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 제일(學而 第一)
편해(篇解)
『논어』의 편명이 언제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는 그 누구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각편마다 성립시기가 다르다는 사실로 미루어, 각편에 이미 편명이 붙어 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최초의 글자 두 개를 떼어내는 편명 결정방식이 20편에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으므로 『논어』라는 서물의 총편집체제를 확정지을 때에 편명(篇名)도 일괄적으로 결정되었을 것이다. 형소(邢疏)가 그러한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제자들이 논찬하던 때에 논어(論語)로 이 책의 이름을 삼았다. ‘학이(學而)’ 이하는 그 편의 소제목으로 삼았다[當弟子論撰之時, 以論語爲此書之大名. 學而以下, 爲當篇之小目]】.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문장에서 ‘학이(學而)’를 떼어낸다는 것은 플룩수스(Fluxux)【플럭서스(FLUXUX):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 소멸되는 동적인 예술 플럭서스는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로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주로 독일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국제적 전위 예술의 운동이다. 1960년 무렵 전통적인 예술형식과 스타일을 벗어난 예술가들의 생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계획되었던 '잡지의 제목'으로서 매키어너스가 선택한 단어다.】 예술과도 같은 콘템포러리(contemporary)한 발상이다. 기호적 약속이상의 그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관자(管子)』의 첫 편의 이름은 「목민(牧民)」이요, 『장자(莊子)』의 첫 편의 이름은 「소요유(逍遙遊)」다. 이것은 곧 그 편의 내용의 테마를 전체적으로 의미있게 나타낸 것이다. 『논어』의 편명과는 사뭇 다르다. 『논어』가 이렇게 편명이 자의적인 기호체계가 된 것은 아마도 그 내용이 단편들(fragments)의 꼴라쥬며, 그 단편들 사이에 통일적 성격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팔일(八佾)」편과 같이 아주 균일하게 ‘예악(禮樂)’이라고 하는 테마를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의도적으로 편집된 경우도 있다. 공문에 전승되어 온 예악에 관한 전송(傳誦) 자료가 집중적으로 편집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명백한 주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파편에서도 어떤 내면의 필연성이나 통일성이 충분히 감지될 수 있다. 카오스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카오스적인 단편 속에서 우리는 코스모스적 질서를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학이(學而)’와 같은 편명도 단순히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러한 편명을 만들기 위하여 그 파편을 머리에 놓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논어』는 결코 ‘우발적 집적’이 아니라 ‘치밀한 편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학이(學而)’와 같은 식의 편명작법의 예는 『시경』과 『맹자』에서도 발견된다.
「학이」편은 얼핏 보기에는 『논어』의 첫머리를 관(冠)하는 편으로서는 부적격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제1장의 공자말을 빼놓으면, 대부분이 진부하고 도식화된 공자의 후기제자들의 말들이다. 유자(有子)의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니, 효제(孝弟)야말로 인지본(仁之本)이다 하는 따위의 말들은 너무 개념적이고 조작적이며, 살아있는 공자의 생생한 모습을 전혀 전달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학이편이 천하제일지서 (天下第一之書)인 『논어』의 관(冠)을 차지하는 바람에 『논어』에 대한 인상이 도식화된 가족주의적 규범윤리, 그리고 복종만을 강조하는【범상(犯上)은 안된다】 권위주의적 노모스(nomos)로서 왜곡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조선조 유생들의 통폐가 그 의도가 잘못 전달될 수밖에 없었던 『논어』의 체계에서 유래된 것일 수도 있다.
브룩스는 이 편을 『논어』 전편 중에서도 비교적 후대에 성립한 것으로 보아 「위령공」 제15와, 「계씨」 제16 사이에 집어넣고 있다. 그러나 브룩스의 연대기적 재배열은 임의적일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논어』의 이해를 돕지 않는다. 그보다 우리가 먼저 선행시켜야 할 작업은 『논어』의 현재 모습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충실한 이해이다. 그리고 그 이해의 심도로부터 『논어』의 성립과정과 유교라는 새로운 사상운동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제1장의 공자말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은 공자가 한 장소에서 한 번에 한 말처럼 이해될 수도 있지만, 세 주제가 각기 따로 전승된 것을 한 군데로 모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不亦…乎?’라는 후렴형식을 통일시켜 일관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 마디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부지이불온’이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공자의 생애에서 가장 큰 깨달음인 동시에 공자의 말년학단에서 가장 중시한 군자(君子像)의 핵심적 덕성을 형성하는 테마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1장의 ‘인부지이불온’은 제16장의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와 수미일관(首尾一貫)한 테마를 형성한다. 이와 같이 「학이(學而)」편 이 전혀 잡스러운 것 같지만 이미 통일적 주제의 감각 속에서 편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그 통일적 주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군자의 덕성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군자의 덕성이 여기 이렇게 중심테마로 부상되었으며 그것이 왜 이 『논어』라는 서물의 머리를 장식하게 되었는가?
