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학의 집대성자
정약용은 자신의 묘지명을 직접 쓰기도 했습니다. 바로 유명한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입니다. 이 묘지명에서 정약용은 “육경(六經)과 사서(四書)로 자신의 몸을 닦고, 일표(一表)와 이서(二書)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린다”고 역설했습니다. 정약용 본인의 포부를 들어보면, 그는 자기 수양을 위한 경학(經學)과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경세학(經世學)을 모두 중시했음을 알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정약용의 경세학은 근본으로서의 경학에 그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는 경학과 경세학을 본말(本末)의 관계, 다시 말해 근본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기도 했으니까요.
여기서 경학이란 유학 경전들에 대한 주석학적 연구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수많은 유학자들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주석을 통해서만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세상에 피력할 수 있었습니다. 주희도 『사서집주』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사유를 밝히지 않았습니까? 정약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유학 경전들에 대한 독창적인 주석서를 씀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새로운 철학적 입장을 밝힐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정약용의 경학 저서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약용의 경학, 즉 그의 철학 체계에 대한 연구가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정약용의 철학 체계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유 경향들이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첫째는 주자학의 완성자인 주희의 사유이고, 둘째는 서학을 동아시아에 유포시킨 마테오 리치의 사유이며, 셋째는 일본에서 실존적으로 주희의 사유를 극복하려고 했던 고학파 유학자 이토 진사이와 오규 소라이의 사유입니다. 정약용은 바로 이 세 가지 부류의 사유 경향들을 비판적으로 종합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 체계를 세우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자신의 새로운 사유 체계를 통해 유학 경전들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과거에 주희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차피 공자와 맹자의 유학 사상에 자신의 독창적인 사유를 연결시키려면, 유학자들은 유학 경전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약용의 사유를 음미해보려는 독자들은 그가 남긴 경학 저술들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그의 경학 저술들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주희가 사서로 규정한 『논어』ㆍ『맹자』ㆍ『중용(中庸)』ㆍ『대학(大學)』에 대한 정약용의 주석서, 다시 말해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ㆍ『맹자요의(孟子要義)』ㆍ『중용자잠(中庸自箴)』ㆍ『대학공의(大學公議)』 등입니다. 이 밖에도 매우 중요한 저술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 이제 정약용의 사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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