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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3. 현학적인 수사의 한계를 간파하다 현랑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我로써 아我를 증명할 뿐, 저 상相이란 것은 상관할 것 없겠습지요.” 내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마음으로 마음을 본다고 하니, 마음이란 게 몇 개나 있더란 말인고?” 郞叩頭曰: “以我證我, 無關彼相.” 余大笑曰: “以心觀心, 心其有幾.” 그러자 현랑은 공손한 태도로 대답한다. “선생님! 저 외물의 상相으로써야 무엇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마음으로 보아 마음으로 느껴 깨달을 따름입지요. 거품 같은 외물이야 상관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에 연암은 크게 웃는다. “상相과는 무관하다? 마음으로 마음을 본다? 그럴진대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이 남긴 사리라는 상相에 집착하여 탑을 세우려 하는가? 마음으로 마음을 본다니, 마음을 증명하는..
2. 이상한 불빛과 지황탕의 거품 내가 평소에 불가佛家의 말을 잘 알지 못하지만 애써 부탁하는지라, 이에 시험삼아 물어 보았다. “여보시게 현랑玄郞! 내가 옛날에 병으로 지황탕地黃湯을 복용할 적에 즙을 걸러 그릇에 따르는데 자잘한 거품이 부글부글 일지 뭔가. 금싸라기나 은별도 같고, 물고기 아가미에서 나오는 공기 방울 같기도 하고 벌집인가도 싶더군. 거기에 내 모습이 찍혀있는데, 마치 눈동자에 부처가 깃들어 있기나 한 듯이 제각금 상相을 드러내고, 영낙없이 성性을 머금었더란 말일세. 그런데 열이 식고 거품이 잦아들어 마셔 버리자 그릇은 그만 텅 비고 말더란 말이야. 앞서는 또렷하고 분명했는데 누가 자네에게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겠나?” 余雅不解浮圖語, 旣勤其請, 迺嘗試問之曰: “郞! 我疇昔而病, 服地..
1. 음산한 빛에 놀라 명문을 부탁하다 「주공탑명」은 윤광심尹光心(1751-1817)이 엮은 『병세집幷世集』과 이규경李圭景(1788-1856)의 『시가점등詩家點燈』에 연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수록되었을 만큼 당대 문인들에게서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이다. 행간이 미묘할 뿐 아니라, 전체 글이 중층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어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첫 단락은 명銘을 쓰게 된 전후 사실을 적고 있다. 주공麈公 스님의 입적 사실과 다비식을 거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상한 일들, 그리고 사리 수습 및 부도탑浮圖塔을 세우려고 탑명塔銘을 자신에게 청탁해 온 일 등을 기술하였다. 주공麈公 스님이 입적한 지 엿새되던 날 적조암寂照菴 동대東臺에서 다비를 하였다. 그곳은 온숙천溫宿泉 노송나무 아래에서 열 걸음 거리도 ..
6. 벗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들 짤막한 편지글 두 편을 함께 더 읽어본다. 두 편 모두 벗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별의 말이 간절해도, 이른바 천리 길에 그댈 보내매 마침내는 한번 이별일 뿐이라는 것이니 어찌 하겠소. 다만 한 가닥 가녀린 정서情緖가 이리저리 감겨 면면이 끊어지지 않으니, 마치 허공 속의 허깨비 꽃과도 같구려. 와도 어디서 조차 오는지 모르겠고, 떠나가도 다시금 애틋할 뿐이라오. 別語關關, 所謂送君千里, 終當一別, 柰何柰何. 只有一端弱緖, 飄裊纏綿, 如空裡幻花. 來卻無從, 去復婀娜耳. 「답경지答京之」, 즉 경지에게 보낸 답장의 엽서다. 벗과 헤어진 뒤 그 연연하고 애틋한 정서를 절묘하게 포착한 소품이다. 잘 가시게, 잘 있게. 이별의 말을 나누자 어느 ..
5. 무엇을 보려는가 내가 이때 턱을 받치고 곁에 앉아 이를 듣고 있었는데 참으로 아마득하였다. 백오伯五 서상수徐常修가 그 집을 관재觀齋라고 이름 짓고서 내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대저 백오가 어찌 치준緇俊 스님의 설법을 들었단 말인가? 드디어 그 말을 써서 기記로 삼는다. 余時支頤, 旁坐聽之, 固茫然也. 伯五名其軒曰: 觀齋. 屬余序之. 夫伯五豈有聞乎俊師之說者耶. 遂書其言, 以爲之記. 내 친구 서상수徐常修가 제 집 이름을 ‘관재觀齋’라고 지었다. 여보게, 백오伯五! 자네는 관재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겠다는 것인가? 타고남은 재를 보는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보는가? 허망한 이름을 보는가? 부질없는 공덕을 보는가? 마음에 머물리는 집착을 걷어내고, 명命을 따라 아我를 보고, 이理에 실어 물物을 보게. 그..
4. 태를 바꿔가며 변해가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이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알 수 ..
3. 분명히 있지만 없는 것 동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옛날에 스승님께서 제 정수리를 문지르시며 제게 다섯 가지 계율을 내리시고 제게 법명法名을 주셨습니다. 이제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름은 내가 아니요, 나는 곧 공空이라 하십니다. 공空은 형체가 없는 것이니 이름은 장차 어데다 베푼답니까? 청컨대 그 이름을 돌려드리렵니다.” 대사가 말하였다. “너는 순순히 받아서 이를 보내도록 해라. 내가 예순 해 동안 세상을 살펴보았으되, 사물은 한 자리에 머무는 법 없이 도도히 모두 가버리는 것이더구나. 해와 달도 흘러가 잠시도 쉬지 않느니, 내일의 해는 오늘이 아닌 것이다. 그럴진대 맞이한다는 것은 거스르는 것이요, 끌어당기는 것은 애만 쓰는 것이니라. 보내는 것을 순리대로 하면, 너는 마음에 머무는..
2. 향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히다 동자가 홀연히 묘오妙悟를 발하여 웃으며 말하였다. “공덕功德이 이미 원만하다가 지나는 바람에도 움직여 도는구나. 내가 부처를 이룸도 한낱 무지개를 일으킴이로다.” 대사가 눈을 뜨며 말하였다. “얘야! 너는 그 향을 맡은게로구나. 나는 그 재를 볼 뿐이니라. 너는 그 연기를 기뻐하나, 나는 그 공空을 바라 보나니. 움직이고 고요함이 이미 적막할진대 공덕은 어디에다 베풀어야 할꼬?” 동자가 말하였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대사가 말하였다. “너는 시험 삼아 그 재의 냄새를 맡아 보아라. 다시 무슨 냄새가 나더냐? 너는 그 텅빈 것을 보거라. 또 무엇이 있더냐?” 童子忽妙悟發, 笑曰: “功德旣滿, 動轉歸風. 成我浮圖, 一粒起虹.” 師展眼曰: “小子汝聞其香,..
1. 사라지는 연기 담배가 방생한 연기는 지금 어디쯤 자유로이 날아가고 있을까 우리들 삶을 연기와 같다고 말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말하지만 담배연기, 담배연기를 보며 허무와 자유는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박상천의 「방생放生ㆍ5」란 작품이다. 시인은 삶이란 흔적도 없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담배 연기와 같은 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유롭지만 그러기에 허무한 거라고 말한다. 내 입에서 품어져 나간 담배 연기,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 담배 연기, 분명히 있었지만 찾을 길 없는 담배 연기. 그는 왜 담배 연기를 보며 허무와 자유를 같이 떠올렸을까?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니 허무하고, 얽매임 없이 제멋대로 날아가고 있기에 자유롭다고 했다. 그런데 허무는 자유로운가? 자유는 과연 허무한 것..
6. 연암이 과거시험을 절망스럽게 본 이유 박종채朴宗采는 『과정록過庭錄』(1-15 / 22)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당시 선군의 문장은 명성이 이미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울리었다. 매번 과거 시험이 있을 때마다 시험을 주관하는 자가 반드시 끌어당기려 하였으나, 선군은 그 의도를 간파하고 혹은 응시하지 않거나 혹은 응시는 하되 시권試券을 제출하지 않으셨다. 하루는 과장科場에 있으면서 고송古松과 노석老石을 그리니, 세상에서는 서투르고 물정을 모른다고들 비웃었다. 그러나 이는 대개 달갑게 여기지 않는 뜻을 보이신 것이었다. 선군은 회시에 응시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친우들이 억지로 권하는 자가 많아 드디어 마지 못해 과장에 들어갔다가 시권을 제출하지 않고 나오셨다.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이를 듣고 모두들, 나아감..
5. 아홉은 죽어나가는 과거시험 다시 연암으로 돌아가서, 과거에 합격한 이웃 사람에게 보낸 축하 편지 한통을 읽어 보자. 과거 시험에 대한 연암의 평소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제목은 「하북린과賀北隣科」이다. 무릇 요행을 말할 때는 ‘만에 하나’라고들 하지요. 어제 과거에 응시한 사람은 수만 명도 더 되는데, 이름이 불리운 사람은 겨우 스무명 뿐이니 참으로 만분의 일이라 할 만합니다. 문에 들어설 때에는 서로 짓밟느라 죽고 다치는 자를 헤일 수도 없고, 형과 아우가 서로를 불러대며 찾아 헤매다가 서로 손을 잡게 되면 마치 다시 살아온 사람을 만난 듯이 하니, 그 죽어 나간 것이 ‘열에 아홉’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제 그대는 능히 열에 아홉의 죽음을 면하고 만에 하나의 이름을 얻었구려. 나는 무리 가운데에..
4. 전후의 안쓰러운 내면풍경 함께 떠오르는 현대시 한 수. 김윤성金潤成 시인의 작품으로 제목은 「추억에서」이다. 『한국전후대표시집韓國戰後代表詩集』에 실려 있다. 낮잠에서 깨어 보니 방안엔 어느새 전등불이 켜져 있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어딘지 먼 곳에서 단란한 웃음소리 들려온다. 눈을 비비고 소리나는 쪽을 찾아보니 집안 식구들은 저만치서 식탁을 둘러앉아 있는데 그것은 마치도 이승과 저승의 거리만치나 멀다. 아무리 소리질러도 누구 한 사람 돌아다 보지 않는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무슨 벽이 가로 놓여 있는가 안타까이 어머니를 부르나 내 목소리는 산울림처럼 헛되이 되돌아올 뿐. 갑자기 두려움과 설움에 젖어 뿌연 전등불만 지켜보다 어머니 어머니 비로소 인생의 설움을 안 울음이 눈물과 더불어 한없이 쏟아진다..
3. 송욱처럼 완전히 미치길 계우季雨는 성품이 소탕하여 술마시기를 좋아하고 호방하게 노래하면서 주성酒聖이라고 자호自號하였다. 세상에서 겉은 번드르하면서 속이 유약한 사람을 보면 마치 더러워 토할 듯이 하였다. 내가 장난삼아 말하였다. “술 취해 성인聖人이라 자칭하는 것은 미친 것을 감추려는 것일세. 자네가 취하지 않고서도 생각이 없게 되면 거의 큰 미치광이의 경지에 가깝게 되지 않겠나?” 계우季雨가 정색을 하고 한동안 있더니, “그대의 말이 옳다” 하고는 드디어 그 집을 염재念齋라 이름 짓고 내게 기記를 부탁하였다. 마침내 송욱의 일을 써서 그를 권면한다. 대저 송욱은 미친 사람이다. 또한 이로써 나 스스로를 권면해 본다. 季雨性踈宕, 嗜飮豪歌, 自號酒聖. 視世之色莊而內荏者, 若浼而哇之. 余戱之曰: “醉..
