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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 18. 관물론, 바라봄의 시학 - 3. 생동하는 봄풀의 뜻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8. 관물론, 바라봄의 시학 - 3. 생동하는 봄풀의 뜻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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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생동하는 봄풀의 뜻

 

 

소옹(邵雍)의 이물관물(以物觀物)의 설이 있은 이래 그 정신을 이어받아 관물(觀物)을 주제로 한 시를 남긴 시인들이 적지 않다. 여러 문집에 실려 전하는 관물시(觀物詩) 몇 편을 살펴 보기로 하자.

 

먼저 이색(李穡)관물(觀物)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大哉觀物處 因勢自相形 크도다 사물을 바라보는 곳 형세를 인하여 꼴지워 지네.
白水深成黑 黃山遠還靑 흰물도 깊으면 검게 변하고 황산도 멀리 보면 푸르게 뵈지.
位高威自重 室陋德彌馨 지위가 높고 보니 위엄 무겁고 집이사 누추해도 덕은 더욱 향기롭네.
老牧忘言久 笞痕滿小庭 늙은 몸 말 잊은 지 이미 오래니 이끼 자욱 작은 뜰에 가득하도다.

 

만물(萬物)의 태()는 일정함이 없어 형세에 따라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한다. 한 마음의 본원(本源)을 지켜 있다면 위고(位高)’실루(室陋)’의 형세 차이가 위중(威重)’ ‘덕형(德馨)’에 무슨 누가 되겠는가. 시인은 이제 작위함을 버려두고 말을 잊은 채 이끼 자욱 가득한 작은 뜰을 관물(觀物)할 뿐이다.

 

萬機花錦萬錢苔 만기(萬機)의 꽃 비단에 만전(萬錢)의 이끼
幾日天工費剪裁 조물주 몇 날이나 애를 썼던가.
物物自然生意足 물물(物物)마다 제 절로 생의(生意) 넘치니
老夫觀物思悠哉 관물(觀物)하는 늙은이 생각 그윽타.

 

서거정(徐居正)관물(觀物)이다. 봄이 오자 조물주는 대지 위에 온통 꽃 잔치를 벌려 놓았다. 파르라니 돋은 이끼와 비단 같은 꽃밭. 그저 바라만 보아도 생의(生意)가 넘쳐흐른다. 늙은이의 마음도 유유해진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관물(觀物)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南枝花發北枝寒 남쪽 가지 꽃 피워도 북쪽은 차니
强道春心有兩般 봄 마음 두 가지라 굳이 말하네.
一理齊平無物我 한 이치 나란타면 물아(物我) 없으리
好將點檢自家看 점검하여 제 스스로 봄이 좋겠네.

 

따사로운 봄볕과 마주한 양지녘엔 이미 꽃망울이 부펐어도, 그늘진 저편은 아직도 꽃소식이 감감하다. 한 가지에 나고도 이럴진대 봄은 어느 한편만을 편애하는 것이냐. 그러나 떳떳한 한 이치가 분명히 밝아 있으니 어찌 양반(兩般)’의 뜻이 있으랴. 3구에서 슬며시 ()’를 끌어들인 것을 보면, 세도(世道)의 불공(不公)을 언외에 투탁하는 마음이 잡힐 것도 같다.

 

唐虞事業巍千古 당우(唐虞)의 사업은 천고에 우뚝한데
一點浮雲過太虛 한 조각 뜬 구름은 허공을 지나가네.
蕭灑小軒臨碧澗 조촐히 작은 집은 푸른 시내 가에 있어
澄心竟日玩游魚 노는 고기 종일 보며 마음을 맑게 하네.

 

이언적(李彦迪)관물(觀物)이란 작품이다. 당우(唐虞)의 사업(事業), 즉 요순(堯舜)의 끼친 일이 천고(千古)에 우뚝해도, 어찌 보면 그것은 한 조각 뜬 구름이 허공을 스쳐 지난 것과 진배없다. 시인은 다만 시냇가 다락에 기대 앉아 강물에 노니는 물고기의 발랄을 지켜볼 뿐이다.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해맑아진다. 구름이 지나간 맑은 하늘같다. 그렇다면 물속에서 노닌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던 셈이다.

