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김시습은 또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는데
그러나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부인 안씨가 죽자, 의지할 곳이 없어진 김시습은 1483년 나이 49세 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방랑의 길에 나섰다. 1482년에 일어난 폐비윤씨(廢妃尹氏) 사건이, 현실세계의 결함상을 다시금 환기시킨 까닭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강릉ㆍ양양 설악 등지를 두루 여행했다. 유학의 경전과 다른 고전들을 지방 청년들에게 가르치기도 하고 시와 문장을 벗삼아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냈다.
1486년에 양양 부사로 부임한 유자한(柳自漢)은 그에게 가업을 일으키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나 김시습은 사양하였다. “선비는 세상과 모순되면 은퇴하여 스스로 즐기는 것이 그 본분이거늘, 어찌 남의 비웃음과 비방을 받아가며 억지로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그 이유였다. 유자한은 생년을 알 수 없으나, 1504년의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배소(配所)에서 죽은 문인이다.
김시습은 그 뒤 관동 지방을 떠나 방랑 끝에 1493년에 홍산(鴻山)의 무량사(無量寺)에서 병을 얻어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감하였다.
김시습은 늙어서의 초상과 젊어서의 초상을 손수 그려두고 스스로 찬(贊)을 지었다. 활자본 『매월당집』 권19에 「초상화 찬[自寫眞贊]」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俯視李賀 優於海東 | 이하(李賀)를 내리깔아 보아, 해동에서 최고라고들 말하지. |
騰名謾譽 於爾孰逢 | 격에 벗어난 이름과 허랑한 명예 네게 어이 해당하랴? |
爾形至眇 爾言大侗 | 네 형용은 아주 적고 네 말은 너무도 지각 없다. |
宜爾置之丘壑之中 | 너는 의당 네 몸을 구학 속에 두어야 하리. |
당시 사람들은 김시습의 재능을 중당(中唐) 때의 시인 이하(李賀, 790~816)에 견주었던 것 같다. 이하는 27세의 짧은 생애 동안 주로 귀(鬼)를 중심으로 한 환상적인 시들을 남겨서 귀재(鬼才)라고 불리운다. 귀계(鬼界)의 시인이라는 뜻이다. 그는 비애감과 염세관을 시로 담아냈으며, 일상생활의 보편적 경험보다도 개인적 정감을 토로하는 데 주력하였다. 김시습은 일상생활의 보편적 경험을 노래하기보다도 현실의 결함상을 음울하게 응시하였다는 점에서 이하와 통하는 면이 없지 않다. 더구나 『금오신화(金鰲新話)』는 귀계를 들여다보는 자의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하의 음산하고 기괴한 환상과 견주어질 만한 요소를 지닌다. 물론 그 함의는 전혀 다르지만.
인용
1. 『금오신화』란?
2. 김시습
1) 김시습의 삶을 알 수 있는 자료로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2) 김시습의 어릴 적은
5) 김시습이 환속하여 서울 근교에서 생활하기로 한 것은
6) 세간의 영욕에서 벗어나
8) 에필로그
3. 판본의 문제
3) 『금오신화』를 목판으로 처음 간행한 윤춘년은 어떤 인물인가
5. 『금오신화』의 다섯 이야기는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7. 『금오신화』가 담고 있는 문학적ㆍ철학적 메세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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