2. 자신의 과거시험지를 자신이 채점하다 드디어 동곽東郭의 소경에게 가서 점을 쳤다. 소경은 점을 치며 말하였다.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갓끈이 끊어져 구슬이 흩어졌구나. 저 올빼미를 불러다가 헤아려보게 하자꾸나.” 둥근 동전이 잘 구르다가 문지방에 부딪쳐 멈추자, 동전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축하하며 말하였다. “주인은 놀러 나갔고, 객은 깃들어 쉴 곳이 없구나. 아홉을 잃고 하나만 남았으니, 이레 뒤에는 돌아오겠구나. 이 점괘가 크게 길하니 마땅히 과거에 높이 붙겠구려.” 遂占之東郭之瞽者, 瞽者占之曰: “西山大師, 斷纓散珠, 招彼訓狐, 爰計算之.” 圓者善走, 遇閾則止. 囊錢而賀曰: “主人出遊, 客無旅依. 遺九存一, 七日乃歸. 此辭大吉, 當占上科.” 점장이는 주인은 놀러가고 없고, 객만 남아 깃들어 쉴 데도..
1. 송욱이 송욱을 찾아다니다 송욱宋旭이 취해 자다가 아침에야 술이 깼다. 드러누워 듣자니 솔개가 울고 까치가 우짖으며 수레 끄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떠들썩하였다. 울타리 아래서는 방아 찧는 소리, 부엌에서는 설거지 하는 소리. 늙은이가 소리치고 아이가 웃는 소리, 계집종이 잔소리하자 사내종이 헛기침 하는 소리, 무릇 문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하나도 모를 것이 없는데, 유독 제 소리만은 없는 것이었다. 宋旭醉宿, 朝日乃醒. 臥而聽之, 鳶嘶鵲吠, 車馬喧囂. 杵鳴籬下, 滌器廚中. 老幼叫笑, 婢僕叱咳. 凡戶外之事, 莫不辨之, 獨無其聲. 이에 그만 멍해져서 말하였다. “집안사람들은 모두 있는데, 나만 어째 혼자 없는 걸까?” 눈을 둘러 살펴보니, 저고리는 옷걸이에, 바지는 횃대에 있고, 갓은 벽에 걸려 있고, ..
22. 과거시험에 급제시키려는 사람들과 그걸 피해 다니는 연암 庚寅, 赴監試, 俱魁初終場. 出榜之夕, 有特旨入侍卧內, 使知申讀奏試券. 上親叩書案以節之, 盛加奬諭焉. 先君欲不赴會圍, 親友多强勸者, 遂黽勉入場屋, 不呈券而出. 有識者聞之, 皆以爲進取不苟, 有古人風. 遺安翁時在鄕廬, 語其子曰: “某之會圍, 吾不甚喜也. 及聞其不呈券, 甚欣然也.” 盖先君兩場之魁, 皆遇然之得, 而及其偏被隆渥, 名聲益壯. 時議必欲於會圍援引之以爲功. 先君戒其或涉機也, 勇決如此云爾. 해석 庚寅, 赴監試, 俱魁初終場. 선군께서는 경인(1770)년에 감시에 응시해 모두 초종장에서 장원을 하셨다. 出榜之夕, 有特旨入侍卧內, 방이 붙던 날 저녁에 임금께선 寢殿으로 입시하라 명령을 내리고 使知申讀奏試券. 知申事에게 시권을 읽도록 하셨다. 上親叩書..
15. 과거급제엔 전혀 관심도 없어라 時先君文章之名, 已喧動一世, 每有科試, 主試者, 必欲援引. 先君微知其意, 或不赴, 或赴而不呈券. 一日在場屋, 漫筆畵古松老石, 一世傳笑其踈迂. 然盖示其不屑之意者. 해석 時先君文章之名, 已喧動一世, 당시 선군의 문장에 대한 명성이 이미 한 세상을 시끄럽게 할 정도로 유명해 每有科試, 主試者, 매번 과거시험이 있으면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사람이 必欲援引. 반드시 끌어다 급제시키려 하였다. 先君微知其意, 或不赴, 선군께서는 은밀하게 그 뜻을 알아 혹은 시험장에 가질 않았고 或赴而不呈券. 혹은 가더라도 시권을 내지 않았다. 一日在場屋, 漫筆畵古松老石, 하루는 과거시험장에 있었는데 늙은 소나무와 묵은 바위를 일필휘지로 그리고 있었으니 一世傳笑其踈迂. 한 세상 사람들이 급제에 관심..
8. 모범답안을 맹종치 말고 글의 결을 파악하라 나의 벗 이중존李仲存이 우리나라 고금의 과체科軆를 모아 엮어 열 권으로 만들고, 이를 이름하여 소단적치騷壇赤幟라 하였다. 아아! 이것은 모두 승리를 얻은 군대요 백 번 싸워 이긴 나머지이다. 비록 그 체재와 격조가 같지 않고, 좋고 나쁨이 뒤 섞여 있지만 제각금 이길 승산이 있어, 쳐서 이기지 못할 굳센 성이 없고, 그 날카로운 칼끝과 예리한 날은 삼엄하기가 마치 무고武庫와 같아, 때를 따라 적을 제압하여 움직임이 군대의 기미에 맞으니, 이를 이어 글 하는 자가 이 방법을 따른다면, 정원定遠의 비식飛食과 연연산燕然山에 공을 적어 새기는 것이 그 여기에 있을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방관房琯의 수레 싸움은 앞 사람을 본받았어도 패하고 말았고, 우후虞詡가 부뚜막..
7. 주제를 뚜렷하게 세우고 글을 쓰라 대저 갈 길이 분명치 않으면 한 글자도 내려 쓰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항상 더디고 껄끄러운 것이 병통이 되고, 요령을 얻지 못하면 두루 헤아림을 비록 꼼꼼히 하더라도 오히려 그 성글고 새는 것을 근심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음릉陰陵에서 길을 잃자 명마인 추騅도 나아가지 않고, 굳센 수레로 겹겹이 에워싸도 여섯 마리 노새가 끄는 수레는 이미 달아나 버린 것과 같다. 진실로 능히 말이 간단하더라도 요령만 잡게 되면 마치 눈 오는 밤에 채蔡 성을 침입하는 것과 같고, 토막 말이라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면 세 번 북을 울리고서 관關을 빼앗는 것과 같게 된다. 글을 하는 도가 이와 같다면 지극하다 할 것이다. 夫蹊逕之不明, 則一字難下, 而常病其遲澁; 要領之未得, 則周匝雖密, ..
6. 글쓰기에 상황만 있을 뿐 정해진 법칙은 없다 저 글자나 구절의 우아하고 속됨을 평하고, 편篇과 장章의 높고 낮음을 논하는 자는 모두 합하여 변하는 기미[合變之機]와 제압하여 이기는 저울질[制勝之權]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비유컨대 용감하지도 않은 장수가 마음에 정한 계책도 없이 갑작스레 제목에 임하고 보니, 아마득하기 굳센 성과 같은지라, 눈앞의 붓과 먹은 산 위의 풀과 나무에 먼저 기가 꺾여 버리고, 가슴 속에 외웠던 것들은 벌써 사막 가운데 원숭이와 학이 되고 마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글을 잘하는 자는 그 근심이 항상 혼자서 갈 길을 잃고 헤매거나, 요령을 얻지 못하는 데 있다. 彼評字句之雅俗, 論篇章之高下者, 皆不識合變之機, 而制勝之權者也. 譬如不勇之將, 心無定策, 猝然臨題, 屹如堅城, ..
5. 글이 좋지 않은 건 글자의 잘못이 아니다 대저 장평의 군사가 그 용감하고 비겁함이 지난날과 다름이 없고, 활·창·방패·짧은 창의 예리하고 둔중함이 전날과 변함이 없건만, 염파廉頗가 거느리면 제압하여 이기기에 족하였고, 조괄趙括이 대신하자 스스로를 파묻기에 충분하였다. 夫長平之卒, 其勇㥘非異於昔時也, 弓矛戈鋋, 其利鈍非變於前日也, 然而廉頗將之, 則足以制勝, 趙括代之, 則足以自坑. 이렇게 해서 글쓰기와 병법을 일대일로 대응하여 설명한 연암은, 이어지는 둘째 단락에서 다시 전고典故와 비유, 억양반복의 방법을 활용하여 글쓰기와 병법의 관련성을 보다 더 긴밀하게 다진다. 여기서 병법의 예로 든 것은 진나라와 조나라의 장평 싸움이다. 조나라의 백전노장 염파는 진나라 왕흘의 군대를 맞이하여 저들을 지치게 할 양..
4. 글쓰기와 병법 운용의 공통점Ⅲ 억양반복이라는 것은 끝까지 싸워 남김없이 죽이는 것이고, 제목을 깨뜨리고 나서[破題] 다시 묶어주는 것은 성벽을 먼저 기어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다. 抑揚反復者, 鏖戰撕殺也; 破題而結束者, 先登而擒敵也; 억양반복은 끝까지 싸워 남김없이 죽이는 것[鏖戰撕殺]이라고 했다. 억양이란 한 번 높이기 위해 일부러 한 번 낮추거나, 반대로 낮추기 위해 한 번 추켜 주는 것을 말한다. “얼굴은 못생겼는데 마음씨는 착하다”와 같은 따위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억양은 문장 단위에서 뿐 아니라 단락 단위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이러한 억양이 점층되어 마침내 주제가 완전히 피력될 때까지 반복되고 나서 글은 끝난다. 적군과의 전투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다 죽이거나 투항하기 전에는 끝난 것..
3. 글쓰기와 병법 운용의 공통점Ⅱ 운韻으로 소리를 내고, 사詞로 표현을 빛나게 하는 것은 군대의 나팔이나 북, 깃발과 같다. 韻以聲之, 詞以耀之, 猶金鼓旌旗也; 운韻으로 소리를 내고, 사詞로 표현을 빛나게 하는 것은 군대의 나팔이나 북, 깃발과 같다고 했다. 별도의 통신수단이 없던 과거 전쟁에서 명령의 전달은 나팔과 북, 그리고 깃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진군나팔은 전진을 명령하고, 북은 퇴각 명령을 전달한다. 나팔과 북소리로도 혹 부족할까하여 깃발을 가지고 또 명령을 전달한다. 깃발이 시각의 배려라면, 북소리 나팔소리는 청각의 배려이다. 멋있는 군악대의 취주吹奏는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킨다. 북과 나팔이 적군을 무찌를 수는 없지만, 이것 없이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같은..
2. 글쓰기와 병법 운용의 공통점Ⅰ 먼저 그 각각의 비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글을 잘 하는 자는 병법을 아는 것일까? 글자는 비유컨데 병사이고, 뜻은 비유하면 장수이다. 善爲文者, 其知兵乎? 字譬則士也; 意譬則將也; 글자는 비유하면 병사이고, 뜻은 비유컨대 장수라 했다. 한편의 글이 수없이 많은 글자들로 이루어져 있듯, 하나의 부대는 수많은 병사들로 구성된다. 병사가 아무리 씩씩하고 수가 많고 지닌 무기가 훌륭해도 지휘관이 우왕좌왕 허둥대고 보면 오합지졸이 되고 만다. 문장력이 제 아무리 좋고 알고 있는 지식이 많아도 주제의식이 분명치 않고 보니 지리멸멸하여 도저히 읽을 수가 없는 글이 되고 만다. 부대에 유능한 지휘관이 없어서는 안 되듯이, 한편의 글에는 뜻, 즉 주제가 없어서는 안 된다. 주제가 없는..
1. 모범답안을 모아 합격집을 만들다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은 처남 이재성李在誠(1751-1809)이 우리나라 고금의 과체科體를 모아 열 권으로 묶은 『소단적치』란 책에 써준 글이다. ‘소단적치’란 ‘문단의 붉은 깃발’이란 뜻이고 붉은 깃발은 대장군의 상징이다. 지금까지 과거에서 높은 등수로 합격한 모범 답안만을 엮어, 과거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실린 글을 익혀 과거 시험을 준비한다면 어떤 문제가 출제되더라도 답안 작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해마다 출제되는 문제는 같지가 않고, 채점하는 사람의 기준 또한 서로 다르니, 예전 모범 답안을 외우는 것이 과연 수험 준비에 어떤 도움이 될까? 사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논술고사를 준비하..
