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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이토 진사이 - 의사의 길을 거부하고 유학자가 된 소년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이토 진사이 - 의사의 길을 거부하고 유학자가 된 소년

건방진방랑자 2022. 3. 8.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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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길을 거부하고 유학자가 된 소년

 

 

어느 집안에 총명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온 가족은 장남으로 태어난 그 아이에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물론 그 아들이 출세하여 집안을 빛내주고 경제적으로도 지켜주길 원했지요. 가족은 아이가 당시 가장 안정적인 직업으로 인정받던 의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가족의 바람을 충족시키는커녕 도리어 어린 시절부터 철학에 깊이 빠져 위대한 사상가들의 책만 가까이합니다. 가족이 몹시 당황스러워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래서 가족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까지도 아이를 불러 야단치고 훈계하면서 철학을 포기하고 의학으로 진로를 돌리라고 무던히도 타이릅니다. 그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는 꿋꿋하게 자신이 원했던 철학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바로 1600년대 일본 교토(京都)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조숙한 아이는 훗날 일본 고학(古學)이라는 새로운 유학의 학풍을 창시한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입니다.

 

진사이는 16세에 처음으로 주희사서집주를 읽었을 때, 그 책을 단지 훈고학적인 저술이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러다가 19세에 주희가 늙은 스승 이통에게서 배운 가르침을 정리한 책 한 권을 읽게 됩니다. 그 책은 바로 유명한 연평답문(延平答問)이었습니다. 여기서 연평(延平)이란 주희의 스승 이통의 호를 의미하지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진사이는 마침내 주희의 사서집주가 단순한 훈고학적인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성인이 되려는 주희의 신유학적 목표가 사서(四書)를 해석하는 가운데 녹아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진사이는 앞으로 주희의 사유를 충실하게 따르리라 다짐합니다. 한때 그가 얼마나 주희의 사상에 매료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27세의 청년 진사이는 스스로 자신의 호를 교사이(敬齋)’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곧 그가 경() 공부로 상징되는 주희의 함양(涵養) 공부와 이를 뒷받침하는 주희의 형이상학적 본성론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교사이란 호는 다름 아닌 경 공부를 상징하는 것이니까요.

 

성인(聖人)이 되려는 주희의 공부법은 크게 두 가지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자기 내면의 본성을 밝히는 내향적 공부법[未發涵養]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외향적 공부법[致知格物]입니다. 전자가 경 공부였다면, 후자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공부였습니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왕수인은 격물치지를 곧이곧대로 따르다가 주희를 비판하게 됩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이치가 있다고 보고 그 이치를 찾는 것이 바로 주희의 격물치지 공부였습니다. 왕수인은 관청에서 자라던 대나무의 이치를 탐구하다가 7일 만에 병이 들었고, 마침내 주희의 격물 공부에 대해 회의하게 됩니다. 이런 왕수인의 경우와 달리, 진사이는 주희의 격물 공부가 아닌 경 공부를 곧이곧대로 따르다가 주희의 사상을 비판하게 됩니다.

 

주희의 경 공부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때 자신의 마음을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고요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공부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진사이는 너무 지나치게 경 공부에 집중해 발작까지 일으키는 심각한 신경증을 겪어야 했습니다. 분명 혼자 있을 때라면 경 공부를 통해 마음을 고요하고 깨끗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신의 마음을 명경지수처럼 고요하게 유지하기가 어렵겠지요. 오히려 마음이 상대방에 따라 격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경험을 겪은 진사이는 다시 혼자 경 공부를 수행했지만, 타인과 만나면 또다시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수차례 경험합니다. 이처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경 공부에 몰두한 그는 결국 심각한 절망과 신경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29세에서 36세에 이르는 동안 심각한 정신적 질병과 싸우면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성인이 되려는 진사이의 마음이 변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은둔 시기에 진사이는 주희가 제안했던 방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통찰을 얻게 되고, 이로부터 성인이 되는 새로운 방법을 숙고하게 됩니다. 마침내 8년에 가까운 은둔 생활을 끝낸 그는 교사이라는 호를 버리고, 공자의 인()을 나타내는 진사이(仁齋)’로 바꾸면서 자신의 사유가 전회(轉回)했음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분명하게 공표합니다. 그는 주희의 경 공부를 폐기하고 대신 공자의 인과 맹자측은지심(惻隱之心)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진사이는 타인과의 구체적인 관계에서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확장하면 충분히 공자가 말한 인자(仁者), 즉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지요. 진사이의 유학 사상을 고학(古學)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는 주희가 집대성한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을 넘어서 공자와 맹자의 원래 유학 정신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진사이의 이런 정신이 가장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책 하나가 바로 어맹자의(語孟字義)입니다. 글자 그대로 이 책은, 논어맹자에 기록되어 있는 공자와 맹자의 진정한 뜻을 자신이 밝히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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