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난 때문에 병들어 죽어간 형수를 그려내다
이 단락에서 가장 빼어난 서술은 “이렇게 20년을 노심초사하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적빈을 면할 수 없어 의기소침해지고 낙담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廿載嘔膓擢髓, 甁槖垂倒, 屈抑挫銷, 無所展施)”라는 대목이다. ‘20년’이란 연암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인 1759년부터 형수가 세상을 버린 해인 1778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문장은, 주부로서 공인 이씨가 살아온 삶과 그녀의 내면적 심리 상황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묘파해내고 있다. 가족과 집안을 위해 죽으라고 일하고 애썼지만 가난은 늘 그 자리에 있어 공인 이씨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혔다는 것. 이 절망감과 좌절감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을 터이다.
“노심초사하여 뼈 빠지게(嘔膓擢髓)”라는 말의 원문은 ‘嘔膓구장’이다. 이 단어는 ‘嘔心抽膓구심추장’이라는 말의 준말인데, 그 원래 뜻은 심혈을 토하고 창자를 뽑아낸다는 뜻이다. 연암은 온 몸을 바쳐 가족을 위해 헌신한 형수를 위해 이 말을 고르고 골라 썼을 터이다. “의기소침해지고 낙담했으나”라는 말의 원문은 ‘屈抑挫銷굴억좌소’이다. 이 네 글자는 평생 가난에 찌든 공인 이씨의 심리 상태를 곡진하면서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屈굴’은 ‘위축되다’라는 뜻이고, ‘抑억’은 ‘억눌리다’라는 뜻이며, ‘挫좌’는 ‘꺾이다’라는 뜻이고, ‘銷소’는 ‘녹아 없어지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이 네 글자는 가난으로 인한 공인 이씨의 좌절감과 절망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소銷’자의 용례로는 넋을 잃다는 의미의 ‘소혼銷魂’, 삭아 없어진다는 뜻의 ‘소잔銷殘’, 녹아 없어진다는 뜻의 ‘소훼銷毁’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는데, 이들 용례에서 짐작되듯 이 ‘소’자는 절망감으로 마음이 소멸되어 버릴 것만 같은 심리 상황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마음과 몸은 둘이 아니니,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을 악화시켜 몇 년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일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리라. 이렇게 본다면 공인 이씨는 가난 때문에 몸과 마음에 골병이 들어 죽은 셈이다. 연암은 형수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 객관적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비통한 마음을 억누른 채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리얼리스트로서의 연암의 면모가 이런 데서 잘 드러난다 할 것이다.
죽어가는 공인 이씨의 심리 과정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놓은 연암의 예리한 필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 다음 문장, 즉 “매양 낙엽이 지고 추워지는 가을이면 형수님은 더욱 실망하고 낙심하여 병이 더욱 도졌다”라는 문장에 대해서도 깊은 음미를 요한다. 이 문장에서 특히 “더욱 실망하고 낙심하여”라는 말에 눈을 줄 필요가 있다. 이 말의 원문은 ‘廓然霣沮확연운저’다. ‘霣沮운저’는 실망하거나 낙담한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문제는 그 앞의 ‘廓然확연’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원래 ‘휑뎅그렁하다’ ‘텅 비다’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삶에 대한 의지나 희망이 소진된 공인 이씨의 마음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연암은 바로 이 두 글자로써 희망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공인 이씨의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무섭지 않은가? 이토록 예리한 연암의 필치가, 연암의 글이 남다르다고 하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 전문
인용
10. 유언호가 명을 짓다
1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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