6. 연암의 개성 넘치는 표현이 담긴 편지들 이제 연암의 『영대정승묵』에 실린 편지글 세 편을 읽으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하겠다. 어린아이들 노래에 이르기를, “도끼를 휘둘러 허공을 치는 것은 바늘 가지고 눈동자 찌름만 같지 못하네”라 하였소. 또 속담에도 있지요. “삼공三公과 사귈 것 없이 네 몸을 삼갈 일이다”라는 말 말입니다. 그대는 잊지 마십시오. 차라리 약한 듯 굳셀지언정 용감한 체 하면서 뒤로 물러 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오. 하물며 외세의 믿을만한 것이 못됨이겠습니까? 孺子謠曰: “揮斧擊空, 不如持鍼擬瞳.” 且里諺有之: “无交三公, 淑愼爾躬.” 足下其志之. 寧爲弱固, 不可勇脆. 而況外勢之不可恃者乎? 「여중일與中一」, 즉 중일中一이란 이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이다. 아마 그가 다른 사람의 ..
5. 누구나 쓰는 말이 들어 있지 않은 편지 모음집 대저 공경한다고 하여 예를 갖춰 서서 엄숙하고 위엄 있는 자태로 근엄하게 서 있는 것은 어버이를 모시는 도리가 아니다. 만약 다시금 옷소매를 넓게 펴서 마치 큰 손님을 보듯 하며 간단히 춥고 더운 것만을 묻고 다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면 공경스럽기는 공경스러워도 예를 안다고는 못할 것이다. 즐거운 낯빛과 기쁜 목소리로 어버이를 봉양함에 곳을 가리지 않는다 함이 어찌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빙그레 웃으면서, 앞서 한 말은 농담일 뿐일세.”라고 한 것을 보면 공자께서도 농담을 잘 하신 것이며, “아내가 닭 울었다 하자, 남편은 날이 밝지 않았다 하네”는 시인의 척독尺牘일 뿐이다. 夫敬以禮立, 而嚴威儼慤, 非所以事親也. 若復廣張衣袖, 如見大賓, 略敍寒..
4. 편지에 으레 쓰던 문장을 쓰지 말라 이어서 다시 한편의 글을 더 읽기로 한다. 「영대정승묵자서映帶亭賸墨自序」이다. 당시 척독尺牘, 즉 편지글의 병통에 대해 쓴 글인데, 문집에 이미 앞의 60자가 결락되어 있어 문맥을 소연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다음과 같이 삼가 아뢴다’는 이른바 ‘우근진右謹陳’이란 말은 진실로 속되고 더럽다. 유독 모르겠거니와 세상에 글 짓는 자를 어찌 손꼽아 헤일 수 있으리오만, 판에 찍은 듯이 모두 이 말을 먹지도 못할 음식을 주욱 늘어놓듯이 쓰니, 공용 격식의 글머리나 말 머리에 으레 쓰는 투식의 말 되기에야 어찌 해가 되겠는가? 「요전堯典」의 ‘옛날을 상고하건데’란 뜻의 ‘왈약계고曰若稽古’나, 불경佛經의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란 뜻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은 바로 지금의 ‘우..
3. 알맹이는 갖추되 수사도 신경 쓴 작품집 이 책을 보는 자는 소천암小川菴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노래가 어느 지방의 것인지를 물어볼 필요도 없이 바로 알 수 있을 걸세. 이에 있어 잇대어 읽어 가락을 이루게 되면 성정性情을 논할 수도 있을 것이고, 화보畵譜를 붙여 그림을 그린다면 수염과 눈썹까지도 징험해낼 수 있을 것이네. 재래도인䏁睞道人이 일찍이 논하기를, ‘석양 무렵 한 조각 돛단배가 잠깐 갈대숲 사이에 숨어 있으니, 뱃사공과 어부가 비록 모두 텁석부리에 쑥대머리라 해도 물가를 따라가며 바라보노라면, 심지어 고사高士 육노망陸魯望인가 의심하게 된다’고 한 적이 있네. 아아! 도인道人이 나보다 먼저 얻었도다. 그대는 도인을 스승으로 모셔야겠네. 찾아가서 징험해보게나!“ 覽斯卷者, 不必問小川菴之爲何人..
2. 일상을 담아낸 이 글의 가치 내가 다 읽고 나서 돌려주며 말하였다. “장주莊周가 나비로 된 것은 믿지 않을 수가 없지만, 이광李廣이 바위를 쏜 것은 마침내 의심할 만하거든. 왜 그렇겠는가? 꿈이란 것은 보기가 어렵지만, 실제 일은 징험하기가 쉽기 때문일세. 이제 자네가 낮고 가까운데서 말을 살피고, 구석지고 더러운 데서 일을 주워 모았으나, 어리석은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천박스레 웃고 일상으로 차 마시는 일은 실제 일이 아님이 없고 보니, 시도록 보고 질리도록 들은 것이어서 거리의 용렬한 자들도 본시 그러려니 하는 것들일세. 비록 그러나 해묵은 장도 그릇을 바꾸면 입맛이 새롭고, 일상적인 정리情理도 경계가 달라지매 마음과 눈이 모두 옮겨가는 법일세. 余旣卒業而復之曰: "莊周之化蝶, 不得不信, 李廣之射..
1. 밤과 쌀 같은 문집을 내밀며 소천암小川菴이 우리나라의 민요와 민속, 방언과 속기俗技를 두루 기록하였는데, 심지어 종이연에도 계보가 있고, 아이들 수수께끼에도 풀이를 달아 놓았다. 후미진 뒷골목의 흐드러진 인정과 익숙한 모습들, 문에 기대서거나 칼을 두드리거나, 어깨짓으로 아양 떨고 손바닥을 치며 맹세하는 시정市井 사람들의 모습이 실려 있지 않은 것이 없는데다 제각금 조목조목 엮어 놓았다. 입과 혀로는 분변하기 어려운 것도 반드시 드러내었고, 생각이 미치지 못하던 바도 책을 열면 문득 실려 있다. 무릇 닭 울고 개 짖으며 벌레가 날고 좀이 꿈틀대는 것도 모두 그 모습과 소리를 얻었다. 이에 있어 십간十干으로 배열하고는 이름 지어 『순패旬稗』라 하였다. 小川菴雜記域內風謠民彛方言俗技, 至於紙鷂有譜, 丱謎..
8. 연암은 고문가일까? 박씨의 아들 제운齊雲은 나이가 스물 셋인데 문장에 능하여 호를 초정楚亭이라 하며 나를 좇아 배운 것이 여러 해가 되었다. 그 글을 지음은 선진양한先秦兩漢의 글을 사모하였으나 그 자취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부한 말을 제거하기에 힘쓰다 보니 간혹 근거 없는데서 잃고, 논의를 세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간혹 법도에 어긋남에 가까웠다. 이는 명나라의 여러 작가들이 법고와 창신에 있어 서로서로를 헐뜯으면서도 함께 바름을 얻지 못하고 나란히 말세의 자질구레함으로 떨어져서, 도를 지키는데 보탬이 없이 한갖 풍속을 병들게 하고 교화를 손상시키는 데로 돌아간 것이니, 나는 이것을 염려한다. 새것을 만들어 교묘하기 보다는 차라리 옛것을 본받아 보잘 것 없는 것이 더 나으리라. 朴氏子齊雲,..
7. 해답은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하늘과 땅이 비록 오래 되었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비록 오래 되었어도 그 광휘는 날마다 새롭다. 책에 실려 있는 것이 비록 방대하지만 가리키는 뜻은 제각금 다르다. 때문에 날고 잠기고 달리고 뛰는 온갖 생물 중에는 간혹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고, 산천초목에는 반드시 비밀스런 靈이 있게 마련이다. 썩은 흙에서 지초芝草가 나오고, 썩은 풀이 반딧불로 화한다. 예禮에는 송사訟事가 있고 악樂에는 의논이 있으며,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 어진 이가 이를 보면 인仁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가 이를 보면 지智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백세 뒤의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혹하지 않는다는 것은 앞선 성인..
6. ‘法古而知變’과 ‘刱新而能典’의 또 다른 예 그런 까닭에 배우지 않음을 잘 배우는 것으로 여긴 것은 노남자魯男子의 홀로 지냄이고, 부뚜막 숫자를 늘이는 것을 부뚜막 숫자를 줄이는 것에서 본떠온 것은 우승경虞升卿의 변화를 앎이다. 故不學以爲善學, 魯男子之獨居也; 增竈述於减竈, 虞升卿之知變也. 이렇게 ‘법고이지변’과 ‘창신이능전’의 예를 하나씩 든 연암은 다시 노남자와 우승경의 이야기로 논지를 더 다진다. 옆집 노총각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이웃의 과부가 밤중 비에 제 집 담이 무너지자, 노총각의 집 문을 두드리며 하루 밤 재워줄 것을 청했다. 그러자 이 고지식한 청년은 예禮에 남녀는 60 이전에는 한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했으니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과부는 현인 유하혜는 예전에 곤경에..
5.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한 예 물을 등지고 진을 치라는 것은 병법에 보이지 않으므로 여러 장수들이 따르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자 회음후 한신은 말하기를, “이것이 병법에 있는데 생각건대 그대들이 살피지 않은 것일 뿐이다. 병법에 ‘죽을 땅에 놓인 뒤에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까닭에 배우지 않음을 잘 배우는 것으로 여긴 것은 노남자魯男子의 홀로 지냄이고, 부뚜막 숫자를 늘이는 것을 부뚜막 숫자를 줄이는 것에서 본떠온 것은 우승경虞升卿의 변화를 앎이다. 背水置陣, 不見於法, 諸將之不服, 固也. 乃淮陰侯則曰: “此在兵法, 顧諸君不察. 兵法不曰: ‘置之死地而後生’乎?” 故不學以爲善學, 魯男子之獨居也; 增竈述於減竈, 虞升卿之知變也. 한신이 오합지졸들을 이끌고서 강한 조나라를 치러 갔을 때,..
4. 옛 것을 본받되 변할 줄 아는 예 옛 사람에 책읽기를 잘 한 사람이 있는데 공명선公明宣이 바로 그 사람이다. 옛 사람에 글을 잘 지은 이가 있으니 회음후 한신韓信이 그 사람이다. 왜 그럴까? 古之人, 有善讀書者, 公明宣是已. 古之人, 有善爲文者, 淮陰侯是已. 何者? 공명선이 증자에게서 세 해를 배웠는데 책을 읽지 않자 증자가 이를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선생님께서 가정에서 생활하시는 것을 뵈었고, 선생님께서 손님 접대하시는 것을 보았으며, 선생님께서 조정에 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웠지만 아직 능히 하지 못합니다. 제가 어찌 감히 배우지도 않으면서 선생님의 문하에 있겠습니까?” 公明宣學於曾子三年, 不讀書, 曾子問之, 對曰: “宣見夫子之居庭, 見夫子應賓客, 見夫子之居朝廷也, 學而未能, ..
3.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하라 아아! 옛것을 본받는다는 자는 자취에 얽매이는 것이 병통이 되고, 새것을 창조한다는 자는 법도에 맞지 않음이 근심이 된다.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을 수만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글과 같게 될 것이다. 噫! 法古者病泥跡, 創新者患不經, 苟能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 今之文猶古之文也. 새것을 추구해서도 안 되고, 옛것을 따라가서도 안 된다면 어찌해야 할까? 이도 저도 안 된다면 아예 그만 두는 것이 어떨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다소 심각해진 이 질문 앞에 연암은 비로소 처방을 슬며시 내놓는다. 그것은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이란 열 글자이다. 옛것을 본받으라고 하면 겉껍..
2. 새 것을 만든다는 건 기이한 걸 만드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창신은 괜찮은가? 세상에는 마침내 괴상하고 허탄하며 음란하고 치우치면서도 두려움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게 되었다. 이는 석자의 나무가 관석關石보다 낫고, 이연년李延年의 목소리를 청묘淸廟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니 창신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대저 그렇다면 어찌 해야만 괜찮을까? 내 장차 어찌 할까? 그만 둘 수는 없는 걸까? 然則, 創新可乎? 世遂有怪誕淫僻 , 而不知懼者, 是三丈之木, 賢於關石; 而延年之聲, 可登淸廟矣. 創新寧可爲也. 夫然則如之何, 其可也? 吾將奈何! 無其已乎! 그래서 연암은 첫 단락의 결론을 ‘법고는 해서는 안 된다’로 못 박는다. 옛 것을 본받지 말아라.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옛것을 따르면 안 된다고 했으니, 새것을 ..
