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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6. 만물은 제각기 살아 숨 쉴 뿐, 절대적 법칙은 없다 이것은 마음으로 헤아림이 미치는 바가 오직 소나 말, 닭이나 개에만 있지, 용이나 봉황, 거북이나 기린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범을 만나면 코로 쳐서 이를 죽이고 마니 그 코는 천하에 무적이다. 그러나 쥐를 만나면 코를 둘 곳이 없어 하늘을 우러르며 서 있는다. 그렇다고 해서 장차 쥐가 범보다 무섭다고 말한다면 앞서 말한 바의 이치는 아닐 것이다. 是情量所及, 惟在乎馬牛鷄犬, 而不及於龍鳳龜麟也. 象遇虎, 則鼻擊而斃之, 其鼻也, 天下無敵也. 遇鼠, 則置鼻無地, 仰天而立. 將謂鼠嚴於虎, 則非向所謂理也.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내 눈으로 보아 아는 세계의 하찮은 지식을 가지고 세상의 온갖 진리를 꿰뚫으려 하는 노력은 코끼리 앞에 서면 ..
5. 하늘은 왜 코끼리에게 장난을 쳤는가? 그런데도 말하는 자들은 “뿔이 있는 놈에게는 윗니를 주지 않는다”고 하여 마치 사물을 만듦에 모자란 것이라도 있는 듯이 하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감히 묻는다. “이빨을 준 것은 누구인가?” 사람들은 장차 말하리라. “하늘이 주었다.” 다시 묻는다. “하늘이 이빨을 준 것은 장차 이것으로 무엇을 하게 하려한 것인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하늘이 하여금 물건을 씹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묻는다. “이로 하여금 왜 물건을 씹게 하는가?” 그들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은 대저 이치이다. 새나 짐승은 손이 없으므로, 반드시 부리나 주둥이로 숙여서 땅에 닿게 하여 먹을 것을 구한다. 때문에 학의 다리가 높고 보니 목이 길지 않을 수 없는데, 그래도..
4. 하늘이 만든 건 아무 것도 없다 아아! 세간의 사물 가운데 겨우 털끝같이 미세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늘을 일컫지 않음이 없으나,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일일이 이름을 지었겠는가? 형체를 가지고 ‘천天’이라 하고, 성정을 가지고는 ‘건乾’이라 하며, 주재함을 가지고는 ‘제帝’라 하고, 묘용妙用을 가지고서는 ‘신神’이라 하여, 그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가지이고 일컬어 말하는 것도 몹시 제멋대로이다. 이에 이기理氣로써 화로와 풀무로 삼고, 펼쳐 베품을 가지고 조물造物로 여기니, 이것은 하늘 보기를 교묘한 장인匠人으로 보아 망치질하고 끌질하며, 도끼질과 자귀질하기를 잠시도 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噫! 世間事物之微, 僅若毫末, 莫非稱天, 天何嘗一一命之哉. 以形軆謂之天, 以性情謂之乾, 以主宰謂之帝, 以妙用謂..
3. 코끼리를 눈으로 보고도 코를 찾는 사람들 그 생김새가 몸뚱이는 소인데 꼬리는 나귀 같고, 낙타 무릎에다 범의 발굽을 하고 있다. 털은 짧고 회색으로, 모습은 어질게 생겼고 소리는 구슬프다. 귀는 마치 구름을 드리운 듯 하고, 눈은 초승달처럼 생겼다. 양쪽의 어금니는 크기가 두 아람이나 되고, 길이는 한 자 남짓이다. 코가 어금니보다 더 길어서 구부리고 펴는 것은 자벌레만 같고, 두르르 말고 굽히는 것은 굼벵이 같다. 그 끝은 누에 꽁무니처럼 생겼는데, 마치 족집게처럼 물건을 끼워가지고는 말아서 입에다 넣는다. 其爲物也, 牛身驢尾, 駝膝虎蹄. 淺毛灰色, 仁形悲聲. 耳若垂雲, 眼如初月. 兩牙之大二圍, 其長丈餘. 鼻長於牙, 屈伸如蠖, 卷曲如蠐. 其端如蠶尾, 挾物如鑷, 卷而納之口. 그 다음 단락은 코끼리의..
