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견우(牽牛)와 소도둑②
조원(趙瑗)의 첩 이씨(李氏, 이옥봉)가 능히 시를 잘 지었다. 마침 시골에 어떤 남자가 소를 훔친 혐의로 관가에 끌려갔다. 답답한 그 아낙이 이웃의 이씨(李氏)에게 남편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소장(訴狀)을 써달라고 부탁하니, 이씨(李氏)는 그 말미에 이렇게 써 놓았다.
妾身非織女 郞豈是牽牛 | 첩의 몸이 직녀(織女)가 아니옵거늘 낭군이 어찌 견우(牽牛)시리요. |
견우(牽牛)는 글자 그대로 풀이 하면 ‘소를 끌다’가 되니 소를 끌고 간 도둑이 된다. 자신이 직녀(織女)가 아니니 낭군이 견우(牽牛)일 까닭이 없다는 말은, 곧 낭군은 결코 소를 끌고 가지 않았다는 호소가 되는 것이니, 그 언어의 재치가 놀랍고 뛰어나다. 이 시를 본 태수는 기특하게 여겨 그 사람을 바로 풀어주었다.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보인다.
명(明) 나라 때 사람 정민정(程敏政)은 어려 신동(神童)으로 소문나 한림원에 입학하였는데, 당시 재상 이현(李賢)이 그의 재주를 몹시 아껴 사위로 삼으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짐짓 그를 초청하여 대접하고는 상 위에 있던 연근(蓮根)을 가리키며 시를 지었다.
因荷而得藕 | 연꽃을 인하여 연뿌리를 얻었도다. |
그러자 정민정(程敏政)은 식탁 위에 있던 살구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대구하였다.
有杏不須梅 | 살구가 있으니 매실(梅實)은 필요 없네. |
겉으로 보면 상 위의 음식을 놓고 한 마디씩 덕담을 주고받은 것이지만, 속으로는 ‘나는 너를 사위로 삼고 싶다’고 한 말에 ‘영광입니다’라고 대답한 내막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이현(李賢)이 던진 ‘인하이득우(因荷而得藕)’는 ‘인하이득우(因何而得偶)’와 쌍관(雙關)되어 “어디에서 짝을 얻으려는가?”라는 질문이 되고, 정민정(程敏政)의 ‘유행불수매(有杏不須梅)’는 ‘유행불수매(有幸不須媒)’와 쌍관(雙關)되어 “다행히도 중매쟁이가 필요 없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되어, 당신의 딸을 주신다면 중매 없이 혼인할 수 있겠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얼마 뒤 정민정(程敏政)은 재상 이현(李賢)의 사위가 되었다.
因荷而得藕 有杏不須梅 | 연꽃을 인하여 연뿌리를 얻었도다. 살구가 있으니 매실(梅實)은 필요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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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何而得偶 有幸不須媒 | 어디에서 짝을 얻으려는가? 다행히도 중매쟁이가 필요 없겠습니다. |
또 명말(明末)의 소설가 김성탄(金聖嘆)이 죄를 입어 사형을 당하기 직전 아들에게 두 구절을 지어 보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蓮子心中苦 梨兒腹內酸 | 연밥은 그 속이 매우 쓰고 배는 속살이 맛이 시다네. |
다 죽어가는 마당에 웬 연밥과 배 맛 타령이란 말인가? 김성탄의 이 구절은 그가 유난스런 미식가(美食家)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한 속뜻은 다음과 같다.
憐子心中苦 離兒腹內酸 | 너희들 보고파서 내 마음 괴롭고 헤어질 생각하니 속이 쓰리다. |
쌍관의(雙關義)의 활용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비통한 심정을 심상한 언어의 포장 속에 감추고 있는 절묘한 표현이다.
인용
3. 장님의 단청 구경①
4. 장님의 단청 구경②
5. 견우(牽牛)와 소도둑①
6. 견우(牽牛)와 소도둑②
7. 견우(牽牛)와 소도둑③
8. 견우(牽牛)와 소도둑④
12. 선덕여왕의 자격지심①
13. 선덕여왕의 자격지심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