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금오신화(金鰲新話)』
김시습(金時習)에 대한 긍부정의 평가(評價)
김시습(金時習)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같이 공존하고 있다. 허균(許筠)의 물음에 답한 이퇴계(李退溪, 1501~1570)의 주장에서 다음과 같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매월당(梅月堂)이 일종의 이인(異人)으로 색은행괴(索隱行怪)한 무리에 가까운데 마침 그러한 때를 만나 고절(高節)을 이루었을 뿐이며, 「여유양양서(與柳襄陽書)」나 『금오신화(金鰲新話)』 등을 보면 아마도 고견원식(高見遠識)함을 허여할 순 없다.
梅月, 別是一種異人, 近於索隱行怪之徒, 而所値之世適然, 遂成其高節耳. 觀其『與柳襄陽書』, 『금오신화(金鰲新話)』之類, 恐不可太以高見遠識許之也(答許美叔問目, 退溪集)
그러나 이율곡(李栗谷, 1536~1584)은 퇴계와는 달리 매우 긍정적으로 높게 평가하였다. 그는 왕명으로 일찍이 「김시습전(金時習傳)」를 지은 바 있는데, 다음과 같이 문장에 있어서도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였다고 칭찬하고 있다.
절의(節義)를 표방하고 윤기(倫紀)를 붙들었으며 그 뜻을 궁구하여 일월과 빛을 다툴만하다. 그 풍성을 들으면 나약한 사람이라도 입지가 있을 것이며 백대의 스승이라 하여도 또한 근사할 것이다.
標節義, 扶倫紀, 究其志, 可與日月爭光. 聞其風, 懦夫亦立, 則雖謂之, 百世之師, 亦近之矣.
이러한 율곡의 칭찬은 매월당(梅月堂)의 글을 찾아 십년적공을 하였다는 이자(李耔, 1480~1533)의 서문인 「매월당집서(梅月堂集序)」 가운데도 잘 나타난다.
특히 그의 글은 호탕하여 썰물인 듯 연기인 듯 바람을 몰고 비를 호령하여 노하고 웃는 것이 모두 시가 되었다. 음운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법칙이 문란하지 아니하고 문구에 애쓰지 아니하되 보석처럼 아름답다고 하였다
其爲詩浩蕩, 朝夕烟雲, 驅風詈雨, 怒嗔喜笑, 皆成句語. 不規於聲律, 而典章不紊不刺, 刺於詞華, 而大璞愈麗.
김시습(金時習)의 사상적 내력
이러한 상반되는 평가는 그의 사상적 편력을 통하여 다시 문제를 제기해 준다.
스스로 성명으로 일찍 성대해졌지만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은둔했다. 정신은 유학자인데 자취는 불자로 당시에 괴상하게 보여질까봐 부러 미치광이 행세를 하여 실제를 가리었다.
自以聲名早盛, 而一朝逃世. 心儒蹟佛, 取怪於時, 乃故作狂易之態, 以掩其實.
율곡의 「김시습전(金時習傳)」 가운데 이 글에서 보면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 하여 본심은 유교인데 행적은 불교(佛敎)였으므로 시대에 괴상하게 보일까봐 일부러 미친 짓을 함으로써 사실을 엄폐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이자(李耔)도 ‘행유이적불(行儒而跡佛)’ ‘불적이유행(佛跡而儒行)’이라 하여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
하물며 나는 청빈하여 유교를 행세하면서 불교를 실천하며 일월의 이치를 알면서도 불교경전에도 해박하다.
況吾淸寒, 行儒而跡佛, 日月理而該釋文.
연려실기술에는 다시 ‘색은행괴(索隱行怪)’라 표현을 하고 있다. 또 이산해(李山海, 1538~1609)의 「매월당집서(梅月堂集序)」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유교를 포기하고 불교(佛敎)로 탈바꿈하여 병든 듯 미친 듯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어찌 다른 뜻이 있어서겠나. 그가 삶의 평형함을 얻지 못한 때문이다.
抛棄名敎, 幻形禪門, 如病如狂, 大恢流俗者, 抑何意歟.ㆍㆍㆍ大要皆不得其平者乎.