1. 이미지는 살아 있다, 코끼리의 기호학 상기(象記) 1. 에코와 연암 몇 해 전 일이다. 강의 시간에 연암의 글을 강독하고서 평설을 써오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다. 한 학생이 과제 끝에 쓴 ‘장미는 예로부터 그 이름으로 존재해 왔으나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락(零落)한 이름뿐’이라는 구절이 내 시선을 끌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인용한 대목이었다. 에코의 이 책에는 연암의 코끼리 이야기와 아주 비슷한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듣거라, 아드소. 수수께끼 풀이는, 만물의 근본 되는 제 1원인으로부터 추론해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수한 자료를 꾸역꾸역 모아들이고 여기에서 일반 법칙을 도출하면 저절로 풀리는 것도 아니다. …… 뿔이 있는 짐승의 예를 들어보자. 왜 짐승에..
2. 이전에 코끼리를 두 번 봤던 기억 장차 괴상하고 진기하고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것을 보려거든 먼저 선무문宣武門 안으로 가서 코끼리 우리를 살피면 될 것이다. 내가 황성皇城에서 코끼리 16마리를 보았으나, 모두 쇠로 만든 족쇄로 발을 묶어 두어 그 움직이는 것은 보지 못하였었다. 이제 열하熱河 행궁行宮의 서편에서 코끼리 두 마리를 보매, 온몸을 꿈틀대며 움직이는데 마치 비바람이 지나가는 듯하였다. 將爲怪特譎詭恢奇鉅偉之觀, 先之宣武門內, 觀于象房可也. 余於皇城, 見象十六, 而皆鐵鎖繫足, 未見其行動. 今見兩象於熱河行宮西, 一身蠕動, 行如風雨. 이제 연암의 글을 따라가며 읽어 보기로 한다. 소나 말, 닭이나 개만 보며 평생을 살아온 시골 사람이 코끼리를 난생 처음 보았다면 그 느낌은 어떠했을까? 사진으로도 ..
1.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한 사람을 추억하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왜곡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사람이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면 그럴 위험성은 더 커지게 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왜 추억하는 일 자체가 왜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기억을 통해 재구성하는 걸 ‘추억’이라 한다. 그런데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과정 속에 ‘생각이란 필터’로 걸러지고 ‘이상화된 관념’으로 치장되기 때문에 추억은 사실과 달라진다. 그래서 『얼렁뚱땅 흥신소』라는 드라마에서는 아빠에 대해 좋은 추억을 지니고 있던 은재가 기억을 되찾으며 그 추억이 미화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기억은 추억을 배반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추억이란 때때로 이처럼 무서운 것일 수도 있는 거다. ▲ 이 드라마에서 ..
2. 자신을 개방하는 자만이 배울 수 있다 경제적 관념이 대학평가에도 도입되면 교육은 사라지는 현상이 똑같이 재현된다. 지금의 문부과학성은 각 대학에 16살짜리 학생이면 다 알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라고 독촉한다. ▲ 15년 2월 1일에 개풍관에서 들은 강연이다. 함께 하진 못했지만, 사진만으로도 그 때의 뜨거움이 보인다. 대학평가가 오히려 대학을 병들게 하다 어느 대학이건 강의계획서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어서, 아이들이 강의계획서를 보면 ‘이 과목을 배우면 최종적으로 무엇을 얻게 되는지’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학교수가 연구를 신청할 때에도 몇 개월 후엔 무엇이 연구되고 3년 후엔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만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나 또한 2006년에 6년의..
목차 1.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작은 배움을 탐하다, 작은 틀에 갇히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되길 원하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아닌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2. 삶이 배반한 자리에 희망이 어리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 서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서 싹튼 ‘지금-여기’ 삶론 실패할지라도, 도전해보다 지금-여기를 축복하는 삶이 만든 기적 3. 어색한 만큼 금방 친해진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아기가 처음 만난 세계’를 어른이 되어 다시 느끼다 어색하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마재에서 느낀 다산의 향기 4. 정약용이 여유당이라 호를 지은 이유 마재엔 다산 인생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여유당, 그기 뭐꼬? 5. 정약용이 가르쳐준 인생담 여유당에 스민 다산의 ..
