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가 말하는 인의예지와 효
잠깐 앞서 얘기했던 ‘효의 담론화’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공자에게 맹무백(孟武伯)이 효를 물었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효’가 사회적 담론으로서 개념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論語)』 「위정편」에 보면 제5장부터 제8장까지 쪼르르륵 ‘맹의 자문효(孟懿子問孝)’, ‘맹무백문효(孟武伯問孝)’, ‘자유문효(子游問孝)’, ‘자하문효(子夏問孝)’라는 식으로 양식화된 질문이 4장을 관(冠)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자 당대에 공자의 말로써 오간 상황이 기록된 것이라고 간주되기는 어렵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라는 기록에서, 아마도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이다’라는 문장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공자의 말로서 공문(孔門) 내에서 전송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 공자의 말을 ‘맹무백문효’라는 담론화된 질문과 연결시킨 것은 이미 효라는 개념이 사회담론으로서 등장한 이후에 이루어진 사태이다. 그것은 공자의 시대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최소한 맹자(孟子)의 시대에나 이르러서 그러한 양식으로 결합되었을 것이다. 맹자는 효를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인간의 내면적 덕성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인간의 행위라고 보았다. 효야말로 인의예지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실마리이며, 역으로 말하면 인의예지는 효를 통하여 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효(孝)도 사회화된 규범으로서의 인간의 외면적 행동이 아니라, 인간 내면으로부터 절로 우러나오는 덕성이라고 보았다.
인(仁)의 구체적 표현은 부모를 섬기는 것이다. 의(義)의 구체적 표현은 형의 의로움을 잘 따르는 것이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 효(孝)이며, 형의 의로움을 따르는 것이 제(悌)이다. 인간의 지혜(智)의 구체적 표현이란 바로 이 효제(孝悌)를 깨달아 그것이 나에게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禮)의 구체적 표현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효제(孝悌)를 절도있게 만들고 또 예의바르게 문식(文飾)하는 것이다. 음악(樂)의 구체적 표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효제를 즐기는 것이다. 즐길 줄 알면 효제의 마음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이니 어찌 효제의 마음을 그칠 수 있겠는가! 『맹자』 「이루(離婁)」
仁之實, 事親是也; 義之實, 從兄是也. 智之實, 知斯二者弗去是也; 禮之實, 節文斯二者是也; 樂之實, 樂斯二者, 樂則生矣; 生則惡可已也.
인ㆍ의ㆍ예ㆍ지ㆍ악 오자(五者)의 주요 덕목을 효제(孝悌)로써 설명하는 맹자(孟子)의 인식체계 속에서 이미 효는 충분히 담론화(episteme)되어 있다. 효에 관한 다음의 절실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아주 옛날에는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땅에 묻지를 않고 그냥 버려두는 습속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 그 어버이가 돌아가시자, 그 시신을 들고 가서 야산 구덩이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여우와 살쾡이가 자기 어버이를 파먹으며, 파리와 등에가 새카맣게 모여 빨아먹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흘겨보기는 한들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대저 그 자의 이마에 왜 땀방울이 맺혔을까? 그것은 남들이 보기 때문에, 체면 때문에 땀방울이 맺힌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 깊은 감정이 절로 얼굴과 눈시울에 북받친 것이다. 얼른 돌아와 삼태기와 들것에 흙을 담아 뒤집어 쏟아 시신을 엄폐하였다. 시신을 엄폐하는 것이 진실로 옳은 행동이라고 한다면, 효자(孝子)와 인한 사람(仁人)이 부모의 시신을 엄폐하는 방식에 있어서 반드시 도리가 있을 것이니, 그냥 흙이나 덮고 말 리는 없다(후한 장사를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등문공(滕文公)」
蓋上世嘗有不葬其親者. 其親死, 則擧而委之於壑. 他日過之, 狐狸食之, 蠅蚋姑嘬之. 其顙有泚, 睨而不視. 夫泚也, 非爲人泚, 中心達於面目. 蓋歸反虆梩而掩之. 掩之誠是也, 則孝子ㆍ仁人之掩其親, 亦必有道矣.
맹자(孟子)의 논리는 매우 강렬하다. 외면적으로는 발생론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논리를 펴고 있지만, 그것이 소기하는 바는 내면주의적이고, 선천주의적이며, 강렬하게 도덕주의적이다. 이것은 맹자(孟子)가 ‘효(孝)’를 담론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등문공」의 문장도 묵가(墨家)의 박장(薄葬)을 의식하면서 논쟁의 한 테제로서 반박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미 효가 선진철학의 한 중심과제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孟子)』라는 서물 속에서 이러한 효에 관한 언급은 무수히 찾을 수 있으나, 내면주의적이고, 선천주의적이며, 도덕주의적인 입장을 맹자(孟子)는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맹자보다 한 반세기 늦다고 사료되는【전목(錢穆)의 『선진제자계년(先秦諸子繫年)』에 의거】 순자(荀子)의 논의는 맹자(孟子)와 전혀 길을 달리하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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