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장정의 의미
사실 나는 공자에 대하여 너무 많은 말을 하였다. 독자들이 나의 편견의 전제가 없이 『논어』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 같아 송구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의 선이해(先理解, Pre-Understanding)를 밝혀 놓는 것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편견을 제공하지 않는 첩경이라는 것이 나의 소신이었다.
공자의 생애에 관한 세간의 논의는 문자 그대로 한우충동(汗牛充棟)이다. 공자의 ‘거로(去魯)’【노나라를 떠나 유랑의 길을 밟게 됨】에 대한 의견도 한없이 분분하다. 이러한 사견들을 여기 조정하여 다시 나의 사견을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확실한 것은 거로를 계기로 이루어진 14년간【이것도 정확한 루트와 연수는 학자들에 따라 분분하다】의 유랑의 길이 그에게 어떤 중요한 삶의 각성을 주었다는 것이다. 14년간의 망명의 길은 마오 쩌똥(毛澤東, 1893~1976)의 ‘장정(長征)’에 비유할 수도 있는 고난의 길이었다. 이 고난의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반한 사람은 단지 자로(子路)와 안회(顔回), 두 사람뿐이었다. 자공(子貢)과 염유(冉有)도 동반했지만 그들은 들락거렸다. 14년간의 망명의 삶은 인간 공자에게 있어서 최종적인 도전이었고 궁극적인 비상이었다. 그리고 그의 삶의 인식을 크게 전환시켰다.
예수에게 있어서 40일간의 광야의 고난과 굶주림은 돌을 모두 떡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모두 떡덩이로 만들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돌을 떡으로 만든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현실적 욕구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첩경이었을 것이다.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의 기본적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한 예수의 독백은 모든 신비주의를 거부하는 명쾌한 해답이자, 그것은 긴박한 현실주의를 거부하는 명료한 자기신념의 관철이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 4:4).”
14년간의 망명의 최종적 의미는 공자에게 있어서 삶의 좌절이었다. 공자는 결코 자기의 이상을 실현해줄 수 있는 현세적 군주를 만나지 못했다. 『논어』의 첫머리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는 말로 시작하고, 또 『논어』의 마지막은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라는 말로 끝나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회한과 통탄이 숨어있는가 하면, 그러한 좌절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고 하는 수미일관된 어떤 테마를 감지할 수가 있다. 14년간의 유랑을 점철하는 기대와 좌절의 숨가쁜 연속은 공자에게 심오한 깨달음을 주었다. 그것은 자기 이상(理想)의 긴박한 현실적 실현의 꿈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단순한 타협이나 양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상의 환영의 거품, 그 자체의 말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상의 포기가 아닌, 이상의 비상이었다. 정치적 실현이 아닌 인문의 이상을 통하여 새로운 문명의 축을 구축할 수 있다고 하는 미증유의 신념이었다. 그 비상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죽음의 체험이었다. 광(匡)에서의 구류, 송(宋)에서의 박해, 진(陳)ㆍ채(蔡)에서의 두절과 굶주림 …… 이 모두가 끊임없는 삶과 죽음의 기로였다.
공자의 삶은 죽음의 세계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죽음의 세계를 탈출하여 삶의 세계로 진입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자기존재에 대한 자의식이 생기고 난 후부터 공자는 철저히 삶의 의미를 물었다. 자기가 오늘 여기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그 현실적 의미를 확실히 알고 싶어했다. 그 현실적 의미의 전부를 그는 한때 정치적 실현(political realization)에 두었다. 그러나 14년간의 유랑을 통해 그는 다시 ‘죽음의 세계’를 체험한다. 그가 다시 체험한 ‘죽음의 세계’는 더 이상 송인(宋人)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소인유(小人儒)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 속에 현존하는 죽음의 새로운 의미였다. 삶이라고 하는 것을, 죽음을 포괄시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새로운 자각이었다. 삶과 죽음이 새로운 하나의 지평으로 융합되는 사문(斯文)의 세계였다.
그것은 그윽히 넓고 깊은 무한한 생명의 발출이었다. 그는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정치적 실현이 아닌 인간정신의 내면적 고양의 새로운 계기들을 발견한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전세계 인민의 상당수가 죽음을 빙자한 신화적 종교관에 삶의 모든 가치를 투여하고 있는 인류의 현실을 개관할 때, 공자의 이러한 자각은 아직도 인류에게 구원한 미래적 이상인 것이다.
14년간의 유랑이란 외면적으로 관찰하면 계씨에 대한 반항에서 계씨에 대한 굴복으로 끝난 매우 평범한 정치적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유랑의 세월을 통해 공자는 진정한 성인으로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자유인으로서 비상하였던 것이다. 그가 다시 노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정치적 꿈을 꾸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만인에게 ‘국부(國父)’ 이상의 외경의 대상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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