이러한 마음의 동요는 유교입국의 당시 조선(朝鮮) 사회가 세조(世祖)의 정권 탈취로 말미암은 사회 정의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는 자주 ‘지여시사괴(志與時事乖)’【虛士本閑雅 早世好大道 志與時事乖 紅塵跡如掃 (梅月堂詩集1 自貽)】라는 표현을 통하여 자신의 뜻이 세상 돌아가는 상황과 잘 맞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다.
몸과 세상 서로 어긋남이 삼하였고 세월은 성큼성큼 빨리도 흘러가네.
身世乖違甚 年光莅苒移(敍悶六首)
몸과 세상이 서로 어긋남을 그는 둥근 구멍에 모난 기둥박기[圓鑿方柄]로 비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屢見身世相違 如圓鑿方柄(上柳襄陽陳情書)】.
조동일(趙東一)은 김시습(金時習)과 허균(許筠)은 중세적 질서에 부딪쳐 이를 거부하지 않을 수 없는 자의식을 최초로 심각하게 느낀 선구자이지만, 김시습(金時習)은 주로 사회적 모순 때문에 허균(許筠)은 주로 이념적 모순 때문에 세계와 맞서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趙東一, 小說의 成立과 初期小說의 類型的 特徵, 韓國小說의 理論 p.p 203~207.】. 사회와 맞서기 위해서 그가 택한 길은 입산의 소극적 방법이었으며 적불(跡佛)을 통해 자신을 숨긴 채 지내야만 했다. 그는 도를 행할 수 없는 세상임을 깨닫고 문득 옷에 검은 물을 들여 입고 산 사람[山人]이 되어 소원을 채우리라 생각하고 유랑의 길을 떠났다고 하였다【若染緇爲山人, 則可以塞願(宕遊關西錄後志)】.
매월당시(梅月堂詩) 사유록(四遊錄)을 보면 그는 관서(關西)ㆍ관동(關東)ㆍ호남(湖南)의 편력에 이어 마지막으로 금오산(金鰲山)을 찾는데 이 무렵에 『금오신화(金鰲新話)』도 창작되었다고 보여 지며, 「유금오록(遊金鰲錄)」의 시편만도 백수를 상회하게 남아 전한다. 후세에 반드시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있으리라 하고 저서를 모두 석실(石室)에 감추었는데 김안로(金安老)는 그것은 모두 ‘술이우의(述異寓意)’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玉堂揮翰已無心 | 옥당에서 글 지을 맘 이미 없어지고 |
端座松窓夜正深 | 솔차창에 앉았으니 밤은 정히 깊었어라 |
香揷銅甁烏几淨 | 구리병에 향 꽂으니 안상은 고요한데 |
風流奇話細搜尋 | 풍류스런 기이한 말 자세히도 찾아본다. |
「제금오신화(題金鰲新話)」에서 보면 현실에 대한 영광을 그는 이미 포기하고 절연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풍류기화 즉 『금오신화(金鰲新話)』를 매우 진정된 마음으로 창작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최남선(崔男善)은 김시습(金時習)이 “의외의 세변(世變)에 오중(五中)의 격탕(激盪)을 스스로 진정하지 못하고 신세를 아울러 외물(外物)로 포척(抛擲)하고서 단책열루(短策熱淚)로 팔방(八方)에 방랑할새 금강간화(金剛看話)의 전(前)과 설악송소(雪岳誦騷)의 후(後)에 곡부진소불소(哭不盡笑不掃)하던 궁철(窮徹)의 애민(哀憫)을 그대로 동경(東京) 금오산중(金鰲山中)으로 끌고 가서 구수신한(舊愁新恨) 만강울읍(滿腔鬱悒)을 독호모지(禿毫毛紙)의 끝에 서기상망(庶幾喪忘)한 것이 이 일편(一篇)”이라 평하고 있다【崔男善, 『금오신화(金鰲新話)』 解題(啓明 19號)】. 『금오신화(金鰲新話)』에서는 현실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다양한 비현실적 소재를 창출해냈다고 볼 수 있다. 작품(作品)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전란으로 죽은 여인의 영혼을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죽은 지 오랜 기씨녀(箕氏女)와 더불어 시주(詩酒)를 응수하며, 지옥으로 달려가 염왕(閻王)을 만나 자신의 주장을 펴고 수중으로 용왕을 찾아가 이계(異界)를 편력(編曆)한다【『금오신화(金鰲新話)』 말미의 ‘書甲集後’라고 한 기록을 통하여 乙集, 丙集 등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다섯 편의 성격을 보면 전기작품(傳奇作品)으로는 완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오신화(金鰲新話)』, 중국의 영향으로만 볼 것인가, 자생적인 의미로 볼 것인가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新話)』를 흔히 우리 문학사(文學史)에서 최고의 전기소설(傳奇小說)로 평가한다. 