왕을 가리킨다. 此結上文兩節, 皆繼志ㆍ述事之意也. 여기선 윗 두 문장을 결론지었으니 모두 뜻을 계승하고 일을 기술한다는 뜻이다. |
여기서 예악(禮樂)이 나옵니다. 예(禮)와 악(樂)은 항상 병행(竝行)하는 것으로서, 엄격히 차서(次序)를 정하면서도 서로 어울림을 잃지 않는 것이죠. ‘애(愛)’는 ‘아낀다’로 정확히 번역되는데, 우리말에 ‘아낀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인색하다’는 의미와 ‘귀히 여겨 잘 쓰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역시 사랑하는 감정은 아낀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아끼니까 함부로 쓰지 않고, 귀하게 여기고. 부부간의 사랑도 서로 아껴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사(死)와 망(亡)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앞에서 말했는데, 여기서는 문장 구조상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사(生死)와 존망(存亡)이 짝을 이루어 비슷한 의미로 반복되고 있는 거예요. 죽은 자를 산 자와 같이 섬긴다는 이런 정신이 매사에 적용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없어도 있는 것처럼! 예를 들어서, 공자가 죽고 난 다음에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공자의 사상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인간의 경건함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또한 효의 극치이기도 하구요. 동양인들은 이렇게 효의 의미를 깊게 새깁니다.
郊社之禮, 所以事上帝也; 宗廟之禮, 所以祀乎其先也. 明乎郊社之禮ㆍ禘嘗之義, 治國其如示諸掌乎!” 교(郊)와 사(社)의 례(禮)는 상제(上帝)를 섬기는 까닭이요, 종묘의 예(禮)는 그 선조를 제사지내는 것이다. 교(郊)ㆍ사(社)의 예(禮)와 체(禘)ㆍ상(嘗)의 의(義)에 밝은 사람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마치 손바닥 들여다 보는 것처럼 훤히 알 것이다. 郊, 祭天. 社, 祭地. 不言后土者, 省文也. 교(郊)는 하늘에 제사지낸다는 것이다. 사(社)는 땅에 제사지내는 것으로, 하늘 신인 상제(上帝)만 말하고 땅의 신인 후토를 말하지 않은 것은 문을 생략한 것이다. 禘, 天子宗廟之大祭, 追祭太祖之所自出於太廟, 而以太祖配之也. 체(禘)는 천자가 종묘에서 드리는 큰 제사이니, 태조가 시작된 바의 선조를 태묘에서 추제하고 태조로써 그 선조와 배향(配享)하는 것이다. 嘗, 秋祭也. 四時皆祭, 擧其一耳. 禮必有義, 對擧之, 互文也. 상(嘗)은 가을제사다. 사계절에 모두 제사를 지내지만 그 하나만을 들었을 뿐이다. 교사지례(郊社之禮)는 반드시 체상지의(禘嘗之義)가 있어야 하니 상대적으로 그것을 들었으니, 호문(互文)이다. 示, 與視同. 視諸掌, 言易見也. 此與論語文意大同小異 記有詳略耳. 右第十九章. 시(示)는 시(視)와 같다. 시저장(視諸掌)은 보기 쉽다는 말이다. 이장은 「팔일」11의 문장의 뜻과 거의 같으나 약간 다르니, 기록에 자세하거나 간략하거나 함이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는 19장이다. |
‘교(郊)’는 하늘에 지내는 제사로서 그 대상이 상제(上帝)이고, ‘사(社)’는 땅에 지내는 제사이니 대상이 후토(后土)이죠. 여기서는 운(韻)을 맞추기 위해서 상제(上帝)만 쓰고 후토(后土)는 쓰지 않았습니다. “종묘는 선조에 제사 지내는 것이고, 교사(郊社)는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였다.” 이렇게 옛날 사람들이 문명을 관장하고 운영하는 모습은 구색이 딱딱 맞게 치밀합니다. ‘체(禘)’는 천자(天子)가 5년에 한 번 지내는 특별한 대제(大祭)이고, ‘상(嘗)’은 가을에 지내는 제사인데, 나머지 세 계절을 대표해서 쓰였습니다.
『논어(論語)』 「팔일(八佾)」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누가 체의 절차를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천하를 다스린다면 이걸 보듯이 쉬울 것이다’하면서 손바닥을 가리켰다[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이와 같이 『논어(論語)』나 『중용(中庸)』에서처럼, 같은 공자의 말씀을 여기저기 기록한 것이 고전에는 많이 있습니다.
“체의 차례와 내용을 완벽하게 꿰고 있는 사람이라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손바닥 들여다보는 것처럼 환할 것이다.” 이 말은 옛날 제정일치 사회에선 제사를 잘 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세를 훌륭하게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계절이 순환하는 때에 따라 모든 인간관계에 질서를 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제사는 당시 사회제도 운영의 근간이었고 사회의 기본질서에 대한 확인절차였던 것입니다.
17장과 18장과 19장은 모두 ‘작예악(作禮樂)’에 관한 것으로서, 유교문명의 작(作)의 내용을 서술한 것인데, 다음 20장부터는 『중용(中庸)』의 철학적 맛을 본격적으로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오히려 서론(introduction)이었고, 진짜 맛은 이제부터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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