바로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우리는 「학이」편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이」는 모두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반인 8장이 ‘자왈(子曰)’로 시작되는 간결한 공자말이며, 나머지 8장은 유자(有子), 증자(曾子), 자하(子夏), 자공(子貢)의 말로써 구성되어 있다. ‘자왈’로 시작된다는 것 자체가 공자의 직제자(弟子)들이 들은 공자의 말이 후대에 전송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이 장은 앞서 「서설」에서 정자(程子)의 말이 있었듯이 유약(有若)과 증삼(曾參)을 자(子)로써 높혀 부르는 로기온자료들이 들어가 있으므로 유자와 증자의 문인, 즉 유자와 증자를 떠받드는 노나라 공문학단 내에서 편집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자문하와 증자문하가 공동으로 이것을 편집했을 수는 없다. 나이 많은 유자는 초기에는 공문에서 유력시되었지만, 나중에 결국 나이 어린 증삼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고 증삼문하가 공문의 주축을 이루게 되었으므로 이 학이편은 증자문하에서 편집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자기 선생만을 높일 수 없으므로 공자의 말년에 활약한 다른 고제자들의 말씀을 같이 편집했을 것이다.
그런데 편집태도를 보면 ‘자왈’로 시작되는 로기온들과 공문 직제자들의 로기온들을 따로따로 한꺼번에 묶은 것이 아니라, 자왈로 시작된 로기온이 하나 나오고 그 뒤로 자왈의 내용과 관련된 한두 개의 직제자 로기온들이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심축은 다양한 공자사상의 테마들을 전하는 로기온자료들이며, 그것을 보조ㆍ보강하기 위하여 자기 스승들(공자의 직제자)의 말씀들을 첨가한 것이다. 과연 이러한 편집의 목적은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공자가 말년에 수립한 ‘군자상’과 그 덕목을 누구에겐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자가 죽은 후에도 공자의 학단은 활발히 유지되었다. 공자가 죽은 것은 애공 16년, BC 479년이다. 그리고 노나라는 초나라 고열왕(考烈王)이 멸망시키기까지 존속되었다. 마지막 임금 경공(頃公)은 변읍(卞邑)으로 도망가서 평민이 됨으로써 종묘사직을 단절시켰다. BC 249년의 일이다. 그러니까 공문학단은 최소한 BC 479~249년까지 230년 동안은 활발히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이 곡부를 직접 방문하였을 때도 ‘유생들이 때에 맞추어 공자집에서 예를 익히고 있어, 경모하는 마음이 우러나 머뭇거리며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諸生以時習禮其家, 余祗迴留之不能去云].’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한 무제(武帝) 때까지도 학단의 모습이 유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학단은 공립ㆍ관립학교가 아니다. 그것은 사립학교이다. 사립학교에 학생들이 왜 오는가? 학비를 부담하면서 학생들이 공문에 입학할 때에는 무엇인가 세속적 기대치가 있을 것이다. 그 세속적 기대치라는 것은 결국 시ㆍ서ㆍ예ㆍ악을 익혀 지식인이 되고,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곧 벼슬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이(學而)」편은 공문에 들어오는 학도들에게 ‘선비[士]에로의 길’이 군자(君子)가 되는 것이지, 정치권력에로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배움이 아니라는 공자의 ‘삶의 철학’을 선포하기 위하여 편집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선포에 적합한 공자의 말을 제1장에 내걸고, 그에 관련된 테마들을 전개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학이」는 공문학교의 학칙(學則)과도 같은 성격을 띄는 것이다. 공자의 호학, 즉 배움의 기쁨을 앞에 내걸고, 그 배움의 희열이 남이 알 아주기를 기다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즉 정치적으로 기용이 되지 않더라도, 후회나 분노나 부끄러움이 없는 내면의 덕성을 함양하는 데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선포에 관련되어 유자가 말하는 군자의 무본(務本)이 제2장에 나온다. 그 무본과 더불어 인지(仁之本)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에 다시 제3장에 인(仁)을 초심자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다. 인(仁)이란 그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도덕주의적 개념이기에 앞서 교언영색(巧言令色)【말을 교묘하게 요리 조리 잘 돌려 말하고, 외관을 꾸미는 허례허식】이 없는 삶의 태도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공문에 들어온 학도들은 말을 잘해서 웅변의 재사가 되고 외관을 잘 꾸며 근사하게 보이는 미인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더듬더라도, 외관이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내면의 확고한 덕성을 갖추는 군자가 될 것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해 나가면 학이편 전체가 수미일관된 테마를 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필연적, 유기적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학이」편의 내용은 공문학칙의 대강을 담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19편에 반복하여 나오는 구절이 많고, 중요한 테마들이 집약되어 있기 때문에 『논어』라는 서물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학이편이 초심자들을 향한 훈화적 성격이 강해 규범윤리적 색채가 짙음에도 불구하고 『논어』의 관(冠)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논어』는 본시 몽따쥬나 미장센의 기법으로 편집된 것이기 때문에 그 행간의 여러 가지 사유의 갈래를 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들에 게만이 그 유기적 일관성을 드러내는 비곡(秘曲)의 선율을 간직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 편은 『논어』라는 책의 머리편이 된다. 그러므로 기록한 내용이 근본을 힘쓰라고 당부하는 뜻이 많다. 이것은 도(道)로 들어가는 문(門)이며, 덕을 쌓아갈 수 있는 기초에 해당되는 것이니, 배우는 자들이 가장 먼저 힘쓸 것들이다. 전체가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此, 爲書之首篇. 故所記多務本之意, 乃入道之門, 積德之基, 學者之先務也. 凡十六章.
이것은 주자가 본문주석에 들어가기 전에 이 편의 대강을 논한 것이다. 짧은 말이지만, 전체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다. 얼마나 구체적으로 주자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앞서 설명한 내용 과 상조(相照)하여 보면 그 뜻이 잘 드러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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