1. 본받는다는 건 흉내내기가 아니다 일전 석사논문을 지도했던 제자에게서 E-mail을 받았다. 고문론을 주제로 쓴 제 논문을 누군가에게 주었다가, 연암을 고문가라고 한 논문 중의 언급 때문에 논란이 일었는데, 연암이 왜 고문가이냐? 그는 패관소품체를 썼다 해서 문체반정의 와중에서 정조에 의해 순정고문으로 된 반성문을 지어 제출하라는 견책을 입었다. 그렇다면 그는 반고문가임이 분명한데 무슨 근거로 고문가라고 했는가? 이것은 한양대학교에서만 통용되는 주장이 아닌가? 뭐 이런 말이 오갔던 모양이다. 요컨대 그런 상대의 계속된 힐난에 속수무책으로 신통한 대답을 못하고 물러선 녀석이 멀리 대만까지 글을 보내 내게 구조요청을 해온 것이었다. 연암은 고문가인가, 아닌가? 김택영이 『여한십가문초』에서 연암을 당당히 ..
6. 설렘 가득한 마음과 말없이 시를 빚어내는 마음 이제 시 두 수를 읽으며 이 글을 마무리 한다. 먼저 박제가朴齊家의 「위인부령화爲人賦嶺花」란 작품이다. 毋將一紅字 泛稱滿眼花 ‘붉다’는 한 글자만을 가지고 눈앞의 온갖 꽃을 말하지 말라. 花鬚有多少 細心一看過 꽃술에는 많고 적고 차이 있거니 꼼꼼히 하나하나 살펴봐야지. 산마루 위에 핀 들꽃을 보고 지은 시이다. 눈앞의 꽃을 보고 그저 ‘붉은 꽃’이라고만 말하지 말라. 시인이 사물을 보는 시선은 이래서는 안 된다. 꽃술의 모양은 어떤지, 붉다면 어떤 붉은 색인지, 그것이 주는 느낌은 어떤지를 말해야 한다. 그래야 그 꽃은 내가 만난 단 하나의 의미가 된다. 가슴으로 만나지 못하는 꽃은 꽃이 아니다. ‘이름 모를 꽃’은 꽃이 아니다. 떨림이 없는 만남은 만..
5. 잃어버린 시는 어디에 있나? 문장의 성대함을 알고 싶은가? 역관의 천한 인사에게 가서 찾아볼 일이다. 사대부들에게서는 찾아볼 길이 없으니, 나는 그것을 부끄러워한다. 연암은 글을 이렇게 끝막는다. 이 서문을 받아든 이홍재의 표정은 어땠을까? 칭찬같기도 하고 비아냥 같기도 하구나. 그런데 연암이 넌즈시 던지는 이 말이 정작 내게는, 시인은 많은데 시다운 시는 찾아보기 힘든 오늘의 시단詩壇을 향한 일침一針으로 읽힌다. 연암의 말투를 좀 더 흉내내 보면, 어려서는 능히 사물을 바라볼 줄도 알고, 우주만물이라는 텍스트를 읽을 줄 알다가도 자라면 대학입시와 취직시험에 필요한 공부에만 힘을 쏟는다. 그래서 대학에 합격하거나 직장에 취직하고 나면 그간 배운 지식들이란 마냥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
4. 고문은 역관에게, 전통복식은 기생에게 남다 내가 이에 낯빛을 고치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사대부가 태어나 어려서는 능히 책을 읽어도, 자라면 공령功令의 글을 배워 변려의 꾸미는 글을 익힌다. 그래서 과거에 급제하고 나면 더벅머리를 가리는 임시변통의 고깔모자나 고기 잡는 통발, 토끼 잡는 올무 마냥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리고, 그나마 급제하지 못하면 흰 머리가 될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고 애를 쓴다. 그러니 어찌 다시 이른바 고문사란 것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역관이란 직업은 사대부가 비루하고 천하게 여기는 것이다. 나는 천재千載의 사이에 도리어 저서著書하고 입언立言하는 실지를 서리 구실하는 말단의 기술로 보아버리게 될까 염려한다. 그렇게 되면 연극하는 마당의 검은 모자나 고을 기생의 긴 치마가 ..
3. 역관임에도 고전문장으로 문집을 만든 이홍재 이홍재李弘載 군이 젋어서부터 내게서 배웠다. 장성해서는 한어漢語 통역에 힘을 쏟았으니 그 집안이 대대로 역관譯官이었던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문학을 권면하지 않았다. 이군이 그 학업에 힘을 쏟더니 관대冠帶를 하고는 사역원司譯院에 벼슬나갔다. 나 또한 이군이 앞서 책을 읽음이 자못 총명하여 문장의 도리를 능히 알았으나 이제는 거의 잊었으리라 생각하여, 그저 그렇게 없어지고 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었다. 하루는 이군이 스스로 지은 것이라고 하면서 제목하여 ‘자소집自笑集’이라 하고는 내게 보여주었다. 논論ㆍ변辨ㆍ서序ㆍ기記ㆍ서書ㆍ설說 같은 백여편은 모두 내용이 풍부하고 논리가 정연하여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처음에는 의아히 여겨 말하였다. “본업을..
2. 촌스럽고 경박하다며 살아남은 전통을 멸시하다 해마다 가는 사신이 중국에 들어가 남쪽 吳 땅의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吳 땅 사람이 말하였다. “내 고향에 머리 깎는 가게가 있는데, 간판을 ‘성세락사盛世樂事’라고 했습디다.” 인하여 서로 보고 크게 웃다가는 조금 있더니 남몰래 눈물을 흘리려 하더라고 했다. 歲价之入燕也, 與吳人語吳人曰: “吾鄕有剃頭店, 榜之曰盛世樂事.” 因相視大噱, 己而潛然欲涕云.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 사신 가서 남쪽 오吳 땅 사람과 만나 이야기 하다 보니, 제 고향에 새로 생긴 이발소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간판이 이름하여 ‘성세락사盛世樂事’라는 것이다. 예전 법도로야 부모께 받자온 신체발부身體髮膚에 손대는 일이 가당키나 했으랴. 구한말 개화기 때조차도 ‘차두此頭는 가..
1. 사라진 예법은 시골깡촌에 살아있다 초등학교 4학년 난 딸아이는 날마다 일기를 쓰는데, 담임 선생님이 날씨를 그저 ‘맑음’ ‘흐림’으로만 적지 말고 설명적인 기술로 적어오라고 한 모양이다. 몇 달이 넘게 일기를 써오고 있지만, 그 날씨의 묘사가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노랗고 어여쁜 개나리같이 생긴 해가 허연 수염 난 구름과 둥실 둥실 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사뿐사뿐 뛰어 다니고, 하늘이 울적해 보인다.” “어두운 하늘에서 시커먼 구름들이 각자 심술을 내면서 귀엽고 아주 조그만 빗방울들을 하나하나씩 새나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듯이 떨어뜨린다.” “탱탱볼처럼 동그랗고, 오렌지처럼 상큼한 햇님이 방글방글 벙글벙글 신나게 수영하듯 저리 빙글 요리 빙글 거리며 파아란 하늘에 동동 떠 있다.” “어..
6. 자기만 잘난 줄 아는 시인의 고약한 입냄새 시대마다에는 참으로 다른 그 시대의 정신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쩌면 생각하는 방식이나 표현 방법, 좋은 문학에 대한 기준이 그렇게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가? 비슷한 것은 가짜다. 눈앞의 일 속에 참된 정취가 있다. 집 짓는 데는 미장이도 필요하고 기와장이도 필요하다. 이 단순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한국 한시사는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같은 시대 이용휴李用休는 “시를 지으면 당시唐詩가 아님이 없는 것이 근래의 폐단이다. 당시의 체를 흉내 내고 당시의 말을 배워서 거의 한 가지 소리에 가깝다. 이것은 앵무새가 하루 종일 앵앵거려도 자기의 소리는 없는 것과 같으니 나는 이것을 몹시 혐오한다”고 했다. 飢食而渴飮 歡笑而憂顰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
5. 큰 학자가 되려면 품이 넉넉해야 而我病陰虛 四年疼跗踝 그러나 내 음허陰虛한 병을 앓아서 발등과 복사뼈가 아픈지 네 해. 逢君寂寞濱 靜若秋閨姹 적막히 지내다 그댈 만나니 얌전하기 마치도 아가씨 같네. 解頤匡鼎來 幾夜剪燈灺 시 얘기 잘하는 광정匡鼎이 와서 몇 밤을 등불 심지 잘라냈던고. 論文若執契 雙眸炯把斝 문장을 논함은 내 생각 같아 술잔 잡은 두 눈동자 반짝였었지. 一朝利膈壅 滿口嚼薑葰 꽉 막힌 가슴이 하루 아침 뚫리니 한 입 가득 생강을 씹고 있는듯. 平生數掬淚 裹向秋天灑 평생의 몇 웅큼 눈물 방울을 가을 하늘 향해서 흩뿌리노라. 69구에서 끝까지는 서유본과 만나 이야기한 기쁨과 그에게 주는 당부로 시를 맺었다. 적막히 혼자 병 앓고 있던 나를 그대가 찾아주니 참으로 기쁘고 반가웠네. 얌전한 아가..
4. 지금ㆍ여기를 말하라 卽事有眞趣 何必遠古抯 눈앞의 일 속에 참된 정취 있거늘 어쩌자고 머나먼 옛날에서 찾는가. 漢唐非今世 風謠異諸夏 한나라 당나라는 지금 세상 아니요 부르는 노래도 중국과는 다르다네. 班馬若再起 決不學班馬 사마천과 반고가 다시 살아 난대도 사마천과 반고를 배우진 않으리라. 新字雖難刱 我臆宜盡寫 새 글자 만들긴 어렵다 해도 내 품은 생각은 써내야 하리. 奈何拘古法 劫劫類係把 어이해 옛법에 얽매이어서 두고두고 여기에만 매달린단 말인가. 莫謂今時近 應高千載下 지금이 천근淺近타 말하지 말라 천년 뒤엔 응당히 높을 터이니. 이어 53구에서 64구까지 연암의 도도한 논설이 이어진다. ‘진취眞趣’, 즉 참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멀고 아득한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와 당나라는 지금 세..
3. 전적이 있다면 뭐든 좋단 말인가 靑靑陵陂麥 口珠暗批撦 푸릇푸릇 언덕엔 보리 돋아도 입속 구슬 남몰래 쳐서 꺼낸다. 不思腸肚俗 强覓筆硯雅 뱃속이 속된 것은 생각지 않고 붓 벼루 좋은 것만 굳이 찾는다. 點竄六經字 譬如鼠依社 육경의 글자를 훔쳐 모으니 사당에 숨어 사는 쥐새끼 같네. 掇拾訓詁語 陋儒口盡啞 훈고의 말들을 주어 섬기매 촌스런 유자들 입다물 밖에. 太常列飣餖 臭餒雜鮑鮓 제관이 제사 음식 진열하면서 절인 고기 젓갈 섞어 고약한 냄새. 夏畦忘疎略 倉卒飾緌銙 여름철 농사꾼이 제 꼴을 잊고 얼떨결에 끈 달고 혁대 박아 꾸민듯. 41구에서 52구까지는 옛것을 추구한다는 자들의 행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장자』 「외물」에 보면 시례詩禮를 외우면서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두 명의 유자가 나온다..