 

 

芸芸庶物從何有 많고 많은 사물들 어데서 왔나
漠漠源頭不是虛 아득한 저 근원은 허망치 않네.
欲識前賢興感處 전현(前賢)의 흥감처(興感處)를 알고 싶은가
請看庭草與盆魚 뜨락 풀과 어항 고기 자세히 보게.

 

이황(李滉)관물(觀物)이다. 원두(源頭)는 아득하여 허망한 듯 하지만 끝까지 궁구하여 일리(一理)’와 만난다. 많고 많은 서물(庶物)’들의 말미암은 바가 바로 이 지점이 아니던가. 전현(前賢)은 그 어디서 막막원두(漠漠源頭)’와 만났던가. 뜨락에 돋은 풀과 어항에 노니는 고기에서다. 4구의 정초(庭草)’ ‘분어(盆魚)’는 정호(程顥)가 뜰의 풀을 베지 않고, 어항에 물고기를 기르며 그 생의(生意)를 관찰하여 존심양성(存心養性)의 공부를 닦았던 일을 두고 한 말이다.

 

鳶飛魚躍太和中 솔개 날고 고기 뛰는 태화 중에서
萬物浮沈一氣融 만물의 부침(浮沈) 속에 한 기운 녹네.
春雨歇時庭草綠 봄비 그칠제면 뜨락 풀도 푸르니
這般生意與人同 이렇듯 생의(生意)로움 사람과 같네.

 

권필(權韠)관물(觀物)이다. ‘연비어약(鳶飛魚躍)’하는 중에 만물은 부침(浮沈)하고, 각양각색의 물태(物態)들은 태화(太和) 가운데서 일기(一氣)로 융화를 이룬다. 봄비가 내리고, 뜨락의 풀은 겨우내 움츠렸던 기지개를 펴 새싹을 내민다. 봄비의 생기와 뜨락 풀의 생동이 융화되어 새싹을 틔워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의 마음에도 그와 같이 생의(生意)가 물오른다.

 

 

牛無上齒虎無角 소는 윗니 없고 범은 뿔이 없거니
天道均齊付與宜 천도(天道)는 공평하여 부여함이 마땅토다.
因觀宦路升沈事 이로써 벼슬길의 오르내림 살펴보니
陟未皆歡黜未悲 승진했다 기뻐말고 쫓겨났다 슬퍼말라.

 

고상안(高尙顔)관물음(觀物吟)이다. 단순히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자기 위안이 아니다. 일찍이 이인로(李仁老)파한집(破閑集)에서 천지는 만물에 있어 그 아름다움만을 오로지 할 수는 없게 하였다. 때문에 뿔 있는 놈은 이빨이 없고, 날개가 있으면 다리가 두 개 뿐이며,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고, 채색 구름은 쉬 흩어진다[天地之於萬物也, 使不得專其美. 故角者去齒, 翼則兩其足, 名花無實, 彩雲易散].”고 하였다. 뿔 달린 소는 윗니가 없고, 이빨이 날카로운 범에게는 뿔이 없으니, 천도(天道)는 과연 공평치 아니한가. 벼슬길의 승침(升沈)도 이와 같아서, 이래서 좋으면 저래서 나쁘고, 저래서 미쁘면 이래서 언짢으니 변화의 기미를 살펴 몸을 맡길 뿐이다.

 

이상 몇 수 살펴본 관물론(觀物詩)들은 만수(萬殊)로 나뉘어져 백태(百態)를 연출하는 사물(事物) 저편의 일리(一理)’를 투시하며 삶의 자세[自一本而散萬殊, 推萬殊而至一本]를 가다듬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사물을 향한 관찰과 내면을 향한 관조가 있다. 권필(權韠)정중음(靜中吟)이 이를 잘 요약한다.

 

意實群邪退 心虛一理明 뜻이 차니 삿됨은 사라져 가고 마음 비니 한 이치 뚜렷히 밝네.
靜時觀萬物 春氣自然生 고요할 제 만물을 바라보자니 봄 기운 저절로 생동하누나.

 

 

 

 

인용

목차

1.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2.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3. 생동하는 봄풀의 뜻

4. 유아지경과 무아지경

5. 속인과 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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