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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 도은재기(陶隱齋記) 본문

산문놀이터/삼국&고려

이색 - 도은재기(陶隱齋記)

건방진방랑자 2019. 9. 3.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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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하기에 오래 쓰이는 질그릇에 숨다

도은재기(陶隱齋記)

 

이색(李穡)

 

 

古之人隱於朝者, 之伶官, 漢之滑稽是已; 隱於市者, 燕之屠狗, 蜀之賣卜者是已. 晉之時, 隱於酒者, 竹林; 宋之季, 隱於漁者, 苕溪也, 其他以隱自署其名者, 唐之李氏羅氏是已.

三韓儒雅, 古稱多士, 高風絶響, 代不乏人, 鮮有以隱自號者. 出而仕其志也, 是以羞稱之耶? 隱而居其常也, 是以不自表耶? 何其無聞之若是耶?

近世雞林崔拙翁自號曰農隱, 星山李侍中自號日樵隱, 潭陽田政堂自號曰野隱, 予則隱於牧.

今又得侍中族子子安氏焉, 蓋陶乎隱者也. 陶者, 舜之升聞, 周之將興, 以之爲地者也, 方冊所載, 可見已. 子安氏年十六, 以詩賦中壬寅科, 辭氣老成, 同列猶以少, 故不甚畏之也. 未幾, 學問文章, 日進而不少止, 淵乎其深也, 曄乎其光也, , 層見而疊出也, 向之老而自負者, 翕然從子安, 求正其所學焉. 子安氏知文之必弊也如周之季焉, 泝而求其陶復陶穴之地. 喟然嘆曰: “夫子稱: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夫孰知其初之如是哉? 上古朴略之風, 遠矣不可追矣, 今之制尙古質之甚者, 惟陶爲然. 茅茨土階之變也, 而瑤臺瓊室作焉, 汙尊杯飮之變也, 而玉杯象箸興焉, 而陶之用, 未聞其有變也, 雖變而不離乎質也, 銅雀之瓦是已. 天下之至大者天也, 至尊者帝也, 以帝者而事昊天, 天下之大事也. 天下之物皆備焉, 極其盛也, 而其器則惟陶之用焉, 制禮者夫豈徒哉, 必有所取之也? 亦曰: “質而已矣, 質之道, 其天下之大本乎! 三千三百, 優優大哉之所從出乎!”

子安, 崇仁其名也, 無一事非仁, 子安氏安於其中矣, 而又以陶名其居, 信乎其復於禮之本. 天下之歸仁也必矣, 是達也, 非隱也. 易曰: “天地閉, 賢人隱.” 今則明良遭逢, 都兪吁咈, 魚川泳而鳥雲飛也. 流示之爵祿而塩其利, 是以于于焉者皆山林之秀也. 而吾老矣, 猶之可也, 子安氏卓然勇往之時也, 而以隱自名可乎?

予與子安, 南陽公之門人也, 同寮成均, 相從也又久, 故問焉以質之, 子安氏其勖之哉! 牧隱文藁卷之四

 

 

 

 

해석

古之人隱於朝者, 之伶官, 漢之滑稽是已; 隱於市者, 燕之屠狗, 蜀之賣卜者是已.

옛 사람 중 조정에 은둔한 사람으론 시경(詩經)에 나오는 영관(伶官)시경패풍(邶風) 간혜(簡兮) 모서(毛序)()나라의 현자(賢者)가 영관(領官) 벼슬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는 말이 나오는데, 영관은 궁중의 악관(樂官)이다.이나 한나라의 골계(滑稽)하던 이들한 무제(漢武帝) 때 활약한 동방삭(東方朔)을 가리킨다. 사기(史記)126 골계열전(滑稽列傳)나와 같은 사람은 조정 사이에 숨어서 세상을 피하는 자라고 하겠다.……궁전 속에서도 세상을 피하면서 몸을 온전히 할 수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오두막 생활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한 동방삭의 말이 실려 있으며, 한서(漢書)65 동방삭전(東方朔傳) ()에 그를 일컬어 골계지웅(滑稽之雄)’이라고 평한 대목이 나온다.이 바로 그들이고 저자에 은둔한 사람으론 연()나라의 도구(屠狗)도구(屠狗): 전국 시대 말기의 유명한 자객(刺客)인 형가(荊軻)를 가리킨다. 연나라 태자 단()의 부탁을 받고 진왕(秦王)인 영정(嬴政)을 죽이러 갔다가 피살당했는데, 사기86 자객열전(刺客列傳)그가 연나라에 있을 적에 개백장[屠狗] 및 축()의 명인인 고점리(高漸離)와 어울려 노닐었다[愛燕之狗屠及善擊築者高漸離].’는 내용이 나온다.와 촉() 땅에서 매복(賣卜)하던 이들군평(君平)이라는 자()로 더 잘 알려진 전한(前漢)의 술사(術士) 엄준(嚴遵)을 가리킨다. 촉 땅 성도(成都) 시내에서 점복(占卜)으로 생활하면서 하루에 100()만 벌면 문을 닫고 방 안에 들어앉아 노자(老子)강의와 저술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漢書 卷72 王貢兩龔鮑傳이 바로 그들이다.

