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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심경호,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고뇌, 『금오신화』 - 9. 김시습의 저술로는 어떠한 것이 있었나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심경호,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고뇌, 『금오신화』 - 9. 김시습의 저술로는 어떠한 것이 있었나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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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김시습의 저술로는 어떠한 것이 있었다

 

 

김안로의 용천담적기6에 보면, “매월당은 금오산에 들어가 책을 써서 석실(石室)에 넣어두고 이르길,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入金鰲山 著書藏石室 曰後世必有知岑者]”라는 기록이 있다. 남효온의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에는 매월당이 쓴 시는 수만여 편에 이르지만, 널리 퍼져 나가는 동안에 거의 흩어져 사라져 버렸고, 조신(朝臣)과 유사(儒士)들이 몰래 자기의 작품으로 삼았다라는 기록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21 ‘경주부 용장사조항에서는 김시습의 저술로 매월당시집금오신화(金鰲新話)이외에 역대연기(歷代年記)를 열거하였다.

 

또한 권문해의 대동운부군옥14에 의하면, 김시습의 작품으로 금오신화(金鰲新話)이외에 임천가화(林泉佳話)가 있어, ‘본집에 들어있다고 하였다. 현전하는 활자본 매월당집에는 임천가화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허목(許穆, 1595~1682)미수기언(眉叟記言)에서는 매월당의 저작에 사방지(四方志)1,600편과 기산(紀山), 기지(紀志)200편이 있으며 따로 시권(詩卷)이 있다라고 하였다. 사방지사유록(四遊錄)이 별행(別行)된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기산기지는 별행된 시권을 말하는지 확실치 않다.

 

1669년에 민주면(閔周冕)동경지(東京誌)를 개수하여 편한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사유록태극도설(太極圖說)두 책의 판목이 경주 정혜사(淨惠社)에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동경지의 기록을 계승한 듯하다. 태극도설매월당집의 잡저에 수록되어 있는 태극설과 같은 내용이었으리라 추정된다. 동경잡기에는 매월당은 성리(性理)ㆍ음양(陰陽)ㆍ의복(醫卜) 등 백가(百家)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문장이 호한(浩汗)하고 거리낌 없다. 그의 저서 중 매월당시집역대연기금오신화(金鰲新話)등이 세상에 널리 행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도 동경지의 기록을 계승한 것이다.

 

이상의 문헌 기록으로 볼 때 김시습의 매월당시집·매월당시사유록(사방지)기산기지태극도설역대연기금오신화(金鰲新話)임천가화(林泉佳話)등이 각기 단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김시습 문집의 간행을 처음 주청한 인물은 이세인(李世仁, 1452~1516)이었다. 그는 김시습이 죽은 지 18년 뒤인 1511315일에 김시습 문집의 간행을 주청하였는데, 중종이 윤허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김시습의 문집이 간행된 것 같지는 않다. 10년 뒤인 1521년에 이자는 매월당집서문을 쓰면서, 자신이 10년간에 걸쳐 김시습의 문집 3권을 수습하였다고 적었다.

 

그리고 1582년 가을에 이르러 선조가 당시 대제학이었던 율곡 이이에게 김시습의 전기를 쓰게 하였다. , 선조수정실록16에는 선조 154~5월 기사에 그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계절에 차이가 있다. 어쨌든 선조는 1582년에, 이자ㆍ윤춘년이 수집하였던 김시습의 유고를 운각(芸閣), 즉 교서관에서 인쇄해 내게 하였다. 그 결과 이듬해 이산해가 서문을 쓴 재주갑인자본 매월당집2311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 활자본에 대하여는 갑인자가 아니라 경진자라는 설이 있다. 이 책은 국내에 낙질로 전하고, 일본 호사분코(蓬左文庫)에 완질이 전한다. 그리고 이 활자본에 보유편을 붙인 신활자본이 1927년에 김시습의 후손 김봉기(金鳳起)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그밖에 매월당시사유록이 따로 목판본으로 간행된 것이 전한다. 또한 송석하(宋錫夏) 님이 소장하였던 필사본 매월당고가 있다. 이 사본에는 문집에 실려 있지 않았던 시편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김시습의 불교 관계 저술로 대화엄일승법계도주십현담요해의 두 책이 목판으로 출간되어 있다. 조명기(趙明基) 님의 소장본이 전한다. 이 두 책은 김시습이 수락산에 있을 때 저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묘법연화경별찬이 명원산고(溟源散稿)에 전한다. 이것은 김시습이 내불당에서 연화경을 번역하던 무렵에 저술된 것 같다. 이밖에 천자여구(千字儷句)명원산고(溟源散稿)에 전한다.

 

김시습의 유고는 윤춘년에 의하여 일단 편찬되었으나, 현전하는 시문집은 선조의 어명으로 교서관에서 재편ㆍ간행한 것이다. 윤춘년은 김시습에 관한 속설을 취하였다고 전하므로, 그가 편찬했던 김시습의 선집에는 유가의 저술과는 다른 시문이 상당수 수록되어 있었을 법하다. 이에 비해 1582년 교서관에서 문집이 재편ㆍ간행되었을 때는 의리충절의 이념을 제시한다는 명목 하에 원래의 시문들이 취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교서관 간행의 문집에는 금오신화(金鰲新話)가 수록되지 않았다.

 

 

 

 

 

 

인용

목차 / 지도

1. 금오신화?

2. 김시습

1) 김시습의 삶을 알 수 있는 자료로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2) 김시습의 어릴 적은

3) 김시습이 방랑하게 된 것은

4) 김시습은 금오산에 정착하고는

5) 김시습이 환속하여 서울 근교에서 생활하기로 한 것은

6) 세간의 영욕에서 벗어나

7) 김시습은 또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는데

8) 에필로그

3. 판본의 문제

1) 조선시대 초기 목판본 금오신화가 발견되었다

2) 금오신화는 언제, 몇 편이 지어졌는가

3) 금오신화를 목판으로 처음 간행한 윤춘년은 어떤 인물인가

4. 금오신화의 텍스트로는 또 어떤 것들이 있나

5. 금오신화의 다섯 이야기는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6. 금오신화가 창작된 배경은 무엇일까

7. 금오신화가 담고 있는 문학적ㆍ철학적 메세지는 무엇인가

8. 금오신화는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9. 김시습의 저술로는 어떠한 것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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