이러한 위상에 대한 평가는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금오신화(金鰲新話)』를 두고 지금까지 두 가지 상반되는 관점에서 작품(作品)의 생성을 논해 왔다. 그 하나는 중국 문학(文學)의 영향을 강하게 의식하는 측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의 문화사적 분위기에 더 비중을 두고 평가하는 측이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구우(瞿佑, 1341~1427)의 『금오신화(剪燈新話)』(1378)를 거론한다【『금오신화(金鰲新話)』는 剪燈을 모방하였다 함은 그의 체제와 내용이 혹사함으로써 말함이니... 현존 오편이 『금오신화(剪燈新話)』내의 八篇과 氣脈이 相通한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滕穆醉遊聚景園記, 富貴發跡司志 /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渭塘奇遇記 / 「남염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鑑湖夜泛記 /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令狐生冥夢錄, 太虛司法傳 /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水宮慶會錄 龍塘靈會錄(朝鮮小說史, 天台山人)】, 뿐만 아니라 이방(李昉)의 『태평광기(太平廣記)』(977)의 「배항당훤 목인청설화(裵航唐暄 睦仁菁說話)」나 『수신기(搜神記)』의 「행도도설화(幸道度說話)」 등을 들기도 한다【金鉉龍, 韓中小說說話比較硏究, 一志社, 1976「朝鮮傳奇小說」】. 물론 김시습(金時習)의 「제전등신화후(題剪燈新話後)」【山陽君子弄機抒, 手『剪燈新話』奇語... 眼閱一篇走啓齒 蕩我平生磊塊臆(梅月堂詩集4, 題『剪燈新話後』)】같은 시를 읽으면 그가 『금오신화(剪燈新話)』 등에 관심을 두고 읽는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또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다섯 편이 작품(作品)의 소개나 구성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자의 독서와 잠재적 영향으로 하여 『금오신화(金鰲新話)』를 모방으로 위상을 폄하하려는 자세는 경계되어야 한다. 『금오신화(金鰲新話)』가 김시습(金時習)에 의하여 창작된 배경은 오히려 후자인 독자성과 자생적 분위기가 더욱 중요시되어야 되리라고 생각된다【모티프는 우리 民間傳承에 흔히 있는 話類이니 燈話의 皮膜을 뒤집어 쓴 밑에는 그대로 國說의 筋骨이 되어 본대 架鑿과 다만 模襲이 아님을 알 것이며 또 한문의 染濁된 자 분명한 國故라도 地名 人名을 漢土로 轉化함이 예거늘 此書는 이 점에 있어 가장 분명한 향토색을 파지함에 힘써(崔男善, 『금오신화(金鰲新話)』解題)】. 『금오신화(金鰲新話)』가 배태되기까지는 이미 『수이전(殊異傳)』의 유편(遺編)들을 여러 문헌을 통하여 찾아볼 수 있으며, 『태평통재(太平通載)』(成任)의 「최치원(崔致遠)」나 『삼국유사(三國遺事)』 「조신전(調信傳)」 같은 것은 이미 전기작품(傳奇作品)으로서의 훌륭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여말 가전체의 출현도 주목되는 바이지마는, 이 무렵은 성임(成任)의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 『태평통재(太平通載)』,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ㆍ『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같은 저술들이 잇달아 출간되어 소설적(小說的)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고 있었으므로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출현은 오히려 그러한 명전기(名傳奇) 출현의 사회적 분위기의 성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보는 쪽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林熒澤, 『金鰲新話形成의 史的背景(現實主義的 世界觀과 『金鰲新話』)】.