 

晉之時, 隱於酒者, 竹林; 宋之季, 隱於漁者, 苕溪也, 其他以隱自署其名者, 唐之李氏羅氏是已.

()나라 때에 술에 은둔한 이들은 죽림(竹林)죽림(竹林): ()나라 초기에 술과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던, 이른바 죽림칠현(竹林七賢)’인 위()ㆍ진()의 완적(阮籍), 혜강(嵇康), 산도(山濤), 왕융(王戎), 유령(劉伶), 완함(阮咸), 상수(向秀) 등을 가리킨다.이고 송()나라 말년에 어부로 은둔한 이들은 초계(苕溪)초계(苕溪): 자신의 호를 초계어은(苕溪漁隱)이라고 했던 호자(胡仔)를 가리킨다.였으며 달리 ()’으로 스스로 그 이름을 서명한 자는 당()나라의 이씨(李氏)와 나씨(羅氏)당대(唐代)의 저명한 시인인 이상은(李商隱)과 나은(羅隱)을 가리킨다. 같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三韓儒雅, 古稱多士, 高風絶響, 代不乏人, 鮮有以隱自號者.

우리나라는 풍치가 있고 우아해서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이 있다 일컬어졌고 고상한 풍취와 절세의 음향으로 시대마다 사람이 부족하질 않았지만 ()’으로 자호하는 이는 드물었다.

 

出而仕其志也, 是以羞稱之耶? 隱而居其常也, 是以不自表耶? 何其無聞之若是耶?

출세하여 벼슬함이 그 뜻이니 이 때문에 ()’이라 일컫는 걸 부끄러워했나? 은둔하고 거처함이 일상적이니 이 때문에 스스로 표기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알려지지 않은 게 이와 같은 걸까?

 

近世雞林崔拙翁自號曰農隱, 星山李侍中自號日樵隱, 潭陽田政堂自號曰野隱, 予則隱於牧.

최근엔 계림(鷄林)의 최졸옹(崔拙翁)이 자호를 농은(農隱)이라 했고 성산(星山, 星州)의 이시중(李侍中, 李仁復)이 자호를 초은(樵隱)이라 했으며 담양(潭陽)의 전정당(田政堂, 田綠生)은 자호를 야은(野隱)이라 했고 나의 경우엔 목()에 숨었다.

 

今又得侍中族子子安氏焉, 蓋陶乎隱者也.

이제 또한 시중(侍中)의 족형제(族兄弟)의 아들인 자안(子安) 씨를 얻었으니 대체로 은둔함에 ()’에 한 이이다.

 

陶者, 舜之升聞, 周之將興, 以之爲地者也, 方冊所載, 可見已.

()라는 것은 순임금이 알려짐을 이루었고순 임금이 평민었을 때, 하수(河水) 가에서 질그릇을 구워 생활하기도 하였으며, 나이 20세 효성(孝誠)으로 세상에 알려졌다가 나이 30에 요() 임금에게 발탁되었다는 기록이 사기1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나온다. 그리고 서경(書經)순전(舜典) 첫머리에 숨겨진 덕행이 위에까지 알려졌으므로, 요 임금이 그에게 벼슬을 내려 임명하게 되었다.[玄德升聞 乃命以位]”는 말이 나온다. 주나라가 장차 흥기할 적에 그것으로 지반을 삼았으니주나라 태왕(太王) 즉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산(岐山) 아래로 옮겨 와 나라를 세우고서 처음으로 국호(國號)를 주()라고 하였는데, 시경대아(大雅) (綿)고공단보께서는 땅을 파고 혈거(穴居) 생활을 하였을 뿐, 아직 번듯한 집이라는 것이 있지 않았다.[古公亶父 陶復陶穴 未有家室] ”도복도혈(陶復陶穴)’의 고사가 실려 있기 때문에, 목은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목판이나 죽간에 기록된 것을 볼 만할 뿐이다.