2. 칭찬을 듣고도 기쁘지 않은 이유 我亦聞此譽 初聞面欲剮 나 또한 이런 기림 들은 적 있어 맨 처음 들었을젠 낯을 도려내는듯. 再聞還絶倒 數日酸腰髁 두 번 째 듣고는 외려 배를 잡고서 며칠동안 엉덩이 뼈 시큰했었지. 盛傳益無味 還似蠟札飷 떠들어 댈수록 점점더 흥미 없어 마치도 밀랍을 씹는 듯 했네. 因冒誠不可 久若病風傻 헛된 기림 받는 건 안될 일이라 나중엔 풍 맞은 바보 되었지. 21구에서 28구까지 연암은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나도 예전에 이런 칭찬을 들은 일이 있었다. “자네의 문장은 꼭 양한의 풍격이 있네 그려. 시는 꼭 성당의 시와 같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두 번 듣고는 배를 잡고 뒹굴며 웃다가 엉덩이 뼈가 쑤실 지경이었다. 자꾸 그런 소리를 ..
1. 흉내내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과정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선군의 시고詩稿는 몹시 적어서, 고체와 금체시 모두 50수 뿐이다. 고체시는 오로지 한유韓愈를 배웠는데 기이하고 험벽하기는 그보다 더 해서, 정경情境은 핍근하고 필력이 막힘이 없다. 율시와 절구 등의 시는 항상 성률에 구속되어 마음 속에 말하려는 것을 그대로 쏟아낼 수 없음을 못마땅히 여기셨다. 그래서 왕왕 한 두 구절만 이룬 채 그만 둔 것이 많다. -김윤조 역, 『역주 과정록』(태학사, 1997), p.279 연암이 시 짓기를 즐기지 않았던 것은 그러니까 운자니 평측이니 하는 성률에 얽매여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는 것이 싫어서였다. 이번에 보려고 하는 연암의 시 「증좌소산인贈左蘇山人」은 몇 ..
5. 동심의 중요성을 외친 이지 그런데 문학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천진과 진정의 모델을 동심童心에서 찾고 있는 것은 연암이나 이덕무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던 명나라 이지李贄(1527-1602)의 「동심설童心說」과 무관하지 않다. 이지李贄는 이탁오李卓吾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중국의 이단적인 사상가로, 혹세무민惑世誣民 했다는 비난 끝에 탄압을 받아 옥중에서 자살한 인물이다. 그는 「동심설」을 바탕으로 위선적인 도학道學과 가식적인 문학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퍼부었다. 「동심설」은 당대에 워낙 큰 파장을 일으켰던 글이기에 조금 길지만 자료 소개 삼아 여기에 전문을 옮겨 소개한다. 용동산농龍洞山農이 『서상西廂』을 쓰며 끝에다 말하기를, “아는 이가 내가 여태도 동심童心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4. 동심으로 돌아가자, 처녀로 돌아가자 아아! 『시경』 3백편은 새나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 아닌 것이 없고, 뒷골목 남녀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진대 패邶 땅과 회檜 땅의 사이는 지역마다 풍속이 같지 않고, 강수江水와 한수漢水의 위로는 백성의 풍속이 제각금이다. 그런 까닭에 시를 채집하는 자가 여러 나라의 노래로 그 성정을 살펴보고 그 노래의 습속을 징험하였던 것이다. 다시 어찌 무관의 시가 옛 것이 아니라고 의심하겠는가? 만약 성인으로 하여금 중국에서 일어나 여러 나라의 노래를 살피게 한다면, 『영처고』를 살펴보아 삼한의 새나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될 것이요, 강원도 사내와 제주도 아낙의 성정을 살펴볼 수 있을 터이니, 비록 이를 조선의 노래라고 말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嗚呼..
3. 지금ㆍ여기의 이야기를 담아낸 무관이 지은 시 우리나라가 비록 궁벽하지만 또한 천승千乘 제후의 나라이고, 신라와 고려가 비록 보잘 것 없었지만 민간에는 아름다운 풍속이 많았다. 그럴진대 그 방언을 글로 적고 그 민요를 노래한다면 절로 문장을 이루어 참된 마음이 발현될 것이다. 남의 것을 그대로 답습함을 일삼지 않고 서로 빌려와 꾸지 않고, 지금 현재에 편안해 하며 삼라만상에 나아감은 오직 무관의 시가 그러함이 된다. 左海雖僻, 國亦千乘, 羅麗雖儉, 民多美俗, 則字其方言, 韻其民謠, 自然成章, 眞機發現. 不事沿襲, 無相假貸, 從容現在, 卽事森羅. 惟此詩爲然. 이상 살펴본 연암의 이야기는 이렇다. 배울 것을 배워라. 옛 것이라고 무작정 좋은 것은 아니다. 적절하지 않은 옛 것은 도리어 지금 것에 치명적인..
2. 동심으로 돌아가자 우사단雩祀壇 아래 도저동桃渚衕에 푸른 기와를 얹은 사당에는 얼굴이 윤나고 붉고 수염이 달린 의젓한 관운장關雲長의 소상塑像이 있다. 사녀士女가 학질을 앓게 되면 그 좌상座床 아래에 들여놓는데, 정신이 나가고 넋이 빼앗겨 한기를 몰아내는 빌미가 되곤 한다. 그렇지만 꼬맹이들은 무서워하지 않고 위엄스러운 소상을 모독하는데, 눈동자를 후벼 파도 꿈벅거리지 않고, 콧구멍을 쑤셔대도 재채기 하지 않으니, 한 덩어리의 진흙으로 빚은 소상일 뿐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수박의 겉을 핥는 자나 후추를 통째로 삼키는 자와는 더불어 맛을 이야기할 수가 없고, 이웃 사람의 담비 갖옷을 부러워하여 한 여름에 빌려 입는 자와는 함께 계절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형상을 꾸미고 의관을 입혀 놓더라도 ..
1. 무관의 시는 옛날의 시가 아닌 지금의 시 자패가 말하였다. “비루하구나! 무관懋官의 시를 지음은. 옛 사람을 배웠다면서 그 비슷한 구석은 보이지를 않는구나. 터럭만큼도 비슷하지 않으니, 어찌 소리인들 방불하겠는가? 촌사람의 데데함에 편안해하고, 시속時俗의 잗단 것을 즐거워하니 지금의 시이지 옛날의 시는 아니다.” 子佩曰: 陋哉! 懋官之爲詩也. 學古人而不見其似也. 曾毫髮之不類, 詎髣髴乎音聲. 安野人之鄙鄙, 樂時俗之瑣瑣, 乃今之詩也, 非古之詩也. 『영처고』는 이덕무가 젊은 시절 지은 시문을 모은 것이다. ‘영처嬰處’는 영아嬰兒와 처녀處女를 가리키는 말이니,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스러운 생각을 담은 글이지만, 처녀처럼 순진한 수줍음을 지녀 남에게 보여주기는 부끄럽다는 뜻으로 붙인 제목이다. 자패子佩는 앞서..
76. 연암의 시가 적은 이유 先君詩稿甚寡, 古今體共五十首. 古體則專學昌黎, 而奇嶮過之, 情境逼造, 而筆力不窮. 至於律絕諸體, 常病其拘束於聲律之間, 不可直寫胸中所欲言, 故往往一二句而止者, 有之. 李懋官『淸脾錄』稱: “燕岩文章玅天下. 而於詩獨矜愼, 不肯輕出, 如包龍圖之笑, 比河淸, 不得多見”云. 朴在先詩云: “從古文章恨橘鰣, 幾人看見燕岩詩? 優曇一現龍圖笑, 正是先生落筆時.” 해석 先君詩稿甚寡, 古今體共五十首. 선군의 시집은 매우 적어 고체시와 근체시 모두 합해 50수였다. 古體則專學昌黎, 而奇嶮過之, 고체시는 오로지 한유를 배웠지만 기이하고 험한 것이 그를 넘어섰고 情境逼造, 而筆力不窮. 실정과 경치를 묘사함은 핍진하여 필력이 무궁무진했다. 至於律絕諸體, 常病其拘束於聲律之間, 율시와 절구의 모든 시체에 이..
1. 박지원의 문장관 先君之論文章也. 常以爲文無古無今, 不必模楷韓ㆍ歐, 步趣馬ㆍ班, 矜壯自大, 低視今人也. 惟自爲吾文而已. 擧耳目之所睹聞, 而無不能曲盡其形聲, 畢究其情狀, 則文之道極也. 又病吾東之士汨沒於功令之餘習, 綴拾陳談, 依樣畵葫, 而自附純質, 日就鹵莽也. 故曰: “法古者病泥跡, 刱新者患不經. 苟能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 今之文, 猶古之文也.” 又曰: “苟得其理, 則家人常談, 猶列學官, 童謳里諺, 亦屬『爾雅』. 故文之不工, 非字之罪也. 彼評字句之雅俗, 論篇章之高下者, 譬如不勇之將, 心無定策, 猝然臨題, 屹如堅城. 其患常在於自迷蹊徑未得要領.” 又曰: “天地雖久, 不斷生生, 日月雖久, 光輝日新, 載籍雖博, 旨意各殊. 故飛潛走躍, 或未著名; 山川草木, 必有秘靈; 朽壤蒸芝, 腐草化螢. 禮有訟, 樂有議. 書不..
3. 어디에도 쓸 데 없는 글 嘗言: “不痛不癢, 句節汗漫, 優游不斷, 將焉用哉?” 해석 嘗言: “不痛不癢, 句節汗漫, 아프게 하지도 않고 가렵게 하지도 않고 구절마다 優游不斷, 將焉用哉?” 허황되며 우유부단하다면, 그런 글을 어디에 쓸 수 있겠는가? 인용 목차 연암의 글에 반하다 문체반정과 열하일기 순간순간의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에 대해
6. 지금을 담아내자 말하던 유한준의 아들 다시 연암이 그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글을 한 통 더 읽어보자. 어제 아드님이 와서는 글 짓는 것에 대해 물어 보길래, “예禮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라”고 일러 주었지요. 그랬더니 자못 기뻐하지 않고 돌아가더군요. 모르겠습니다만 아침저녁 문안을 여쭐 적에 이 말을 하던가요? 昨日令胤來, 問爲文. 告之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動, 非禮勿言.’ 頗不悅而去. 不審, 定省之際, 言告否. 「답창애지사答蒼厓之四」이다. 아마도 유한준의 아들이 아버지 편지 심부름으로 연암을 찾아왔다가 문장의 방법을 물었던 모양이다. “선생님! 글은 어떻게 써야 합니까?” 아버지와의 불편함을 눈치 챈 아들의..
4. 하늘이 저렇게 파란 데도 다시 여기서 본편의 주제(心似와 形似)와 관련된 연암의 짧은 글 세 편을 함께 읽기로 하자. 마을의 꼬맹이가 천자문을 배우는데, 그 읽기 싫어함을 꾸짖자,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라고 합디다.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이를 기죽일만 합니다. 里中孺子, 爲授千字文, 呵其厭讀, 曰: ‘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此我聰明, 餒煞蒼頡. 전문이래야 34자에 불과한 엽서로, 「답창애答蒼厓」 즉 창애蒼厓에게 답한 세 번째 편지이다. 마을 서당에서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꼬마 녀석 하나가 자꾸만 딴청을 한다. 화가 난 훈장이 이놈! 하고 야단을 치자 그 대답이 맹랑하다. “선생님! 저 하늘을 보면 저렇게 파랗기만 한데, 하늘 ..
3. 제 목소리를 담아 문집을 지은 낙서야 이씨의 아들 낙서洛瑞가 나이 열 여섯인데, 나를 좇아 배운 지 여러 해이다. 심령이 맑게 열려 지혜가 구슬 같다. 한 번은 자신의 『녹천고綠天稿』를 가지고 와 내게 물었다. “아! 제가 글 지은 것이 겨우 몇 해이지만 남의 노여움을 산 적이 많습니다. 한마디 말만 새롭고 한 글자만 이상해도 문득 ‘옛날에도 이런 것이 있었느냐?’ 하고 묻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낯빛을 발끈하며 ‘어찌 감히 이 따위를 하는 게야?’ 합니다. 아아! 옛날에도 있었다면 제가 무엇 하러 다시 합니까? 원컨대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두 손을 이마에 얹고 무릎 꿇고 세 번 절하며 말하였다. “네 말이 참으로 옳다. 끊어진 학문을 일으킬 수 있겠구나. 창힐蒼頡이 처음 글자를 만들 때..