나에게 여행이란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계획되어 있기에 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에 의해서 여행을 떠난 적은 있었어도, 내가 원해서 떠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내일만 보고 살아가는 놈’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살아가기보다,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단 말이다. ▲ 나에게 여행이란 이런 광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의 의지로 참가하기로 결심을 한, 실학순례는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쯤 되어서 드는 생각은 ‘왜 여태껏 내 의지대로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맘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을 ..
무엇을 하든 ‘임용에 합격한 후에 하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임용이 된 후에 할 일 목록’을 만들기도 했고, 그런 영광의 순간을 위해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 합격 이후로 모두 다 미루어놓은 삶. 그러다 보니 '지금-여기'는 늘 거부되고, 저주하게 된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 서다 하지만 첫 임용시험에서 보란 듯이 떨어지고 말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중등임용 시험의 경쟁률이 높으니, 첫 시험에서 떨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용을 보는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첫 시험은 예행연습 삼아서 보는 거야’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도 원체 기대도 컸고, 4년 간 최선을 다해 달렸다고 생각하니 떨어짐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삶이 언제고 맘..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얼마나 많은 날을 지냈는지 모른다. 앞날은 불투명했지만 어찌 되었든 대학에 왔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때론 그렇게 생각 없이, 고민 없이 정해진 수순대로 살아갈 때가 있다. 하긴 ‘때론’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길만을 걷다 보면, 그게 ‘당연히 가야 할 길’로 보이고, 그 길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 인생엔 분명 무수한 갈림길이 있지만, 우린 갈림길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길만 보고 맹목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게 들어서서 가고 있는 길이라 해서, 아무런 걱정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10대엔..
2. 경계를 넘어서다 첫 해외여행이다.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는 여행이지만, 그 의미 외에도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군대는 타의에 의해 가며 정해진 대로 행동하면 된다. 내가 기획하고 움직일 여지가 그다지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도보여행은 주체적인 결정이었고 여행 내내 나의 의지가 나를 이끌었다. 삼중고? NO! 삼중락? YES! 그런데 이번 여행은 나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는 여행이되, 나의 의지가 절대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학생들을 인솔해야 하며, 전체 계획에 대해서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이끌어야 한다. 첫 여행이라는 핸디캡,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부담감, 학생들을 인솔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이러하기에 삼중고三重苦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조차 생각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전면에 ..
34. 아버지의 세초된 작품들에 대한 아쉬움 연암에 대한 세간의 평과 실질적인 모습 先君自少時, 頗有文酒跌蕩之事. 人或以喜繁華厭拘檢目之. 然天稟實澹泊於物, 最喜閑居靜坐, 究觀理致. 관조를 즐겨 수많은 작품을 남기다 其在燕峽也, 終日不下堂, 或遇物注目, 瞪默不言者移時. 嘗言: “雖物之至微, 如艸卉禽蟲, 皆有至境, 可見造物自然之玅.” 毎臨溪坐石, 微吟緩步, 忽嗒然若忘也. 時有玅契, 必援筆箚記, 細書片紙, 充溢篋箱. 遂藏之溪堂, 曰: “他日更加攷檢, 有條貫然後可以成書.” 그 많던 작품들이 세초된 내역 後棄官入峽, 出而視之, 眼昏已甚, 不能察細字. 乃悵然發歎曰: “惜乎! 宦遊十數年, 便失一部佳書.” 已而又曰: “終歸無用, 徒亂人意.” 遂令洗草溪下. 嗟乎! 不肖輩, 時未侍側, 遂失檢拾焉. 해석 연암에 대한 세간의..
박지원朴趾源: 1737(영조 13)~1805(순조 5) 조선 후기의 실학자ㆍ문인.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ㆍ열상외사(洌上外史). 1737년 서울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출생. 장인 이보천(李輔天)의 아우인 이양천(李亮天)에게서 『사기(史記)』를 시작으로 역사서적을 통해 문장 쓰는 법을 습득함. 1752년 16세 전주 이씨 보천(輔天)의 딸과 결혼. 1754년 18세 10대 후반에 우울증에 시달려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영역을 확대하여 18세 무렵에 「광문자전(廣文子傳)」을 지었다. 지음. 1757년 21세 「민옹전(閔翁傳)」 지음. 1759년 23세 모친 함평 이씨 별세. 1760년 24세 조부 박필균(朴弼均) 별세로 생활이 곤궁해짐. 1765년 29세 시 「총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