 

子安氏年十六, 以詩賦中壬寅科, 辭氣老成, 同列猶以少, 故不甚畏之也.

자안씨는 나이 16살에 시부(詩賦)로 임인(1362)년에 급제하니 시어의 기운이 노련했지만 동급자들은 오히려 어리다 여겼기 때문에 매우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未幾, 學問文章, 日進而不少止, 淵乎其深也, 曄乎其光也, , 層見而疊出也, 向之老而自負者, 翕然從子安, 求正其所學焉.

얼마되지 않아 학문과 문장이 날로 나아지고 조금도 그치지 않아 깊음이 연못인 듯했고 빛나길 광채인 듯했으니 주공(周公)의 정취와 공자(孔子)의 생각이 층층이 드러나고 겹겹이 표출되어 예전에 노련하다 자부하던 이들도 한순간에[翕然] 자안씨를 따라서 배운 것의 바름을 구했다.

 

子安氏知文之必弊也如周之季焉, 泝而求其陶復陶穴之地.

자안씨는 문장이 반드시 주나라 말기처럼 피폐해질 걸 알아 거슬러 도복도혈(陶復陶穴)陶復陶穴 : ()나라 초기라는 뜻이다. 주나라 태왕(太王) 즉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산(岐山) 아래로 옮겨 와 나라를 세우고서 처음으로 국호(國號)를 주()라고 하였는데, 시경대아(大雅) (綿)고공단보께서는 땅을 파고 혈거(穴居) 생활을 하였을 뿐, 아직 번듯한 집이라는 것이 있지 않았다.[古公亶父 陶復陶穴 未有家室]”라고 나온다.의 땅에서 구했다.

 

喟然嘆曰: “夫子稱: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夫孰知其初之如是哉?

한숨 쉬듯 부자께서 주나라는 하나라와 상나라를 거울삼았으니, 빛나고도 문채 나도다.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라고 말씀하셨다.”라고 탄식했으니, 대체로 누가 처음에 이와 같을 걸 알았으리오?

 

上古朴略之風, 遠矣不可追矣, 今之制尙古質之甚者, 惟陶爲然.

오랜 옛날의 질박하고도 거친 풍조가 멀어져 쫓을 수 없지만 지금의 제도로 옛날의 질박함을 숭상하길 심한 것으론 오직 ()’가 그러하다.

 

茅茨土階之變也, 而瑤臺瓊室作焉, 汙尊杯飮之變也, 而玉杯象箸興焉, 而陶之用, 未聞其有變也, 雖變而不離乎質也, 銅雀之瓦是已.

띠풀로 지붕 잇고 흙으로 계단을 만들던 게사기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묵가(墨家)를 비평하는 대목에 () 임금과 순() 임금은 흙으로 섬돌을 세 칸 올렸고[土階三等], 띠풀로 지붕을 얹으면서 가지런하게 자르지도 않았다.[茅茨不翦]”라는 내용이 나온다. 변해서 옥으로 누대 짓고 구슬로 집을 지으며 웅덩이로 술잔을 삼고 움켜쥐어 마시던 게예기(禮記)예운(禮運)에 나오는 말이다. 변해서 옥 술잔과 상아 젓가락이 생겨났지만 질그릇의 쓰임이 변했다는 건 듣지 못했고 비록 변했다 해도 질박함을 떠나지 않았으니 동작대(銅雀臺)의 기와위무제(魏武帝) 조조(曹操)가 고도(故都)인 상주(相州)에다 동작대(銅雀臺)를 세울 적에, 흑연(黑鉛)에 호도(胡桃) 기름을 섞어서 기와를 구워 만들었다고 하는데, 후대에 그 기왓장을 벼루의 재료로 썼다는 기록이 전한다. 春渚紀聞 銅雀臺瓦 같은 게 이것인 것이다.

