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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형수님 묘지명 - 7. 에피소드를 삽입시켜 글에 생기를 불어넣다 본문

책/한문(漢文)

형수님 묘지명 - 7. 에피소드를 삽입시켜 글에 생기를 불어넣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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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에피소드를 삽입시켜 글에 생기를 불어넣다

 

나는 화장산華藏山[각주:1]의 연암골에 새로 터를 잡아 그 산수를 어여삐 여기며 손수 가시덤불을 베어 내 나무 곁에다 집을 세웠다.

趾源新卜居華藏山中燕岩洞, 樂其水石, 手剪荊蓁, 因樹爲屋.

 

언젠가 형수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형님이 연로하시니 장차 저와 함께 시골에서 사셨으면 합니다. 담을 둘러 천 그루의 뽕나무를 심고, 집 뒤엔 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고, 문 앞에는 천 그루의 배나무를 심고, 시냇가에는 천 그루의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으렵니다. 못에는 한 말 가량 치어稚魚를 풀어 놓고, 바위 절벽 밑에는 벌통 백 개를 놓아두며, 울타리 사이에 소 세 마리를 묶어 두렵니다. 제 처가 길쌈할 때면 형수님께선 그저 계집종이 기름 짜는 일이나 살펴 제가 밤에 옛 사람의 글을 읽을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甞對恭人言: “我伯氏老矣, 行當與弟偕隱. 繞墻千樹種桑, 屋後千樹栽栗, 門前千樹接梨, 溪上下千樹桃杏, 三畝陂塘, 一斗魚苗, 巖崖百筒蠭, 籬落之間, 繫牛六角, 妻績麻, 嫂氏但課婢趣榨油, 夜佐叔讀古人書.”

 

그 당시 형수님은 병이 몹시 위독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손으로 머리를 가누고선 한 번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는 제 오랜 꿈인 걸요

그래서 밤낮 오시기를 바랐건만 그해 벼가 채 익기도 전에 형수님은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恭人時雖疾甚, 不覺蹶然起, 扶頭一笑謝曰: “是吾宿昔之志.” 所以日夜望, 其同來者甚殷, 禾稼未熟, 而恭人已不可起矣.

 

마침내 운구하여 그해 910일 집 북쪽 동산의 서북쪽을 등진 묏자리에 장사지내니, 형수님의 뜻을 이뤄 주기 위해서다. 그 땅은 황해도 금천에 속한다.

竟以柩歸, 以其年九月十日, 葬于舍北園中亥坐之兆, 所以成恭人之志也. 地系海西之金川.

이 단락에 이르러 문세文勢가 갑자기 전환된다. 앞의 1~7편까지의 서술이 진술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이 단락의 서술은 묘사적이다. 그 언어는 형상적이고, 이미지는 뚜렷하다. 연암은 자신과 형수 둘 사이에 있었던 어떤 에피소드를 말하고 있다. 이처럼 글의 특정한 단락에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것은 연암 글쓰기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에피소드의 적절한 활용은 글을 생기 있게 만든다. 그렇다고 에피소드를 마구 늘어놓기만 한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건 아니다. 연암은 일반적 진술로 이루어진 단락과 에피소드적 진술로 이루어진 단락을 잘 안배해 글을 구성함으로써 글의 문예미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동아시아의 문장가 가운데 에피소드나 일화를 잘 활용해 글을 쓴 최초의 인물은 아마도 사마천이 아닐까 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일화나 에피소드를 통해 특정 인물의 개성과 본질을 생생하고도 예리하게 그려 낸 것으로 정평으로 나 있다. 사마천의 이런 글쓰기 방식을 계승한 문학 장르는 이다. ‘은 오늘날의 전기傳記와는 달리 대체로 아주 짧은 분량의 글인데, 한두 개 내지 두어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대상 인물의 성격적 특질과 인간적 본질을 극히 압축적으로 포착해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연암이 에피소드나 일화를 잘 활용한 데에는 사마천의 영향이 없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연암은 비단 이라는 장르에서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장르의 글에서 에피소드와 일화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묘지명에는 보통 에피소드를 서술하지 않는 법인데 연암의 이 묘지명은 그런 법식을 따르지 않고 있으며, 이 점에서 파격적이다. 연암은 글쓰기에서 늘 법고창신法古創新(옛날 것을 배워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말)’을 강조했는데, 이 역시 법고창신이라 할 만하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형수의 아버지가 형수를 보러 자주 찾아오다

2. 생활고에 병에 걸린 형수님을 부모처럼 모시다

3. 청빈의 가풍 때문에 엄청 고생한 큰 형수

4. 주부로 두 번의 상을 치르다

5. 가난 때문에 병들어 죽어간 형수를 그려내다

6.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가정살림을 돌보다

7. 에피소드를 삽입시켜 글에 생기를 불어넣다

8. 형수를 위로하려 연암협을 미화하다

9. 형수님은 연암협에 가지 못하고 돌아가셨네

10. 유언호가 명을 짓다

11. 총평

 

  1. 화장산華藏山: 황해도 금천의 산 이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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