작품별 분류와 특징, 그리고 감상법
『금오신화(金鰲新話)』는 작품(作品)의 성격상 크게 두 계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ㆍ「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ㆍ「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가 하나의 그룹이다. 이 가운데서도 전 2자와 후자의 성격은 또 조금 다르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의 양생(梁生),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의 이생(李生)은 각각 죽은 여인의 환신(幻身)과 동서(同棲)하다가 여인을 따라 모두 현세를 등진다. 명혼소설(冥婚小說)로 인귀교환(人鬼交換)이 특색이다. 왜구난(倭寇亂)ㆍ홍건적란(紅巾賊亂) 등 전란이 비극의 시원이 되고 있음도 공통적이다. 그러나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는 전자에 비해 몽유소설(夢遊小說)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고 성애가 거세된 대신 역사적 사건이 만남의 동기가 되고 있다.
한편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와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가 또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데, 이 두 작품(作品)은 완결된 몽유소설(夢遊小說)로 주인공 박생(朴生)ㆍ한생(韓生)이 각각 지옥과 용궁을 편력하는 이계담(異界談)이다. 물론 두 작품(作品)은 여인의 애정관계가 거세되어 있다. 다만 전자에는 박생(朴生)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강조되어 있고, 후자에서는 글 자랑에다 편력만 장황함에 그쳤다.
신독재(愼獨齋, 1574~1656)의 친필 전기집(傳奇集) 가운데서도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ㆍ「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만 보이는 것을 보면 『금오신화(金鰲新話)』 중 이 양편이 명편으로 중구에 회자되었던 게 틀림없다.
冥婚小說, 人鬼交換 | 夢遊小說 |
萬福寺樗蒲記ㆍ李生窺墻傳 | 醉遊浮碧亭記ㆍ南炎浮洲志ㆍ龍宮赴宴錄 |
작품(作品)의 종결법에서도 ‘入智異山採藥不知所從’(「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生亦以追念之故得病數月而卒’(「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沐浴更衣 奄然而逝’(「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數月有病料必不起却醫巫而逝’(「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生不以名利爲懷入名山不知所從’(「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에서 보듯이 모두가 현세를 하직하고 종명(終命)하는 것을 되어 있다. 이것은 작자 김시습(金時習) 자신이 현실에 적응치 못하고 현실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산을 찾았듯이, 주인공이 못다 이룬 여인과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하여, 또는 현실적 삶의 모순을 합리적 자신의 사고로 현실에서 정당화하기 위한 구성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금오신화(金鰲新話)』에 대한 일차적 해석은 어디까지나 작품(作品) 자체의 독자적인 구성과 미학이 중요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차적으로는 작자와 시대를 긴밀히 관련하여 거기에 우의성(寓意性)을 부여하여 작품(作品)의 위상을 추구해가는 작업도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이 작품(作品)의 올바른 평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재일기외(才溢器外)’는 작자 김시습(金時習)의 압축된 평이다. 그릇 밖으로 재주가 넘쳤다는 뜻이다. 그 넘치는 재주 때문에 그는 세상을 올바로 보지 못했고,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내용처럼 영혼을 만나고 이계(異界)를 찾아 마음껏 사랑하고 이야기하였다. 남원과 개성(開城), 평양과 경주, 그가 편력한 역사적 지소(地所)를 선정하여 자신이 읽은 작품(作品, 『금오신화(剪燈新話)』 등)에서 지혜를 얻어 ‘풍류기화(風流奇話)’로 엮어낸 『금오신화(金鰲新話)』가 우리 문학(文學)사상 전기소설(傳奇小說)의 효시가 되고 그 위상을 높여주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인용
1. 머리말
2.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금오신화(金鰲新話)』
3. 작품별 분석
2.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4.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5.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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