2. 옛 것을 배우는 두 가지 방법 어떻게 하면 새로우면서 예로울 수가 있을까? 어찌하면 본받지 않으면서 본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새것이 옛것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당나라 유지기劉知幾는 『사통史通』 「모의模擬」에서 옛 것을 배우는 방법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모동심이貌同心異의 방법과 심동모이心同貌異의 방법이 그것이다. 대저 작자들이 위魏나라 이전에는 삼사三史를 많이들 본받았고, 진晉나라 이래로는 오경五經 배우기를 즐겼다. 대저 사서史書의 글은 얕고 모방하기가 쉽지만, 경전經典의 글은 뜻이 깊고 모의하기가 어렵다. 이미 어렵고 쉬운 차이가 있고 보니 얻고 잃음 또한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대개 겉모습은 달라도 마음이 같은 것은 모의의 윗길 가는 것이고, 겉모습은 같지만 마음이 다른 것은 모의의..
1. 진짜 같아지려 하면 할수록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는 진짜와 가짜, 같고 다름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암은 글의 처음을 ‘방고倣古’, 즉 옛날을 모방하는 문제로 시작한다. 글을 짓는데 사람들은 자기의 말과 뜻으로 하지 않고 옛것을 모방하여 짓는다. 옛것을 모방함은 옛 사람과 거의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꼭 같게 하면 되는가? 그 결과 읽는 이가 이것이 옛글인지 지금 글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우리의 글쓰기는 성공한 것일까? 옛것을 본떠 글을 지음을 마치 거울이 형상을 비추듯 하면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 좌우가 서로 반대로 되니 어찌 비슷함을 얻으리요. 그렇다면 물이 형체를 그려내듯 한다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말이 거꾸로 보이니 어찌 비슷하다 하리오.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 할진대..
6. 시란 썩은 풀이 반딧불이로, 고목이 버섯으로 변한 것 다시 대나무 한 그루 없는 집에 살며 죽원옹이라 호를 지은 사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것은 이른바 저 문동文同이 말한 ‘흉중성죽胸中成竹’의 화론을 점화點化한 것이다. 의재필선意在筆先이랬거니, 대나무를 그리려면 반드시 가슴 속에 대나무를 간직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판교板橋 정섭鄭燮은 자신이 그린 대나무 그림의 제발題跋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맑은 가을 강가 여관에서 새벽에 일어나 대나무를 보니, 안개 빛과 해 그림자와 이슬 기운이 모두 성근 가지와 빽빽한 잎새 사이에서 떠돌고 있다. 가슴 속에서 뭉게뭉게 그림을 그리고픈 생각이 솟아났다. 기실 가슴 속의 대나무는 눈 앞의 대나무는 아니었다. 인하여 먹을 갈고 종이를 펼쳐 붓..
5. 모양이 아닌 정신을 그리다 한편으로 「불이당기」는 이렇게 읽고 말 글은 아니다. 앞서도 보았듯 심사와 형사에 얽힌 화론畵論의 핵심처를 정면에서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재필선意在筆先’ 즉 그림을 그릴 때는 화가의 정신이 붓에 앞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논의는 위부인衛夫人의 「필진도筆陣圖」에서 처음 언급한 이래로 역대 화론에서 늘상 거론되어 온 말이다. 그림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사생寫生이 아니라 사심寫心일 뿐이다. 그래서 송나라 진욱陳郁은 『장일화유藏一話腴』에서 “대개 형상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가 않고, 오직 마음을 그려내기가 어려울 뿐이다. 대저 굴원의 모습을 그려 꼭 같게 되었다 하더라도, 만약 그 못가를 거닐며 읊조리고 충성을 품어 불평한 뜻을 능히 그려내지 못한다면 또한 굴원은 아닌 것이다”..
4. 정신의 뼈대를 세우고 보면 눈 속 잣나무가 보인다 얼마 후 학사 이양천 공은 세상을 뜨고 말았네. 내가 그 시문을 편집하다가 적소謫所에 있을 때 형에게 보낸 편지를 얻었는데, 쓰여 있기를 ‘근자에 아무개의 편지를 받아보니, 날 위해 당로자當路者에게 석방을 구해보려 한다는데, 어찌 저를 이리도 박하게 대우하는지요. 비록 바다 가운데서 썩어 죽을망정 나는 그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었네. 내가 그 글을 들고서 슬피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학사는 참으로 눈 속의 잣나무로구나. 선비는 궁하게 된 뒤에 평소 품은 뜻이 드러나는 법이다. 환란과 재앙을 만나서도 그 절조를 고치지 아니하고, 높고도 외로이 우뚝 서서 그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어찌 날씨가 추워진 때라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
3. 위급한 위리안치 중에도 임금을 걱정한 이양천의 절개 위리안치 되고 나서는 장독瘴毒을 머금은 안개가 어두침침하고, 독사와 지네가 베개와 자리에 얽혀 있어 해입음을 헤아릴 길이 없었지. 어느 날 밤에는 큰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어 마치 벽력이 이는 듯하므로 아랫것들은 모두 넋이 나가 구토하며 어지러워들 하였네. 내가 노래를 지어 말하기를, 「남쪽바다 산호야 꺾인들 어떠하리. 오늘밤 다만 근심 옥루玉樓의 추움일세.」라 하였다네. 旣在籬中, 瘴霧昏昏, 蝮蛇蜈蚣, 糾結枕茵, 爲害不測. 一夜大風振海, 如作霹靂, 從人皆奪魄嘔眩. 余作歌曰: 「南海珊瑚折奈何, 秪恐今宵玉樓寒.」 우여곡절 끝에 그는 흑산도에서 귀양생활을 시작했고,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안개는 장기瘴氣를 머금어 기혈을 삭히고, 거처에는 독사와 지네가 여기..
2. 잣나무는 그려달라는 부탁에 글만 적어 보낸 이유 그러자 학사는 이렇게 말했었네. ‘까닭이 있다네. 내가 예전에 이인상李麟祥과 노닐었는데, 일찍이 비단 한폭을 보내 제갈공명 사당의 잣나무를 그려달라고 했었지. 이인상은 한참 있다가 전서로 「설부雪賦」를 써서는 돌려보냈더군. 내가 전서를 얻고는 또 기뻐서 더욱 그 그림을 재촉했더니, 이인상은 웃으면서 말했지. 「자네 아직 몰랐던가? 예전에 이미 보냈던걸?」내가 놀라서 말했네. 「지난 번 온 것은 전서로 쓴 「설부」였을 뿐일세. 자네가 어찌 그것을 잊었단 말인가?」 이인상은 웃으며 말했지. 「잣나무는 그 가운데 있다네. 대저 바람서리가 모질다 보니 능히 변치 않을 것이 있겠는가? 자네 잣나무를 보고 싶거든 눈 속에서 구해보게.」 내가 그제서야 웃으며 대답..
1. 대나무도 없는 집인데 죽원옹이란 호를 짓다 사함士涵 유한렴劉漢廉이 죽원옹竹園翁이라 자호하고 거처하는 집에 불이당不移堂이란 편액을 걸고는 내게 서문 지어주기를 청하였다. 내가 일찍이 그 집에 올라보고 그 동산을 거닐어 보았지만 한 그루의 대나무도 보이지 않았었다. 내가 돌아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이른바 무하향無何鄕의 오유선생烏有先生의 집이 아니겠는가? 이름이란 것은 실질의 손님이거늘, 나더러 장차 손님을 위하란 말인가?” 사함이 머쓱해져서 한동안 있더니만, “애오라지 스스로 뜻을 부쳐본 것일 뿐이라오.”라고 하였다. 士涵自號竹園翁, 而扁其所居之堂曰不移, 請余序之. 余嘗登其軒, 而涉其園, 則不見一挺之竹. 余顧而笑曰: “是所謂無何鄕烏有先生之家耶? 名者實之賓, 吾將爲賓乎?” 士涵憮然爲間曰: “聊自..
6. 아깝구나, 연암이 세초하여 없앤 책들 아들 박종채朴宗采는 아버지 연암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연암협에 계실 때 혹은 종일 마루를 내려오지 않고 혹은 어떤 사물을 주목하여 눈길을 돌리지 않고 침묵하여 말이 없는 채 두어 시간을 넘기곤 했다. 其在燕峽也, 終日不下堂, 或遇物注目, 瞪默不言者移時.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지극히 미미한 물건, 예컨대 풀이나 짐승이나 벌레라도 모두 지극한 경지가 있으니, 조물주가 만든 자연의 현묘함을 볼 수가 있다”하셨다. 嘗言: “雖物之至微, 如艸卉禽蟲, 皆有至境, 可見造物自然之玅.” 매양 냇가 바위에 앉아 들릴 듯 말 듯 읊조리거나 느릿느릿 걷다가 문득 멍하니 무엇을 잊어버린 듯 하셨다. 때로 오묘한 깨달음이 있으면 반드시 붓을 잡고 기록을 해서, 깨알 ..
5. 세상을 관찰함으로 읽는 책 여기서 다시 연암의 글 한편을 읽기로 하자. 제목은 「답경지지이答京之之二」이다. 독서를 정밀하고 부지런히 하기로는 포희씨만한 이가 없다. 그 정신과 의태意態는 천지만물을 포괄망라하고 만물에 흩어져 있으니, 이것은 다만 글자로 쓰이지 않고 글로 되지 않은 글일 뿐이다. 후세에 독서를 부지런히 한다고 하는 자들은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마른 먹과 썩어 문드러진 종이 사이에 눈을 부비며 그 좀오줌과 쥐똥을 엮어 토론하니, 이는 이른바 술지게미와 묽은 술을 먹고 취해 죽겠다는 꼴이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讀書精勤, 孰與庖犧? 其神精意態, 佈羅六合, 散在萬物, 是特不字不書之文耳. 後世號勤讀書者, 以麤心淺識, 蒿目於枯墨爛楮之間, 討掇其蟫溺鼠渤, 是所謂哺糟醨而醉欲死. 豈不哀哉!..
4. 통해야만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런 까닭에 늙은 신하가 어린 임금께 고하는 것과 고아와 과부의 사모함을 알지 못하는 자와는 더불어 소리를 논할 수가 없다. 글을 짓더라도 『시경』의 생각이 없으면 더불어 국풍國風의 빛깔을 알 수가 없다. 사람이 이별해보지 못하고, 그림에 먼 뜻이 없다면 더불어 문장의 정경情境을 논할 수가 없다. 벌레의 더듬이와 꽃술을 좋아하지 않는 자는 모두 문심文心이 없는 것이다. 솥과 그릇의 형상을 음미하지 못하는 자는 비록 한 글자도 모른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故不識老臣之告幼主, 孤子寡婦之思慕者, 不可與論聲矣. 文而無詩思, 不可與知乎國風之色矣. 人無別離, 畵無遠意, 不可與論乎文章之情境矣. 不屑於蟲鬚花蘂者, 都無文心矣. 不味乎器用之象者, 雖謂之不識一字可也. 『주역周易』「..
3. 글로 드러나는 情과 境 무엇을 일러 정情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새가 울고 꽃이 피며, 물은 초록이요 산이 푸르른 것이다. 何如是情? 曰: 鳥啼花開, 水綠山靑. 또한 글에는 정情이 있다. 글의 정이란 무엇인가. 새가 울고 꽃이 피며, 물은 초록빛이요 산은 푸른빛이라고 했다. 나는 외롭다. 나는 슬프다. 나는 기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기쁘다고 쓰지 않고,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로 들려준다. 나는 외롭다고 말하는 대신 가을하늘을 나는 외기러기의 울음에 얹을 뿐이다. 돌아오지 않는 님이 그리워 가슴이 아플제면 나는 그 님과 헤어지던 그 버드나무 아래서 뭣 모르고 우는 꾀꼬리 소리를 듣고 서 있다. 아아! 그렇구나. 내가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사물이 대신 이야기해 준다. 그래서 새는 울고 꽃은 ..
