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의 시는 송풍의 시다
이번 글의 주제는 ‘고려시와 조선시 중 어느 시대의 시가 좋은가?’일 터다. 그래서 처음부터 두 시대의 시를 비교하며 두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서거정의 대답을 들었을 땐 ‘두 시대의 시가 모두 우열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다’는 뉘앙스로 읽혀지지만, 막상 홍만종은 그 말을 “서거정의 말로 그것을 보면 조선이 나은 것처럼 보인다”라고 결론을 지어 놨다.
분명 지금 다시 읽더라도 장단점이 특기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홍만종이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저 문장만이 아닌 전체를 다 읽으면 다른 뉘앙스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홍만종이 조선인이기에 자신의 관점에서 저 말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流水聲中暮復朝 | 흐르는 물소리 중에 저녁은 다시 아침이 되고 |
海村籬落苦蕭條 | 해촌 마을은 참으로 쓸쓸하다. |
湖淸巧印當心月 | 호수는 맑기에 호수 복판에 당하여 달이 교묘히 찍혀 있고, |
浦闊貪呑入口潮 | 포구는 넓기에 어귀로 들어오는 조수를 탐내어 삼킨다. |
古石浪舂平作礪 | 물결이 찧어 옛날의 돌은 평평한 숯돌이 되고 |
壞船苔沒臥成橋 | 이끼가 들어차 무너진 배는 누워 다리가 되었다. |
江山萬景吟難狀 | 강산의 모든 경치 시로 읊어 형상하기 어려우니, |
須倩丹靑畵筆模 | 모름지기 화가에게 붓으로 그려달라 부탁해야지. |
幽居野興老彌淸 | 숨어사는 시골의 흥취는 늙을수록 더욱 맑아져 |
恰得新詩眼底生 | 새로운 시가 눈 밑에서 생겨나는 것을 흡족하게 얻네. |
風定餘花猶自落 | 바람은 멈췄지만 남아 있던 꽃 오히려 스스로 지고 |
雲移小雨未全晴 | 구름은 사라졌지만 부슬비 아직 덜 개었네. |
墻頭粉蝶別枝去 | 담장 위의 나비는 가지와 이별하여 떠나고 |
屋角錦鳩深樹鳴 | 처마 귀퉁이 비둘기는 깊은 숲에 숨어 울어대네. |
齊物逍遙非我事 | 제물과 소요는 나의 일이 아니니, |
鏡中形色甚分明 | 거울 속에 모든 사물이 이렇게도 분명한 것을. |
위의 시는 이규보의 「부령포구(扶寧浦口)」이고 아래의 시는 이색의 「즉사(卽事)」로 두 시 모두 경물을 묘사에 매우 적극적이다. 저번에 『한시미학산책』를 보면 “宋風은 구체적 모습을 형상 ↔ 唐風은 대충 그린 듯하나 여러 번 읽으면 흥감이 듦”라고 당시풍의 시와 송시풍의 시를 대조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어제 수업을 할 때만 해도 의론적인 글을 송시(宋詩), 정경묘사한 글을 당시(唐詩)라고만 생각하여 이규보의 시는 정경묘사에 치중했으니 당시로, 이색의 시는 마지막에 의론을 드러냈으니 송시로 봐야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하지만 저 책에 나온 구절로 보면 위의 시는 어찌 되었던 둘 다 송시(宋詩)로 봐야할 이유가 짙어진다. 눈앞에 사물을 보듯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풀어내는 것을 예전에 교수님은 ‘자연과의 교융’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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