 

天下之至大者天也, 至尊者帝也, 以帝者而事昊天, 天下之大事也.

천하에 지극히 큰 건 하늘이고 지존은 황제이니 황제가 하늘을 섬기는 건 천하의 큰 일이다.

 

天下之物皆備焉, 極其盛也, 而其器則惟陶之用焉, 制禮者夫豈徒哉, 必有所取之也?

천하의 사물은 모두 구비되어 성대하길 다하지만 그릇이라면 오직 질그릇이 사용되니예기교특생(郊特牲), 천자가 교제(郊際) 즉 하늘 제사를 올릴 때, “제기로 질그릇과 바가지를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천지의 질박한 본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器用陶匏 以象天地之性]”라는 말이 나온다. 예를 만든 이가 어떤 무리이기에 반드시 그걸 취했던 것인가?

 

亦曰: “質而已矣, 質之道, 其天下之大本乎! 三千三百, 優優大哉之所從出乎!”

또한 질박함 뿐이니, 질박함의 방도는 천하의 큰 근본이구나! 삼 백가지의 큰 예법과 삼 천가지의 자잘한 예법의 넉넉하고도 큰 것이 따라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하리라.

 

子安, 崇仁其名也, 無一事非仁, 子安氏安於其中矣, 而又以陶名其居, 信乎其復於禮之本.

자안씨는 숭인(崇仁)이 이름으로 한 가지 일도 인()이 아닌 게 없으니 자안씨는 그 중심에 편안해하고 또한 도()로 거처를 이름했으니 참이로구나! 예의 근본을 회복했다는 것이논어안연(顔淵) 첫머리에, ()이 무엇이냐고 묻는 안연의 질문에 대해, 공자가 나를 이기고 예에 돌아가는 것이 인인데, 하루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천하 사람들이 그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라고 대답한 대목이 나오는데, 목은이 바로 이 대목을 연관시켜 숭인(崇仁)이라는 이름과 도은(陶隱)이라는 호를 멋지게 풀이한 것이다..

 

天下之歸仁也必矣, 是達也, 非隱也.

천하가 인()으로 귀의함이 반드시 그러하리니 이것은 현달함으로 은둔함은 아니다.

 

易曰: “天地閉, 賢人隱.”

주역(周易)에서 천지가 막히니 현인들은 숨는다.”고 했다천지 사이에 있는 음양(陰陽)의 두 기운이 조화되지 못하여 서로 통하지 않게 되면, 인간 사회 역시 소인이 날뛰는 세상이 되기 때문에 군자들은 숨게 마련이라는 뜻인데, 주역(周易)곤괘(坤卦) 문언(文言) 육사(六四)에 이 말이 나온다..

 

今則明良遭逢, 都兪吁咈, 魚川泳而鳥雲飛也.

지금은 현명한 군주와 어진 신하가 만나 토론하는 것이도유우불(都兪吁咈): 도유(都兪)는 찬성, 우불(吁咈)은 반대의 뜻으로, 임금과 신하 간의 토론이나 심의의 뜻으로 쓰인다. 물고기가 못에서 헤엄치고 새가 구름 나는 듯하다.

 

流示之爵祿而塩其利, 是以于于焉者皆山林之秀也.

벼슬과 녹봉을 전하여 보여주고 이익에 절여졌기 때문에 자족(自足)하는[于于] 이들이 모두 삼림 처사의 준수한 이들이다.

 

而吾老矣, 猶之可也, 子安氏卓然勇往之時也, 而以隱自名可乎?

그러나 나는 늙어서 오히려 괜찮지만 자안씨는 우뚝히 용맹하고 왕성할 시기이니 은()으로 자호함이 괜찮겠는가.

 

予與子安, 南陽公之門人也, 同寮成均, 相從也又久, 故問焉以質之, 子安氏其勖之哉! 牧隱文藁卷之四

나와 자안씨는 남양공(南陽公, 洪彦博)의 문인이고 성균관 동료로 서로 따른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물음으로 질문한 거이니 자안씨는 힘쓰길.

 

 

인용

작가 / 지도

앞 글(上崔相國書) / 뒷 글(記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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