2. 글로 드러나는 소리와 빛깔 그렇다면 글에 소리[聲]가 있는가? 말하기를, 이윤伊尹의 대신大臣 노릇 할 때와 주공周公이 숙부叔父 역할을 할 때 내가 그 말소리는 듣지 못하였어도 그 소리를 상상해 본다면 정성스러울 따름이었으리라. 고아孤兒인 백기伯奇와 기량杞梁의 과부寡婦를 내가 그 모습은 못 보았지만, 그 소리를 떠올려 보면 간절할 뿐이었으리라. 未聞其語也,然則文有聲乎? 曰: 伊尹之大臣, 周公之叔父, 吾 想其音則款款耳. 伯奇之孤子, 杞梁之寡妻, 吾未見其容也, 思其聲則懇懇耳. 먼저 ‘성聲’이다. 그렇다. 글에는 그 배면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가 있어야 한다. 이윤伊尹과 주공周公, 백기伯奇와 기량杞梁, 그 옛 사람의 음성을 나는 접한 적이 없는데도, 그 글을 읽으면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하고 안타까운 소리가..
1. 세상을 보며 글자를 만들었던 포희씨 연암은 40세 전후로 지금의 파고다 공원 뒤편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머물러 살았다. 이 시기 전후 몇 년간의 글을 묶어 『종북소선鍾北小選』이라 이름 짓는다. 이글은 이 묶음의 첫머리에 얹은 것이다. 연암 문학론의 최상승最上乘 문자로 그 문학 정신의 울결鬱結이 이 한편에 녹아 있다. ▲ 전의감동에 살 때의 울분은 醉踏雲從橋記에 담겨 있다. (사진 출처 - [연암을 읽다]) 우주라는 기호를, 만물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좋을까? 연암은 이 「종북소선자서鍾北小選自序」에서 그 방법을 성색정경聲色情境이란 네 항목에 담아 이야기한다. 다시 처음의 원문으로 되돌아가서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아! 포희씨庖犧氏가 죽으매 그 문장文章이 흩어진지 오래로다. 그러나 벌레..
6. 가련한 공기족들의 미련한 판단능력 이제 큰 소리로 스스로를 비유하여 사슴이라 말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마땅히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약 다시금 형체의 크고 작음을 비교하고 보는 바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려 한다면, 그대나 나나 모두 망녕될 뿐이리이다. 사슴이 과연 파리보다야 크겠지만, 코끼리가 있지 않습니까? 파리가 과연 사슴보다야 작겠지만 만약 개미로 본다면 코끼리의 사슴에 있어서와 한 가지일 겝니다. 今乃大言自况曰麋, 何其愚也? 宜其見笑於大方之家也. 若復較其形之大小, 辨所見之遠近, 足下與僕, 皆妄也. 麋果大於蠅矣, 不有象乎? 蠅果小於麋矣, 若視諸蟻, 則象之於麋矣. 연암은 계속해서 말한다. 이제 내가 스스로 사슴이라 비유한데 대해, 그대가 크기로 따져서 자신을 파리에 비..
5. 자기중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 우연히 거친 성질을 기리다가 스스로를 사슴에다 견준 것은 사람이 가까이 가면 놀라는 까닭에서였지 감히 스스로 크다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주신 글월을 받자오매, 스스로를 말 꼬리에 붙은 파리에다 비유하셨으니 또 어찌 그다지도 작단 말입니까? 그대가 진실로 작게 되기를 구한다면 파리도 오히려 크지요. 개미가 있지 않습니까? 偶頌野性, 自况於麋, 所以近人則驚, 非敢自大也. 今承明敎, 自比於驥尾之蠅, 又何其小也? 苟足下求爲小也, 蠅猶大也. 不有蟻乎? 윗 글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역시 바라봄의 문제에 대해 논한 글을 한 편 더 읽어본다. 「답모答某」는 연암이 누군가에게 답장으로 보낸 편지글이다. 아마 이보다 앞선 편지에서 연암이 스스로를 겁 많은 사슴에 견준..
4.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서재 내가 또 말하였다. “대저 하늘과 땅 사이에 흩어져 있는 것이 모두 이 서책의 정기일세. 그럴진대 본시 바싹 가로막고 보아 한 방 가운데서 구할 수 있는 바가 아닐세. 그래서 포희씨가 문장을 봄을 ‘우러러 하늘을 보고, 굽어 땅을 살폈다’고 한 것이야. 공자께서 그 문장을 봄을 크게 여겨 이를 이어 말씀하시기를, ‘편안히 거처할 때는 그 말을 익힌다[玩]’고 하셨지. 대저 익힌다 함이 어찌 눈으로만 보아 살피는 것이겠는가? 입으로 음미하여 그 맛을 얻고, 귀로 들어 그 소리를 얻으며, 마음으로 마주하여 그 정채로움을 얻는 것일세. 이제 자네가 창에 구멍을 뚫고서 눈으로 이를 전일하게하고, 유리알로 받아 마음으로 이를 깨닫는다고 하세. 비록 그러나 방과 창이 텅비지 않고는..
3. 넓게 읽되 요약해야 하고 번뜩 깨우쳐야 한다 낙서가 놀라 말하였다. “그렇다면 장차 어찌해야 할지요?” 내가 말했다. “그대는 저 물건 찾는 사람을 보지 못했던가? 앞을 보자면 뒤를 잃게 되고, 왼편을 돌아보면 오른편을 놓치고 말지. 왜 그럴까? 방 가운데 앉아 있으면 몸과 물건이 서로 가리게 되고, 눈과 허공이 서로 맞닿기 때문일 뿐이야. 차라리 몸을 방밖에 두어 창에 구멍을 뚫고 살펴보아 한 눈의 전일함으로 온 방안의 물건을 다 보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일세.” 낙서가 사례하여 말하였다. “이는 선생님께서 저를 ‘약約’, 즉 요약함을 가지고 이끌어 주시는 것이로군요.” 洛瑞驚曰: “然則將奈何?” 余曰: “子未見夫索物者乎? 瞻前則失後, 顧左則遺右, 何則? 坐在室中, 身與物相掩, 眼與空相逼故爾. 莫若..
2. 의미 없는 독서에 대해 완산完山 이낙서李洛瑞가 책을 쌓아둔 방에 편액을 걸고 소완정素玩亭이라 하였다. 내게 기문記文을 청하므로, 내가 이를 나무라며 말하였다. “대저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면서도 눈이 물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보는 바의 것이 모두 물이고 보니 물이 없는 것과 한가지인게지. 이제 자네의 책은 용마루에 가득차고 시렁을 꽉 채워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책 아닌 것이 없으니,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단 말일세. 비록 동중서董仲舒의 전일專一함을 본받고, 장화張華의 기억력에 도움 받으며, 동방삭東方朔의 암기력을 빌려온다 해도 장차 스스로 얻지는 못할 것일세. 그래도 괜찮겠나?” 完山李洛瑞, 扁其貯書之室, 曰素玩. 而請記於余, 余詰之曰: “夫魚游水中, 目不見水者, 何也? 所見..
1. 나비 놓친 사마천의 심정으로 읽어라 그대가 태사공의 『사기』를 읽었다 하나, 그 글만 읽었지 그 마음은 읽지 못했구료. 왜냐구요. 「항우본기」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 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가 축筑을 연주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말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 보면 아무도 없고, 게면쩍어 씩 웃다가 장차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것이 사마..
7. 시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도로 눈을 감아라 이날 홍려시소경 조광련이 의자를 나란히 하고서 요술을 구경하였다. 내가 조경에게 말하였다. “눈이 능히 시비를 판단치 못하고 진위를 살피지 못할진대 비록 눈이 없다고 해도 괜찮으리이다. 그러나 항상 요술하는 자에게 속게 되는 것은 이 눈이 일찍이 망녕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분명하게 본다는 것이 도리어 빌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려.” 조경이 말했다. “비록 요술을 잘하는 이가 있다 해도 소경은 속이기가 어려울 터이니, 눈이란 과연 항상된 것일까요?” 내가 말했다. “우리나라에 서화담 선생이란 이가 있었지요. 밖에 나갔다가 길에서 울고 있는 자를 만났더랍니다. ‘너는 왜 우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저는 세 살에 눈이 멀어 지금에 사십년이올시다. 전일에 ..
6. 장님의 눈이야말로 평등안 다시 책문밖에 이르러 책문 안을 바라다보니 일반 집들도 모두 다섯 들보가 높이 솟았고, 띠로 이엉을 이어 위를 덮었는데, 등마루는 우뚝하고 대문은 가지런하였다. 거리는 평평하고 곧아서 양쪽 가로 마치 먹줄을 친 듯하였다. 담장은 모두 벽돌로 쌓았고, 사람 타는 수레와 짐 싣는 수레가 길 가운데로 이리저리 오가고, 벌려 놓은 그릇들은 모두 그림을 그린 자기들이다. 이미 그 제도를 보고 나니 시골구석의 촌티라고는 아예 없었다. 예전에 내 친구 홍덕보가 일찍이 규모는 큰데도 심법心法은 세밀하다고 말하더니, 책문은 천하의 동쪽 끝 모퉁이인데도 오히려 이와 같으매, 앞길의 유람이 갑자기 생각이 탁 막히면서 곧장 이 길로 되돌아가고만 싶어, 나도 몰래 배가 부글거리고 등이 타는 듯하였..
5. 연못가에 서서도 전혀 위태롭지 않은 장님 내가 오늘 밤에 이 물을 건넘은 천하에 지극히 위태로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말을 믿고 말은 발굽을 믿고, 발굽은 땅을 믿어 말고삐를 잡지 않은 보람을 거둠이 이와 같도다. 수역首譯이 주주부周主簿에게 말한다. “옛날에 「위어危語」를 지은 자가 있어 말하기를, ‘장님이 눈먼 말을 타고 한밤중에 깊은 연못가에 섰도다’라고 했더니, 참으로 우리들의 오늘밤 일입니다 그려.” 내가 말했다. “그것이 위태롭기는 해도 위태로움을 잘 안 것은 아니라고 보네.” 두 사람이 말한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장님을 보고 있는 자는 눈이 있는 사람인지라, 장님을 보고는 스스로 그 마음에 위태롭게 여기는 것이지, 정작 장님은 위태로운 줄을 알지 못하는 법이거든. 장님은 위태로운 ..
4. 눈과 귀에 휘둘리지 말라 예전 우임금이 황하를 건너는데 황룡이 배를 등져 지극히 위태로왔다. 그러나 살고 죽는 판가름이 먼저 마음에 분명하고 보니 용이고 도마뱀이고 그 앞에서 크고 작은 것을 헤아릴 것이 없었다. 소리와 빛깔은 바깥 사물인데 바깥 사물이 항상 눈과 귀에 탈이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보고 듣는 바름을 잃게 만듦이 이와 같다. 그러니 하물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그 험하고 위태로움이 황하보다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문득 병통이 됨에 있어서이겠는가? 내 장차 내 산 중에 돌아가 다시 앞 시내의 물소리를 듣고 이를 징험하여, 장차 몸놀림에 교묘하여 스스로 총명하다고 믿는 자를 경계하리라. 昔禹渡河, 黃龍負舟, 至危也. 然而死生之辨, 先明於心, 則龍與蝘蜓不足大小於前也. 聲與色外物也,..
3. 보이지 않는 물소리가 두렵게 하네 그 위태로움이 이와 같은데도 강물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모두들 요동 평야는 평평하고 광활하기 때문에 물줄기가 성내 울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황하를 모르고서 하는 소리다. 요하遼河가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밤중에 건너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낮에는 능히 물을 볼 수 있는 까닭에 눈이 온통 위험한데로만 쏠려서 바야흐로 부들부들 떨려 도리어 그 눈이 있음을 근심해야 할 판인데 어찌 물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이제 내가 한밤중에 강물을 건너매, 눈에 위태로움이 보이지 않자 위태로움이 온통 듣는 데로만 쏠려서 귀가 바야흐로 덜덜 떨려 그 걱정스러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其危如此而不聞河聲. 皆曰遼野平廣故水不怒鳴, 此非知河也. 遼河未嘗不鳴, 特未夜渡爾. 晝..
2. 눈에 현혹되지 말라 이제 나는 한밤중에 한 줄기 황하를 아홉 번 건넜다. 황하는 장성 밖에서 나와 장성을 뚫고서 유하와 조하, 황화와 진천 등 여러 물줄기를 한데 모아, 밀운성 아래를 지나면서는 백하가 된다. 나는 어제 배를 타고서 백하를 건넜는데, 이곳의 하류이다. 내가 아직 요동 땅에 들어서지 않았을 때 바야흐로 한 여름 불볕 속에 길을 가다가 갑자기 큰 강물이 앞에 나오는데, 붉은 파도가 산처럼 일어서며 그 끝간 데가 보이지 않았다. 이는 대개 천리밖에 폭우가 내린 때문이었다. 今吾夜中一河九渡. 河出塞外, 穿長城, 會楡河潮河黃花鎭川諸水, 經密雲城下爲白河. 余昨舟渡白河, 乃此下流. 余未入遼時, 方盛夏行烈陽中, 而忽有大河當前, 赤濤山立, 不見涯涘, 蓋千里外暴雨也. 소리는 귀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
1. 같은 소리도 마음 따라 달리 들린다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나와 바위에 부딪치며 사납게 흘러간다.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결, 구슬피 원망하는 듯한 여울은 내달리고 부딪치고 뒤엎어지며 울부짖고 으르렁대고 소리 지르니, 언제나 만리장성마저 꺾어 무너뜨릴 기세가 있다. 만대의 전차와 만 마리의 기병, 만대의 대포와 만개의 북으로도 그 무너질 듯 압도하는 소리를 비유하기엔 충분치 않다. 모래 위에는 큰 바위가 우뚝하니 저만치 떨어져 서 있고, 강가 제방엔 버드나무가 어두컴컴 흐릿하여 마치도 물 밑에 있던 물귀신들이 앞 다투어 튀어나와 사람을 놀래킬 것만 같고, 양옆에서는 교룡과 이무기가 확 붙들어 나꿔 채려는 듯하다. 어떤 이는 이곳이 옛 싸움터인지라 황하가 이렇듯이 운다고 말하기도 하나, 이는 그런 것..
7. 이 작품집에 나는 모르고 그대들만 아는 코골이는 알려주시라 이로 볼진대 얻고 잃음은 내게 달려 있지만 기리고 헐뜯음은 남에게 있다. 비유하자면 이명耳鳴이나 코골기와 같다.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의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 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의 아이가 귀를 맞대고 귀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였다. 以是觀之, 得失在我, 毁譽在人. 譬如耳鳴而鼻鼾. 小兒嬉庭, 其耳忽鳴, 啞然而喜, 潛謂隣兒曰: “爾聽此聲. 我耳其嚶. 奏鞸吹笙, 其團如星.” 隣兒傾耳相..
6. 글의 생명은 진정성의 여부에 달렸다 이러한 가치 판단의 문제(자! 그렇다면 우리가 처해야 할 그 ‘중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 다른 시각에서 다룬 글이 바로 「공작관문고자서孔雀舘文稿自序」이다. 이글에서 연암은 다시 이명耳鳴과 코골기의 비유를 들고 나온다. 먼저 원문을 읽어 보도록 하자. 글이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일 뿐이다. 저 제목에 임해 붓을 잡기만 하면 문득 옛 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경전의 뜻을 찾아 생각을 꾸며 근엄하게 하며 글자마다 무게를 잡는 자는, 비유하자면 화공畵工을 불러 진영眞影을 그리는데 용모를 고쳐서 나가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멀뚱멀뚱 구르지 않고, 옷의 무늬는 닦은 듯 말끔하여 평상의 태도를 잃고 보면 비록 훌륭한 화공이라 해도 그 참 모습을 그려내기가 어렵다. ..
5. 중간에 처하겠다 애초에 우리의 관심사는 장님의 비단옷과 밤길의 비단옷 사이에 우열을 갈라 따지는 일이었으니, 그 대답은 정령위와 양웅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를 헤아려 보면 해결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그것을 청허선생은 “난 몰라! 난 몰라!”했고, 연암은 다시 청허선생에게나 가서 물어보라고 했으니,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답을 어디에서 찾을까? 다음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보이는 삽화가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법 싶다. 장자가 산 가운데로 가다가 가지와 잎새가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 베는 사람이 그 곁에 멈추고도 베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으니, “쓸 만한 곳이 없다”고 하였다. 장자가 말하기를, “이 나무는 쓸모없음을 가지고 그 타고난 ..
4. 자네의 작품집은 여의주인가 말똥인가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사랑하여 여룡驪龍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도 또한 그 구슬을 가지고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자패子珮가 이를 듣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것으로 내 시집의 이름을 삼을 만하다”하며 마침내 그 시집을 이름지어 『낭환집蜋丸集』이라하고는 내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蜣蜋自愛滾丸, 不羨驪龍之珠. 驪龍亦不以其珠, 笑彼蜋丸. 子珮聞而喜之曰: “是可以名吾詩.” 遂名其集曰蜋丸, 屬余序之. 말똥구리는 더러운 말똥을 사랑스런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정성스레 굴린다. 말똥구리에게 있어 말똥은 여룡이 물고 있는 여의주보다 더 소중하다. 여룡이 여의주와 바꾸자 한들 거들떠 볼 까닭이 없다. 말똥구리에게 여의주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여룡..
3. 짝짝이 신발 임백호林白湖가 막 말을 타려는데 하인이 나서며 말하기를,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가죽신과 나막신을 한짝씩 신으셨네요.” 하자, 백호가 꾸짖으며 말하였다. “길 오른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가죽신을 신었다 할 터이고, 길 왼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나막신을 신었다 할 터이니,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林白湖將乘馬, 僕夫進曰: “夫子醉矣. 隻履鞾鞋.” 白湖叱曰: “由道而右者, 謂我履鞾, 由道而左者, 謂我履鞋, 我何病哉!” 백호白湖 임제林悌는 조선 중기의 쾌남아이다. 그가 평양 부임길에 길가에 황진이 무덤 곁을 지나게 되었다. 왕명을 받들고 가는 터였음에도 호기에 겨워 기생의 무덤에 술잔을 부어 주며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홍안紅顔은 어데 두고 백골白骨만 누었나니. 잔..
2. 이가 사는 곳 예전 황희黃喜 정승이 공무를 파하고 돌아오니, 그 딸이 맞으며 말하였다. “아버님, 이[蝨]를 아시는지요? 이는 어디서 생기나요? 옷에서 생기나요?” “그렇지.” 딸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이겼다!” 하자 며느리가 청하여 말하기를, “이는 살에서 생기지요?” “네 말이 맞다.” 며느리가 웃으며 말하기를, “아버님은 내가 맞다시는 걸요.” 하였다. 부인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누가 대감더러 지혜롭다 하겠수. 다투고 있는데 둘 다 옳다니요?” 정승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둘 다 이리 오너라. 대저 이는 살이 아니면 알을 까지 못하고, 옷이 아니고는 붙어있질 못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옳은 것이야. 비록 그렇긴 해도 옷이 장롱 속에 있어도 또한 이는 있고, 설사 네가 ..
1. 바른 견식은 어디서 나오나? 진정지견眞正之見, 즉 참되고 바른 견식見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번에 살펴보려는 「낭환집서蜋丸集序」와 「공작관문고자서孔雀舘文稿自序」는 바로 이 진정眞正한 견식의 소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암의 글이 늘 그렇듯 이들 글 또한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여러 겹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어 글쓴이의 진의를 온전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나가 놀다가 장님이 비단옷 입은 것을 보았다. 자혜가 휴우 하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아! 제게 있는데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자무가 말하였다. “대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비교하면 어떨까?” 마침내 서로 더불어 청허선생聽虛先生에게 이를 물어보았더니, 선생은 손을 내저으며 “나는 모르겠네. 나는 모르겠어.”..
4. 달사는 적고 속인만 많다 내 조카 종선宗善은 자가 계지繼之인데 시에 능하다. 한 가지 법도에만 얽매이지 아니하여 온갖 체를 두루 갖추었으니, 우뚝이 동방의 대가가 된다. 성당盛唐의 시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한위漢魏의 시가 되고 또 송명宋明의 시가 된다. 겨우 송명인가 싶어 보면 다시금 성당으로 돌아가 있다. 아아! 세상 사람들이 까마귀를 비웃고 학을 위태롭게 여김이 또한 너무 심하도다. 그러나 계지의 동산에는 까마귀가 자줏빛도 되었다가 비췻빛도 된다. 세상 사람들은 미인을 재계한 듯 빚어놓은 듯 만들고 싶어 하지만 손뼉 치며 추는 춤과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는 날로 경쾌해지고 더 아름다워 질 터이고, 틀어 올린 머리와 아픈 이빨은 모두 나름대로의 태가 있는 법이다. 그 성내고 노함이 날로 심해질 것은 ..
3. 겉모습에만 현혹되는 사람들 미인을 보면 시를 알 수가 있다. 그녀가 고개를 숙임은 부끄러운 것이다. 턱을 괸 것은 한스러움을 나타낸다. 홀로 서 있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눈썹을 찌푸림은 근심스러운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림이 있을 때에는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바라는 바가 있을 때는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만약 그 서 있는 모습이 재계齋戒한 것 같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빚어놓은 것 같지 않다고 나무란다면, 이것은 양귀비가 이빨이 아파 찌푸림을 나무라는 격이요, 번희樊姬가 쪽진 머리를 감싸 쥠을 못하게 하는 격이며,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의 아름다움을 야단하고, 손뼉 치며 추는 춤의 경쾌하고 빠름을 꾸짖는 격이라 하겠다. 觀乎美人, 可以知詩矣. 彼低頭, ..
2. 하나의 꼴 속에 수없이 많은 태가 깃들어 있다 아! 저 까마귀를 보면 깃털이 그보다 더 검은 것은 없다. 그러나 홀연 유금乳金 빛으로 무리지고, 다시 석록石綠 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비치면 자줏빛이 떠오르고, 눈이 어른어른하더니 비췻빛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또한 괜찮을 것이다. 저가 본디 정해진 빛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린다. 어찌 그 눈으로 정하는 것뿐이리오. 보지 않고도 그 마음으로 미리 정해 버린다. 噫! 瞻彼烏矣, 莫黑其羽. 忽暈乳金, 復耀石綠, 日映之而騰紫, 目閃閃而轉翠. 然則吾雖謂之蒼烏, 可也, 復謂之赤烏, 亦可也. 彼旣本無定色, 而我乃以目先定. 奚特定於其目? 不覩而先定於其心. 까마귀의 날갯빛은 정말 검을까..
2. 까마귀의 날갯빛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1. 달사와 속인 達士無所恠, 俗人多所疑. 所謂少所見, 多所恠也. 夫豈達士者, 逐物而目覩哉? 聞一則形十於目, 見十則設百於心, 千恠萬奇, 還寄於物而己無與焉. 故心閒有餘, 應酬無窮. 所見少者, 以鷺嗤烏, 以鳧危鶴. 物自無恠己, 廼生嗔一事不同, 都誣萬物. ⇒ 해설 보기 噫! 瞻彼烏矣, 莫黑其羽. 忽暈乳金, 復耀石綠. 日映之而騰紫, 目閃閃而轉翠. 然則吾雖謂之蒼烏可也, 復謂之赤烏, 亦可也. 彼旣本無定色, 而我乃以目先定. 奚特定於其目, 不覩而先定於其心. 噫! 錮烏於黑足矣, 廼復以烏錮天下之衆色. 烏果黑矣, 誰復知所謂蒼赤乃色中之光耶? 謂黑爲闇者, 非但不識烏, 並黑而不知也. 何則? 水玄故能照, 漆黑故能鑑. 是故有色者, 莫不有光, 有形者莫不有態. ⇒ 해설 보기 觀乎美人, 可以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